본문 바로가기

백두대간

백두대간 제 24구간 (죽령-비로봉-국망봉-고치령)

 구      간: 제 24구간 (죽령-비로봉-국망봉-고치령)

 도상거리: 26km

       자: 2003년 8월 17일(일)

       씨: 계속되는 비 그리고 개임

       온: 1014

 산행시간: 7시간 40분

 

 

08:00 : 출발

09:00 : 중계소 해발 1270m

           멋진 풍광 구름사이사이 시원한 바람

09:10 : 전망대

           구름 실은 산 주름

09:20 : 샘터 (청수 교환)

09:35 : 천문대

09;45 : 연화봉

           어디를 둘러봐도 청산수림에 가득한 운무 뿐

11:00 : 비로봉

           비가 거세지고 바람이 많이 분다.

           3명의 산객 만 호젓한 고봉

12:00 : 초암사 갈림 길

           -> 비로봉 2.8km

           <- 국망봉 0.3km

12:10 : 국망봉

           상월봉 3.5km

 

15:40 : 고치령 하산 완료

 

 

죽령에서 고치령 까지

백두대간에서 빼먹었던 구간 중 가장 어려운 난제로 남아 있던 구간을 한겨레 산악회가 가는길에 묻어 간다..

 

어머니 품처럼 푸근하고 후덕한 소백능선 종주 산행이다.

소백산 능선이야 몇 번 오르내렸지만 이번처럼 온전히 종주할 수 있는 기회는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으니  여러모로 의미 있는 산행이 될 것이다.

더욱이 무박구간을 신새벽에 출발하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4시에 시민회관에서 일행과 합류하고 산악대장의 산행 개념설명을 듣고 난 후 이내 잠으로 빠져든다.

24인용 미니버스인데 그래도 좌석이 꽤 편하다.

버스 옆댕이에는 둔산어학원 이라고 대문짝 만하게 써있다.

바위산장 우등고속은 샤크죤 이라고 써 있는데.

 

소백산 가는 길목 장암포 휴게소에서 깨우는 소리에 눈이 떴다.

어느덧 날이 새 있고

모두들 밥을 먹으라고 야단이다.

회원들이 아이스박스 상자에 김이 펄펄 나는 흰 쌀밥을 꺼내고  익숙한 솜씨로 사이드 디쉬를 준비한다.

단무지,, 인스턴트김, 물발이 송글송글한 상추에 고추 , 그리고 돼지고기 건데기가 다 보이

는 볶은 김치 까지..

세상에 아침 3시30분에 평송수련원 출발하여  4시에 시민회관을 경유하여 장도에 오르는 차편인데 어느결에 누가 이 많은 식단을 준비 했을까?

한겨레 산악회는 회원간의 유대와 단합이 각별한 모양이다..

더욱이 소백산의 원거리 산행인데 참가비가 일만 팔천원에 아침식사 까지 제공한다니.

바위산장에 비해 유난히 아줌마들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한겨레 산악회는 영리목적이 아닌 회원들의 백두대간 종주 목적만을 위해 조직된 산악회라고 했다..

50정도 되어보이는 산악대장은 말 주변도 좋고 따로 공부를 했는지 모르지만 오늘 가는

소백산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일행들의 산행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정말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분주한  어울림이 기분 좋다.

느닷없이 자다가 깨서 먹는 아침 밥도 꿀맛이다.

한겨레 산악회에는  바위산장에서 느끼지 못하는 회원들간의 끈끈한 정이 흐르고 있다.

 

 

도착하자 마자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럼 그렇지

저번 늘재-천황봉-갈령 구간을 비를 맞지 않고 했으니 비를 맞을 때가 되었다.

비가 겁날 건 없는데  잃어버릴 장쾌한 소백산 조망에 아쉬움이 인다.

 

처음부터 비를 맞고 걷는다는 건 체온강하와 체력소모를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 장만

한 우의를 걸치고 시멘트 포장 오르막을 오른다.

처음의 소백종주인데 푸른능선과 눈부신 하늘은 배경으로 멋진 풍광을 가슴 가득 담고 싶었는데..

 

시멘트 포장길이 천문대 까지 계속된다

도데체 몇 km를 시멘트로 발라 버린 건지 모르겠다.

천문대나 통신소의 물자 수송을 위한 것이겠지만  부아가 치미는 건 어쩔 수 없다.

갈라진 포장도로 틈으로도 풀들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저 바람 아래 남기어 먼 훗날 모두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사람들은 다시 콘크리트로 터진

틈을 메워 갈 것이다.

 

모두들 잘도 걷는다.

고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온 아줌마

쌍쌍 부부들 그리고 친구들

모두를 빠른 속도로 비가 오는 죽령 고갯길을 잘도 올라가고 있다.

 

고갯마루에서 비에 젖은 노변 수림사이로 산 아래의 시야가 터진다.

맑은 날처럼 선명한 조망

겹겹이 포개진 산 주름 사이 첩첩의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흰 구름은 가히 절경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라 만날 수 있는 멋진 풍광

오늘은 예감이 좋다.

 

중계소를 지난다.

산 아래는선명한 시야에 몽환의  구름이 흐르고 흐느끼는 비 속에 시원한  산바람의 흐른다.

 

 

전망대

온 천지를 굽어 보는 전망대의 다갈색 누대는 비에 젖어 있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겹겹이 푸른 산주름과 무심히 흐르는 구름 뿐

사바 세계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여기가 스위스 알프스 인가?

빗 속에 온전히 혼자 남기어 지고

구름을 아래 두고 선계를 날고 있으니 예상치 못한 오늘이 최고의 날이다.

 

샘터에 도착했다,

천 고지에서 맑은 물줄기로 쏟아져 내리는 청수

얼려간 물을 쏟아 내고 샘물을 담는다.

그리고 뱃 속이 시원해질 때 까지 소백의 이슬을 마신다.

 

9시 35분

첨성대 모양의 탑과 이젠  낡아 보이는 천문대 건물을 지난다.

처마 끝에 자동판매기 2대가 비를 긋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자판기가 이닐련지.

 

비오는 중에도 밝고 선명한 날이 신비롭다.

우리가 가야 할 비로봉이 중후하지만 힘있는 모습으로 굽이치는 녹색능선 끝 자락에 멀리

바라보인다.

 

9시 45분 연화봉 도착

일행들은 연화봉을 들르지 않고 모두 떠나 버렸다.

나이든 사람들도 있고 아직 아줌마들도 많으니 아직 후미는 많이 떨어져 있으리라

 

연화봉을 지나쳐  떠났으면 평생 만나지 못할 풍광을  흘려 보낸 셈이었다.

지나온 길을 따라 푸른 녹원에 둥근 흰지붕 두개 그리고 빨간 지붕이 선명하고

그 뒤로 짙은 녹색의 산주름에서 구름이 피어난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구름을 두른 푸른 산, 산 .

웅혼하게 구비 치는 소백 능선

길을 잃고 선계에 잘못 발을 들여 놓은 듯

대자연의 황홀한 조화에 넋을 잃고

짧은 시간에 사라져 갈 장엄한 아름다움을 취하여

부질 없이 카메라의 셧터를 누르고 있는 나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가득 흐르는 연화봉을 서둘러 떠날 수 없었다.

지난 번 속리종주 때 함께한 아저씨를 만났다.

육십이 넘었는데 대단한 근력이다.

둘이 함께 우중 풍광에 경탄해 마지 않으며  비로봉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돌연 능선이 사라지고 돌길과 굴곡이 이어지는 산길이 나타난다.

다시 시계가 트인 곳에서 비는 더 거칠어 지고 있다.

돌아온 길을 바라보니 언제 흘러왔는지 그 선명하던 풍광이 자욱한 운무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변화 무쌍한 조화이다.

우비를 뒤집어 쓴 탓에 땀을 많이 흘려서 일까?

우중에도 물이 자주 먹힌다.

비로봉 가는 길 능선의 중간에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차가운 주스를 들이키며 바람에 흩어지는 운무가 시시 각각 다른 모습으로 그려내는 동양화를 감상하느라 넋을 잃고 있다.

 

조금 올라가자니 후미 산악대장이 한겨레 산악회냐고 묻는다.

내가 마지막 후미란다.

내가?

세상에 내가 가장 후미에 쳐져서 후미 산악대장은 걱정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다.

내가 풍광에 넋을 잃어 지체한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한겨레 산악회의 등산속도는 무척 빠

른 편이 아닌가?.

 

비로봉 가는 길엔 부드러운 융단 같은 풀들이 흐벅진 능선의 굴곡을 따라 부드럽게 펼쳐져

있었고 이름 모를 숱한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워 있었다.

참으로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저 물빛에 번쩍이는 융단 같은 풀섶을 구르면 금새 초록 물이 가득 배어 오르고  세속의 악

취는 모두 사라지리라

그리고 나는 저 아래 주목에 걸리어 나뭇잎이 머금은 물기를 털어내리라   

 

온통 푸르름이 흘러내리는 초록의 능선과 녹양방초가 시세우는 아름다운 길을 간직한

비로봉은 다시  가득한 운무를 두르고 장대비에 젖고 있다.

2년 전에 올랐던가?

비가 오는 비로봉은 색다른 느낌의 감회가 인다.

 

국망봉 가는 길은 주로 능선아래에서 이어진다.

등산로가 거칠고 조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지루함 속에  빨리 산허리를  벗어나 능선 길로

나서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후미 그룹에서 벗어나 혼자 움직이는 산행길 인데 비가 오는 가운데 인적이 없으니

그 고요한 적막이 쓸쓸하기도 하다.

한 동안 표지기를 만나지 못하니 혹시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는

데 결국 반가운 백두대간 표지기를 만났다.

특히 한겨레 산악회의 회원들에 대한 배려는 각별했다.

두 명의 산악대장이 선두와 후미를 이끌고 갈림길에서는 여지없이 한겨레 산악회의 방향표시판을 길 한가운데 큼직하게 설치해두고 일정한 간격으로 붉은 색 리본 표지기를 붙여 놓고 있다.

설사 한 밤중에 혼자 하는 산행이라도 길을 잘 못 들 일이 전혀 없는 치밀한 준비와 배려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바위산장 김대장은 대원들에게 전혀 배려를 하고 있지 못한 셈이다.

지금 까지 숱한 야간산행을 하면서도 그 흔한 리본 표지지 조차 사용해본 적이 없고 모두들 알아서 길을 목적지를 찾아가는 형국이고 보니 험한 백두대간 구간에서 유난히 알바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국방봉 300m지점에서 초암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주스를 마시며 휴식을 하고 있는데 구인사에서 올라온 반가운 산행객을 만났다.

멀리 울산에서 올라왔다는데  백두대간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도 이제 대간종점을 얼마 남기지 않은 여행객이라고 이것저것 넌스레를 떨다 보니 후미가 도착한다.

 

국망봉에서는 다행이 비가 그쳤다.

국망봉 표석 아래 모두 둘러 앉아 식사를 한다.

일천 고지 넘는 곳에서 고추장과 열부를 넣고 썩썩 비벼 먹으니 그 맛이 가히 일품이다.

소백산도 식후경

든든하게 배도 채웠겠다.

비로봉 이후엔 자욱한 운무로 풍광 까지 잃어 버렸으니 이젠  목적지 까지 뒤도 안 돌아

보고 걷는 일만 남았다.

우비를 벗어 던지고 고치령을 향해 진군이다.

상당히 빨리 움직이는 부부를 추월하고 파죽지세로 북진 중인데 이어지는 길은 또 다른 감동에 대한 기대를  외면한 채 고치령 까지 지루하고 변화 없는 긴  숲 길의 연속이었다.

중간에 이정표 아래서 초조하게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젊은이를 만났는데  유난히 빠른 속도로 흘러내린 오늘 그런 인상착의의 여자를 추월한 바가 없다고 하니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아마도 길을 잘못 든 모양이다.

 

고치령은 7시간 만에 내려섰고 40분 정도 비포장 고치령을  걸어내려  베이스캠프에 안착했다.

조용히 가랑비가 긋는 고치령

지난 겨울 초입에 울창한 수림과 청정의 계곡미에 경탄하여 마지 않던 비포장  고치령은 

장대비에 할킨 상처를 안은 채 흐린 하늘 아래 조용히 그렇게 우울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비가 오는 통에 2시간 정도 빨리 내려선 셈이다.

나보다도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벌써 탕탕히 흐르는 고치령 계곡물에 몸을 씻고 막걸리와

라면을 먹으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연화봉에서 함께 했던 아저씨는 지난 속리산 권 종주 때 그렇게 힘들어 하더니 오늘은 일찍 내려와 여유를 즐기고 있다.

60을 넘긴 연세에 가히 대단한 체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알고 보니 원래 한겨레 산악회에서 주로 등반하던 분인데 저 번엔 속리종주를 모처럼 바위산장과 함께 헸던 것이다.

어쨌든 그 연식에도  매 주 10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거친 산행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체력이니 더 이상 무슨 할말이 있으랴?

나도 저 나이에 저럴 수 있을까?

 

비온 후 고치령 물은 차가왔지만 온몸에 흐른 땀을 탕탕이 흐르는 계곡물에 씻어 버리고

새 옷을 갈아 입으니 세상의 부러움과 기쁨이 모두 내 가슴 속에 뛰논다.

기암의 속리권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소백산행은   우중 산행이었지만  구름이 발아래

흐르는 큰 산의 신비감과 장쾌한 능선의 흐름과 고원의 푸르름이 인상적인 편안한 여정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