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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백두대간 제 25구간 (죽령-도솔봉-배재-저수령)

      간: 제 25구간 (죽령-도솔봉-배재-저수령)
 도상거리: 26km
      자: 2003년 5월 24일(토~일) 
       씨: 계속되는 비 그리고 안개 바람
      온: 10∼14℃  산행 시간 : 9시간 30분 산행 거리 : 26km
 
 03:00  : 죽령
 04:05  : 헬기장
 04:30  : 3형제봉
 04:55  : 바위망루 (여명)
 05:00  : 전망 좋은 바위 
 05:25  : 밝은 여명 
 05:40  : -> 묘적봉 1.9km
          <- 죽령 6km
           헛발질 그리고 회군  
 07:00  : 묘적봉 
 08:00  : 모시골 
 08:35  : 헬기장  -> 흑목정상 2km
 09:10  : 흑목정상-> 싸리재 1.2km
 09:30  : 싸리재 
 10:00  : 배재
 11:00  : 시루봉(투구봉1110m)
 11:05  : 촛대봉(1,081m)
 11:40  : 저수령 휴게소
 
 
우리가 함께한지 벌써 일년입니다. 
지난 시간은 꿈처럼 흘렀고 소중한 추억과 인연은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새벽을 깨우던 백두대간의 장엄한 해돋이 
여름의 길목에서 대간의 준령에 쏟았던 그 숱한 땀과 잊을 수 없는 고원의 바람 
드맑은 하늘아래 불타오르던 눈부신 가을 
 
기억하십니까? 
뒷걸음 치는 계절을 따라 말없이 날리어 가던 쓸쓸한 낙엽.
청명한 하늘에 금새 쏟아질 것 처럼 반짝이던 무수한 별들과 
스산한 바람이 불어가는 고랭지 채소밭를 휘영청 밝히던 
그 창백한 달빛을 ? 
마치 담아낼 수 있는 기억의 한계인 듯 
우리가 함께한 일년의 추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유난히 눈이 많은 올해 
심야의 설원에 남겼던 우리의 발자욱과 하얀 입김 속으로 새벽과 함께 
다가왔던 웅혼한 설경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장관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겨울을 지나 산수유와 진달래의 모습으로 불현듯 다가온 
봄은 어느결에 우리 곁을 스쳐 지나고 
벌써 싱그럽게 변한 녹원은 장대비 속에서 성하의 여름을 떠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훌쩍 일년이 흘렀습니다.
길지만 정말 짧았던 시간 속에 우리가 마주한 숱한 의미와 무한의 영감... 
실로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 여러분들은 훌륭한 동반자였습니다. 
 
그 시간 그 곳에 있음으로써 만날 수 있었던 눈부신 풍광과 여러분과의 
소중한 인연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따뜻함과 소박함 그리고 그 강인한 정신력과 아름다운 
자연을 향한 넘치는 열정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이만큼 잘해온 우리 모두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냅니다. 
 
 
 
 
다시 일년이 흘렀다.
나는 전율을 느끼며 세월의 흐름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지난 기억들은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서 내 머릿 속을 맴돌고 있는데 
일년의 세월이란 마치 달포 남짓한 날 만큼  허망하게 흘러내린다.
허연 머리에 틀이를 해 박고  산자락의 허름한 음식점에서 
오르지 못하는 봉우리를 우두커니 바라보며 한잔의 막걸리로 시름을 달래는 
쓸슬한 노년이 오늘 따라 자꾸 눈에 어린다.
다시 떠오르는 눈부신  태양의 기억으로 바라보는  낙조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돌아올 수 없는 흔적 없는 길에서 만나는 황혼은 서글프기만 할 것 같다.
그 숱한 세월이 어떻게 이렇게 간단히 흘렀고
또 그렇게 세월이 빨리 흘러 간다면 시간 속에 잠재웠던 그 수 많은 미완을 
  많은 후회와 한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나는 언제나 변함 없고 싶어 하고 더 맹렬히 세월을 거슬러 보지만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과 시간들은 이제 내게 세월의 무게를 실어준다.
 
처음 백두대간을 시작하고 정확히 일년이 되다 보니 불현듯 돌아본 시간이 너무 빠름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 큰 산의  교훈과 추억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보니  어울리지 않게 무심한 세월의 상념에 
젖는다.
영원히 사는 건 바위 뿐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행복이라 해도.
나이가 든다는 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이  주어져도 그것을 할 수 있는
힘이 따라 주지 않는 다는 것
그것이 늙어가는 마음에 상처가 되겠지만  세월은 또 한편으로 젊음의 열정과 의욕을 거둬
가서  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어지게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후회와 한탄을 견딜 수 
있는 건 아닐까?
어쨌든 누군가 말했다.
“무언가에는 취하라 !  술과 덕과 시 그 무엇이던 취하라  그리고  물으라  바람에 참새에
시계에  물으라 지금은 무슨 시간 이냐고  그러면 지나가는 것 , 날아가는 것 사라지는
것들은  대답하리라 지금은 취하는 시간이라고 ……”
짧은 인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
그것이 세월 따라 변치 않는  변함 없는 모범답안이다.
무엇엔가 취한 눈으로 바라보는 인생이 더 아름답다,
 
 
오후에 내린다던 비가  우리가 출발할 때 추적거리기 시작한다.
작년에 계속되던 우중산행의 기억이 새롭다 
오랜만에 몸을 풀겠다던 조사장은 간단하게 끝낼 것 같지 않은 하늘을 보고 끝내 버스에 
오르지 않았다.
낯이 익은 얼굴들도 몇몇이 보이지 않고 소백권의 유명세를  감안하면  19명의 산객은 순전히 악천후 탓이다.
창 밖의 서늘한 기운에 한껏 움츠러들며 얼마나 잤을까?
어둠속에 버려진 죽령은 흡사 여름비 같은 장대비에 젖어가고 있다.
비가 오는 건 겁날게 없지만 그 멋진  대간의 조망과의 결별이기 때문에 아쉽기 그지 없다.
어둠은 내리는 빗속에 그렇게 웅크리고 있다.
오랜만에 빗줄기가 얼굴을 간지르고 내 머리 위에서 랜턴 불빛이 반짝이니 감회가 새롭다.
해외출장에다 약속에다 산행을 3주나 건너뛰었으니 몸이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 우중의 혹독한 탈진 경험으로 내 배낭 속에는 초코렛에 과자, 떡, 쏘세지 까지 얌전
하게 쳐박혀 있다.
버스안에서  시종 깊은 잠에 빠졌으니 행군 중에 졸음도 별로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어쨌든 12시간 예정 산행이니 초,중반에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선두그룹에서 
이탈하여 중간에 섰다.
 
어둠 속에 쏟아지는 빗줄기와 지척이 분간되지 않는 가득한 비 안개의 서슬에 압도되어 
대원들은 말이 없다.
10년 이상의 산행 길에 오늘 같은 비 안개는 처음 만났다.
희 뿌연한 안개가 사방을 두껍게 뒤 덮고 있는 가운데 머리 위의 불 빛은 먼지 속처럼
뚜렸한 빛의기둥을 만들어 눈에 백태가 낀 것처럼 시야가 부담스럽고 등산로의 굴곡이
잘 가늠되지 않는다.
빗줄기에 후두둑 거리는 풀 잎은 불빛에 반사되어 번쩍이고 비를 머금은 나뭇잎은 흔들리는 
가지의 불만을 물세례로 토로한다.
내리는 비 탓인지 확실히 예전보다 발길이 가볍지 않다 . 
중간에 선두가 길을 잘못 잡아 졸지에 다시 선두그룹으로 부상했다가  다시 선두가 삼천포
로 빠지며 후선으로 밀리는 등 갈팡거리는 여정이다.
산이 뭐길래 
백두대간이 뭐길래 
빗속에 침묵하는 사람들
그저 숙명인 듯 말 없이  어둠속의 심산을  묵묵히 걸어 가는 사람들 
따뜻한 침상과 휴일의 달콤한 잠을 어느 하늘아래 남겨두고 
번쩍이는 비옷을 입고 요란한 발소리로 소백산 기슭의 정적을 깨우는 그들은 누구인가?
모든 물상이 잠들어 있는 어둠의 길을 걸어 새벽을 깨우고 다시 찾아 드는 어둠을 걸고 
일상으로 돌아 갈 사람들
그 힘겨운 여정은 시간만이 해결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그 힘겨운 여정의 환희와 보람  그 희망의 진수는 온건히 그들의 몫일 것이다.
신께서 허락하신 완전한 자유와 그 고독의  의미는---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부지런히 뒷사람을 쫓아 가느라 어지럽게 불 빛이 흔들린다.
잘못해서 고립되면 빼도 박도 못하니 새똥빠지게  앞사람의  불꽁무니를 따라가기 바쁘다.
 
03시 45분  통과하고 비에 젖는 도솔봉 4.7km 이정표를 스쳐 지나고 4시 05분에 헬기장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반디처럼 빛나는 헤드렌턴은 안개속에서 작은 빛의 동공만 허락할 뿐 소백도솔
마루를 알아차릴 어떤 증거도 밝히지 못한다.
불청객처럼 다가온 답답한 안개와 빗줄기 속에서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이야 가득하지만 
남겨진 시간의 의미처럼 우리는 이제 묵묵한 기다림에 익숙하다.
마치 백치라도 된 듯 머리 속을 텅비운 채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이 시간은 블랙홀인 듯 
반추할 수 있는 기억이 거짓말처럼 남아 있지 않다.
 
5시 5분전 
안개 속에 시야가 가려 있지만 처음으로 숲을 벗어나 사계가 트이는 바위 위에 섰다.
가득한 안개와 빗속에 희미한 여명이 뜨는 것 같다 
암벽아래는 절벽인 듯 무심한 안개와 바람만 솟구치고 있다.
휘어지는 능선의 옆구리를 감돌아 내리는데 세찬 폭우와 바람이 장대하다.
마치 폭풍의 언덕을 헤메는 주인공의 비감이 감정이입이라도 되는 듯  가득한  비장미
속에  역설적인 가학의 쾌감마저 야릇하게 스멀거린다
 
오늘따라 분위기에 어울리지않게 너무 방구가 자주 터진다.
3주간 배출을 기다리던 유독가스가 용트림을 하는 듯  어둠속에서  끊임 없이 터지는 방구
그 후련한 배출을 위해 나는 본능적으로 선두그룹의 후미에서 앞에 불빛을 잃어버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한 채 끊임 없이 밤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군대 시절 행군하면 서로 내 뒤에 서지 않으려는 부대원들의 설왕설래가 떠올라 웃음이 난
.
오죽했으면 부대원들이 내게 붙인 별명이 “육군방구 도방구” 였을까?
 
5시 날이 새고 밝은 하늘이 터진 곳에서 망대인 듯 숲속에 고적하게 자리한 암봉을 만난다.
발아래 가득한 신록의 물결은 비바람에 세차게 흔들리고 그 위에 무심한 안개가 흐르고 
있다.
비와 안개에 씻기우며 열리는 푸른 대간의 새벽에도 필설에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은 
가득하다.
마치 막힌 곳이 일시에 뚫리는 듯  밝아오는 계곡을 바라보며  깨어진 어둠의 후련함과  
폭풍우 속에 깨어나는 감동을  서둘러 추스를 수 없었다.
중간쯤 인줄 알았는데 선두그룹의 후미 였고  선두 4명이 떠난 다음 새벽대간의 청명한 
기운을 가득 받은 다음 나는 천천히 다시 행장을 수습했다.
비와 바람은 여전히 멎을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급하게 떨어지는 경사로에 멋진 타이어 계단이 설치되어 편안한 산행을 도와 준다.
급전직하로 아래로 이어지는 경사로 타이어 계단이 울창한 수림과 어울려 낭만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대자연에 조화된 인공이 도심 가까이에 있는 단아한 산책로를 연상시킨다.
 
폭풍우에 길 위엔 분홍 철쭉 꽃 잎이 가득 떨어져 비에 젖은 모습에 송한필의 한숨이 살아
온다 
 
우음(優吟)
화개작야우(花開作夜雨)  어제밤에 피었던 꽃이 
화락금조풍(花落今朝風)  오늘 바람에 떨어지네
가련일춘사(可憐一春事)  가련하다 한 봄의 일이 
왕래풍우중(往來風雨重)  비바람에 오고 가는구나 
 
오늘이 소백산 철쭉제  
키 큰 소백의 철쭉 꽃에 실리는 고원의 봄은 폭풍우에 흩어지고  무성한 신록 속에
아직 남아 있는 꽃들은 채 피워보지 못한 봄의 향기가 아쉽기만 한 듯  흔들리는 비바람에 
체념하고 있다.
05:40분 묘적봉 1.9km 죽령 6km 표지판을 지난다.
통제구역 표식이 있는데  길이 끊어진 것으로 보아 통제로로 대간이 이어지는 것 같다.
선두그룹 아줌마 한명을 추월하고 나아가다 보니 선두에는 3명이 가고 있다.
항상 같이 선두에 서던 두명과 못 보던 한 사람인데 별로 빨리 움직이지도 않았던 것  같은
데 결국은 또 그들과 만났다.
오늘 컨디션으로 그들과 동행이 가능할지 걱정이다.
오늘 같은 우천에 혼자 고립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보면 함께 그룹을 유지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뒤 팀을 기다리자니 언제 올지 모르겠고 어느정도 체력이 적응된 듯 하여 1진 합류
를 결정했다
하여간 오늘의 체력으로 그들의 환상적인 발재간을 따라 가느라 몇 번을 시야에서 놓치고 
또 신호까지 보내며 다시 따라 붙는 우여곡절 속에 가까스로 4명의 선두그룹 후미를 유지
하며 안정적인 움직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뒤쫓느라 정신이 없어  주변을 돌아 볼 여유가 없었는데 제대로된 페이스를 유지하고부터
는 대간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간의 흐름이 너무 아래로 치우치고 있다.
백두대간 표지기 리본의 숫자도 너무 뜸한 것 같아 나타나는 표지기를 확인해보니 대간 
리본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느껴진다.
다시 한 번 표지기를 확인한 후에 선두의 대원들에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모두들 이상함을 느꼈던지 그때서야 다시 리본을 확인하고 김대장에게 핸드폰을 때리고 
부산을 떠는데 산속에서 핸드폰은 터지지 않는다.
나는 빠른 회군을 주장했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는 장형이  앞 쪽 봉우리 까지 가보고 해서 
좀더 전진했지만 앞쪽 둔덕은 더 가파른 경사로 이어지고 있었고 표지기는 찾을 수 없었다.
온 길을 완만한 속도로 되 돌아 가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다른 대원을 불러본다.
혹시나 했는데 가까운 저 쪽에서 소리가 온다
“그러면 맞는 건가?”
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기다리면서 계속 소리를 질러대자  인기척은 오는데 대답이 없다.
잠시 후 나타난 사람은 대간 종주대원은 아니지만 이번 소백산 출정에 처음 참석한 우리  
대원이다.
그의 말이 가관이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아 되돌아 가려는데 이쪽에서 계속 사람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
이쪽으로 왔다
단추가 어디서부터 잘못 끼워졌는지 모르겠다.
다만 오늘 이 결정적인 회군으로 나는 빗속의 고통스런 산행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거리를 흘러 내렸다.
소백산 늦은목이의 회군 때는 최상의 컨디션이었지만 오늘은 3주의 휴지기를 거친 오랜만의 출정이라 체력이 부담스럽다.
생각한 것처럼 앞에서 길을 잘못 잡았던 3명은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 대차게 오르막을 차고 오르고 한 순간에  낙담의 나락으로 떨어진 나는  갑자기 무거워진 발과 더 가빠진 숨소리로 그 뒤를 힘겹게 따라 간다.
 
갈림길에서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바쁘게 가는 통에 그 길을 놓친 모양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
그 단순한 언어의 의미심장한 의미와 진리를 우리는 언제나 너무 쉽사리 망각하고 있다.
그래도 생각보다 잘못 흘러내린 구간이 짧아서 제대로 된 길을 찾아드는데 까지 1시간 정도의 시간소요로  사태가 수습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시간이면 다른 대원들은 모두 지나 갔으리라 
나는 앞선 3명을 먼저 보내고 뒤늦게 합류한 1명과 제대로 된 길에서 다시 만난 두명의 대원들과 후미에서 천천히 움직여 간다.
풀잎은 바람 길을 따라 드러눞고  이름 모를 야생화는 흐드러지게 피어있는데 철쭉 꽃잎을 
떨군 비 바람은 여전히 그칠 기미가 없다.
지난 구룡령- 진고개 구간처럼 10시간 이상 비에 흠뻑 젖어야 할 모양이다.
비오는 오늘 이제 회군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고 다시 하고싶지 않다.
중간에 비오는 중에도 찹쌀 떡을 세 개나 먹었지만 체력소모가 심해서 허기가 동한다.
가는 중에 김대장을 만났다.
같이 가던 한 명이 내 뒤에 쳐져 있고 한명이 사동리 방향으로 내려서서 엉뚱한 곳으로 
간 것 같다고 했다.
후미에서 함께하는 김대장과의 산행은 처음이다.
비가 쏟아지는 길섶 어느 곳에도 식사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모두들 밥 먹자는 말이 없다.
7시 30분쯤 비야 그을 수 없지만 그나마 바람을 막아 줄 수 있는 곳에서 궁상 맞은 우중 
식단을 편다.
아예 밥을 꺼내지도 않고 빵으로 때우는 친구도 있고  김대장은 아예 식사를 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분위기에 좌절하지 않는 전천후 먹성 탓에 비에 젖은 김밥에 누군가 권하는  소주
까지 반주로 걸친다.
체온이 급강하 하기는 하지만 견딜만한 추위인데 이빨을 부닥닥 거리며 먹던 친구들은 식사
를 포기하고 나와 한 친구만 남기고 떠나 버린다.
우비는 입었어도 옷은 모두 젖었고 등산화 속으로 빗물이 가득 고여 찌걱거린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여장을 수습하여 다시 길을 나선다.
김대장이  악천후로 인해  애초 예정된 문봉재 까지 산행을 저수재에서 마무리 할 거라고
했다.
2시간 30분 산행이 떨어져 나가는 셈이다.
회군후 심리적 부담에서 오는 체력의저하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여전히 내리는 빗 속에 안개가 흐르는 지루한 산행로는 변화가 없다.
뒤에서 김대장이 흔들리지 않는 페이스로 계속 뒤 쫓아 오니 오히려 부담스러워 속도를 빨리
한 덕분에 헬기장에서  많은 대원들을 만났다.
많은 대원들이 이렇게 모여서 가고 있다면 필경 선두는 장형과 진서군이 다시 나섰을 듯 
싶다
헬기장에는 흑목정상 2km 표지판이 서 있다.
9시 30분경에 싸리재를 지나 배재에 내려서자  앞을 막아서는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서는데
내리는 비와 가득한 안개 속에  그것이 시루봉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시루봉은 이곳 주민들이 투구봉이라 부른다는데 앞에 보이던 봉우리를 넘어서 또 다른 봉우
리를 몇 개 넘어서고야 투구봉을 만날 수 있었다.
두개의 바위가 마주서 있는 투구봉에는 세찬 비바람 속에 안개가 휘몰아 치고 있다.
온통 회색안개를 굽어보는 바위 위에서 마주하는  얼굴이 얼얼한 비바람에 오히려 가슴속이
후련해진다.
안개만 걷히면 참으로 볼만한 조망일텐데….
얼마 걷지 않아 다시 500m 촛대봉 표지판을 만나고 정상 안부에 홀로대리석 입석을 세우고 
앉아 있는 촛대봉 표석을 대한다.
인쇄체로 새져진 정자의 일피휘지 아래는 1080m의 해발표시가 되어있다 
이젠 저수령 까지는 약 40~50분 계속되는 내리막 길이다.
내리막 길을 걸어 내리니 관절이 아프다.
8시간 남짓한 산행 시간에 관절이 아파오니 창피한 노릇이다.
요즘 다소 흐트러진 생활로 운동을 게을리한 측면도 있지만  차가운 바람에 계속 내리는 
비까지 고스란히 맞으면서 산행을 하다 보니 관절에 무리가 오는 모양이다.
하여간 가파른 등산로에 질척거리는 길을 거의 미끄럼을 타면서 어렵사리 내려오니 저수
령 휴게소가 나타나고 우리의 반가운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선두그룹도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은 듯 아직  술판을 벌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손과 발을 씻은 다음 옷을 모두 갈아 입고 뜨거운 가락국수로
속을 풀어주고 소주 한 잔과 두잔의 막걸리를 기분 좋게 마셨던 것이다.
돌아 오는 길에는 탕탕히 흐르는 계곡물과 암벽에서 춤추는 나무들을 난방이 돌아가는 따뜻
한 버스 안에서 편안하게 바라 보았고 
어디쯤 인가 휴게소에서는 자다가 깨어 구름이 휘감고 있는 월악산 삼봉의 뒷모습을 배경

으로 사진을 한 방 때리면서  비오는 날의  추억을 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