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간: 제 29구간 (버리미기재-조항산-청화산-늘재)
도상거리: 26km
일 자: 2003년 7월 27일(일)
날 씨: 계속되는 비 그리고 개임
기 온: 10∼14℃
산행시간: 9시간
07:20 : 출발
08:15 : 미륵바위
08:25 : 불란치재
08:45 : 촛대봉
<-버리미기재 1시간 20분
->대야산 1시간 30분
09:35 : 대야산
<-촛대봉 1시간 30분
-> 밀재 40분
| 피앗골 1시간 20분
10:00 : 갈림길
10:05 : 대문바위,코끼리 바위
10:15 : 밀재
<- 대야산 5.5km
->통시바위 2.5km
| 송면 5.2km
| 월영대 1.8km
11:30 : 고모령 (고모샘)
-> 조항산 1.2km
<- 대야산 3.8km
| 고모샘 10m
12:30 : 조항산
12:50 : 식사 후 출발
13 20 : 갓바위재
15:05 : 청화산
<-조항산 3km
->늘재 3.5km
16:20 : 늘재
세상만사 희로애락은 모두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 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까?
우리를 둘러싼 고단한 일상과 수많은 삶의 변수들에 의해 번뇌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약하고 불안한 존재이다.
한국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고 또 이미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을 벌어버린 박찬호가 요즘
행복할까?
이론적으로는 그 쌓아놓은 부와 명성으로 잃어버린 인기와 잊혀져 갈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 같지만 편안해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처럼 그는 이미 얻은 것 보다는 잃어버린
많은 것 때문에 행복한 일상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이승의 숱한 영욕과 파란만장한 삶을 뒤로 하고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고 정주영
회장과 이승의 번뇌와 한을 자살로 접어야 했던 그의 아들을 보면서 행복한 삶의 실체에
대해 고민해 본다.
범부로 살아갔다면 정몽헌회장은 정치와 경제의 냉혹한 논리에 그렇게 상처 받고 괴로워
하지는 않았으리라.
삭힐 수 없는 고뇌와 아픔을 보듬고 오랫동안 억지 웃음을 지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려 했을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숱한 갈등과 번민에 고통스러워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을 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가 고뇌에 남겨져 있었던 수 많은 시간동안 눈부신 바다와 신록의 푸르름을 거쳐 단풍
과 낙엽으로 가는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와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작은 기쁨들이 쌓여 만들어 가는 일상의 행복들이 그를 위로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것은 남은 사람의 고통이전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개인 스스로의 비극이다.
짧은 인생이 주어진 우리에겐 그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고 그 인생을 소중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도 실패라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았다면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일 뿐이다.
노력하는 삶 속에 작은 행복들이 있었고 또 그 행복들에 기꺼이 기뻐할 수 있었다면 산다는 것이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죽음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어제와 오늘의 세상이 갑자기 달라져 있음을 본다.
갑자기 인생이 재미 없고
무의미 해지며
살아가는 고통을 진하게 느낀다.
그리고
마치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자신의 존재에 한 없이 초라해진다.
세상은 달라 진 것이 없다.
사랑하는 가족도
언제나 마주하는 일상도
함께 일하는 동료도 모두 그대로이다.
달라진 것은 자신의 마음 뿐이다.
단지 어제 까지 아무 일 없었던 자신의 마음이 상처 받은 것이다.
고민할 것이 너무 많은 우리 세대에는
떨어 버릴 것은 훌훌 털어내야 한다.
세상에 고민으로 해결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해결책이 필요할 뿐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고민해서 해결 될 수 없는 일은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그 번민으로 우리는 불행해지고 우리는 삶의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린다.
그 번민의 시간은 진실한 웃음을 거둬가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역시 우울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 곁에는 더 어렵고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는 수 많은 우리의
이웃들이 있다
무언가 훌훌 털어 버리고 싶을 때 산으로 가자
진한 고통으로 가슴이 아파 오면 높아 있는 산을 올려다 보고
저 바람처럼 어느덧 스치고 지나 갈 우리의 짧은 인생을 생각해 보자.
시원한 계류와 한 줄기 바람으로 행복할 수 있는 소박한 삶처럼
어쩌면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부귀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그저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라고….
흐린 날씨다.
선유동 지나는 길목에 비가 온다.
또 비
출정이면 어김 없이 따라 붙는 비가 원망스럽다.
5시에 나오느라 아침도 먹지 못하고 마누라 깨워서 간신히 점심만 싸온 터라
빵이라도 좀 먹고 출발해야 하는데 화양동 가는 길목의 휴게소가 문을 열지 않아
투덜거리니 최여사가 싸온 김밥을 한 줄 건네 준다.
선유동 가게에서 1회용 우비를 1개 사고 빵 몇 개와 베지밀을 사서 넣고 버스에 올라 김밥을 먹는다.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 지고 마음은 더 어두워 간다.
날씨가 우울하니
뜨거운 태양 아래 기진맥진 땀을 흘리고 거친 호흡으로 능선을 내달리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하다
7시 20분 버리미기 재의 출발 선상에 섰다.
꽤 많은 비가 내리고 바람결이 차가와 우비를 입었다.
버리미기재를 오르는 초입부터 산능성이가 바람을 차단하니 우비 아래 땀이 오른다.
8시 15분 미륵바위에 도착했다.
넓은 암반 위에 젖꼭지 같은 돌기가 있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를 배경으로 운무가 흩어지는 산등성이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다.
비도 거의 그치고 우비를 벗어 던지니 비견할 수 없는 시원한 기운이 온 몸을 기분 좋게
감싼다.
일행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이제 비가 걷힐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날아 갈 것 같다.
10분쯤 진행하니 불란치 재에 다다른다.
8시 45분 촛대봉 도착
버리미기재에서 1시간 20분 대야산 까지 1시간 30분 소요된다는 표시가 있다.
대야산 가는 길은 멋진 암릉미가 살아 있는 역동적인 산행 길이다.
가끔은 부분적으로 안개가 걷히며 베일에 가린 듯 운무가 흐르는 신비한 산세를
드러낸다.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다시 심상치 않게 쏟아지는 비를 마냥 맞을 수만 없어 다시 우비를 입는다.
날씨가 이대로 개이고 운무를 걷어가 멋진 대야산 능선의 조망을 열어주면 좋으련만
비가 오는 가운데 로프에 대롱거리며 대야산 직벽을 오른다.
풍광도 없고
산세에 감탄할 여유도 없다.
그저 앞 사람만 바라보며 거친 암릉을 휘돌아 갈 뿐 …
언젠가 올랐던 대야산 산정에는 비가 오는 가운데 몇 명이 지친 모습으로 휴식하고 있다.
외로운 표석 옆에는 노란 배낭이 한 개 덩그러니 앉아 청승 맞게 비를 받아내고 있다.
930.7M 대야산은 청천면 삼송리와 문경시 가은읍을 경계로 예로부터 조화로운 암릉과
수려한 계곡의 풍광으로 수 많은 시인과 묵객이 즐겨 찾았다는 곳으로 용추계곡으로
이어지는 문경 선유동 계곡과 북쪽 괴산의 선유동계곡을 품고 있는데 빼어난 계곡미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화양구곡과 군자산 쌍곡계곡이 가까이 있으며 월영대와 용이 승천한 푸른 소를 가진 용추가 유명하다.
청천면 삼송리에 위치한 농바위 마을은 밀재를 동으로 바라보고 북으로는 속리산 서로는
화양계곡 북쪽으로는 쌍곡계곡을 이웃하고 있어 눈부신 자연경관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 장수마을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맑은 날 대야산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군자산 ,장성봉,희양산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맥과
동쪽으로는 벌바위 마을 용추골,피아골,다래골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남으로는 둔덕산 조항산을 바라보는 전망이 일품이라는데 비가 오는 오늘은 발 아래로는 안개만 오락가락 하고 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댄다.
메아리 산악회와 몇 년 전 올랐을 때의 여유와 감상이 사라진 대야산 정상
그 때는 주변산들이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산세에 경탄했는데 오늘 주변의 지리를 어느
정도 익히고 그 풍광을 감상하려니 대야산 산신령님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리는 비와 단절된 사계에 그저 서서 할 일이 없어 서둘러 내려간다.
10시에 갈림 길을 만나고
10시 5분 백두대간 제 22경인 대문바위와 코끼리 바위를 지난다.
비에 젖은 길 섶에서 번들거리는 묘한 바위의 형상을 한 대문바위와 코끼리 바위는
풍광울 잃어 버린 산행에 작은 기쁨이다.
10시 15분에 밀재에 도착해서 대원들과 사진을 찍었다.
통시바위가 2.5km남았고 아래로 월령대가 1.8km 송면이 5.2km에 있다.
지나온 대아산은 어느덧 5.5km 뒤로 밀려나 있다
조항산 가는 길엔 빗물에 씻기 운 멋들어진 노송군락이 일품이다.
62세가 되신 윤원장님이 오늘 상행에 합류했다.
평상시에도 매주 5~6시간 산행은 하신 다는데 오늘 백두대간 산행은 처음이라 하신다.
처음부터 우비를 입지 않고 비를 모두 맞으시고 대야산 암릉구간에서 체력소모가 많았던
탓인지 선두그룹에서 조금 밀려나고 있다.
그 뒤를 따라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산에 대한 사랑과 산을 찾는 삶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4차대원들의 성공적인 등반을 기원한다며 기꺼이 성금 20만원을 내놓기도 하셨다.
아무튼 원장님의 발길이 밀려는 통에 선두그룹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듯하고 2진 과의 거리도 꽤 벌어진 어정쩡한 상황이라 찬바람을 맞으며 기다릴 수도 없는 상태이고 보니 고립되거나 혹은 원장님의 탈진이 염려스럽다.
다행이 고모령에는 선두그룹이 휴식하고 있었다.
고모령아래 고모샘에는 축축한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맑은 샘물이 쏟아져 내리는 약수가
있다.
물은 부족하지 않지만 아직 얼음이 녹지 않아 물 마시가 여의치 않아 고모샘의 시원한 청수 를 사정 없이 들이켰다.
대간로 상에서 이정도의 풍부한 수량으로 흘러나온다면 갈수기에도 수 많은 대간객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갈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리라
맛 있는 물맛의 고모샘은 고모령에서 10M아래에 위치해 있고 고모령 표지판은 대야산으로부터 우리가 3.8KM를 흘러왔으며 약 1.2KM 전방에 조항산이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죄송스럽지만 윤원장님을 앞서서 가파른 조항산 오르막을 차고 오른다.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으시면 아마 오늘 힘겨운 산행이 되실 텐데 걱정스럽다.
거의 오르막인 1.2KM 구간을 올라 여전히 우울한 안개가 감도는 조항산에는 12시 30분에
도착했다.
2명의 부부산객이 표지목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고 짙푸른 녹음을 간직한 관목과 수풀 앞에 우뚝 서 있는 951M를 알리는 표지석이 외롭다.
조항산에서는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멀리 북쪽으로 둔덕산과 대야산이 보이고 그 너머에 군자산 장성봉 희양산이 보인다
희양산 너머로는 희미하지만 월악산 주흘산의 실루엣이 어른거린다.
바람결에 조금씩 걷히어 가는 운무사이로 정갈한 청산의 아름다움이 비온 후의 산뜻함
으로 오락가락 한다.
약간씩 떨어지는 빗방울을 개의치 않고 우비를 벗어버리고 방풍자킷을 걸치고 식사를 한다.
오늘은 조항산상에서 아직 사각거리는 풋풋한 열무김치에 된장을 넣고 고추장에 썩썩 비벼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매번 24시 김밥에 물려 마누라를 졸라 변화를 시도했는데 성공적이다.
식사가 끝날 즈음에 최선생님과 윤원장님도 도착했다.
생각보다 훨씬 밝아진 표정이고 아직 체력에 큰 무리가 없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식사를 마무리하는데 약 20분 소요되었다.
조항산 주변에는 노송이 많다는데 천연기념물290호인 삼송리 용송은 수령이 600년이나 되고 밑둥 둘레가 5M에 이른다고 한다.
대야산 조항산 청화산으로 이어지는 암릉구간의 비경들은 가히 천하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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