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간: 제 87구간 (이화령-악휘봉-장성봉-버리미기재)
도상거리: 35KM 14시간 30분 소요 (알바포함 16시간 40분)
일 자: 2003년 7월 12(토~일)
날 씨: 비온 후 오후 부터 갬
기 온: 14~19c
02:00 : 산행시작
04:00 : 백화산
06;45 : 평전티
07:30 : 이만봉
08:30 : 배너미 평전
08:50 : 성터
09:30 : 우측하산
10:00 : 성벽 바위 (사진)
반석게류
10:20 : 지름티재 밑평전
10:40 : 지름티재
11:10 : 절벽위 전망바위(우비 사진)
11:20 : 반석 정상 : 웅혼환 풍광
12:20 : 은티재
12:40 : 전망바위 :굽이치는 운무
12:50 : 정상
13:00 : 층암절벽 분재소나무
01:30 : 악휘봉 삼거리
01:45 : <-악휘봉 40분 -> 마분봉40분 | 은티마을 30분
02:15 : 마분봉
03:35 : 악휘봉 리턴
06:00 : 장성봉
06:40 : 버리미기재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상치 않는 위험에 직면한다.
마치 일상처럼 의식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시간이 엄청난 결과와 잘못으로 다가 올 때의 낭패감 그리고 그 자괴감
그러나 그 어려움을 지만다음 다음 그 것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또다른 기쁨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백두대간 사상 가장 긴 시간이었던 무박 16시간 40분의 산행은 내 생애 최장의 당일 산행 시간의 기록과 함께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한 많은 버리미기재
“빌어먹을 재” 라고 내가 숱하게 되뇌이며 불렀던 그 재는 17시간의 긴 행군의 끝에서
황혼이 스미는 산자락에 그렇게 조용히 앉아 있었다.
비가 내리는 칠흑의 이화령
굵은 빗줄기와 거센 바람에 이화령은 을씨년스럽게 젖어 있다
가장 긴 시간지표를 가지고 있는 이화령-버리미기재 구간을 반팔티 위에 가벼운 1회용 우비를 입고 출발한다.
거센 바람에 어지럽게 춤추는 관목들과 풀잎들은 번쩍이는 불 빛을 토해 내면서 광란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오늘의 산행은 쏟아지는 빗 속에 시간지체와 체력소모가 대단할 것이다.
처음부터 거센 비바람과 차가운 비에 노출되면 보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대신 가리워진 뜨거운 태양 덕분에 땀을 흘릴 겨를이 없을 테니 물은 많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건 아름다운 산세의 조망과 그 멋진 풍광과는 결별이다.
오늘도 지독한 운무 속에 그저 백두대간 마루금만 열심히 밟아 가야 하는 순례와 형극의
길이 되지 않을까?
다시 오기가 마음처럼 쉽지 않을 구간들인데 안타깝기 그지 없다.
비는 어둠 속에서 큰소리로 흐느끼고
심산의 정적을 여지 없이 깨어버리는 세찬 바람은 가득한 대자연의 위엄으로 초목을 뒤흔
들고 초라한 순례의 행렬을 세례하고 있다.
언제나 온화한 대자연의 얼굴이 분노로 뒤바뀐 오늘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경외로움이
소스라치는 산록을 무겁게 떠돌고 있다
함께라는 이유로 대자연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한 채 떠나는 여정에 모두들 편치 않은
마음이리라
가도 가도 깨어지지 않는 어둠과 비바람
별로 힘겨운 코스는 아닌데 내가 걷는 이 길이 백두대간 이라는 증거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지루한 어둠과 계속되는 비 그리고 아직 닿을 수 없는 새벽은 머나먼 대간의 능선 어디쯤
긴 시간의 공백 속에 잠들어 있다
벌써 등산화는 찌걱거리고 바지는 흠뻑 젖어 청승은 뻘처럼 진득이는 바짓가랭이를 추적거리며 따라온다.
비닐하우스 속의 상의도 젖어있다.
비오는 어둠의 숲을 헤친 지 2시간 여만에 백화산에 도착한다.
내리는 빗 속에 사진기를 꺼낼 엄두도 낼 수 없다.
비바람이 거센 봉우리에 노출되어 있으니 금새 체온이 떨어진다.
쉽사리 깨어지지 않는 어둠 속에서
청승스럽게 빗물을 그어가는 외로운 배가본드
오늘은 차리리 항구에서 뱃고동 소리를 듣고 싶다.
다시 떠나야 한다
자연과 시간은 언제나 정직하다
그 소박한 정직함에 푹 빠져버려 항상 이렇듯 고생에서 헤어나질 못하는데 그것은 고생이
아니라 삶의 온건한 기쁨과 축복일 뿐이다.
항상 늑장을 부리는 것 같은 말없는 시간은 언제나 바쁜 내 발걸음 보다 빨라서 어느덧
대간의 능선을 따라 새벽이 시나브로 다가온다.
빗물에 깨어나는 청정의 새벽을 기쁨과 감동으로 대한다.
희미한 새벽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숲의 어둠을 헤치고 넓은 평천지에서 갑자기 마주하는
비 내리는 맑은 새벽의 그윽함
그 후련한 대자연의 청명함 한가운데서서 나는 비로소 느슨한 이완으로 오감과 모공을
열어 대지의 힘찬 기운을 깊게 들이 마신다.
.
이만봉 가지 전에 비가 좀 자즈러지고 바람이 약해진 곳에서 식사를 한다.
2500원 짜리 김밥을 두 통과 김치 국물에 저마다의 개성있는 식단이 내리는 빗 속에서
제법 근사하게 차려진다.
무장공비들의 우중식단
먹는 즐거움보다는 생존을 위한 에너지 비축인 것처럼 식사는 의식처럼 엄숙하게 진행된다.
내리는 폭우에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국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처절한 빗속의 낭만
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청승스러운 이 시간을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
거친바람 , 그리고 확인할 수 없는 준령과 녹원 .
미친 사람과 같은 몰골위로 흘러내리는 이 처량한 빗줄기 마져도 아낌 없이 사랑한다.
자연을 향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지칠 줄 모르는 건강이 아직 내 곁에 머무르고 있어
나는 오늘도 콧날이 시큰 하다.
오염되지 않은 대자연과의 거리낌 없는 조우를 할 수 있는 이 사간이야 말로 감동스럽고
축복에 가득찬 시간이다.
밝아진 새벽 능선을 몇 굽이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니 이만봉이다
해발 990M 어울리지 않는 대리석 표석이 이만봉을 증거하고 있다.
정선배는 이만봉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고 실종되었다.
이만봉을 내려서면서 대간로가 산허리를 차고 내리는데 고도의 하강이 심각하다.
대간 리본도 거의 달려 있지 않고 희미한 등산로는 흐르는 빗물에 아얘 물길이 되어 버렸다.
이길이 맞는 걸까?”
오늘 같은 날 헛발질하면 초 죽음이다.
그래도 앞서 가는 친구가 길을 확신하면서 자신만만하게 이동하는데 이만봉에서 한시간쯤
되는 거리에 많은 리본과 함께 배너미평전이 나타난다.
모두들 베낭을 내리고 휴식을 하는데 조금 있으니 김대장과 나선생님이 도착한다.
비오는 와중에도 뜨거운 물에(실은 조금 미지근해졌다) 커피를 타서 한잔씩 돌리는데
한 잔을 얻어 마시니 잠을 못자서 조금은 멍한 기분이 수습되는 느낌이다.
고마운 정이다.
연로함으로 항상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될까봐 언제나 휴식시간을 줄여서 먼저 출발하는
나선생님
혼자 마시려고 그 무거운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오진 않았으리라.
여기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우주의 중심이다.
평전 아래는 탕탕한 계류가 내는 물소리가 가득하다.
09 10분에 성터에 다다랐다.
평상시에 봉암사 중들이 희양산구간 등산로를 폐쇄하고 등산객의 출입을 통제한다는데 우천이라 중들의 모습은 간데 없고 중들이 막아놓은 나무담장이 빗 속에 을씨년스럽다.
월담을 하느냐 우회도를 택하느냐 그것이 문제다.
우지점장이 정면돌파로 분위기를 잡아 뒤를 따르는데 뒤따라 나서는 사람이 없다.
험하기로 유명한 희양산 등산로와 비오는 날의 고립이 두려워 나는 슬그머니 멈춰 선다.
가득한 운무에 쌓인 희양산의 장엄한 풍광과 안전한 우회로 사이에서 고민하는데
그에 홍여사가 쐐기를 박는다.
“희양산은 로프 없이는 불가능하다. 비오는 날 사람들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MONOLOGUE : “살아서 오래 아름다운 산을 타야지…”
결론은 버킹검이다.
김대장이 올때 까지 기다려서 안전한 우회로를 택해 내려간다.
한 20분쯤 기다려 김대장 일행이 도착하고 우리는 예상했던 우회로를 선택한다
계곡을 따라 내리는 길
하염없이 내려가는 길을 따라 희양산을 능선을 타지 않은 후회가 꾸역꾸역 따라붙는다.
꿩대신 닭이라면는 표현이 맞을까?
비에 씻기운 성벽 같은 외로운 암봉의 적층
흰 물줄기를 뿜어 내리는 폭포와 빗물에 불어 탕탕히 흐르는 풍부한 수량의 계류는
그나마 몽환적일 희양의 풍광을 뒤로한 어쉬움을 위로해 준다
10시 20분쯤되어 지름티재 밑평전에 도착한다.
하산길 50분 만이다.
주스를 한모금 마시고 누군가가 준 오이를 받아먹고 나여사님의 누룽지를 먹으며 휴식하다
지름티재로 오른다.
지름티재는 20분 정도의 오르막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었고
희양산 반대편 능선인 듯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고 중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오늘같은 날 .희양산으로 들어가는 미친 놈들이 없을 거라는 예상일게다.
찬바람을 맞으며 거친 암능에 로프에 대롱거리며 낙낙장송을 휘여 잡으며 그렇게 오른
바위 전망대에는 구름을 두른 흰 희양봉이 장엄한 위용으로 다가서고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 간간히 비를 뿌리는 세찬 바람은 범상치 않은 산세에 경외감을 더한다.
멋진 풍광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우비자락을 휘날리며 암봉에 비껴서 있는 고사목에
기대어 포즈를 잡아 본다.
빗줄기가 멎고 그래도 많이 날이 밝아진다.
거추장 스러운 우비를 벗어 던졌다.
바람이 차단되고 무언가 답답하고 음습한 기운을 감싸던 비닐하우스가 걷히고
축축한 옷과 살갗에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자 마치 온 몸이 호흡을 하 듯 신선한 기운이
온몸을 전율처럼 퍼져 오른다.
운무가 오락가락해도 장대히 굽이치는 산세의 조망이 터진다.
반석 정상부에서 바라본 운무가 떠도는 웅장한 희양산과 주변의 풍광이 수려하다.
이 멋진 풍광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오늘백두대간 주유는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다.
굽이치는 희양의 암봉 등성이를 흘러 내리지 못한 후회가 다시 스멀거린다.
나는 희양산 구간의 백두대간을 우회한 셈이다.
전망바위에 바라보는 희양봉 주변에 가득한 운무가 장관이다.
짙은 운무는 세찬 바람에 흩어지며 정상부로 솟구쳐 오른다.
그 신선한 차가움이란……
운무를 두른 산능성이를 배경으로 신록의 바다 한가운데 군계일학처럼 솟아오른 한그루
소나무는 명상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자연 한 가운데 있음이 삶의 위안과 축복이다.
정상부에서는 다시 가득히 밀려드는 산 안개를 바라본다.
참으로 조화롭고 변화무쌍한 대자연이다.
흰 눈을 머리에 인 노송과 뒤 흰 눈발이 칼 바람에 날려가는 한 겨울의 풍광은 또 얼마나
장관일까?
이젠 무거웠던 마음도 맑아지고 발걸음마져 가벼워지는데 층암절벽과 분재와 같은 소나무의 멋진 조화가 눈을 즐겁게 한다.
악휘봉
오늘의 운명을 갈라 놓은 악휘봉 삼거리에는 1시 30분에 도착했다.
11시간 30분 만이다.
이젠 산행 마무리 3~4시간 남은 지점이다.
가는 길 악휘봉에 들리려 했는데 마침 밀려오는 안개로 그저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홍여사가 먼저 내려서고
우지점장이 뒤 따르고….
그리고 나와 젊은 친구
건너다 보이는 능성이 절벽에는 몇 명인가 개미처럼 암벽을 오르내리는 모습이 보이는데
큰 소리로 바위를 외쳐도 대답이 없다.
아마도 앞서간 1진 3명인 모양이다.
악휘봉 이후는 힘든 구간이 없다던데 저 깊은 계곡과 칼날 같은 병풍 봉우리들은 이상하기
도 하다.
계곡아래 마분봉 표지판과 바람에 흩날리던 리본들
거친 암봉들의 조화로운 모습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칼바위 능선의 조망들
뒤따르는 나는 백두대간임을 의심할 수 있는 아무런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다
봉우리를 세개 쯤 너머 로프 끝에 대롱거리며 오른 마분봉 풍광은 장쾌하고 수려하다.
저 깊은 계곡과 봉우리를 지나 벌써 여기에 왔다니…..
새삼 대자연 한 가운데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작은 인간이 내딛는 짧은 보폭의 위대함을
다시 느끼는 순간이다.
하지만 불길한 전주곡처럼 멀리 우리가 출발했던 이화령이 보인다.
이화령-버리미기재 구간의 대간의 흐름은 완전히 ㄷ자로 휘어진 특이한 산세인가?
휘어져 솟구친 능선 탓에 옆으로는 지나온 대간이 장대히 버티고 뒤로는 두겹의 큰 산세
의 흐름이 계속이어진다.
우리의 대간로는 장성봉인 듯한 맞은편 봉우리를 거쳐 하산길로 접어드는 모양이다.
다시 로프에 대롱거리며 봉우리를 올라 정상부에서 지도를 확인해 본다.
마분봉 표시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지도상 우리가 가는 방향은 이상이 없음을 멋대로 합의한 채 근본적으로 잘못된
독도를 아랑곳 않고 갈 길을 재촉한다
이 길이 아닌 개벼 !
난리가 났다
우리의 길 앞에는 장성봉이 남았는데
갑자기 내리 꽂히며 하강하는 길은 금새 마을과 들판의 모습을 드러내고 차 소리를 들어
올리고 있다.
장성봉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면 마분봉에서 우리 뒤쪽으로 높이 흘러가는 능선이 백두 대간인 모양이다.
그래도 그 때 까지는 좋았다.
마분봉 뒤 능선이면 알바 구간이 얼마 되질 않으니….
거의 바닥근처 까지 내려온 길을 다시 허우적 대며 오르늘 길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그 짧은 시간에 우리가 내려선 구간이 그렇게 엄청나다는 사실
똑 같은 길을 더 힘겹고 멀게 느끼며 다시 로프에 대롱거리며 가는 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입증 되듯
이제 아름다운 풍광은 기쁨과 희망이 아니고
내 어깨에 지워진 짐이고 고통일 뿐이다.
마분봉을 거쳐 다시 앞 봉우리로 이동하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 길도 아닌 개벼 !
우리가 대간이라고 생각했던 쪽으로 길은 만들어 지지 않았다.
우리의 단추는 아마도 저 멀리 악휘봉에서 잘못 끼어진 모양이다
그 심연과 같이 깊은 계곡과 절벽들 그리고 봉우리를 거쳐 다시 온 길을 되돌아 가야 한다.
목적지를 향해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던 발걸음은 맥이 풀리고
어깨의 배낭 끈은 천근의 무게로 어깻죽지를 당기고 있다.
김대장에게 보낸 핸드폰은 메아리조차 남기지 않는다.
가장 긴 산행 길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좌절과 상심에 있다.
14시간 예정산행에서 거친 암봉구간을 2시간이상 헛발질로 체력 소모를하고 게다가 순간의 판단미스 안타까워하는 자책과 낙담
같은 길을 걸어 나가면서 그 순간을 고비로 그렇게 달라지는 산행을 오늘은 처절하게 온몸
으로 느끼고 있다.
모든 인생의 즐거움과 괴로움은 정녕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산도
바람도
따뜻한 태양도 그 대로 인 걸
아득한 한계상황과 고통 속에서도 산의 깨우침이 다가온다
.
악휘봉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꼬박 2시간이 걸렸다.
한 번도 쉬지 않고 험한 능선을 되 짚어오니 체력소모도 만만치 않다.
장성봉 가는 길은 T자형 삼거리에서 좌측 길인데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과 의문도 없이
리본이 무수히 나부끼는 우측 등산로를 택했던 것이다.
체력소모는 있었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빨리 회군했다.
후미 보다 1시간은 앞섰던 것 같은데 잘하면 후미와의 차이를 한시간 이내로 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체력소모가 너무 크고 남은 구간이 얼마나 험준할지잘 알지 못하니
오늘의 상황을 예단하기 어렵다.
악휘봉을 지나 10분쯤 지난 거리에서 비로소 휴식하며 김대장에게 핸드폰을 하는데 앞서가던 사람들의 실종으로 난리가 한바탕 났던 모양이다.
1진 2진이 모두 실종되고 정선배는 행방불명이고 몇몇은 중간 탈출로로 은티마을을 거쳐
하산했다
오늘의 풍비박산 산행으로 한참 마음 고생했을 김대장은 전화가 통하자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오늘 우중산행의 체력소모를 염려하여 은티마을로 되돌아 하산할 것을 권하고 있다
다음에 다시 악휘봉으로와서 장성봉을 거쳐 버리미기재로 다시 내려서라고?
그거야 말로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고 악몽이다.
기껏 두시간
우리의 속도를 유지하여 후미도착시간과 1시간 이내로 줄여준다면 대원들에게 크게 미안할 건 없다.
후반부의 산행구간과 체력이 뒷바침 해 준다면......
그래도 모두들 비상식량을 갈무리하고 있어서 물부족과 허기로 인한 탈진은 피해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누구에게 뭐랄 수 있나?
4명중 마지막에 서서 움직여 갔다는 것으로 것 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탓할 수 있을까?
운명처럼 잘 못 되짚은 길은 인생 길을 닮았다.
순간의 판단미스로 인해 선택한 길이 우리의 인생판도를 바꾸기도 한다.
형극과 고통의 길이 열려 있었지만
그 길 또한 소중한 나의 길이고 그 길에도 녹양방초가 우거진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었다.
나의 인생동안 어쩌면 한번도 올라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를 마분봉과 한폭의 동양화 처럼
수려한 대간의 지릉을 주유했다.
산신령님의 선물이었고 운명처럼 다가온 소중한 시간이었다.
비에 젖은 뻣뻣한 옷에 쓸려 어깻죽지 며 사타구니가 쓰라려 오고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을 얼굴에 거친 숨소리
잠을 자지 못해 때때로 멍해지는 느낌과 내리누르는 피곤함에 지쳐가는 몸과 발걸음으로
도 우리는전혀 속도를 흐뜨러뜨리지 않고 별다른 휴식 없이 장성봉으로 내달았다.
우지점장과 홍여사의 체력은 대단했다.
항상 남다를 갈증으로 5리터의 물을 젊은 친구는 역시 젊은이 특유의 회복력으로 짱짱하게 움직여간다.
네명 중 내가 가장 힘든 산행인 모양이다.
산세가 험하진 않았지만 몇 개의 산을 다시 넘었는지 모르겠다.
장성봉인 듯 한 봉우리 아래에서 김대장의 반가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안개가 밀려드는 장성봉에는 외로운 표석이 앉아 있고 학처럼 목이 길어진 김대장
이 기다리고 있다.
빛과 어둠이 완충되는 시간에 버리미기재에 내려섰다.
그 진한 감동과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숨가쁜 긴 여정의 파노라마
정선배는 문경으로 내려서서 택시를 타고 되돌아 왔고 앞에섰던 1진도 길을 잘못 들었다가 예상보다 늦게 내려오는 등 반수이상이 알바를 했고 또 몇 명은 중도에 하산했다.
후미와는 20분 차이 밖에 나지 않았다
2시간의 알바가 아니라면 우리팀 가장 먼저 하산했을 정도니 하여간 대단한 산행구간
이었던 셈이다.
한잔의 막걸리를 마시고 계곡 수림에 숨어 목욕재개를 하고 나니 어둠은 스멀거리며 내 곁에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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