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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백두대간 제 31구간 (신풍령-백암봉-서봉-육십령)

      간: 제 30구간 (신풍령-백암봉- 서봉-육십령)

   도상거리: 31.8km

         자: 2003년 8월 23(토) ~24(일)

         씨: 흐리고 갬 (한때 소나기)

         온: 22~25c

   산행시간: 14시간 50분

 

 

12:30 : 시작

13:00 : 횡경재 삼거리 6.8km지점, 송계삼거리 11km지점

13:36 : 갈미봉 (1201.5m)

13:40 : 횡경재삼거리 5.2km지점, 송계삼거리 8.4km

        <- 신풍령 2.6km

24:05 : 대봉

         <-신풍령 3.6km -> 횡경재삼거리 4..2km

         ->송계삼거리 7.4km

14:40 : 월음봉 

03;05 : 못 봉 1342m

        횡경재 삼거리 1.7km,  송계삼거리 4.9km

        <-신풍령 6.1

03:25 : 지봉안부

        오수자굴 2km

        // 지봉 0.5km

        횡경재 1.6km

03;50 : 횡경재

04:15 : 송계 삼거리 2.3km지점

05:15 : 백암봉 1503m

05:55 : 동엽령 0.9km 전방지점

06:10 : 동엽령

07:00 : 1380고지

        <- 향적봉5.7km , 남덕유 9.1km

07:15 : 무룡산 전방고지

        <-향적봉 6.2km  -> 남덕유 8.6km

08:00 : 무룡산

        <-삿갓골 2.1km 남덕유 6.4km

08:50 :  삿갓골재 대피소

         600m 아래 샘

09:35 : 삿갓봉

10:30 : 월성재

15분간 중식

11:50 : 서봉 (1510m)

햇빛 오락가락 , 바람 좋다.

13:20 : 교육원 삼거리

육십령 5.2km

14:00 : 할미봉전 봉우리

14:30 : 할미봉       

15:20 : 육십령

 

 

인간의 한계는 어디인가?

끊임 없이 한계의 문턱을 시험하는 것이 사람들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신풍령에서 육십령 구간의 산행코스는 산행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상당히 무모한 산행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두 구간을 의욕으로 싸잡은 가장 긴 산행코스

날씨가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훨씬 강도가 높았던 후반부의  체력소모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는 백두대간 산행이지만 이번구간에서는 좀더 여유를 가지고 만나야 할 백두대간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중부지방에 200mm가 넘는 폭우에 대한 일기예보가 떠들썩하고 남부지방에도 80mm이상의 전국적인 비가 예상되는 가운데  가장 어려운 구간을 우중산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강한 부담감으로 자리한다.

출정을 포기하고 추석연휴를 이용하여 구간을 두 번으로 나누어 혼자 종주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그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어차피 나와 있는 결론 아닌가?

 

토요일 11시에 대전 톨게이트를 출발하여 채 잠이 들기도 전인 밤 12시 30분에 이동 베이스캠프는 신풍령에 도착하고 말았다.

눈도 붙이지 못하고  칠흑의 밤을 움직여 가는 산행이다.

잠 안자고 오르는 가파른 등산로에서 바라보는 하늘엔 다행이 별이 반짝인다.

지난 주 소백산 종주가 있었고 평소엔 두 번 정도 아침에 1시간 정도씩 걸은 것 말고는 별다른 운동량이 없었는데 처음부터 다리에 뻐근함을 느낀다.

30분 정도 오르니 횡경재삼거리 6.8km , 송계삼거리 11km의 이정표가 나온다.

송계삼거리가 아마도 향적봉 갈림길을 의미하는 모양인데 오르막으로 11km면 상당한 거리로 그 때까지도 날이 새기는 어려울 듯 싶다.

결국 덕유의 주능에 들기 까지는 우리는 아무런 풍광도 만나지 못하고 어둠 속에 행진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비가 걱정이 되어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 본다.

칠흑의 밤에  대간의 흐름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뒷사람의  불꽁무니만 쫒아 가기 바쁜데

가파르게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하염없이 계속된다.

그래도 가끔은 한 번 씩 불어 주는 산 바람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 숱한 오르막을 올라  숲을 헤치고 능선을 휘돌아  갑자기 어둠 속에서 가리 것 없이

맞닿아 버린 하늘

대봉이다.

사방이 터진 곳에서 맞이하는 그 시원한 바람

희끄므레한 하늘 빛 아래 점점의 불 빛

그리고   첩첩 능선의 실루엣들

별은 하늘에 반짝이고 능선을 불어 내리는 산바람은 이슬 내리는 풀잎을 흔들어 놓는다.

어둠의 베일에 쌓인  산야가 아름다울 수 있음은 백두대간을 휘영청 밝힌 달빛 산행에서

이미 알아버렸다.

비가 온다 던 오늘 저렇게 총총한 별 빛 아래 이토록 가슴까지 시원한 바람과 은은한 별빛

산하의 풍광을 대하니  수면부족도 아랑곳 없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월음령을 지나니 어느덧 서쪽에 가느다란 달이 떴다.

음력 27일이면 그믐달인가?

누군가 아현달이라고 했다.

 

경사도가 부쩍 심해진 길을 따라 땀을 흘리다 보니 03시 25분 지봉 안부에 도착했다.

오수자굴이 2km거리에 위치한다.

이름이 지봉이라는 우측 봉우리에 달이 걸렸다.

지봉에 걸린 달

바람이 일렁이는 날 가느다란 달과 별 빛을 받으며 만들어 가는 서정적인 산행길이다

 

배가 고파서 육포를 몇 조각 먹었다.

일부러 저녁을 9시가 넘어서 먹었는데 격렬한 체력소모로 벌써 허기를 느낀다.

 

해발 1350m의 횡경재에서 좀 쉬다 보니 중간그룹이 따라 붙었다.

3시간 20분만에 7.8km의 거친 산행로를 올라온 셈이데 날씨덕분에 그래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움직인 셈이다.

아랫 쪽 4.44km 지점에 송계사가 위치한다

덕유산 남쪽기슭 수유동 골짜기에 위치하는 송계사는 원효,의상대사가 영취사의 부속암자로 송계암이란 이름으로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숙종 때 진명이 중건했고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69년 승민 스님이 다시 지었다.

송계산 입구에서 시작되는 계곡은 덕유산 특유의 울창한 수림과 절벽 그리고 계류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데 계곡이 깊어 두문동 계곡이라 불리우며 그 길이는 16km가 이어진다.

주요문화재는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도 무형문화재 36호) 갈계리 3층석탑 (도 무형문화재 77호)가 있다.

 

횡경재에서 휴식하며 전열을 재정비하고 다시 동엽령 향하여 오르는데 언덕을 올라 서자

산 안개가 자욱하고 주변이 어두워진다.

바람은 몰려올 비를 예고하기라도 하는 듯 더 거세지고 올려다 본 하늘엔 별도 사라져 버렸.

북쪽하늘에 몰려 오는 구름이 걱정스러웠는데 정말 비가 오려는 모양이다.

아침 식사를 할 때 까지만 참아 주면 좋으련만……

 

바람 때문에 봉우리 못 미쳐 능선상에서 휴식한다.

산 안개가 풀 잎을 온통 적셔 놓았다.

계속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배가 너무 고프다.

어둠 속에 주저 앉아 사과를 먹고 주스를 마시니 그래도 살 것 같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슬인지 아니면  비가 오는 건지 물방울들이  후드덕 거리며 떨어진다.

“비가 온다.!”

소리 친 사람은 나 밖에 없었는데

모두들의 입에서 실망과 탄식이 터진다.

분위기가 일시에 무겁게 가라 앉는 가운데 모두들 우비를 입고 스팻취를 하느라 분주하다.

 

우비를 입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어차피 지금 같은 산행길이라면 우비를 입으면 비 대신 땀으로 젖을 것이다.

오늘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못한 상태에서 초장부터 물이 많이 먹히는데 우비를 입으면 산행이 더 힘들어 질 것이다.

나는 비를 몸으로 받아내기로 하고 스팻취만 착용했다.

스팻취 하나로도 발에 답답한 느낌이 따라온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한 시간 남짓 요란하게 움직이는 불빛으로 능선을 흔들고서야 백암봉을 품고 있는 해발

1420m의 송계 삼거리를 만난다.

북덕유와 남덕유를 가르는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덕유평전을 거쳐 중봉을 지나 향적봉에 다다른다.

우리는 백암봉을 지나 동엽령을 거쳐 남으로 간다.

 

산 안개가 자욱한 백암봉 표석은 이슬에 젖어 있다.

희끄므레  날이 밝아 오는 모습이 보이고 지금부터는 부드러운  덕유주능의 완만한 흐름이

이어질 것이다.

아직 깨어나지 않는 어둠 속에 누워 있어도  덕유의 넉넉한 능선의 기억으로 마치 오늘

산행은 부드러운 마무리만 남겨 놓은 것 같은 착각이 인다.

 

몽환의 산 안개가 떠도는 새벽능선

짙푸른 질감으로  깨어나는 덕유주능이 열어주는 청명한 새벽

그 코끝이 시원한 상쾌함을 느끼며

거친 능선을 주유한 피로감은  말끔히 사라진 듯  날아갈 것 같은  발걸음으로 가벼운 바람

처럼 능선을 지난다.

 

70세의 할아버지는 백암봉에서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능선을 따라 홀연히 사라졌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보다 두어 시간 빨리 제 2착으로 육십령에 내려섰다고하니 대단한 노익장이다..

그 연세에도 이런 거친 구간을 두려워 하진 않은 강인한 정신력과 젊은 사람들을 능가하는

체력에 찬탄을 금할 길 없다

 

날이 밝으면서 이슬을 머금은 초원 위로 흐드러진 야생화들이 그 단아하고 정갈한 아름다움을 은은한 운무 속에서 시새우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대에서 작은 일탈로 마주할 수 있는 시린 아름다움 들이다.

 

동영령 갈림길에서 붉어지는 하늘을 본다

비가 오지 않는 것 만으로 황송한 오늘

덕유의 일출을 만나는 영광까지 누리는 건  아닐까?

 

저 산아래 호수인 듯 산허리는 운무에 잠기고

하늘에 붉은 기운이 가득하다.

구름 사이로 산란 되는 빛은 황홀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금새 지나칠 시간의 아름다움이 아쉬워 바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중에도 예기치 않은

행운에 그저 가슴이 벅차 오른다.

 

장쾌한 덕유의 주능에서 만나는 장엄한 일출

얼마 만에 다시 만나는 백두대간의 해돋이인가?

조급한 마음이 먼저 가 있던  능선의 봉우리에 오른다

바람이 지나는 봉우리 위에서 태양을 맞는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구름이 산봉우리에 걸린 모습이 선명하고 비늘구름이 점점이 뜬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가  싶더니 마침내 태양이 솟아오르고 그 찬란한 붉은 빛을 덕유의 능선에 쏟아낸다. 

찬란한 덕유의 아침

눈부신 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능선 위에는 부드러운 실바람이 지나고 이슬을 머금은 야생화는 붉은 빛으로 더욱 아름답다.

가슴에는 뜨거운 격정이  솟구치고  하늘 위로는 가득한  기쁨이 무리 떠 날린다.

 

온통 아름다운 감동으로 뒤 덮여 있는 우리 산하

떠날 준비만 되어 있다면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눈부신 자연 한 가운데서

나는 오늘도 가슴 떨리는 행복을 만나고 있다

 

동엽령 갈림 길에서 식사를 했다.

아래 계곡으로 하산하면 칠연폭포를 거쳐 안성으로 내려설 것이다.

덕유평전에서 여기 까지는 자주 오르내린 길이고 무룡산과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로 연결되는 남은 능선을 다시 밟는 것은 아마 5년이 넘은 것 같다.

식사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다시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젠 비가 와도 문제될 건 없다.

청명한 덕유의 새벽풍광과 눈부신 해돋이 거기에다 아침식사 까지 마무리 했으니  비가 온

들 아쉬울 것이  무엇이랴.

 

멋진 덕유의 조망을 함께하며 능선을 주유하는 것은 너무도 즐겁고 기분 좋다.

전망이 수려한 봉우리마다 쉬어가면서 조망을 즐기고 대원들과 담소한다.

해는 떠오르고 다시 구름 속에 가리웠으니 뜨겁지 않아 오히려 산행하기 안성맞춤이고

시원한 고원의 바람이 기분 좋게 목덜미를 간질어 주니 흥이 절로 나는 산행길이다.

행운인지 속리의 주능을 종주한지 얼마 안되어 저 번 주 비오는 소백의 주능을 주유하였고

1주일 만에 다시 덕유의 주능을 종주한다.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대표 능선을 한꺼번에 연결하다 보니 그 능선들의 특색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속리주능은 청년기처럼 강건하고 남성적이며 거칠고 날카롭다.

소백능선은 마치 어머니의 품과 같은 부드러움과 웅혼함이 두드러지는  편안한 느낌의 산이.

덕유 역시 육산의 부드러움과 능선의 곡선미가 섬세함 가운데 살아 움직이다.

중후함 보다는 경쾌하고 날렵한  젊은 여자의 부드러운 느낌이라고 할까?

 

무룡산에서 나선생님이 깍아 주는 사과를 한입 베어물고 경개에 취한다.

무룡산에서 바라보는 운무에 가린 삿갓봉이 신비롭다.

삿갓봉도 까마득하지만 삿갓봉을 넘어 가야 하는 남덕유산은 확인할 길이 없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무룡산에서 충분히 휴식하고 운무에 가린 삿갓봉을 바라보며 마치 알프스에라도 온 듯  앞길에 펼쳐진 멋진 조망에 경탄한다

많은 사람들의 발아래 유린 되어서인지 아님 유난히 많은 비에 씻기워서 인지 나무계단 아

  황폐해진 등산로가 안타깝긴 해도 그 풍광의 수려함과 흐드러진 야생화가 가슴을 들뜨

게 한다.

 

고개를 넘으니 삿갓볼 대피소가 홀연히 나타난다.

심산의 경개 좋은 펜션처럼 경쾌한 흰 빛으로 단장한 대피소는 내부 공사가 한창인 듯 많은 자재가 건물 한 켠에 쌓여 있다.

주스가 반쯤 남아 있고 얼린 물은 500ml가 남아 있다.

물이 조금 모자랄 것 같아 계곡아래 있다던 샘터로 갔다.

200m 정도로 수직 강하하는 계단길 아래 샘터에는 나오는 물길이 거의 말라 있고 이끼 낀 푸른 물통에는 반쯤 물이 차 있다.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은 물의 상태지만 혹시 몰라 700ml 쯤 물통을 채웠다.

이쪽으로 하산하면 삿갓골로 내려서고 황점으로 연결된다.

맞은편은 원통골로 명천리로 내려서는데 버스를 타고 안성으로 갈 수 있다.

대피소에서 충분히 휴식하고 삿갓봉을 향해 출발한다.

삿갓봉은 40분 정도 소요되는 오르막 끝에서 등산로에 비켜나 외로이 앉아 있는 1418m고봉이다.

정선배님만 삿갓봉을 들르지 않고 모두 삿갓봉에 올라 주위를 조망했다.

발 아래 펼쳐지는 후련한 능선의 파노라마에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1시간 소요되는 월성치 까지는  내리막 길이다

길이 숲속에 들어 앉아 있으니 단조롭고 변화가 없다 점심 때가 가까워서 인지 허기가 동해서 육포를 몇 조각 씹었다.

월성치에서는 모두가 준비한 간식을 풀어 놓고 허기를 채운다

, 빵 , 바나나 , 초컬릿

아침을 일찍 먹어 시강기가 도는 터라 모두 허겁지겁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 먹어치운다.

충분히 휴식하고 주스까지 마시고 나니 살 것 같다.

월성치에서는  양악리나 황점으로 내려설 수 있는데 황점에서 거창가는 버스는 하루 3회

밖에 없다.

양악리로 내려서면 양악호 상류에 잇는 송어양식장 까지 2시간이면 닿을 수 있으나 여기서 안성-장계간 19번 국도까지 40분을 걸어나가야 한다.

탈출로가 있긴 하되 만만한 코스가 아닌 셈이다. 

이제 남덕유를 거쳐 서봉(장수덕유)으로 가면 육십령으로 내려서는 내리막 길일 게다.

남덕유산 삼거리는 8부능선을 더 올라야 나타난다.

남덕유 정상을 300m 남겨둔 10분 정도 거리에서 등산로는 서봉을 향해 완만하게 구비쳐 올라간다.

맑은 남덕유와 대조적으로 서봉은 짙은 운무에 가리어 있다.

최선생님과 우지점장님은 남덕유로 가고 나는 한 번 올라본 남덕유이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것 같아 오늘은 서봉에 오르는  체력안배를 위해 남덕유를 지나치기로 했다.

태양이 가끔 구름 밖으로 나와 강렬한 햇빛을 던지다가도  밀려오는 운무에 휩싸여 갑자기

음산한 날씨로 변한다.

참으로 변화 무쌍한 자연의 조화이다.

같이 가던 정선배가 큰일을 보기 위해  풀섶으로 가고

혼자 서봉에 오르는 길

부드러운 오르막 길과 변화무쌍한 일기의 변화에 별다른 등정의 힘겨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안개비가 피부에 닿으면 대지의 서늘한 느낌이 가슴으로 전해온다.

서봉은 7부능선 쯤에서 가파르게 일어나 앉아 있다.

거친 암릉을 타고 올라 바위 숲을 지나 양편을 막아선 암벽 길을 지나자 운무가 오락가락하는 긴 철 계단이 나타난다.

저 철계단 위가 서봉인 모양이다.

 

바위에 기대어 휴식하는데 홀연히 한 남자가 분주히 철 계단을 내려온다.

육십령에서 출발해 2시간 20분만에 서봉에 도착 했다고 했다.

육십령에서 서봉은 계속되는 오르막이니  내려가는 길은 두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

하여간 나는 오늘 이 젊은 친구와의 만남으로 인한 잘못된 정보 때문에 남은 시간의 산행을 악몽과 같은  고통 속에 보내야 했다.

 

서봉의 풍광은 장대했다.

천지를 굽어보며 바람결에 외로운 고봉

눈부신 태양 빛 아래 사람의 발자취 없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서봉은 큰 산의 위용으로

주위를 압도하고 있다.

몸이 시린 시원한 바람

거침 없이 터지는 조망

오늘 산행의 멋진 피날레라는 생각에 흥분되는 부푼 가슴으로 나는 발아래 푸른 산주름과

평원을 굽어보고 육십령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두 팔을 벌린다..

이 순간 오늘 긴 산행의 피로는 흔적 없이 바람으로 날려가고 있다.

저 아래 이어지는 능선 어디엔가 육십령이 있다.

 

사과를 한 개 먹었다.

남은 주스도 모두 마시고 사진을 찍고  조금은 외로움을 느낄 때쯤

대원들이 속속 합류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육십령 까지는 7.2km 였다.

서봉에서 가파르게 고도를 떨어 뜨리고  나서는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나름대로의 굴곡이 많았고 막바지 시험대처럼 걸출한 산세의 할미봉을 통과 관문으로 내세우고 있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았고 할미봉 정상에서는 예전에 남덕유에 올랐을 때처럼

교미기에 놓인 수 많은 날개미들의 비상을 보았다.

이제나 저제나 끝나기를 고대하던 길이 지겹게 계속되고 할미봉 가까이에서 가파른 오르막으로 바뀌면서 지쳐 버렸다.

그래도 조망바위에서 산세에 압도되어 풍광에 잠시 취하다가 지친 몸으로 할미봉에 올랐다.

아뿔사 할미봉에서 바라본 육십령도 까마득하다.

하염 없이 흘러내리는 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무의식의 기계처럼 걸어 내린 끝에 육십령이 막아선다

15시간의  산행

덕유능선의 새벽과 해돋이 그리고 장쾌한 서봉의 조망을 만날 수 있었던 멋진 산행이었지

  너무도 무리한 일정 이었다.

이동거리가 가까운 구간이었음에도 무박산행을 강행하는 통에 한 숨도 잘 수 없었고

신풍령에서 갈미봉- 대봉-지봉-월음령-횡경재- 백암봉을 잇는 대간의 수려한 풍광을 어둠 속에 묻어두고 왔다.

산행의 즐거움이 너무 긴 산행로와 후반부의 힘겨움으로 고행으로 변해 버렸다.

할미봉 주변의 멋진 풍광에 소요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비가 세차게 내렸던지 아님 땡볕 산행이었다면 아마 모두들 초죽음이 되었을 게다.

선두그룹을 형성하는 나의 체력이 이정도 였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힘겨웠던 산행일 듯 싶다.

다음 두 구간 역시 무박으로 14시간 정도로 편성되어 있는데   막바지 백두대간 산행의 훌륭한 마무리를 위해서도 또 짧은 이동거리에 너무 많은 구간을 어둠 속에 남기지 않기 위해서도 조정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은 하루만 푹 자면 다리도 아프지 않고 거뜬해 지는 걸로 보면  이정도 구간도 체력이 충분히 감당은 하지만  하루 15시간을 잠도 자지 않고 걷는 다는 것이  우리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모르겠다.

 

멋진 날씨와 풍광을 허락하신 덕유의 산신령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산하여 막걸리 세 잔을 연거푸 들이키고 과수원 옆 수로에서 목욕재개 한 다음  술판에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대원들을 떠나 무빙 베이스 캠프로 이동했다.

험한 여정의 피로함과 나른함으로 나는 이내 곯아 떨어졌고   후미가 언제 하산을 완료 했는지 몇 시에 버스가 출발했는지도 모르고 톨게이트전에서 기사 아저씨가 안내방송을 할 때 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어려운 산행을 마무리한 뿌듯함과  흐뭇한 기억을 간직한 채 비몽사몽 속에 무사히 원대복귀한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