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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백두대간 제32구간(육십령-영취산-백운봉-복성이재)

       간: 제 32구간 (육십령-영취산-백운산-복성이재)

 도상거리: 33.3km

       자: 2003년 9월 13(토) ~14(일)

       씨: 맑음

       온: 15~26 c

 산행시간: 13시간 55분

 

01: 25: 육십령 출발

02:30 : 깃대봉 (1014.8m)

        <- 육십령 2.5 km

        -> 977봉 3.5km

02:40 : 송전탑

04:10 : 민령

05:05 : 전망대 바위

06:00 : 영취산(1075,6m)

        <- 깃대봉 7.5km

       ->백운산 3.8km

       || 무령고개  0.4km

 

06:15 : 일출

07:20 : 백운산

08:00 : 식사 후 출발

09:20 : 중치(650m)

10:40 : 광대치

11:10 무명봉

13:00 봉화산

15:20 복성이재

 

 

 

이맘때면 어김 없이 찾아 오는 태풍

한여름 매미의 급습은 또 그렇게 상처와 아픔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사상 최악의 강풍과 폭우로 인한 피해

욱일승천의 기세로 거침 없이 진화하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는 더욱 거칠어 지고 있다.

반복되는 업보처럼

되풀이 되는 대자연의 역습을 인간의 방만함은  경고와 교훈으로 삼지 못한다.

망각이란 기억하기 싫은 일들을 애써 지우려는 노력일 뿐

언제나 이해와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추석연휴에 신의터재- 개터재 구간의 보충산행을 마무리하고 3일만에 다시 출정이다.

어제 남해안을 할키고 지나간 매미의 상처가 너무 커서 베낭매기가 망설여 지는데 우리는

아직 스산한 바람결이 남아 있는 칠흑의 밤으로 떠나야 한다.

 

육십령을 오르면서 간밤에 폭풍의 흔적인 듯

부러진 나무 가지와 등산로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나무가 흘린 피의 향기가  조용한 새벽공기 아래 떠돌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 부러진 가지와 흩어진 나뭇잎에서 솔향과 같은 진한 나무의 향기가 배어

나와 코끝을 신선하게 자극한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작년 강원 산간에서 겨울로 가던 길목에  만났던 쏟아질 것 같이 총총한 무수한 별들을 육십령을 지나 다시 만난다.

태풍이 지난 하늘은 오히려 청명하다.

덕유산에서 힘차게 융기한 백두대간은 육십령을 지나 오늘의 깃대봉 , 영취산 ,백운산, 봉화산을 휘돌아 지리산으로 내달린다.

 

휘영청 달빛에 별마저 총총하니 하늘과 닿아 있는 능선의 실루엣이 은은하게 드러난다.

은실처럼 늘어내린 대간 길을 �아  가을의 상념이 따라오는 허허로운  대간길이다.

이슬을 머금은 나뭇잎이며 풀을 헤치고 봉우리에 올랐는데

잠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선두가 흩어져서 길을 찾다가 누군가 표지기를 발견하고 소리쳐 길을 잡는다.

뒤따라 잠시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저만치 불 빛이 올라온다.

이 야심한 밤에 벌써 깃대봉을 내려서는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뒤이어 올라 오는 우리 팀과 조우하고 화들짝 놀라서 발길을 되돌린다.

심야의 산행에서 종종 마주하는 어이 없는 해프닝

창백한 별 빛이 흐르고 차가운 이슬이 온몸을 휘감는 오늘은 잠깐의 후진도 유쾌한 익살

이다.

해발 1014.8m의 깃대봉을 오르는 길은 초반에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녹녹치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한숨에 줄달음쳐 올랐다.

한 시간 만이다.

송전탑을 지나 977봉 까지는 완만한 경사가 이어진다.

인근의 마을 불 빛을 지나고 대진고속도로가 지나는 터널 위를 지나자 가득한 산죽과 억새

군락을 만난다.

마치 엄청난 폭우가 지난 뒤의 산행처럼 산죽과 억새는 온통 이슬을 머금고 있다.

선두 그룹 6,7번째를 유지 하고 있지만 발에 걸리는 억새가 쏟아오는 이슬이 등산화로 스며 든다.

내가 이정도 이니 선두에서 억새 숲을 러셀하는 대원들의 힘겨움은 짐작하고 남음이 간다.

최선생님과 , 우지점장님  그리고 정선배님이 번갈아 선두를 섰는데 엄청난 체력소모와

하반신이 흠뻑 젖어가며 상당기간 고생하고 뒤로 물러났다.

대간의 이슬은 비처럼 흐느끼고 있다

 

구름에 가린 동녘하늘이 붉은 기운을 머금을 때쯤 영취산에 도달했다.

억새와 가득한 이슬을 헤치고 올라 오느라 생각보다 시간소요가 많았다

어둠 속의 산행을 뒤로하고 영취산 정상에서 깨어나는 대간의 새벽을 맞으며 붉어오는 하늘을 마주하니 심야산행의 피로가 홀연히 사라지고 대자연의 감동과 즐거움이 가슴 득 밀려든.

표지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영취산(1075.6m) 은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으로 남으로는 남덕유산이,서로는 장안산 남으로 백운산이 조망된다.

영취산은 신령령(靈), 독수리취(鷲)를 쓰고 있다. 영취산은 고대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의 왕사성(王舍城)의 북동쪽에 있는 산으로서 석가가 이곳에서 법화경과 무량수경(無量壽經)을 설법했다고 한다. 영취산을 준말로 영산, 또는 취산으로 부르고 있는데, 그 뜻은 산세가 '빼어나다', '신묘하다', 신령스럽다'는 뜻으로서 산줄기와 물줄기의 요충지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산하에서)

 

영취산에서 우측으로 무령고개를 지나  장안산이 솟아있는데 그곳에서  금남 호남정맥이

분기된다.

 

영취산을 지나 대간은 남서방향에서 남동방향으로 기수를 돌린다.

영취산을 지나 백운산으로 가는 길목 헬기장에서 능선 좌측 수림 사이로 태양이 떠오른다.

인고의 시간을 기다린 어둠은 새벽의 빗장을 열어  영롱한 산하의 이슬 위에 온통 황금 빛

햇살을 쏟아낸다.

나는 또 다시 용트림하며 흘러가는 대간의 마루에서 붉은 빛으로 깨어나는 아침을 맞는다.

 

백운산에는 푸른 빛은 머금은 산 안개가 떠다니고 있다.

푸른 하늘아래 흰 구름에 가리어 있는 지리산 능선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우뚝  천왕봉과 반야봉이 눈에 들어오고 그 능선 아래로 솜이불처럼 흰 구름이 평화롭게

감싸고 있다.

 

탄성이 오르고  절묘하게 연출된 선경을 배경으로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오늘 산행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듯 백운산의  조망은  창대하고 신비롭다 .

구름 위에 두 개의 섬으로 떠있는 덕유산이 그림처럼 날아들고 그 너머에 황석산, 기망산,

월봉산이 흘러내린다.

금원산, 기백산,의 솟구침이 살아 있고  멀리 가물거리는 것은 수도산, 가야산, 황매산인

모양이다.

 

식사를 하고 등산화를 벗어 찌걱이는 등산 양말의 물기를 짜낸다..

흘러 내리는 대간의 이슬

 

대간은 다시 남서로 방향을 돌리고 우리는 포만한 배와 가벼운 발걸음으로 중재를 향해 떠난다.

이젠 해발 4500~600m를 내려서는 한 없는 내리막이다.

육산의 넉넉함이 살아 있는 백운산 이라더니 줄곧 중재를 향한 편안한 내림 길과 즐거운

대화에 산행의 피로가 스밀 여지가 없다. 

 

가파르게 떨어져 내린  골짜기에 위치한  중치는 해발이 750m인데 전북 장수와 경남 함양을 잇는 큰 고개이다.

우마차가 통과하기도 하고 주변에 물도 있어 대간꾼들에게는 중요한 루트이다.

월경산으로 오르는 해발 고도차 230m는 웬만치 산꾼들에게도 고역의 역정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종주 팀들이 중재에서 구간을 나누는 이유가 누적된 피로가 엄청난 고도

차를 감당하기에 힘겨워서 일게다.

정선배님이 가도가도 나타나지 않는 월경산이 이름처럼 줄 듯 줄 듯 주지 않는 여자와 같다고 농을 친다.

하여간 이름마다 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만 수 많은 산과 재에는 별별 이름이 다 많다.

 

산능성이에서 휴식하며 목을 축인다.

모처럼 가져온 오렌지를 산상에서 나눠 먹으니 그 맛이 가히 일품이다.

아까 옆으로 바라보았던 높은 산이 월경산인 모양이다.

산길을 한참 오르내리다 보니  광대치가 나타난다.

표언목교수의 안내판이 물정보를 기록한 채 나무등걸에 달려 있다.

표교수가 큼직하게 작성하여 코팅처리한 표지판은 보기에도 시원하고 항상 필요한 곳에서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목원대 표교수는 이미 백두대간의 유명인사가 되어 버렸다.

광대치 넘어서 능선 줄기가 길게 이어진다.

멀리 능선의 끝자락에 봉화산인 듯

초원의  강열해진 태양 빛 아래 주위의 색감과는 뚜렷이 다른  연초록의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우리의 긴 산행이 마무리 되는 모양이다.

 

봉화산 가는 길

태양 빛이 뜨거워 굴참나무 가지를 꺾어 얼굴을 가리고 산행 길을 재촉한다.

전망 바위에서 이제 사방이 트인 발 아래를 굽어 보며 대간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는다.

우리가 봉화산으로 생각하고 다가가는 길은 봉화산이 아니었다.

무명봉 가는 길에도  산 비탈을 가득 메운 억새가 하늘거린다.

봉화산은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초록의 봄 빛으로 기다리고 있다.

산행 마무리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그 곳이 목적지가 아니어도 나는 추호의 실망도 없다.

한 숨의 잠도 자지 않고 12시간을 흘러가는 여정의 피곤함은  산길을 온통 메우고 하늘거리는 억새 숲에서 바람결에 날아가 버렸다.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겨온다.

쏟아지는 가을 햇살 속에

그림 같이 푸른 하늘을 이고 바람결에 일렁이는 갈대

하늘엔 빨간 고추잠자리가 날고 있다

 

뒤를 돌아 오니 흘러 내린 백운산과 능선이 아득하고 앞에는 우뚝 솟아 담대히 흐르는 지리 산이 푸른 구름 위에 웅장하다.

 

넓은 초원을 가득 채운 억새의 장관

자연은 어디에도 아름다움이 숨어있다.

대자연이 연주한 멋진 억새의 향연

이렇게 가슴 뿌듯한 감동으로 다가 올 오늘을 기대하지 못했었다.

 

갈대가 가득한 산길은 마치 잊혀진 동산의 기억인 듯

온갖 아름다운 상념과 푸른 감상으로 가득하다

 

내 사는 산하의 감동 가득한 눈부신 또 하나의 가을 풍광

백두대간의 심오함과 그 아름다움의 깊이는 어디까지 일까?

오롯이 그 아름다움 한 가운데를 주유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허락 받아

그 숱한 감동과 환희의 능선을 너머 오늘 여기 서 있으니 이 삶의 기쁨과 축복을

그 감사를  어찌 다 필설로 남길 수 있을까?

 

봉화산을 가까이 갈수록 한 폭의 수채화처럼 풍경이 아늑하고 능선을 가득 메운 갈대는

더 무성하고  군락의 범위가 더 광활해진다.

 

바람결은 시원하고

굽어보는 산록의 풍광은 목가적이다.

하늘거리는 억새 가지에 고추잠자리 앉아 있고

낭만은 억새 흔들리는 가을 들판을 지나 봉화산을 향한다.

 

억새군락 가운데 우뚝한 봉화산에는 인적이 없고  어울리지 않는 알미늄 표석만 태양에

빛나고 있다.

12시간 만이다.

 

아래엔 복성이재로 향하는 포장도로가 보이고 저멀리 다음에 가야 할 고남산이 일대에 우뚝하다.

그 뒤로 고기봉,정령치,성삼재 지리산능선이 가로 질러 천왕봉으로 가고 있다.

 

복성이재에 가려면 2시간을 흘러 내려야 한다.

멋진 풍광이 사라진 길은 산행의 피로와 지루함을 가득 몰고 온다.

갑자기 하늘의 태양은 견딜 수 없는 이글거림으로 다가오고

바람은 멈추어 선다.

가시덤불과 잡목이 무성해서 헤쳐나가기가 어렵다.

오늘 반바지를 입고 출정한 친구들은 정말 괴로운 악전고투의 시간이었을 게다.

이슬 머금은 억새와 등산로를 가득 메운 억새의 쓰라림

그리고 가시덤불의 생채기

 

치재를 지나 갈대 숲을 헤치고 봉우리를 오르니 목장을 휘돌아 고갯길이 보인다.

13시간 40분의 장도가 마무리되는  복성재는 길 한 켠에 나무 표석을 걸고 그렇게 우두커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사장과 나는 뱃속이 얼얼해지는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봉화산 자락을 차고 내리는 작은

인공폭포에서 얼음장 같은 계곡물의 뼛속 까지 스미는 시원함을  온몸에 뒤집어 쓰고

오랫동안 날아 갈 것 같은 상쾌함을 간직한 채 대전으로 입성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