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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백두대간 제34구간 (성삼재-고리봉-정령치-여원재)

40대의 포트 폴리오

 

건강투자 : 50%

지식투자 : 20%

감성투자 : 20%

재산투자 : 10%

 

가난했던 시절 우리의 행복은 더 가까이 있지 않았을까?

부족한 가운데서 아낌 없이 나누고 즐거웠던 시절은 회상의

꼬리만 남긴 채 멀리 사라져 갔다

두 눈을 부릅뜨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시간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인생에 언제나 상실과 불만이 넘쳐난다면  

우리는 수 많은 삶의 단편 가운데서 애써 왜곡되고 모순된 부분만을 바라보거나 혹은 습관

처럼 대하는 우리 삶의 방식이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은 원래 더 가득한 희망과 기쁨 속에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젠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채워질 수 없는

이카루스의 욕망처럼

우리의 삶이란 언제나 불만과 부족함으로 가득 차 있다.

숱한 소유 속에서도 만족할 수 없도록 길들여 가고 자유를 부르짖으면서도 스스로를 끊임

없이 가두어 둘 수 밖에 없는 삶의 비극에 우리는 경악해야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화창한 날의 지리산 성삼재

지리산 주릉의 시작점에 섰다.

오늘 구간은 여원재-성삼재 구간인데 단풍철이라 하산지점인 성삼재가 너무 붐비기 때문에 빠른 귀향을 위해 역 종주로 결정했다. 

오늘 산행이 마무리 되면 지리산 주 능선만 남는 셈인가?

지난 1년 4개월의 감회가 새롭다.

 

고기리에서 이동 베이스 캠프가 기다리고 거기서 중식을 한다고 해서 배낭을 차에 두고

비무장으로 카메라만 달랑 하나 걸고 길을 나선다.

이건 백두대간 산행 차림이 아니라 완전히 가을 산보를 떠나는 행장이다.

4시간 소요 되는 산행길이라 물이며 간식이 필요하겠지만 중간에 정령치 휴게소도 있고 그냥 눈부신 가을날에 어울리도록 가볍게 길을 나서고 싶다.

 

구비구비 거슬러 올라 온 길을 바라보며 고리봉을 오른다.

30분간 완만한 경사를 움직여 가다  제법 가파른 오름길로 올라서는 곳에서  갑작스럽게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고리봉을 만난다

30분일 망정 산행시작과 더불어 속도를 늦추지 않고 빠르게 오르다 보니 땀이 오르는데 초행길에 겁도 없이 선두에서 정선배를 열심히 따라가던 아가씨 둘은 고리봉 초입에서 주저

앉고 말았다.

 

인적 없는 봉우리에 첫발을 내딛고 시원한 산바람을 받으며  장쾌한 지리산의 위세를 둘러

본다.

온통 가을색이다.

뒤로는 지리산 주릉이 눈부신 가을 햇살에 그 웅자를 드러내고 있고  앞으로는 완만한 능선의 흐름 위에 만복대가 버티고 있다.

 

만복대 가는 길에는 억새가 지천이다.

갈대는 남자가 좋아하고 억새는 여자가 좋아 한다나

하여간 추색이 완연한 부드러운 능선 길을 오르는 길은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한다.

그 봄 새순의 감동으로 터져 물밀듯이 밀려들던 무성한 청록의 여름은 어느결에 그렇게

훌쩍 떠나고 빛 바랜 고운 색 가을만 남겨 놓았다.

바람이 불어 낙엽이 날지 않으니 아직 우수의 가을은 아니다.

그저 조용한 상념과 감상이 흐르는 감미로운 빛깔의 부드러운 가을

문득 혼자만이고 싶은 충동이 강렬해진다.

 

고리봉을  내려  부드러운 계곡과 능선을 지나  가을 바람에 하늘거리는 억새가 유난히

고운 빛깔의 단풍과 잘 조화되는 헬기장을 지나 묘봉치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먼저 도착한 최선생과 사진을 찍으며 잠깐 가을 분위기에 취하다 대원들이 도착하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 만복대 능선을 오른다.

지리산의 풍광이야 어디 한 군데라도 흠잡을 때가 있으련만 강렬한 선홍 빛으로 불타오르는 피아골과   드리우는 낙조의 황금 빛을 걸고 하늘거리는 만복대 억새능선 이야말로 한숨이 절로 나오는 지리산의 눈부신 가을 풍광 아닐까?

 

돌탑이 지키고 있는 만복대에는 눈부신 가을 햇살이 떠돌고 수 많은 인파가 붐비고 있다.

뒤로는 지나온 고리봉을 지리산 주릉으로 연결되는 대간의 흐름이 부드럽고 앞으로는 멀리 지나온 고남산이 보인다.

고원엔 갈색의 가을이 벌써 낙엽으로 날리고 있다.

휴식하는 사람에게 부탁해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정령치로 향한다.

정령치 가는 길에서는 만복대로 올라 오는 수 많은 사람을 만난다.

단체로 왔는지 줄기차게 이어지는 인파로 좁은 등산로에서 한 켠에서 길을 비켜주는 시간이 많다.

지리산의 단풍에 가리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만복대의 가을도 탐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

정령치로 흘러내리는 중에 전망 바위 두 곳에서 지리산의 가을 풍광을 감상하고 혼자 빠른

속도로 하산하다 보니 정령치휴게소 까지는 3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을 정령치에는 수 많은 인파가 성시를 이루고 있다.

휴게소에서 캔맥주를 하나 사서 단숨에 들이키고 나니 별로 쉬고 싶은 생각도 없고 피로감

도 없어 우측능선으로 제 2고리봉을 향해 오른다.

 

정령치에서 빠른 속도로 25분 걸린  고리봉은 가파른 오르막 위에 앉아 있다.

두 명의 건각이 휴식하고 있고  봉우리를 지나 능선은 바래봉으로 기운차게 뻗어 있다.

봄이면 천상의 화원인 듯 푸른 초원에 가득한 철쭉 능선으로 이어지는 바래봉은 그 옛날엔 동화와 같은 아름다운 길이었지만 이제는 그 명성을 따라 넘쳐나는 숱한 인파 때문에 몸살 앓고 있는 곳이다.

숱한 사람들 때문에 가기가 꺼려져 벌써 몇 년 째 돌아 보지 않는 곳이지만 정령치에서

올라 처음 신의 정원에 들어선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고기리 마을로 가는 길은 고리봉에서 좌측 골짜기로 급강하한다.

대간 객이 무심코 바래봉 능선으로 잘 못 가는 경우가 많다는데 내려가는 길 옆엔 대간 표지기가 무수히 나부끼고 있다.

 

혼자 흘러가는 길

골짜기를 감돌아 이어지는 길은 계속되는 내리막이고  해발이 점점 낮아지면서  가을색감도 푸른 빛으로 자즈러진다.

비무장의 가벼운 행장이고 인적 없는 내리막이라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속도로 움직여간다.

고리봉에서 3km 떨어진 마을 까지 내려서는데 50분 거렸다.

고기 삼거리에는 이동 베이스캠프가 대기하고 무료한 기사 아저씨가 길가에 서성이며 대간객을 기다리고 있다.

 

배가 고파서 후미를 기다릴 생각도 없이

혼자 식당집 툇마루에 앉아 식단을 풀었다.

미역국에 흰 밥 그리고 김치

김소운은 가난한 날의 행복에서 흰 쌀밥과 한 종지 간장을  왕후의 밥과 걸인의 찬이라 했던가?

이건 걸인의 밥과 걸인의 찬이다.

평상시와 다름 없는 미역국이요 김치인데 세시간의 강렬한 체력소모 후의 그 맛을 무엇에

비견 할까?

주린 배를 움켜쥐다 후한 인심을 만나 모처럼 걸인의 입에 감기던 한 그릇의 찬밥과 차가운 미역국이 그 맛이 아닐까?

등산가는 사람한테 점심으로 싸주는 미역국이 걸렸던지 아침에 마누라가 걱정을 했는데 마을에 내려와서 먹으니 산에서 미끄러질 걱정은 필요 없는 셈이다.

사실 산에 가는 사람을 위해서는 도시락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산이 만들어 주는 미각과  결렬한 운동이 가져오는 허기.

대자연 넣어주는 천연 조미료와 걸인의 입맛을 가지고 다니니 모든 음식이 대왕의 수라가

아닌가?

 

식사를 먹고 한참 휴식하고 있는데 2진으로 유천2동 동장님과 처음 보는 아줌마가 내려선다.

일반인을 제외한 대간팀들은 모두 내려오고 그들의 식사가 끝날 때 까지 기다리는 통에

한 시간 10분이나  휴식했다.

 

대간 길은 도로를 따라 한참을 움직여 가야 한단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백두대간의 맥은 이어져 있지 않다,

저 멀리 제법 솟아 있는 산에서 대간이 다시 시작되는 모양이다.

12분을 속보로 걸어 노치부락 입구에 도착 했다.

노치부락을 지나 다시 들판을 가로 지르니 산이 다시 융기하는 곳에 마을이 있다.

따사로운 햇 빛을 받고 있는 평화로운 가재 마을

배산이로되 임수가 없으니 명당의 반열에 올려 줄지 모르겠지만 내 발끝에서 전해오는 따뜻한 느낌과 편안하고 아늑함이 느껴지는 걸 보면 지세가 괜찮은 곳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 반도를 줄달음쳐 내려 온 백두대간 이 완전히 끊어져 있는 곳의 지기는 어떤걸까?

혹시 이 지역의 알지 못하는 강한 기운이 대간의 힘찬 흐름을 끊어 놓았다면 이 지역은

좋지 못한 기가 흐르는 것은 아닐까?

대원들과 함께 걸으면서도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걸은지 25분 만에 노치샘에 도착했다.

백두대간은 들판으로 걸어서  25분 거리를 끊어져 있으니 이곳에서는 백두대간 맥이 완전히 끊어진 셈이다.

 

마을길에 이끼낀 샘이 덩그러니 있고 목제 표지판이 서있다.

표지판은 노치샘이 위치한 이곳 높이가 해발 550m 이고 지나쳐온 정령치에서 6km지점이며 가야할 여원재 까지 6.6km가 남아 있다는 중요한 정보를 알려 주고 있다.

모두들 지나쳐 가는데 혼자 노치샘에서 바가지에 물을 떠서 머리를 감는다.

언제나 자연 속에서 맑은 물만 만나면 습관처럼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 것이 이젠 의식

처럼 되어 버렸다.

산의 정기가 서린 물을 머리에 부으면 머리가 맑아 질 것 같고 그 청정함이 내 몸 속에 오랫동안 머물 것 같다.

사실 뜨거운 여름날에 그 상쾌함과 시원함은 어디에 비견할 바 없다

노치샘 위로 산을 오르는 길에는 좋은 위치에 폐가가 눈에 뛴다.

자연을 벗삼은 좋은 위치가 폐가로 남아 있으니 백두대간을 끊어 놓은 무시무시한 기가

삶의 번창함을 저해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푸근한 시골풍경

생활 속에서 만나는 시골이 아니라 회색 도시를 잠시 떠나 목가적으로 바라 보는 도회인의

눈에 비친 마을

그 낭만의 등 뒤에  가려진 고단한 삶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는 것 같이 가슴이 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