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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과 백대명산

마눌과 추는 춤 - 강천산 (100대 명산 제 35 산)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우리 살아 가는 일 속에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 두 번 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노는 일은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 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나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1941~)

 

 

 

 

그대 앞에 봄이 있나?

몇 일 전 갑작스레 눈이 내린 걸 보면 아직 겨울이라 해야할 것 같다.

봄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삼월이면 벌써 벌써 남도의 들판을 푸르게 물들이는 보리와 마늘을 보았을 터인데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의욕이 반감된다.

옛날 같으면  혼자 남도의 섬으로 훌쩍 떠났을 것이다.

괜스레 마눌의 컨디션과 좋지 못한 날씨를 핑계 삼는다.

 

지심도에 가고자 했다.

멀긴 하지만 가는 길에 봄을 느낄 수 있고 섬엔 붉은 동백이 한창일게다.

갑작스런 마눌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져서 한밭산사랑 산악회에 전화했더니 웬걸

버스 두 대가 초만원이고 10명은 통로에 앉아 가기로 했단다.

 

오호라!  역쉬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음이라

사람들은 나처럼 눈도 내리지 않고 칼바람도 없는 어정쩡한 겨울이 답답한 모양이다.

딱히 전해오는 봄 꽃 소식도 없고 경제상황도 뒤숭숭하고

동백 꽃이 흐드러질 지심도 에서 봄과 희망을 만나고 싶은 거다.

많은 사람들이 떠난다 하니 괜스레 더 가고 싶어지는 지심도다.

마눌은 차를 몰고 가자고 했지만 너무 먼 길이다.

섬에 두어 시간 머물기 위해 우리는 왕복 8시간은 운전을 해야 한다.

이 봄에 전쟁처럼 다녀오기엔 너무 아까운 길이다.

하루쯤 머무르면서 남도의 향기와 비릿한 바다냄새를 맡아야 한다.

느리고 여유 있게 움직이면서 천천히 남도의 봄을 음미해야 한다.

어깨 춤추는 봄과 바다가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리라  

 

결국 우리는 강천산에 가기로 했다.

아직 봄이 좀 이르겠지만 따뜻한 봄의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코에 바람도 넣으면서 두어 시간 함께 차를 타고 가면 멋진 호남의 명산을 만날 것이다.

 

마티즈와 떠나는 여행길 3번째

전주 시내를 관통하지 않으려고 익산 나들목에서 나와 17번 국도를 타고 전주로 가서  순창으로 연결되는 27번 국도로 접어 들었다.

차창가에는 삼월의 따뜻한 태양이 졸고 밖에는 제법 바람이 불어간다.

국도변 밭에는 군데군데 초록의 봄이 피어나고 있다.

 

순창읍을 지나 담양쪽으로 가는 길에 낯익은 풍경을 만났다.

호남길을 훨훨 날아 다니던 때 만났던 메타세콰이어 길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최우수상 수상에 빛나는 그 유명한 길은 아니지만 키 큰 나무들이 헐벗은 채 황량하게 서 있는 모습이 세월의 쓸쓸함을 불러낸다.

 

이국적이며 목가적인 담양의 메타스콰이어 가로수 길은 2002 '3회 아름다운 숲 경진대회'에서 아름다운 거리 숲 부문 대상에 선정되었으며,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최우수상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은 담양시내 국도 15번 국도와 24번 국도변에 1,600여 그루의 메타세콰이어 나무를 심어 차에서 내려 한번쯤은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다

 

잠시 내려 사진을 찍는다.

먼 발치의 밭에는 푸름이 조용히 돋아나고 있다.

 

 

 

 

거대한 표석이 입구에서 반긴다.

이 길로 해서는 강천 계곡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호남 길 주유 때 강천의 주 능선을 따라 먼 길을 걸어 갔었다.

 

산 행 일 : 2009 3 1일 일요일

산 행 지 : 전라도 순창 강천산

    : 마눌

    : 따뜻한 봄이나 바람이 조금 분다.

소요시간 : 느릿느릿 5시간 30

산행코스: 4코스  병풍바위 - 깃대봉-왕자보-강천2호수

 

경유지별 시간

10 :56  들머리

11:04   병풍바위

11:07   4등산로 들머리

11:47   깃대봉 삼거리

12:38   왕자봉

13:05   전망바위

13:53   강천 제 2호수

14:00~30 공원산책

14:38   현수교

15:04   강천산

15:36   다시 병풍바위

 

 

 

 

 

 

 

 

 

병풍바위가 선다.

바위벽에서 물길이 세차게 떨어지는데 올려다보면 자연물길이 아니다.

인공 폭포를 만들려면 표 안 나게 잘 좀 만들지….”

푸른 계곡과 시퍼런 소가 있는 계곡의 물길은 점차 사라져 간다.

마음 둘 데 없는 사람들이 심산에서 위안을 받으려 하면 할수록 자연은 조금씩 조금 씩 병이 깊어 간다.

이상기온에 가뭄에 물부족은 전세계적인 공통현상이라 했던가?

머지 않은 훗날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산 속에서 뭔가 허전함을 느껴야 할지 모른다.

천하절경 황산의 아쉬움이 그 수려한 산허리를 감돌아 가는 물길이 없음에 있듯이….

병풍바위에서 내려오는 물길은 햇빛에 반사되어 커다란 무지개를 만들고 있다.

 

 

 

 

 

절경의 산성산을 아우르는 제 2코스가 가장 좋은 코스일 듯 한데 강천산의 주봉은 4코스의 왕자봉이다.

우리는 4코스를 택해 강천 주유를 하기로 했다.

등로는 금강교를 지나 우측으로 이어진다.

가파르게 올라 치는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지 등로가 희미하다.

조망은 없고 건강한 소나무 숲 사이로 가파른 오름 길이 계속된다.

깃대봉 삼거리는 40여분 정도 올라야 한다.

 

 

 

 

 

 

깃대봉 삼거리 

이 곳에서 왕자봉 까지는 1.6km

 

 

 

 

 

편안하고  완만한 육산 길이 이어진다.

얼마 가지 않아 삼거리 갈림길에 이정표가 선다.

우리가 올라 왔던 병풍바위가 3km

분통마을이 2km  가야 할 왕자봉이 1500m 이다.

깃대봉 삼거리가 1600m라고 하더니 능선길과 산죽지대 등 한참을 지나왔는데 고작 100m 밖에 오지 않았단다.

강천산은 도립공원이라 인근의 이정표는 아주 잘 만들어 놓았는데 정작 중요한 걸 소홀히 해서 그 수고로움과 정성이 반감된다.

 

어쨌든 이 표지판은 낯이 익다.

호남길 주유 때  만난 표지판이다

그 즐거웠던 시절 희희낙낙하며 오정자재를 걸어 올라 강천산군에 진입하면서 만났던 그 이정표

여기서부터가 허리를 다쳐 정맥 길을 중도하차 하기 전에 걸었던 길이다.

이정표를 보면서 또 부질 없는 아쉬움이 인다.

그 시간의 아픔이 없었으면 얼마나 많은 추억과 기쁨을 쌓아 갔을까?

우리 산하의 긴 산길들을 웬만큼은 돌아 보았을 텐데…. 

 

 

 

 

깃대봉 삼거리에서 30분쯤 걸으면 왕자봉 삼거리에 선다.

우리는 휴식하고 있는 사이 종수씨는 웬 아줌마들을 몰고 다녀왔던 그 왕자봉이다.

그 때는 200m 지점에 있는 그 봉우리가 강천산 주봉임을 알지 못했었다.

허기가 그 때 알았다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쳤을 리가 없지….

 

결국 왕자봉은 오늘 마눌과 함께하기 위해 남겨진 셈이었다.

왕자봉에도 조망은 없다.

일단의 산꾼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우리는 표석아래 능선 한 켠에 앉아서 과일을 하나씩 먹고 강천산 왕자봉 도장을 찍었다

 

 

 

 

형제봉 쪽은 완만한 내림길이다.

1000m 정도 걸어 내리면 길이 갈라지는 형제봉 삼거리가 선다.

빤히 바라다 보이는 연산봉을 두고 길게 능선을 둘러가는 호남정맥 길과 구장군 폭포쪽으로 하산하여 원점회귀하거나 다시 연산봉 쪽으로 오르는 길이다.

 

오늘은 마눌 보다도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

몸이 나른하고 무리를 별로 하지 않았음에도 허리에 통증이 제법 느껴진다.

기억이 난다.

예전에 정맥 길을 따라 가면서 바로 앞에 연산봉을 두고 조망없이 단조로운 산길을 멀리 둘러 간다고 투덜대던 기억이

무리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걸어 보지 않는 길을 걸어감이 더 좋지 않으랴 ?

 

 

 

 

 

산죽 능선길을 지나자 아래 호수의 푸른 물이 내려다 보이는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한 켠에는 건강한 푸른 빛의 소나무가 수려한 강천산군을 내려다 보고 있다..

바람 좋고 풍경 좋은 곳에서는 늘 쉬어가라 했다.

바위 난간에 걸터 앉아 다리쉼을 하면서 잠시 강천의 경개에 취해본다.

북문터와 산성산 길로 이어지는 능선은 뚜렷한 윤곽으로 다가오고 멀리 휘돌아 가는 능선길도 올려다 보인다.

 

살아 감은 다 그렇다.

지나온 삶은 깨우쳐 주었다.

미래란 미망과 허상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함은 어리석은 것이다.

살아 가는 순간 순간에 충실하라.”

그것만큼 진실된 삶의 자세란 없는 것 같다.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가 쌓여 오늘과 나를 만들고

그것이 나의 미래를 만든다.

미래는 늘 돌아 오지만 오늘은 다시 돌아 오는 법이 없다.

오늘을 잃어 버리고 멋진 미래를 꿈꾸는 건 씨를 뿌리지 않은 채 거두려는 한갓 욕심일 뿐

오늘이 어제처럼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음이 참으로 통절하다.

 

 

 

 

 

 

 

내림 길에는 이정표가 서 있고 멀지 않은 곳에 호수가 나타난다.

강천 제 2호수

호수의 물은 눈으로 보기에도 많이 말라 있다.

잠시 물가에 않았다.

이눔의 허리는 도통 룰이 없다.

어떨 때는 산길을 많이 걸어도 아프지 않고 오늘은 산보 코스에도 괜히 심술을 부린다.

왕자봉에서 단체 산객들 사진을 찍어 주고 건네 받은 귤을 호숫가에 않아 마눌과 함께 먹었다.

여유로운 길이라 천천히 움직여 간다.

 

호수길을 따라 내려 가니 수문이 막아 선다.

수문 보 위에 이정표가 서 있다.

등로는 연산봉으로 이어지고 계곡 길은 수문 아래로 이어진다.

송낙바위는 저수지 보에서 약 1km 떨어져 있다.

얼마되지 않는 거리인 셈이다.

옛날 같으면 당연히 올랐다가 가겠지만 오늘은 참자

참는자에게 복이 있나니 

바닥 에서 올라 쳐야 하는 1km 그래서 마눌은 오늘 운수 대통했다.

 

 

 

 

 

 

수문을 내려 오면 넓은 공원이 나온다.

가족 공원처럼 쉼터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공원의 테마가 섹스라

제주도처럼 드러내 난하지 않고 은근하다.

하지만 아이들 데리고 나들이 나온 부모들은 대략 난감할 수도 있겠다.

 

이것저것 먹은 통에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은데 양지바른 잔디밭 한 켠에서 준비해 간 식단을 펼쳤다.

따뜻한 햇살아래 반가운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며 마주한 모처럼의 야외 만찬이었다.

 

거북바위와 용소에 얽힌 전설이 있다.

방탕한 아들 때문에 어머니가 몸져눕자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산삼을 찾아 다니 던 중 꿈속에 산삼을 점지 받고 달빛에 비친 산삼을 캐려다가 용소에 빠진다.

그 때 용소에서 목욕을 하던 선녀가 청년을 구해주게 되는데 저간의 사정을 듣고 난 선녀님은  그 정성에 감복하여 산삼까지 구해준다.

그래서 비극적 결말이 예정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시작되고

옥황상제의 진노를 산 두 사람은 거북이로 변하여 천 년을 용소에서 살게 되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솟아날 수 있는 단 하나의 구멍은 천년이 되는 날 둘이 폭포에 올라 승천하는 것이라

아름다운 천상의 사랑을 목전에 두고

전설 따라 삼천리가 늘 그렇듯이 난데 없이 호랑이란 놈이 나타난다.

호랑이와 거북이가 싸운다는 말은 못 들어 본 것 같은데

하여간 암거북을 보호하려는 숫거북의 처절한 사투로 둘은 결국 동틀 때 까지 승천하지 못한 채안타깝게도 하늘의 문은 닫히고 말았다.

이 비극적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진 옥황상제께서 자비를 베풀어 둘은 절벽에서 돌로 변한 채 안타까운 사랑을 영원한 지켜가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마한 때 9명의 장수가 천년사랑을 기리며 도원결의를 한 후 전쟁에 나가 승리를 하였다고 해서 그 폭포를 구장군 폭포라 한다.

숨은그림 찾기처럼 바위 벽을 자세히 보면 희미하게 두 마리 거북 형상을 찾아볼 수 있다.

 

 

 

아직 봄바람은 쌀쌀한데 헐 벗은 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과

원죄에서 벗어나 에덴의 동산을 거니는 가족이 있다.

 

 

 

 

공원을 좀 더 내려가면 거리의 악사가 멋드러진 노래를 부른다.

그 무아지경의 표정과 멋진 화음이라니

남편은 깽깽이를 켜고 부인은 모래를 하고

즐거운 夫唱婦隨.

 

 

 

 

 

 

돌아 내리는 길에 폭포의 물줄기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장관이다.

지금부터 내려가는 길은 간들거리는 춘삼월과 농치며 한가롭게 걸어 내리는 길이다.

절벽에는 아직 그 겨울의 눈덩이가 웅크리고 있고

물가에는 버들강아지가 보드라운 회색의 봄을 올렸다.

 

 

 

 

 

 

한참을 내려 가다 보면 강천 구름다리가 보인다.

구름다리들은 왜 항상 시뻘건 오렌지 색이어야 하는지

대둔산이나 월출산의 구름다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작고

굳이 그 다리를 지나지 않아도 목적지로 내려서거나 저수지 쪽으로 올라 가는데 무리가 없다.

그 작은 스케일에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오늘은 웬일로 마눌이 올라가 보잔다..

여기 저기 분주하게 쏘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고 하나를 보더라도 느긋하고 여유 있게 돌아보는 것을 좋아하는 마눌이 모처럼 가자니 가야지….

오늘은 군기가 빠져서인지 유난히 허리가 부담스럽다.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이라 막상 올라가서 보니 아래서 올려다 본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그렇게 높은 곳이 아니 더라도 위에서 일대를 내려다 보니 제법 풍경이 산다.

우리가 휘돌았던 우측 능선이며 강천 제 2호수에서 따라 내린 계곡 길과 먼 산이 한 눈에 조망된다.

신록이 온 산에 가득 차고 꽃들이 피어나는 4월의 풍경은 볼만할 듯 싶다.

 

 

 

 

 

 

 

 

 

 

 

 

 

내려오는 길에 대나무 산책로를 지나면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두려워 할 이유가 없는데

두려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두려워 할 이유가 있는데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길섶에 왜 그런 현수막을 붙여 놓았을까?

아마 마음의 근심을 내려 놓고 흔쾌히 이 봄을 두 팔 벌려 맞으라는 의미일까?

그러면 두려워 할 이유가 있는 두려움이란 무엇이고

그 두려워 함의 방식은 무엇인가?

화사한 봄날 강천 길은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두려움에 직면한다.

세상의 많은 두려움들은 결국 무엇을 잃지 모른다는데 있다.

스스로의 자존심

타인의 신뢰

건강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

인간의 최소한 존엄성 유지를 위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 등등

많은 걸 누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무엇을 잃고 버려야 한다는 상실감이 두려움을 만든다.

많은 두려움은 걱정을 낳고 그 걱정은 삶의 페이스를 흐뜨린다.

우린 가진자들의 두려움의 극단을 많이 보아 왔다.

투신한 재벌 , 톱탈렌트

높은 지위의 정치가

그들은 무언가를 잃을지 모르는 두려움과 많은 걸 잃어버렸다는 자괴감에 극단의 두려움 앞에서 함몰되고 말았다..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험난한 세상의 찬바람을 맞아 본 적이 없다가 어느 날 불어 온 세찬 바람을 견디지 못해한다.

아마 산을 다녀 본적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숲을 걷는 것 만으로 세상의 시름이 비워지고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것 만으로 허허로운 기쁨이 채워지는 걸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 시간이 보여주는 마술을 눈속임일거라고 지레 짐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건 두려운 마음이 스스로 키우는 두려움이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해결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우린 시간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두려움의 실체를 우리 인생길에서 무수히 만난 적이 있다.

더러는 실체 없는 두려움이고 더러는 시간과 삶의 방식이 해결하는 깊이 없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어쩌면 두려워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 조차 멀찍이 거리를 두어 바라보거나 때론 시간에 던져주고 훌훌 봄놀이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인생이 덧없이 짧고 어렵게 보내는 하루하루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임을 깨닫고 나면 두려움 앞에서도 살아감이 담담해진다.

가진 것 없이 살았을 때의 행복을 떠올리면 무언가 잃어버리는 것이 꼭 두려운 건 아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강천사 담길에는 노란 꽃이 피었고 난 종류인지 벌써 푸른 잎들을  길게 올렸다.

강천사는 붐비지 않고 경내는 고즈녘하다.

바람에 풍경이 흔들린다.

경건한 마음으로 경내를 돌아보고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다시 강천산에 왔음을 알고계시겠지….”

 

 

 

 

망배단을 바라보는 곳에 주지스님의 말씀이표지판에 써 있다.

지금으로부터 1150년 전 신라 제 51대 진성여왕 원년(887)에 강천산을 찾아 오신 도선국사께서 불자님 앞에 보이는 부처바위(관음보살상)을 보시고 부처님 도량으로 적당함을 확인하여 관세음보살이 주석하는 강천사를 창건하셨습니다.

이후 관음보살님은 괴로움을 겪을 때 지극한 마음으로 절하고 원한다면 자비로운 구제의 손길을 내미실 것입니다.

이루고 싶은 소망만큼 간결하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부르는 공덕은 ,,마음,입 삼업이 모두 청정하여 마음가운데 백,,,억 어려운 일을 성취하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수련한 풍광을 자랑하는 강천사에서 불가사의한 관세음보살님의 영험을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드려 불자님들 모두 소원성취 하시기를 거듭 기원드립니다.

 

 

 

 

 

 

 

잠시 더 내려가면 길가에 행운과 사랑하는 돌탑이란 표지판 아래 누군가의 작은 염원을 담은 작은 돌탑들이 있고 일주문 앞에는 또 한 구절의 금언이 나부낀다.

 

우리들이 가는 곳에 아름다움이

없는 곳이 없다.

만일 우리들의 조심성 있는 눈이

언제나 모든 것 속에서

아름다움을 탐구한다면

                     헤먼즈 펠리샤-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극락교를 건너 다시 이승으로 돌아왔다.

강천지경에서도 새로운 풍경과 아름다움을 만나고  작은 기쁨과 깨달음을 얻었다.

가슴엔 다시 만난 강천의 감회와 그 위에 덧칠해진 새로운 느낌이 남아 있다.

다시 찾는 날에는 예전처럼 강천의 양쪽 능선을 모두 돌아보고 싶어 안달이 나면 좋겠다.

 

내려가는 길 계곡수에는 커다란 송어들이 노닐고 있다.

물 속에서 암수가 희롱하는 모습이 정겹고

봄빛에 먹이를 주며 좋아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살갑다.

아마도 한국의 유명계곡에 이렇게 송어를 풀어놓고 키우는 곳은 드물 터이다.

 

우리는 병풍바위를 지나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 왔다.

바람이 자못 기세 등등 해지고 아직 해는 중천에 있다.

컨디션이 좋지 못했지만 가슴의 답답함이 좀 풀리는 그런 여행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운전 중에 웬만해선 웬만해서는 졸지 않고 졸아도 한참 눈을 부라리면서 깨어 나는데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도로상에서 맘놓고 졸아 버렸다.

잠 잘 안자는 마눌도 안심하고 자라는 내 말 믿고 잠에 빠지고 난 후라 감시자가 없긴 했어도

그 지경 까지 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디서 좀 쉬었다가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차를 몰았던 건 기억되는데

우린 갑자기 엄청난 충돌소리와 함께 노변을 들이받고 튕겨져 나갔다.

아이구!  이제 죽는구나 했는데

다행이 따라 오는 차도 없어 잠시 주행하다가 갓길에 세우고 보니 그 요란한 소리에도 차는 멀쩡하다.

우측 앞 뒤 타이어와 휠 쪽에만 충돌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놀래긴 했어도 마눌과 나와 차 모두 아무 이상 없다.

운수대통한 셈이다.

강천산 부처님 배려인지, 어머님의 삼재부적과 치성 덕분인지 아니면 강위원장 경품에 당첨된 재수 좋은 차라서 인지 우리는 모든 것이 멀쩡한 상태로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있었다.

두 번의 눈 깜박할 사이의 방심으로 인생의 방향이 바뀔 정도의 치명타를 입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내가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찰라가 가를 수 있는 삶과 죽음에 경악하고 나서 안광을 번뜩이며 두 눈을 부릅뜨고 대전으로 돌아 왔다.

오늘의 혼비백산이 훗날의 약이 될거라 마음을 달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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