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화요일)
마눌은 친구 상가집에 가서 저녁밥은 해결해야 한다..
중국어 수업 후 모처럼 이과장이 한 잔 하자는데 은비와 함께 밥을 먹기로 해서 집으로 갔다.
뭐 먹을 거냐 선택하랬더니 개고기 먹는단다.
요즘 개 값이 별루라는데 전원촌 보신탕이 12,000원으로 올랐다.
값이 오른 대신 예전보다 고기도 많아 양이 꽤 되었는데 은비는 한 그릇 다 비웠다.
“대단한 먹성이야!”
4월 15일 (수요일)
직원들과 KT 김필선 과장과 정지사장과 횟집에서 저녁식사.
보직변경으로 떠났던 김과장이 다시 대전 법인사업단으로 컴백하고 대덕 법인 지사장도 바뀌어
인사차 마련한 자리다.
그는 다시 돌아왔고 나는 총무인사부로 바뀌었는데 예정을 잊기 않고 기억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모처럼 직원들과 흥겹게 식사면서 술 한잔 했는데 신임 정지사장 술이 꽤 약하다.
뭐 그렇다고 주사를 부리는 건 아니었는데 술을 잘 조절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부하 직원들도 많아 한 잔 씩 술잔을 받아도 꽤 되는데 연신 내게 술 잔을 주면서 잔을 꺾지
못하게 한다.
원래 윗사람들이 젊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여유를 가지고 유연하고 느긋하게
마셔야 되는데…
술의 순배가 좀 돌자 내가 한 살이 더 많으니 형님으로 부르겠다니 그 또한 부담스럽다.
정이 넘쳐서 술자리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 까진 좋은데 정작 본인은 초반에 많이 취했다.
술이 좀 취하니 도슬비를 계속 까먹으라고 건네 주는데 안받기도 그렇고 받아서 쭐쭐 거리며
빨아 먹자니 우습기도 하고…
하여간 초면에도 격의 없는 가운데 유쾌하게 한잔한 자리었다.
4월 16일 (목요일)
임금협상 상견례
어려울 때인 만큼 회사에 위임을 하던지 먼저 조합측에서 자진 동결을 해주면 좋은데
지난번 학자금 건도 있고 조합 간부들도 조합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집행부 구성의 부담도 있을 터이다.
어쨌든 조합에서는 5% 인상안을 요구했고 우리는 긴 시간과의 싸움에 들어가야 한다.
회의 마치고 터존부페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사실 조합 덕분에 자주 멋진 성찬에 호사를 누린다.
부페에서는 늘 과식을 한다.
이러니 년 초 목표대로 체중을 줄일 수가 있나?
부페는 먹고 나면 배가 엄청 부른데 별루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한국사람은 역쉬 퍼질러 앉아서 순배를 돌리며 칼칼하게 먹어야 먹은 것 같다.
살아가면서 한 발쯤 먼 발치에서 보아야 할 때가 있다.
나무에 집착해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조급히 해결 될 문제는 아니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서서히 풀어 나가야 할 문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목적을 위한 자리가 불편하기 해도 얼마든지 그 상황을 즐길 수 있다.
산해진미도 한잔의 술도 그들과의 만남도
더 세월이 지나면 모두 즐거운 추억이 되리니…
차를 사양하고 일찍 귀가 했다.
무심코 채널을 돌리는데 유선방송에서 영화 첨밀밀을 한다.
등려군이 부른 감미로운 사랑의 노래다.
그녀의 부드러운 음색에 실린 노래가 너무 좋아진 건
전적으로 중국에 수업에서 배운 노래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배운 중국 노래인데 가사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중국 노래 하나쯤은 배워야 할 것 같아서 노래를 들어가면서 배우다 보니
그 아름다운 목소리가 영혼을 울리는 듯 몽환적이다.
곱고 맑은 목소리.
마치 빛바랜 사진처럼 오랜 영화를 호기심에 보게 되었다.
장만옥의 얼굴은 알고 있는데 여명이란 중국배우는 처음 보았다.
여명은 여자들이 좋아할 만큼 선해 보이고 잘생겼다.
평일에 2시간 짜리 영화 한 편을 모두 다 보았다.
내가 “수작(秀作)이라고 하자 마눌 왈
“또 끝까지 다 보았구먼…”
인간의 감정 중 가장 가장 오래된 두 가지 감정에 관한 영화다.
하나는 사랑이고 하나는 두려움
마음이 느끼는 대로 행동하기에는 이성과 현실이 가져오는 두려움이 강하고
그것이 사랑임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모든 것은 이미 어긋나 버렸다.
굳이 말로 이야기 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감정과 느낌이 있다.
이미 거부할 수 없는 사랑 속에 있으면서
애써 돌아설 수 밖에 없는 사랑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배어난다.
자전거를 타며 흘러나오는 첨밀밀 노래는 마치 지난 젊은 시절처럼 감미롭다.
사랑하면서도 운명처럼 헤어져야 하는 그 삶의 비가(悲歌)가
어느 전파사에서 흘러 나오는 등려군의 사망소식으로 끝난다.
사랑으로 인한 뒤늦은 후회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또 모든 것을 잃고 난 후
상심의 가슴과 그 사랑의 기억과 삶의 아픈 만이 남은 그들에게
처음 만날 때처럼 해후는 다시 우연히 다가 온다.
그 놀람과 미소는 안도와 따뜻한 여운으로 남고 그들의 미래의 아름다운 상상 속에 남는다..
사랑과 그 두려움 뒤에 근원적인 편안함이 있다.
4월 18일 (토요일)
전인회 야유회 날이다.
김사장이 회장을 맡고 나서 모임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마련한 고육지책이다.
IT의 퇴조와 경제한파로 인해 전인회도 쇠퇴의 길을 걸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IT 버블기가 우리의 전성기였던 것 같다.
아 옛날이여!
자체적인 세미나에 관련기업간 신기술 교류 그리고 기술세미나
다양한 방법으로 네트웍과 저변을 확대해 가던 우리는 모두 승승장구 했고
막강한 파워와 자금을 바탕으로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따라 여행도 많이 다녔었다.
이제 IT의 외로운 수문장은 임부장 1명이다.
전광석화와 같은 정보통신의 변화는 IT의 위상과 사람들의 관계마저 변화시켰다.
가장 밝고 비젼 있는 미래를 보장할 것 같았던 IT는 그 변화에 함몰되었다.
패러다임과 사고가 바뀌고 어제의 Know how가 오늘은 쓸모 없는 쓰레기로 변하는
광속도의 세상에서 지속적으로 그 빠른 변화를 수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젠 나이들어 가는 사람들이 가장 버티기 어려운 직종이 정보통신 분야가 아닐까?
예전의 전도가 양양하던 새시대의 첨병들은 이젠 사장이란 직함으로 바꾸어 달고
기존산업과 자영업의 일각으로 흡수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어가도 우리 만남과 우정은 변치 않았다.
삶이 우리를 속여 잠시 우리가 노하고 슬퍼할 지라도….
우린 고향을 찾듯 우린 전인회를 통해 우리의 젊음 시절의 추억과 따뜻함을 보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난다.
사람냄새를 맡는다.
젊은시절부터 이어진 소중한 인연이
한 달에 한번씩 거르지 않고 만남을 유지해 왔으니 그 쌓아온 정과 살가움이 얼마인가?
갑천변에서 텐트를 치고
개 한마릴 삶았다.
김회장의 솔선수범과
박사장 부인게서 많이 고생해 주신 덕에 우리는 멋진 야외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화창한 봄날
야외에서 둘러앉아 한잔의 술을 치며 먹는 개고기 수육이 얼마나 맛있던지
술은 얼큰히 오르고 배는 남산만해 졌다.
태양은 눈부시고 다리 밑으로 봄바람은 감미롭다.
술과 고기를 잔뜩 먹고 뛰는 족구 게임은 가관이다.
그 옛날 충북팀들과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를 이끌어 내던 그 기량과 패기는
세월 속에 사라졌다.
우리는 5월의 염천에서 세월은 그냥 흘러만 가는 것이 아님을 느껴야 했다.
어쩌면 인생은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짧고 무상한 거라…
우리 삶은 하루살이가 추는 찰라의 춤사위 같은 거
그래 웃고 싶을 때 웃고 춤추고 싶을 때 추는 게 인생이야!
팀구성이 올드보이와 미드보이로 나누어졌으니 애초에 이길 수가 없었다.
이런 것들이 살아가는 날이 기쁨이 아닌가?
목적을 위한 만남이 아닌 편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자리
이런 큰 이벤트에도 참석이 저조한 우리의 현실이
옛날 전성시절의 모습은 아니지만
우린 모두 믿어 의심치 않는다..
좋은 세상이 돌아오고
친구들이 돌아올 거란 걸
아니 멋진 세상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기에
모두들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 변함없이 만남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가뭄으로 말라 붙은 갑천 1
가뭄으로 말라붙은 갑천 2
수목원
4월 19일 (일요일)
안 쓰던 근육이 놀라서 욱신거리고 허리가 아프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그만그만하다.
염천의 족구는 힘들었지만 원로급들 중에서는 내가 그 중 젤 나은 편이었다.
다친 허리에도 그들 보다는 평소 내 운동량이 더 많은 셈이다.
마눌과 월악산을 가기로 했다.
어제의 야회활동으로 피곤하겠지만 밖에는 집에서 뭉그적 거리는 것 보다는 더 멋진
하루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게다가 3월 욕지도 이후에 마눌과의 먼 산은 기회가 없었고
3월에 강천에서 한바탕 추임새 이후 백대 명산 춤은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
눈부신 사월의 태양은 흡사 여름처럼 달아 오르고
월악산상에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기운과 명산의 기를 가슴 가득 받았다.
월악산은 10년도 넘었다.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던 송계삼거리에서의 영봉 까지의 1.9km는 지옥도를 방불케 했었고.
어느 뜨거운 여름날 혼자만의 여행길에 그렇게 만난 월악은 내 입을 통해 악산의 명성을 보탰다.
덕주골에서 송계삼거리 까지도 5km가 넘는 길고 거친 길인데 다 온 듯 영봉이 코 앞에 올려다 보이는 송계삼거리에서 영봉을 가자면 1.9km 돌아 가야한다.
게다가 낙차가 큰 가파를 암릉 길이니 무더운 여름에는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만도 하다.
어쨌든 월악산은 국립공원 이면서 100대명산 12위에 올라 있는 한국의 명산이다.
정상 아래에서 시가의 두 배를 주고 사서 마신 맥주 한 캔은 내가 그 때 까지 마신 맥주 중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충주를 경유해서 2시간 정도 걸려 도착해서 송계리 민박촌에서 올랐다.
날씨는 그저 보내기 아까운 화창한 봄날에 산벛꽃과 복사 꽃은 흐드러지고 수런거리는 골짜기는
봄의 기쁨으로 넘쳐난다..
연초록 새순들의 모습이 싱그럽고 바람은 살랑거리는 월악의 4월은 충주호와 산등성이에서 깊어 가고 있었다.
온통 푸르고 붉은 원색의 봄이다.
인구에 회자되는 악명 높은 산길에 때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우리는 시간에 쫓기지 않아
여유롭게 천천히 월악의 영봉에 올랐다.
봄의 연무가 흐릿했지만 다시 만난 장쾌한 월악세상은 장관이었다.
한국의 산하에는 송계리에서 영봉에 올라 덕주사를 거쳐 덕주골로 내려오는 길이 4시간 30분 걸린다고 했는데 6시간 이나 걸렸다.
게으름 피운 것도 없는데 꽤 먼 거리다.
봄날의 산행이란 서두를 이유가 없다.
어제 갑작스런 운동에다 허리가 부담스러운 산길이었지만 생각보다 심하지는 않았다.
모처럼의 출정에 된비알을 만난 마눌은 다소 힘든 산행이었을 게다.
하지만 우리는 걸출한 산군으로 둘러 쌓인 채 쏟아지는 봄 빛에 들떠 있는 월악 능선에서
봄날의 기쁨을 노래했다.
다소 피로했지만 가슴이 후련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영봉 오르는 길은 예전에 로프가 달린 바위 날등 이었는데 계단이 잘 만들어져 있어 오르는데 수월하다
덕주사 쪽 내려 오는 길은 가파른 산길로 낙차가 예전의 기억 보다 더 깊었는데 산 허리에서 바
라보는 수려한 풍광들은 심산의 깊이를 느끼게 했다.
마애불 암자에서 삼배를 올렸다.
마애불을 거치면서 길은 평탄해지는데 평평한 길을 두런두런 걸어 내리다 보면 덕주사가 선다.
예전의 기억은 사라지고 생소한 모습이다.
주변이 무척 넓어 졌다.
덕주사는 길에서 좀 떨어져 높은 곳에 있어 바라만 보고 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셨다.
평지를 만나 편안해진 발걸음으로 새로운 풍경을 즐기며 가끔 뒤로 걷기도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월악의 신명나는 춤사위를 마무리 했다.
버스 시간도 맞지 않고 차가 있는 민박촌 까지 2.6km 걸어가자면 30~40분 걸릴 터인데 마눌도 있고 내 허리도 좋지 않아 차를 얻어 타려하니 쉽지가 않다.
산꾼 들이면 태워주려만 가끔 지나는 차들이 연인이나 가족 동승이니 서질 않는다.
마늘이 여주에서 오신 산님과 얘기를 나누다 일행 중 두 분이 차를 회수하러 갔다는 말을 듣고
커피 한 잔으로 편승을 약속 받았다.
오늘도 봄바람에 재수 좋은 날이다.
멋진 월악비경을 염탐하고 원점회귀 하지 못했는데도 어려움 없이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늘 떠나서 얻는 것이 더 많은 주말이다
우리집에서 봄을 전하는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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