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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가는 대로

5월 둘째주 // 계룡산/ 도봉산

 

54 (월요일)

직원 술자리

참 재미없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다.

즐겁기 위해 마련한 좋은 자리에서 신세타령이나 하고 쌓인 불만이나 이야기 하고

스스로의 위치는 생각치 않고서 

평상시에는 할 소리들 못하면서

난 그러지 말아야지….

 

 

 

 

 

 

 

55(화 어린이날)

어제 횟집에서 술을 좀 마셔서 오늘은 쉬면서 책이나 읽기로 했다.

별로 유쾌하지 못한 술자리를 갖는다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건강에도 그리고 맑아야 할 우리의 영혼에도…..

 

어제 술을 제법 마신 상태로 아마도 오늘 집에 머무르면 뉴캐슬 병에 걸린 닭처럼 될 것이다.

의미 없이 나의 소중한 봄날 하루는 지나갈 게다.

마눌에게 오늘은 장인어른과 저녁 식사나 하자고 하고 혼자 계룡산으로 떠났다.

예전 같으면 새벽 같이 가서 장군봉 일출을 보고 7시간 종주코스를 섭렵하고 내려와

점심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사우나 까지 마쳐야 뻐근한 하루에 대한 기분 좋은 느낌이 살아 나는데 허리를 다친 후로는 2년 넘도록 그 거친 비단길은 페쇄되었다.

갈려면 가긴 하겠지

하지만 또 몇 일을 허리 때문에 고생할 게다.

사실 내 생애에 가장 치명적인 사고를 계룡산에서 당하고 난 후론 의식적으로 계룡산을 기피해왔다.

가장 신령스런 산에 속해서 에로부터 도사나 수도자들이 많이 은거했던 그 산에서 내 삶의 패턴을 바꾸게 만들 정도의 큰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아마 계룡산에 오른 횟수로도 상당하겠지만 100회 이상 등정횟수에다가 10년 이상 꿋꿋하게 계룡산에서 새해 일출을 지킨 사람 그리고 일년에 10번 이상 장군봉-삼불봉-관음봉-쌀개봉-황적봉을 연결하는 능선종주를 하는 3가지 조건으로 검색하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가 될게다.

계룡 신령님께 삐쳐서 사고 후에는 2년 동안 고작 6번 쯤 갔을 것이다.

허기사 사고 1년 동안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개다가 종주는 엄두도 못 내고 가장 긴 길은 장군봉에서 신원사 까지였다.  

 

5 1일 마눌과 함께한 팔공산 여행길은 너무 기분이 좋았던 여행길이었고

엊그제 갈기산의 신록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중요한 건 그 좋은 느낌이 지속적인 상승압력을 받는다는 것이고 상당한 산행거리에도 생각보다 허리상태가 괜찮다는 거다.

 

게다가 어제 술로 인해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모처럼 몸에 실린 역동적인 봄의 기를 잃고 싶지 않아서 난 구태여 다시 배낭을 둘러매야 했다.

 

유성에서 24시간 하는 복집에 들어갔다.

복 해장국 시켜 먹었는데 일만 팔천원

고급 복집인지는 모르겠지만 돈 값에 비해 맛이 너무 떨어진다.

어쨌든 해장을 한 셈이니 기분 좋게 계룡산에 올랐다.

사실 오늘 마음은 산신령님께 땡깡한 번 부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갓바위님과 팔공산신령님께도 빌어서 등이 많이 좋아 졌는데 계룡 산신령님께서도 무릉객

불쌍이 여겨 예전허리 돌려 달라고….

불현듯 오늘 계룡의 기를 받고 나면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당초에는 남매탑-삼불봉-자연성릉- 관음봉- 동학사 구간을 타고 내리려 했다.

7 24분에 주차장 음식점 옆 남매탑 등산로로 올랐다.

날씨는 너무 화창했고 바람은 좋았다.

큰배재에서 좀 오름 길에 있는 안부에서 금지구역으로 길을 잡았다.

삼불봉아래 안부로 연결되는 그 길에는 멋진 쉼터와 노송들이 있다.

산안개가 흐르는 가운데 눈부신 초록의 세상을 열고 있는 계룡은 변함없는 그 모습이었다.

 

장군봉에서는 광고회사에서 퍼포먼스를 연출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참 지켜보다 다시 삼불봉을 내려 관음봉으로 가는 능선길을 따라가는데 멋진 풍경과 소나무가 있는 능선등로에는 또 벌금 50만원이란 프랭카드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마치 이 풍경은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는 듯이….

무릉객이 누군가?

그가 옛 친구 소나무와 멋진 쉼터가 있는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깜깜한 새벽에 빈 물통 하나 들고 구태여 입산금지인 설악동을 혼자 올라 공룡의 잔등을 타고 내린 그가 아닌가?

아무도 없는 공룡능선에서 멋진 설악세상의 풍경을 혼자 바라보며 가슴 부풀었던 사람.

소나무아래서 참외 하나 깎아먹고 옛 친구 사진 한 장 찍어주고 다시 자연성릉을 따라 관음봉으로 간다.

 

산색도 좋고

바람도 좋고

기분도 좋다.

 

자연성릉을 걸어 가면서 더 욕심이 났다.

아마 그 푸른 하늘과 능선의 바람 그 멋진 신록 때문일 게다.

쌀개봉을 거쳐 황적능선까지 여행길을 연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눌 차를 가져왔고 오후에는 함께 회출해야 하니 연장신고는 해야 했다.

관음봉에서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는다.

Lg 핸드폰 정말 형편없어

마눌에게 좀 늦겠다고 전화하고 쌀개능선 쪽으로 길을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쌀개봉 쪽 절벽을 오르면서 허리가 신호를 보낸다.

 

맥이 쑥 빠졌다.

이것이 내 임계점이구나

아무도 없는 길을 가면서 소리쳤다.

계룡 신령님 진짜 너무 하시네요

 

오기로 되돌아 가지 않기로 했다.

갓바위님도

팔공산신령님도

계룡산신령님도 들은 체도 안 하시지만

황적능선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황적능선은 다치고 처음이다.

2 5개월 만에 찾는 길이다.

 

통증은 심해지지는 않고 그만 그만한 편이다.

황적능선은 바위산이라 나무가 별로 없어 뜨거운 태양에 완전 노출된다.

잠시 타고 내려 갈려고 썬탠로션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 옛날 어린 태현이녀석 데리고 다니면서 아빠 죽으면 화장해서 뿌려라 한 곳

그 멋진 쉼터들도 그대로였고

바라보는 신록이 싱그러우니 마음도 온통 푸르렀다..

 

내가 최고의 쉼터라고 하는 바위 난간 평반에는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요즘 세상처럼 변화 무쌍한 곳.

뜨거운 태양을 바라보며 누운 건 그 바람을 느끼고 지나간 시간을 떠올려 보기 위해서였다.

산과 바람과 태양은 변치 않았다.

아하 변한 건 나의 허리와 마음 뿐이었다.

 

 

황적봉 가는 능선 길에 울창한 수림에 부는 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눈부신 초록이 햇볕과 바람에 너울을 만드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서.

인적없는 바람 길에 거꾸로 누워보았다.

바람이 이끌고 발길이 가는 대로 그저 산과 자연에 모든걸 떠맡기고 나서

마음은 편안해졌다.

 

조용히 나무가 전하는 말을 듣고 싶어졌다.

나무는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바람이 오면 온몸으로 기쁨에 겨워 수다스럽게 이야기 한다.

멍청한 녀석이 하나 누워있어

거꾸로

아주 바보 같은 녀석이야 !  마치 자기집 안방에 누워 있는 것처럼 길가에 누었어

나무의 수다에 지난 시간들의 영상이 담담히 스쳐지나 간다.

아쉬운 것들

그리운 것들

그리고 안타까운 것들

 

싱그러운  봄과 바람을 만난 나무의 수다가 별처럼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

또 잠시 졸았다.

바람은 더 세차게 불고 지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나른하고 기분 좋은 봄이다.

아픈허리보다 더 강렬한 유혹

아직 나의 날은 지나지 않았다.

멋진 날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마치 아무일 없는 그 옛날처럼 난 다시 도로에 내려섰다.

지나는 누군가 보았더라도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슬 푸른 오월의 강렬한 태양

해돋이를 못 보았지만 철조망을 넘어 통제구역을 슬며시 내려오는 한 남자

 

 

달라진 건 예전보다 덜 그을린 얼굴과 뻐근한 허리

그래도 2년 반 만에 온전종주는 아니지만 6시간 30분의 개략종주를 마무리했다.

계룡산신령의 배려로 아무런 이상 없기를 바랬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고 욕심이었다.

 

 

 

 

 

 

 

 

 

  

 

 

 

 

 

 

 

 

 

 

 

 

 

5 6 ()

오정동 경로잔치

회사에서 경로잔치를 위해 기부금을 내고 대표로 참석했다.

박성효 시장부인과  구청장 부부, 그리고 박희진 시의원외 많은 위원들 그리고 여러 단체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시장부인은 생각보다 많이 젊었다.

사회자가 그분을 노래시키는 걸 보고 식사는 안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자체 정치인들은 700여명 노인들을 모시고 엎드려 절 한번 올리는 게 더 없이 좋은 기회인 듯 싶다.

그래서 요즘 동마다 경쟁적으로 경로잔치를 열어주는 것이 그런 목적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고령화사회로 넘어가면서 점점 소외되는 어르신들을 한 번씩이라도 동에서 챙겨드리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5월 7일 (목요일)  

 탑정저수지 노조 미팅

 매운탕 먹고 이야기 나누고 산에도 오르고

 

 

 

 

 

 

 

 

 

 

 

 

5 9 (일요일)

어머님 생신행사 겸 영태 집들이

모처럼 형제들이 서울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다.

모임의 틈새를 노려 나와 마눌은 도봉산을 오르기로 했다.

영숙이는 오늘 근무라 저녁에 합류하고 이서방과 영태가 함께 도봉에 가기로 했다.

아침 7시에 어머님을 모시고 효동을 출발하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의왕 영태에 집에 도착했다.

24평 혼자 기거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래도 그 동안 사람 사는 모습을 갖추어 놓았다.

어머님과 아이들을 영태집에 남겨두고 도봉산으로 간다.

망월사 쪽에서 올라 포대능선을 타고 도봉산역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도봉산은 예전에 주능선을 한 번 타 본적이 있고 오늘은 험하기로 소문난 포대능선에서 마눌과 한바탕 춤을 추기로 했다.

 

 

내가 서울의 기막힌 교통정체에 걸리면 죽음이란걸 익히 아는 터라 가까운 전철역 근처에 차를 파킹하고 전철로 가자고 했는데 불편하다고 한사코 영태가 차를 가지고 간다.

940분이 좀 넘어서서 출발을 했는데 결국 우리는 망월사쪽 주차장에 11 30분이나 되어서 도착했다. 

해가 중천에 있는 시간에….

 

팔공산에 이어 푸르른 신록은 여기서도 인상적이다.

푸르름과 조화된 암회색의 바위 능선은 마치 이 산이 한국의 수도에서 얼마 떨어진 곳이 아니라 어느 고립된 산간지대에 독거 하는 듯 장쾌하다.

 

애써 눈을 아래로 두려하지 않았다.

거긴 심산의 기개에 어울리지 않는 도시의 부자유스러움이 어색한 모습으로 누워 있다.

넓은 사바세상이 보이지 않는 능선의 우측과 그리고 능선이 지나는 길은 명산의 웅혼한 기가 넘쳐난다.

 

준비해간 김밥으로 능선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시간에 거리낌 없이 천천히 탐미의 여정을 즐겼다.

서울사람들은 도봉산으로 해서 행복하겠지만 도봉산은 서울 근교에 위치한 불운으로 세월을 앓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그 숲에 기대어 힘겨운 삶을 위로 받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산에 굴을 뜷고 산허리에 생채기를 내면서 난개발을 한다.

광교산이 수원과 용인쪽이 풍광이 전혀 다르다는데 우리는 지자체의 지도자에 따라 도시의 환경은 급속히 바뀔 수 밖에 없는 비합리적인 체제 속에 있다.

사람들은 욕심이 많아 자기가 맡고 있는 동안에 그럴듯한 성과를 보여 더 많은 부귀와 권세를 꿈꾸려 한다.

 

자운봉,선인봉, 만장봉이 바라다 보이는 바위 난간의 풍광은 압권이다.

그 오랜 옛날에는 필시 신선들이 살았을 터이다.

 

자운봉 가는 길은 상상을 초월한 바위 벽이었다.

둘러가는 길도 있는데 바위를 타고 가는 길은 험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마눌을 아래에 남겨둘까도 생각했지만 이 길을 도저히 다시 돌아 올 수가 없을 것 같아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고 또 어짜피 함께 추어야 하는 춤이라 어찌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되돌아 가게 한 도봉의 거벽들은 인간의 잊었던 원초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한다.

두려움

그 직접적이고 구체화된 삶의 고뇌는 서투른 표정관리에 패를 읽히고 스릴을 즐기는데 익숙치 않은 사람들의 사람들의 간담을 흔든다.

마눌은 바위에 붙어 엉금엉금 기다시피 진행하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고 표정과 목소리에서 공포

와 혼란이 드러난다.

사실 이건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정말 공포를 느꼈던 곳은 용아장성의 직벽 이었다

 

늘 그렇듯이 사고란 정말 험한 곳에서는 잘 나지 않는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곳에서는 생명의 위험과 공포로 신경이 곤두서고 단단히 마음이 준

비되어 방심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영태는 육사 정규교육을 받아서 인지 혼자 훌쩍 자운봉에 먼저 가서 앉아서 우릴 기다렸다.

어째든 우리는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도봉의 최고봉 자운봉에 섰다.

그리고 사패산에서 내달아 오는 능선과 도봉 주능으로 달려가는 장쾌한 능선을 바라 보았다.

바람 좋고 햇빛 좋은 어느 봄날 마눌은 공포와 평화 그리고 후회와 성취의 극단적인 감정의 기복을 겪으면서 도봉마루에 올랐고 우린 그렇게 한바탕 격정적인 춤사위를 마무리 했다.

 

도봉산역 쪽으로 하산하면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아 민초샘 까지 되돌아가 망월사 쪽으로 원점회귀 했다.

포대능선은 온전히 돌아본 셈이고 사패능선과 도봉 주능선과 함께 잇는 길은 훗날 내 전투력이 다시 고강해질 때을 위해 미련없이 남겨 두었다.

 

돌아 가는 길은 완죤 뚜껑이 열리는 정체였다.

다섯시에 하산을 마치고 우린 7시 반이 되어서야 어머님과 형제들이 기다리는 야외 가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리불고기와 시원한 맥주 가 도봉의 마술로 더 맛깔스러워진 날이었다.

 

밤엔 고스톱과 섰다판을 벌이느라 시간 가는 줄 새벽2 30 까지 어울려 놀았다.

한참 딸 때 이서방 개평주고 기분내다가 4만원 쯤 잃었다.

포도주 맛에 취해 한 병을 혼자 거의 홀짝거리며 마시고 나중엔 복분자 까지 반 병 마셨다.

새벽 세시가 되어서야 우린 잠자리에 들었다..

 

 

 

 

 

 

 

 

 

 

 

 

 

 

 

 

 

 

5 9 (일요일)

아침엔 일어나니 머리가 무척 아프다.

과일주는 머리가 많이 아프다더니 너무 많이 마신 모양이다.

허기사 소주에 맥주, 외인과 복분자 까지 4가지 술의 짬뽕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침에 어머님의 삶아내신 수육과 마눌이 끊인 김치찌개와 밥을 먹었는데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요즘 매주 2회씩은 장하게 술을 마시게 되는데 굳이 안마셔도 무방한 자리에서 분위기와 맛에

무리를 했다.

진짜 술 맛을 모르는 사람이 향긋한 술 향에 뻑 간 셈이다.

 

어제 10만원쯤 딴 윤서방이 점심과 영화를 쏜다고 했는데 형제들과 함께 빈둥거리다가 먼저 대전으로 출발했다.

머리도 계속 아프고 또 형제들과 같이 식사하고 가다 보면 여섯 시 좋은 친구들 모임에 늦을 것 같아서 우리만 먼저 일어났다.

 

조친들 모임은 몇 달 만이다.

김이사는 상무진급하고 모두에게 그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한턱 내라고 했는데 2차를 다음으로 미뤘다.

김사장은 골프를 치고 오는 길이고 성박사는 어제 먹은 술이 아직 안 깼다고 한다.

수통골에서 산골두부 정식을 먹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인지 맛은 별루였다.

손님들 중에 산행 후에 뒤풀이를 하는 남자1명과 여자 두 명의 손님이 있었는데 말하고 웃는 소리가 얼마나 화통하고 큰지 깜짝 놀랄 지경이고 친구들과 이야기에도 신경이 쓰일 정도다.

공공장소에서 남들은 전혀 배려하지 못하는 안하무인의 모습이 거슬려서 한마디 할까 했는데 다시 터드린 기차화통소리에 모든 손님들이 쳐다보면서 불만을 표출하자 미안함을 느꼈던지 셋이  슬그머니 나간다.

타고난 목청과 웃음소리야 고칠 수 있겠냐만 최소한 조심하려는 태도는 보이는 건 기본적인 예의

가 아닐까? 

미루어 짐작컨대 그런 자신의 모습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많은 질타를 받았을 텐데 고치려 노력하

진 않은걸 보면 참으로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인 듯 싶다.

 

 

막걸리는 3잔 마셨다.

우린 밀린 이야기를 나누다 어둠이 내릴 때 쯤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