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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2월의 단상 - 한신계곡

 

2010년 2월 18일   지리산 한신계곡

나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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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날들이 자꾸 지나 갑니다.

마치 내 살아가는 날들이 가시가 돋친 것처럼 삶을 아프게 찔러 오고

그 세월에 상처 받을세라 잔뜩 웅크렸습니다.

마야인들

베일에 가려진 우수한 원시종족

현대인들이 그 수리와 과학의 정교함에 놀라 외계인 혹은 고도로 진화한 사라진 인류로 경외해

마지 않았던 그들이 경고한 마지막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구촌의 이상기온, 빈번해지는 지진과 해일

생각지 못했던 세계경제공황

흉흉한 민심

그리고 깨어진 마음의 평화

그들의 마지막 시간에 다가갈수록 세상이 혼란스러워 지는 걸 보면 그들의 정교한 건축술처럼

그들이 마지막 시간에는 남다른 근거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수무책이었던 경제대공황과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는 바벨탑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우리가 저지른 일들의 수습은 이제 우리 손을 떠나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이 일기도 합니

.

 

2월이란 답답한 시간입니다.

세월에 쫓기던 어느 날  불현듯 큰 눈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이 겨울이 떠나고 있음이 안타까

워 집니다.

그 많은 시간을 이러 저런 이유로 흘러 보내고 나서

진군하던 겨울이 퇴각의 나팔을 불고 나서야 잃어버릴 겨울이 아쉬워 집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무릎까지 빠지는 눈밭을 걸어야 합니다.

마른 가지에 흰 눈을 가득 걸고 아이처럼 기뻐하는 나무들을 만나고

내 호흡이 하얀 서리로 빙결되는 차가운 대기와 거친 밤 늑대의 울음처럼 고독한 설산의 바람소

릴 들어야 합니다.

2월은 늘 그렇게 혼란한 시간이었지만 올해의 2월은 최악이었습니다..

 

2 18일 목요일

갑자기 지리산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지리산이 보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갑자기 찾아 옵니다.

 

산이란 그렇습니다.

마음속에 남겨진 무수한 기쁨의 시간은 산 상의 추억에 남아 있고

친구와의 즐거운 추억도 내 힘든 시간의 위안도

산 길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떠나는 일 말고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토요일 장터목 산장을 예약현황을 보려 인터넷을 열었더니 대기자 2명 남았습니다.

이 겨울에도 지리산 장터목장에 사람들이 이렇게 몰리는 줄  몰랐습니다.

저녁에 예약을 했는데 밤에 예약이 되었다고 메시지가 왔습니다.

7000원을 입금하고 산신령님이 부르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의 지리산 종주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내게 장터목이란 늘 노고단에서 고단하게 흘러가서 내일 천황봉 일출을 만나기 위한 마지막

베이스 캠프일 뿐입니다.

그 길이 멀고 힘들 것이란 생각보다 눈덮힌 능선을 걸어가면 가슴이 후련해질 것 같았습니다.

늘 지리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구례행 새벽 150분 열차를 기다렸습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마눌은 역까지 나를 태워주려 덩달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열차는 타지 못했습니다.

잠자지 못하고 걸어야 할 시간과 불면으로 대해야 할 지리산의 겨울이 두려웠습니다.

어쩌면 찾지 못한 마음의 평화가 더 두려워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기쁨을 안고 떠나던 설레이던 여행길이 혼란과 답답함으로 가득해 발 길과 마음이 제 스스로

무거워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벽에 일찍 떠났습니다.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올라 세석을 거쳐  장터목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한신계곡을 올라 갑니다.

생각보다 눈은 많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채색 공간에서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새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그렇게 고요한 날은 처음 만났습니다.

물소리조차 얼음장 밑으로 숨죽여 흐르고

난 비로소 스스로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세상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바뀐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제 마음 이었습니다.

마음으로 되뇌었던 말

이 또한 지나 가리라어느 인생의 길목에서

그 말을 떠올린 것은 정작 세상의 힘겨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어리석은 주문이었습니다..

우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에 대해서 얼마나 더 공부하고 알아야 하는 건지

소중하지 않은 날은 없습니다.

지나 온 시간보다 지금이 더 중요하고 아직 늙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오늘이 더 소중합니다.

마음의 따뜻함을 잃지 않아야 얼어붙은 계곡 길에서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건데

겨울 날처럼 제 마음은 스스로 찬바람을 내고 말았습니다.

빙설로 덮힌 계곡의 아름다움은 그 봄의 경이와 여름의 전설을 기억하고 있기에 더 아름다운 것

인지 모릅니다.

 

계곡이 무수한 생명이 살아 있음을 이미 알고 있듯이 난 살아 있습니다.

머지 않아 그들이 깨어날 것을 알고 있기에 저 역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느끼는 세월의 아픔은 살아 있다는 증거일 뿐이었습니다.

바보처럼 증거인멸을 위해 고뇌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냥 배낭 하나 메고 나서면 살아감이 좀더 가볍고 담담해 집니다.

자연처럼 스스로 그렇게 됩니다.

 

산과 자연과 사람들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동경을 아직 잃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조용함이 좋다고 하지만

다음 달 물가에 버들강아지에서 피어나는 봄과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들으면 가슴엔 감사와 기

쁨이 넘쳐날 것입니다.

산이 붉게 타는 가을엔 계절의 수심에 빠져 다시 쓸쓸한 가을 속으로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흐린고 궃은 날이 어디 몇 일 뿐이겠습니까?

궃은 날이 있어 태양 빛이 더 화사하고

추운 날이 있어 따뜻함의 축복을 가슴에 새길 수 있습니다.

 

비탈의 고목을 지나 세석 능선 바로 코 앞에서 사람을 만났습니다.

조용한 명상과 사색의 시간은 깨어지고 고뇌와 결단의 시간을 마주했습니다.

나처럼 엉성한 산꾼이 또 있겠습니까?

2 16일부터 4월 말까지 산불조심기간으로 대부분의 지리산 등산로가 폐쇄된다는 사실을 까마

득히 몰랐습니다.

내가 오른 한신계곡도 금지구역이었습니다.

구례구 열차를 탔으면 새벽 역에서 올갱이 탕 한 그릇 먹고 새벽사찰에 들러 부처니께 삼배하고

화엄사윗길을 따라 노고단에 올랐다가 내려왔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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