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신안군 임자도
산행일 : 2011년 5월 8일 일요일
날 씨 : 안개비 , 흐린후 맑고 무덥다.
동 행 : 귀연 44명
코 스 : 부동삼거리-삼각산-대둔산-원상리-장목제-함박산
불갑산-벙산-대광해수욕장
시 간 : 약 6시간
내게 필요한 건 삶의 여백과 여유
그래서 임자도에 갔어
지도 어디쯤에 지도가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비 안개와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도에 비몽사몽 도착해서
날씨처럼 칙칙해진 마음으로 밤 막걸리 한잔을 마셨지
비 뿌리는 갑판에서….
요즘 왜 일이 이렇게 안 풀리는 거야
여기까지 오는데 수십 년이 걸렸는데
남도의 끄트머리
정말 벼르고 별러서 온 섬인데
삭바람에 ..안개에…비에
결국 임자 만났군
“섬신령님 너무하셈
시산제도 제대로 한다고 했는데
춥고 을씨년스러운 이 날씨는 몹네까?”
차가운 냉기와 함께 밀물처럼 몰려오는 걱정
임자도 산신령님은 오늘 우리한테 아무것도 안보여주실 모양이다.
임자도 풍광 죄 보여주고 나면 다시 안 찾아 올 까봐….
차 안에서 정암표 맛있는 떡 두덩거리 먹고
두 개는 점심 때먹을라고 배낭에 짱박아 둔 채
갈매기 끼룩거리는 전장포에 도착했어
체험 삶의 현장에서 잡어 세척하는 모습은 이색적이었지
아! 쑥국 죽이데…
쑥하나로 이런 맛도 만들 수 있구나..
장인의 손 맛과 이향 포구의 설레임
그리고 먼 길의 시장함은 흐르는 안개와 어울려 미각의 꼭지점 댄스를 추었지
“신령님 법대로 하세여
산 위에서 아무 것도 안보이면 난 고사리 뜯고 남실장 특선 요리만 먹고 갈팅게…”
곧이어 남실장 생가 견학
성베드로 사원을 관광하는 유럽관광단처럼
버스에서 내려 우린 대기리 마을을 둘러 보았어
흡사 해방구 브룩쿠린처럼 해사한 노란 브로콜리가 유채처럼 흐드러지고
검은 튜울립이 반겨주었어
노생가도 아니고 김생가도 아니고
여기는 남생가
관광버스가 정차한 이곳 대기리 큰그릇 마을
정말 출세했지
지도에서 찾기 힘든 임자도에서 행정수도 옆 동네 땅끔 비싼 유성 한복판까지
진출해서 떵떵거리다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바보
난 임자도의 날씨와 바람에 놀라
난 추위에 떨지 않겠다는 일념과 신령님께 반항하는 의미 하나로 두터운
가을 옷을 꺼내 입었던 거야.
그냥 견딜 만 했는데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햇빛이 나기 시작하면서 대둔산 된비알을
오르는 길에 곡소리 나더군
사실 산 안개 때문에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고사리를 뜯기 시작했는데 투잡 그런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새벽안개나 백제의 무사 같이 경지에 오른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 들이나 하는 거지
나는 다시는 투잡 안 할라우
정암님 부부 엄청나더군
떡값을 벌어야 된다나 어쩐데나
저런 분들 한 차 들어오면 임자도 고사리 씨가 마르지 않을까?
그래도 내 눈에도 고사리가 보이고 내가 뜯은 고사리가 한 봉지 되는 걸 보면 고사리가
정말 많은 섬이야
고사리만 먹으면 남자 몸 상한다고
보신용 독사도 한 마리 잡았어
산용님 강의를 들었지 “뱀을 먹는 법”에 관해서….
일단 장닭을 한 마리 잡아서 다리를 독이오른 독사에게 물리는 거야
그렇게 몇 일을 두면 닭에 독이퍼져서 푸르뎅뎅 붓는다 이거지
그걸 고아 먹으면 남자한테 완죤 “짱”이래
코리아 몬도가네
그렇게 뱀 닭을 몇 마리 먹으면 올 여름이 걱정 붙들어 맬 수 있다는데 사실일까?
그럼 난 먹으면 안돼
고사리나 푹 고아 먹어야지…..
육지나 섬이나 대둔산 등산은 정말 힘들어…
대둔산에 오르기 까지는 내가 섬에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지
부안 가는 김제 들판 길 같기도 하구
내가 삼월에 창선도의 봄을 유채와 마늘과 함께 만났는데
임자도엔 봄이 한참 늦더군
세상에 봄에 필 수 있는 모든 꽃이 다 피어 나는 것 같았어
진달래
유채
할미꽃
튜울립
동백꽃
선인장
마늘
양파
꽃이란 꽃은 다 찍어 보려 했는데 고사리 캐는 것 보다 더 힘들더군
게다가 난 꽃 이름을 잘 몰라서 내가 늘 새로 이름을 지어주곤 하지
굳이 사진 속에 남기려 함이 무슨 의미 있을까?
꽃은 벌써 내 마음 속에서 활짝 피었는데…..
대둔산을 내려서 들판을 걸으며 흡사 고향 길을 걸어가는 착각이 들기도 했어
낙동길에서 가끔 코끝을 찡하게 했던 어린 시절의 향기처럼
난 무더위에 하루를 내어준 대신 도심에서 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지
임자도에서….
장목제에서 불갑산을 넘어가면서 섬이 실감이 났지
사라진 비 안개
그리고 그림같은 마을과 산허리를 두르던 평화로운 운무
아침의 찌뿌둥한 컨디션과 우울한 기분은 해풍에 씻은듯 날리어 갔지
‘정말 오길 잘했어….”
“대둔산, 불갑산 신령님 저의 어리석음과 불경을 용서하소서”
신령님은 벌써 알았던 거야
맑은 날을 열어주어도
튜울립 축제와 고사리 땜시 우리가 사람들을 몰구 다시 올 거란 걸
내가 이렇게 땀을 흘린 날이 있었을까?
고작 섬의 야산 길을 걸은 것 뿐인데…
어쨌든 시간과 인간의 위대한 걸음은 우릴 어김없이 목적지로 데려다 주었어
화사한 꽃과 낭만이 머무는 남도의 철 이른 해변으로…..
우린 불갑산과 벙산을 지나 김제평야 같은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대광
해수욕장으로 내려왔지
금빛 사구에 뿌리를 내린 고사리를 바라보며
보리수 열매를 따 먹으며 ….
내려오니 난리가 났더군
풍차 앞 해변에서….
무신 큰 잔치가 벌어진 줄 알았어
점심을 빵으로 대신한 시장함과 갈증으로
난 소주를 타서 맥주 세 잔을 거푸 마시고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아니 말을 할 겨를이 없었어
갑오징어가 너무 맛있고
병어회는 환상이고
병어찜과 꽃게탕도 쥑였지
소림사 주방장이 금방 튀겨낸 튀김과
단비님의 순간배송은 미각의 감동이었어
물론 마실표 돼지볶음과 소고기조림도 일품이었고
정암표 가죽나물 무침도 너무 서러운 맛이야
난 할말을 잊고 오직 본능에 충실했을 뿐.
내 잘못이 아니여
원래 분위기를 위해서 단체음식은 좀 맛이 없어야 되는데
땀을 흘린 시장함에
일품요리에
독감에도 꺾이지 않는 모진 입맛의 삼위 일체에
난 이방인처럼 말 없이 먹을 수 밖에 없었어
그리고 조용히 헐떡이며 버스에 올랐지…
돌아오는 길
우린 유럽 지중해의 한적한 어느 마을을 댕겨온 듯
가슴이 뿌듯하고 따뜻해 졌어
잔잔하고 아름다운 섬의 영상과
소박하지만 산 친구의 넘치는 인정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
감동을 먹는다는게 이런거야
살만한 세상이고
떠나야 할 이유가 다섯가지도 넘는다는 걸 보여준 여행길이었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바라보면
온 세상엔 보물이 가득해
신안 앞바다에 보물이 가득 가라앉아 있다 하지만
임자도가 바로 그 보물이 아닐까?
찾아준 기쁨과 잘 먹어준 기쁨에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아이처럼 기뻐하던 남실장
임자도 여행길이 혹여 불편할세라 노심초사했던 그 인정이 너무 고맙더군
귀연이란 이름으로 기꺼이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함께 노래할 친구가 있어서 좋구
아직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좋다네
가슴엔 여전히 아름다운 길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살아 있으니
5월은 그냥 훌쩍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봄이야
살아 있는 동안 아직 찾아 낼 보물이 너무 많음을 새삼 감사하면서 돌아오는 길엔
하늘이 더욱 푸르고 기분 좋은 취기가 쉴새 없이 행복한 추억과 상념을 불러다 주더군
안녕 임자도
안녕 친구들
동행 사진첩 (청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