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주엔 귀연에서 속리산 서북능선 갑니다.
추억의 충북알프스
블로그를 들추니 벌써 6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2004년 10월 19일
혼자 서북능선의 단풍 숲을 거닐며 이렇게 적었더랬습니다.
“세월이 가도 이미 기억 속에 표구되어버린 그 시린 풍광의 가을 산을 잊지 못해 숙명
처럼 이렇게 어느 능선에서라도 가을을 만나 야 한다.
가을! 그 고혹 !“
그날 새벽 다섯시에 대전을 출발하여 만수리에 6시 40분에 도착했습니다.
피앗재에 올라 천황봉과 문장대를 거쳐 서북능선을 아우르는 단풍여행길은 10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연휴 일요일엔 속리산 천황봉에서 해맞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흔든 건 두 가지
다시 추억의 그 길을 걷고 싶다는 거
이왕이면 천황봉에서 서북능선을 연결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천황봉에서 마주하는 붉은 태양의 축복이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아! 또 하나 있습니다.
속리산 최고봉에서 해맞이한 기억이 한 번도 없습니다.
설악산,지리선,덕유산,계룡산,태백산 해맞이는 다 해보았는데….
밤에 잠들 때나 자명종의 수다로 아침에 일어날 때 행여 힘이 들면 떠나지 않을 겁니다.
그냥 마음이 동하는 대로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압니다.
난 떠날 거란 걸…
떠나지 못한 채 책과 영화에 기댄 헛헛한 하루의 아쉬움을 알기에…
자명종이 울리기 10분전에 깨었습니다.
난 귀신 입니다.
잠귀 밝은 마눌도 깨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집을 나섰습니다.
속리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산 입니다.
속세에서 멀리 떨어져 속리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안개가 자욱합니다.
어젠 별을 보았는데 …
속리산 입구 편의점에서 삼각김밥하나 컵라면 하나 먹고 나서 호텔주차장에 차를
파킹 했습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저수지엔 물안개가 피어 오릅니다.
어슴프레한 물가에 두루미 같은 새가 한 마리 앉아 있습니다.
슬며시 카메라를 꺼내어 찍으려는데
아뿔사
메모리칩이 없습니다.
지난번 사진을 갈무리 하느라 빼고 나서 다시 끼우지 않았습니다.
혼자 오르는 길에는 몽환의 산안개가 흘렀습니다.
세검정에서 천황봉 갈림길을 한참 오르다 보니 조금씩 밝아 집니다.
길은 온통 젖어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오르면서 같이 흠뻑 졌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내가 나무처럼 자연의 한 점으로 동화되어
산 이슬과 안개에 세속의 탈취되고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더 좋습니다
어젯밤 윗집 보미 아빠가 돌아가셨습니다.
58세 너무 젊은 나이로 그렇게 훌쩍 떠났습니다.
그 갑작스런 죽음엔 아무런 이유도 항변도 없습니다.
그냥 어느 나뭇잎 한 장 바람에 떨어지고
아무렇지 않게 날이 밝았습니다.
갑자기 떠난 사람보다 갑자기 보낸 사람의 망연자실이 더 슬펐습니다.
어제 오늘 사이
이 바람과 수림의 향기를 느끼느냐 느낄 수 없느냐로
삶은 그렇게 가볍게 규정되어 버립니다.
생과 사가 그렇게 무겁지 않은데 우린 무에 그리 안타까워 합니까?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나듯 삶은 피어나고
노을지고 어둠이 밀려오 듯 삶이 스러집니다.
떠난 자는 어딘가에서 평화롭게 누워 있겠지요
아님 다 잊혀진 기억으로 바람이 될른지요?
세월이 좀더 흐르고 나니 삶이 조금씩 가벼워 집니다.
삶은 허무 한 것도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원래 그렇지 않은데 스스로 자해하고
더 많은 생각으로 덧낸 상처가 곪아서 더 아프게 느껴진 것 뿐이었습니다.
산에서 배웠습니다.
가끔 텅 비워야 합니다.
숲과 나무처럼
화와 독을 가슴에 쌓아 놓고 비우지 못하면 병이 됩니다.
바람처럼 자유로와야 합니다.
삶의 구속을 기꺼이 받을지라도 마음은 늘 자유로워야 합니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물러야 합니다.
떠날 수 없는 날조차 떠남에 대한 어떤 희망과 기대가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물처럼 유연해야 합니다.
세상의 순리와 섭리에 고개 숙입니다.
인간이 주관하지 못하는 슬픔엔 눈물 한 번 흘리고 다시 소리쳐 흐르겠습니다.
안개 속에서 천황봉의 표석을 보았습니다.
가슴이 울컥하고 콧날이 시큰 했습니다.
반가움으로 표석을 끌어안고 잠시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해는 뜨지 않았습니다.
일출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자욱한 산 안개로 아무런 풍경도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다음주 아니 그 때 같은 가을에라도 다시 오면 됩니다.
과일하나 깎아먹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가는 표석에서 잠시 졸았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 올라왔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
서울에서 왔다 합니다.
보은에서 택시를 타고 대목골 까지와서 천황봉에 올랐다고 합니다.
왜 혼자 산을 타시냐고 물었습니다.
“ 이런 새벽에 누가 함께 올려구 하나요.”
2004년 속리산 종주의 그날에 한 사람을 만났더랬습니다.
새벽산 인적의 반가움에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습니다.
“딱히 정해진 목적지는 없고 단풍 따라 내려 가는 길입니다.”
설악산부터 흐르는 단풍을 따라 무작정 흘러 간다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자연 속에서는 늘 자신의 목청으로 삶을 노래하는
누군가를 만납니다.
누구나 제 흥에 겨운 삶의 기쁨이 있습니다.
홀로 산 길을 걸어가며 육체가 피곤한 만큼 마음이 가벼워 지는 걸 알고 난 사람들은
배낭을 메고 기꺼이 어둠 속으로 떠날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 삶이 짧은 여행 길인 것처럼…..
가슴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털어내어 비워둔 빈 방에는 가벼운 추억과 낭만으로
채우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난 압니다.
남들에게 주는 감동은 없어도 그들이 흥얼거리는 콧노래는 스스로의 행복을 부르는 주술이란 걸
목쉰 풍류아 의 박자를 놓치는 거친 노래는 영혼을 울리는 감동의 화음이란 걸
기꺼이 혼자만의 새벽 여행을 떠날 수 있음에 안도합니다.
가슴에서 아직 열정이 사라지지 않았고 수많은 추억과 감동도 세월에 빛이 바래지
않았습니다.
아직 튼튼한 두 다리와 새벽산의 아름다움에 흔들리는 가슴을 잃지 않은 것 만으로.
인적 없는 산 길에 머무는 고독과 심산의 바람과 향기를 사랑할 수 있는 것 만으로
난 살아 있습니다.
삶은 여전히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흠뻑 젖었습니다.
간밤의 비와 이슬에
속리의 감회에….
보미아빠? 뭘그리 서둘러 가셨수?
훌쩍 떠나보니 거긴 여기만큼 좋시까?
지리산 서북능선
○ 산행 장소 : 속리산 서북능선
○ 산 행 일 : 2011년 8월 21일(일)
○ 산행 시간 : 약 8시간 20분
○ 산행 코스 : 속리산 화북분소-문장대-관음봉-묘봉-상학봉--신정리
○ 동 행 : 귀연 산우 18
오늘은 지난번 속리 주능을 이어 서북능선 이어달리기를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질리게 비가오는 날들 속에 너무 반가운 것이 많은 날들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산 친구들.
밝은 태양, 맑은 바람
오래된 아름다운 풍경들
비몽사몽에도 안개가 흐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안개란 세속과 멀리 떨어진 산의 신비로움을 일깨우는 신의 한숨
어쩌면 분루를 삼키며 삶의 고단한 언덕을 올라야 했던 팩팩한 가슴들을 위로하고
정화시키려는 정령들의 입김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꿈결에 몽환의 안개 속에서 신선의 땅을 배회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화북분소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안개가 흩어지고 밝은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어찌이리 간사한지요?
안개에 가린 신선의 땅에서 신비로운 암릉길을 주유할 기대에 설레이던 마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밝은 태양의 반가움에 언제 멜랑꼬리 했었냐는 듯 푸른 하늘 아래 유리잔
처럼 맑고 투명한 풍경 속을 주유할 기쁨에 부풀어 오릅니다.
이래저래 산은 고혹의 여인처럼 다가 옵니다.
산길과 도로가 만난 곳에서 긴 비로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산친구들과 사진한 장을 찍었습니다.
무수한 세월 어느 산 길 모퉁이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들
많은 사람이 바뀌어도 늘 그 사진 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귀연이란 이름아래
오랫동안 대자연이 주는 축복과 기쁨을 누리면서 함께 즐겁게 늙어갈 사람들….
사진 속 사람들 뒤로 멋진 속리의 파란하늘이 박제된 채 걸렸습니다.
오송폭포
화북분소에서 문장대 오르는 길
느릿느린 산을 오릅니다.
큰 길에서 벗어나 지 계곡으로 들면 멋진 폭포를 만납니다.
소스라쳐 떨어지는 장대한 물줄기는 올 여름 내내 심산의 가슴을 쓸어 내린 큰비의 여운입니다..
성불사
몇 번인가 화북분소에서 문장대에 올랐는데 절이 있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법주사의 말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자 절임에 틀림없습니다.
해탈교,해탈문 심지어 쉼터의 탁자까지 화강암과 오석으로 한 것 모양을 낸 채
불심에 기댈 중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탈교와 해탈문을 지났습니다.
마음이 좀더 가벼워 졌습니다.
어느 맑은 날 속리 산신령님의 축복과 부처님의 자비 덕으로 비좁은 가슴에서 사바의 번뇌와 미망을 내렸습니다.
성불사에서 문장대로 오르는 길은 나지 않았습니다.
천황봉으로 가는 능선 어디엔가로 오르는 길이 있다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문장대
지난주 정상에서 사라진 움막집의 모습에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후련했습니다.
오래 전 혼자 여행하던 날 한잔의 막걸리와 국밥을 먹으며 도대체 누가 이런 곳에 음식점
휴가를 내 주었느냐고 속으로 투덜거린 그 곳입니다.
속리의 맑은 아침은 이슬처럼 영롱하고 맑은 물처럼 깨끗합니다.
산상의 고요와 평화가 가슴으로 밀려들었습니다.
멀리 그림처럼 흐르는 푸른 산하와 부드러운 바람이 다시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가파른 등로를 차고 오르느라 뜨거워진 심장
그 열기를 식혀주는 차가운 맥주 맛을 아십니까?
누군가의 무거운 등짐에서 내려진 황금빛 오아시스는 뜨거운 태양아래 아직 부드러운
얼음으로 냉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수고스러움이 퍼나르는 많은 사람들의 작은 행복
타는 목은 적시며 흘러 내리는 황금빛 카타르시스와 해갈
내가 속리에서 마시는 한잔의 맥주는 산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 그리고 사바의 괴로움을
녹이는 차가움의 따뜻한 역설이었습니다.
가슴저린 시원함이 몸 속으로 흐르고 다시 대할 충북알프스 백미 서북능선의 관문에 선
짜릿한 전율이 가슴을 찔렀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술의 힘과 위엄이 망각에 있듯이
우린 세속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신선주를 마시고 세상의 고단함과 답답함을 잠시
잊어버렸습니다.
지난 주 맥빠진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던 내 모습이 측은해 보였는지 바람과 안개 속에서
말없이 옥수수 한자루를 건네주던 어느 산님의 정을 받았던 문장대는 오늘 밝은 태양아래
거침없이 신선의 땅을 드러냈습니다.
서북능선
그 길의 기억은 까마득히 사라졌습니다.
아직 젊었던 그 시절엔 바람처럼 흘러갔던 그 길에 수많은 암릉과 청솔의 기억은 남아
있지만 문장대가 시야에서 멀어지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몰랐습니다.
블로그에서 잠시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길에 대한 이야기는 한 줄도 없고 그날 혼자 만의 야행길에서 받았던
감동의 잔상과 감상의 여운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세상은 내 마음 안에 있다.
비좁은 내 가슴이 세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내 가슴이 따뜻하면 세상이 따뜻하다.
내 마음이 슬프면 이 서정적인 가을이
슬픈 색깔을 띤다.
내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기만 하면
세상은 평화롭고 그 곳은 온갖 아름다운 것들로 넘쳐난다.
세속의 진폐는 모두 비워내고
오늘은 무심에 저 바람과 푸른 하늘
그리고 맑은 가을만 담자
눈부신 가을 산, 이 아름다운 세상에
내가 있음이 더 바랄 것 없는 축복인 것을…
지도도 없으니 무슨 봉우리 인지도 어디쯤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선녀봉이라 이름 붙인 봉우리에는 계곡 아래서 웅장하고 시원한 바람이 솟구쳐
오르는데 그 장쾌한 바람 맛은 답답한 가슴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만다.
가을이 흘러 다니는 길목에 서서 그 가을을 비웃는 청솔들
청솔은 바위에 비스듬이 기대어 푸르고
가을 나무들은 그 여름의 미련을 묵묵히 떨구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계절의 고뇌
바람은 속리의 청천으로 가을을 날리고
멀리 산 위엔 구름의 그늘이 산을 반쯤 덮고 있다.
선녀와 신선은 간데 없고 갈 길은 아득한데
적막한 바람 길에 애 끓는 단풍들이
나그네 발길을 속절없이 더디게 한다.
그 길의 단풍이 참으로 아름다웠던 모양입니다..
관음봉 앞 무명봉, 관음봉 ,묘봉
멋진 암봉들 위에서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백두대간의 허리 서북능선은 단단한 속리세상의 주능을 옆에서 지지하며 첩첩이 흐르는
능선 한 가운데 기운차게 솟아 올라 암릉과 청솔을 얼싸안고 결렬한 춤을 추며 북으로
흘러갑니다.
관음봉, 묘봉,상학봉으로 이어지는 그 길은 거칠었지만 파란하늘과 푸른 숲 그리고
속리나라의 멋진 조망이 어우러진 그 길은 여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가슴은 다시 부풀었고 새로운 세상의 멋진 풍경에 대한 욕심이 되살아 났습니다.
신선의 땅
새로운 세상을 주유하는 기쁨으로 힘든 줄 모르고 피앗재에서 10시간이상 흘러갔던
그 길이었습니다.
태양의 열기가 그렇게 격렬하지도 않았는데 함께하는 발걸음은 조금씩 밀렸고
매봉을 넘지 않고 상학봉에서 내려서는데 8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삶이란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우린 세월에 조금씩 약해지고 기력이 떨어져 갑니다.
괜찮습니다.
10시간 만나는 자연이건 세시간 만나는 자연이건 우린 열정과 의욕을 잃지 않는다면
변함없이 우리 여행은 즐거울 것이며 그 속에서 무언가 배우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거친 바위 능선에서 내려와 계곡 길로 내려섰습니다.
임도의 편안한 길을 걸어 내리며 서북능선과의 재회의 기쁨에 가슴이 뿌듯해 옵니다..
더 뜨거워진 태양 아래 인적없는 포장도로를 걸어내려 신정리의 시원한 개울물에
뛰어들었습니다.
길고 거친 여행 길의 피로가 말끔이 가시고 멋진 하루의 충만함과 속리의 평화가
가슴으로 밀려들었습니다.
가슴까지 차오른 시원한 개울물과 피부를 스치는 물고기의 간지러운 여운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 타는 갈증 끝에 마신 한 잔 맥주의 짜릿함과 격렬한 운동 후의 시장함으로 마주했던
마실표 족발은 올 여름 통산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오래 만나고 싶은 것들
다시 잃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한 욕심이 살아납니다.
산
튼튼한 두 다리
차가운 맥주의 맛
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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