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산의 가을
가대에 부풀었던 가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화려한 설악세상
훌쩍 떠나가기에 더 아름답고 아쉬운 가을이다,
황석산에서는 조금 쓸쓸했다.
가을은 이제 저 만치 앞에서 걸어가고 있다.
우전마을은 고향마을 같다.
가을 빛으로 물든 마을엔 인적이 보이지 않고
들판엔 아직 푸성귀가 푸르다.
감과 사과는 제 색의 아름다움으로 익어 가고 조용히 부는 바람 외엔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우리 말고 산객도 아무도 없다.
떨어진 감을 주으며 혹여 오해라도 살까 두리번 거려도 들판이 우리들에 미동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바라보는 이 없다.
가을은 외로운 것일까? 호젓한 기쁨일까?
텅 빈 마을엔 가을이 제 홀로 흥에겨워 춤을 추고
빈 들판에 감도는 적막은 감미로운 멜로디로 안도감과 역설적인 충만함을 연주한다...
나는 한편으로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또 가쁨에 들뜬다.
“우리 사는 세상은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야”
카메라를 갖다 대면 다 그림이다.
설악 깊은 곳 같이 장엄하고 웅장한 가을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어릴적 향수와 동심을 떠올리는 소박한 풍경들
그래서 더 친근하고 따뜻한 그런 길을 걸었다.
바람이 조금씩 차가워 진다.
산성엔 낙엽이 날린다..
부는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기도 하고 이리저리 흩날리기도 하고.
가을은 사라져 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슬픈 위로
물거품 같은 생멸의 창에 잠시 어리는 진한 아쉬움과 그리움이다.
황량한 쓸쓸한 늦가을의 우수에 젖는다.
아 가을이 간다.
1000고지 능선 위는 억새와 낙엽마저 모두 떨어졌다.
거친 바람은 안개를 몰고 수시로 방향을 바꾸어 휘몰아치고 두터운 장갑을 끼고도
손이 시려웠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황석의 능선에는 벌써 겨울이 왔다.
암릉 위에서 맞는 바람에 몸이 밀린다.
자욱한 안개
바람은 비를 몰고 멀리서 달려 오고 있다.
우리가 먼저 내려 갈 수 있을까?
거망산을 1시간여 남겨둔 거리에서 우린 불당골로 내려가기로 했다.
조금 내려오니 안개가 걷히고 다시 가을이 무심히 드러난다.
고운 산빛이…
산 안개는 해발 1000미터를 기점으로 능선을 감돌고 계곡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내림 길 중간에 비가 내렸다.
카메라를 감추고 배낭 방수포를 씌우고 우비를 입었다.
비를 그으며 천천히 다시 돌아온 가을 속을 걸어 내리다가
맑게 씻기운 고운 계곡의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빗 속에 우산을 꺼내 들고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우산에,스틱에 , 카메라에
비 내리는 가을은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또 바쁘게 한다.
“굳이 아쉬운 가을을 바라보면서 그냥 내려가면 그만이지 웬 카메라…?”
마치 현대기술이 우리에게 여유를 주는 듯 하면서 더 바쁘게 하는 것처럼 …
이제 가을이 가려는 모양이다.
낙차 큰 계곡은 길 위에 촘촘히 변화무쌍한 계절을 들여 놓았다.
가을과 늦가을 초겨울 그리고 다시 늦가을로 바뀌는 오지랍 넓은 길을 걸었다.
가는 길마다 만추의 서정이 길 위에 펄펄 날리고 마음은 그렇게 계절 속으로
침잠해 갔다.
가을
늘 잊지 않고 찾아준 반가운 친구
함께 이곳 저곳에서 가슴 따뜻한 시간을 나누다 비내리는 황석에서 손을 흔들 수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그녀를 보낸다.
우전마을-황적산- 능선- 불당골-청량사- 장자벌마을
2012년 11월 4일 일요일 흐리고 비
귀연 19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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