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휴가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마눌과 중국 구체구를 가려 했는데 일정이 정하는 날에 맞아 떨어지지 않아 다시 강원도로
가기로 했습니다.
지난주에 귀연과 설악에 들었었고 홀로 가지 않았던 길을 걸으며 설악 은밀한 곳의 황홀한 풍경과
단풍에 취했던 감동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매제가 속초에 숙소를 주선해 주었습니다.
다시 불타는 설악의 단풍과 넓은 동해바다와 함께하는 2012년 휴가의 출발입니다.
몸을 다치지 않은 정상적인 상황이면 설악에는 일년에 3번쯤 들었던 것 같습니다.
공룡의 가을을 만나지 않고는 한 해를 보내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지요
은비가 어릴적부터 해마다 동생들과 휴가를 보내다 보니 눈감고도 훤한 산들이고 바다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기쁨과 감동이 샘솟던 여행길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욕심을 내리고 마눌과 보조를 맞추어 느리고 게으른 휴가를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첫째날
선자령의 가을을 만나러 갔습니다.
늦잠을 자고 아침을 챙겨먹고 9시쯤 느긋하게 출발하였습니다.
좋았던 날씨가 강원도에 들어서면서부터 흐려지더니 진고개를 넘자 자욱한 안개에 빗방울 까지
떨어지기 사작합니다.
“아이고 산신령님 오늘 대문 닫아걸구 돌아누우실 모양이네!”
아뿔사! 가다보니 바보처럼 길까지 잘못들었습니다.
선자령 가려면 당연히 횡계IC로 가서 구 대관령휴게소로 가야하는데 구 대관령 휴게소가 잘 검색이
되지 않아 양떼 목장을 목적지로 입력하고 출발했는데 그 양떼목장이 대관령 양떼목장이 아니었습니다.
진고개를 넘어서야 잘못된 것을 깨닫고 확인해보니 진부쪽에도 양떼목장이 있었습니다.
~~헐~~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정신머리를 놓았고 우리는 진고개 넘어 50km를 휘돌아 예정시간보다 1시간
30분늦게 선자령 들머리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2시부터 선자령에 올랐습니다.
시간낭비에 자동차 기름낭비에….
하지만 어짜피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길인데 어떤 길을 간다 한들 잃는 것만 있을까요?
진고개를 넘어가며 우수에 찬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만났습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지요
가끔 인생에서 의외의 삶이 진행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설악 신령님의 복선이었습니다.
안개 은은한 선자령을 걸어 올라가면서 2시간 늦게 선자령으로 이끌었던 이유가 명징해졌습니다.
아니 원래의 나답지 않게 새벽여행을 떠나지 않게 하신 것도 몽환적인 선자령의 가을 풍경을 보여
주시기 위한 신령님의 배려였던 모양입니다.
오락가락하던 안개가 선자령 전망대에서 걷혔습니다.
정상에서 내려오시던 산님이 하루종일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안보였는데 시간 참 잘 맞추어 왔다고
말 했습니다.
역쉬 설악 산신령님 설악산 단골고객 무릉객을 알아주시고 반겨주십니다.
오랜 세월 산을 오가며 깨우친 도가 하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은 다 귀결대로 흐른다는 거지요
우리가 힘겨워하던 즐거워 하던 세월과 인생은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 갑니다.
순간 순간 일어나는 일들에 일희일비 할 것도 없고 마음 상할 것도 없습니다.
매 순간을 즐겁게 살아가고 갑작스런 어려움을 만나 힘에 부치면 잠시 쉬었다가 가면 됩니다.
주저 않지만 않으면 되지요
예상치 못한 당혹스런 일들 … 가슴이 답답해지는 사건.
다 인생을 살아가는 통행세 입니다.
먼 길을 걷다 보면 꽃 길도 만나고 가시밭 길도 만나는 법이지요
그 일은 우리가 애써 바꾸려해도 이미 예정되어 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미 일어난 일일 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받아들이고 잊어버리는 거지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딱 그만큼만 힘들어 하는 겁니다.
그 일로 인해 후회하고 자책하면서 두고두고 괴로움을 곱씹고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거야 말로
유리했던 인생의 국면을 불리하게 몰아가는 악수일 뿐입니다.
세월이 어디 잘못된 한 수를 물러주는 법이 있나요?
인생하수는 작은 한 수에 연연하다 대마를 잃어버리고 공력이 출중한 고수는
실패를 거울삼아 심기일전의 한 수를 다시 두어 갑니다.
세월은 늘 말하지요
“두려워하지 마라 .. 그리고 조급해하지 마라 “
신은 가끔 의외의 반전을 준비해 주시기도 합니다.
액땜이란 말도 있고 전화위복이란 말도 있지요…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면 가슴 깨던 고통의 대부분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어느 폭풍우 거센 밤처럼 잠시 암울하고 두려웠을 뿐
다시 맑고 쾌청한 날이 밝아오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 옵니다.
지나고 나면 우린 장하게 넘긴 그 푹풍우 거센 날을 기억하면서 밝은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됩니다.
선자령의 가을은 아름다웠습니다.
인적없는 봄에 들렸던 그 길 위에 신비로운 산 안개와 가을이 내려왔습니다.
막 잠에서 깨어난 섬처녀의 맨 얼굴 같았던 그 길은 꽃단장하고 단오축제에 가는 춘향 얼굴처럼
아름답고 화사했습니다.
신과 동행하는 장엄한 느낌 이었습니다.
주변을 감싸던 자욱한 안개는 우리가 능선을 올라가면서 거짓말처럼 사라져 갔고 멋진 고원의
이국적인 풍경이 마법처럼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그리고 우리가 탄성을 올리며 사진을 찍고 나면 순식간에 안개가 다시 밀려들어 풍경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우리만을 위한 선자령 풍경은 신비롭고 황홀했습니다.
내림 길은 비밀의 화원 이었습니다.
힘들지 않은 숲 길을 수놓은 형형색색의 단풍은 강원도의 휴가 첫날을 환영해 마지 않았고 2012
가을날을 수 놓을 아름다운 추억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게 했습니다.
무심과 무아의 경게를 오가며 가을이 깊어가는 그 길을 걸었습니다.
선자령의 가을은 어느 인생의 길목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문득 만나던 아름다운 풍경과 감동
처럼 친근했고 가슴 따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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