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8일
고교친구들과 눈 내린 대청호반 길 걷다,
2013년의 겨울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걸까?
목요일엔 천안에 엄청난 눈이 내렸다.
대전에는 오후 늦게 눈이 오기 시작했다.
천둥까지 치면서 눈이 내리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금요일 귀연 송년회를 마지막으로 한 해의 부담을 훨훨 벗어 던졌다.
2차로 자리를 옮기는 산우들과 함께해야 하는데 내일 친구들과 서산모임이 있어서 조용
히 날개를 접어야 했다.
늦게 거북이 전화가 왔다.
모두들 폭설에 서산까지 이동이 부담스런 모양이었다.
대중교통 접속이 원만한 천안,수원을 거론하길래 그냥 대전으로 오라고 했다.
폭설이 부담스럽긴 해도 친구들하고 함께하고 싶은 곳이 있다.
이슬봉
금강 물줄기를 그 장쾌하고 시원한 능선
2년전 처음 그 길을 걸어가며 감탄에 마지 않았던 곳이었고 지난 번 마눌과 함께했던
대청호 둘레길에서 제외되었던 구간이라 너무 서운했던 그 길 이었다.
그 길이 빠져 있다는 것 만으로 후반으로 접어든 대청호둘레길은 내게 폄하의 수모를 겪
어야 했다.
마눌과 둘이 가는 대청호 둘레길이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지만 난 지금도 떠들고 다닌다.
“대청호 둘레 길은 잊어라.! 대세는 대청호 500리 길이다.”
처음 친구들한테 대청호 둘레길 산책을 간다고 했었다.
황친이는 보온용 평상복이냐 등산복이냐를 놓고 갈등하다가 혹시나 해서 등산복을 입고
왔다고 했고 거북이 와이프는 추위에 날라갈세라 움직임이 둔할 정도로 옷을 잔뜩 껴입고 왔다.
친구들은 우리가 서산 아라메길을 걷기로 했으니 당근 평지의 산책 길을 떠 올렸을 법
했다.
대청호를 바라보며 산책한다는 나의 말은 오름길의 낙차와 난폭한 날씨로 결국 친구들에
게는 새빨간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아이젠을 갖고 오라고 전갈을 보낸 건 밤 12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아침에 대전역에서 10시쯤 내려 버스를타고 옥천역 앞 옥천 시내버스 터미날 까지 오라
고 했더니
이넘들 죄 열차에서 좌석을 연장해서 옥천역 까지 논스톱으로 내리쏘는 바람에 아침에
오히려 내가 허둥거려야 했다.
길이 미끄러워 옥천까지 버스로 가려 했다가 도저히 열차 도착시간에 맞출 수 없어서 마
눌의 차로 시내와 고속도로를 누비며 곡예운전을 했다.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하던 머리 좋은 넘들이라 대전 까지 불러 놓고도 내가 허를 찔렸다.
친구들은 버스출발 1분전에 도착했다.
기막히게 교통편을 연결하고 우리는 그 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차창 밖의 멋진 설경
을 구경하며 그렇게 장계교 까지 이동했다.
여름에 덕유산에서 만나고 3달 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버스 운전사는 이전 버스들은 길이 미끄러워 운행되지 못했다고 했다.
이래저래 환상의 궁합과 타이밍의 산행이었다.
어제까지 전국에 눈이 내려 등로는 발목까지 빠지는 멋진 눈밭 이었다.
우리는 종달새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12월 초에 풍성하게 내려 준 눈 길을 걸었다.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는 길
낭만적인 눈 길이지만 길이 다져져 있지 않는 눈 밭을 제일 앞에서 길을 내며 걷는 것은
체력소모가 만만치 않다.
백두대간 3번 종주에 빛나는 봉규를 앞에 세우고 내가 그 뒤를 따라 길을 냈다.
약간 흐린 날씨에 사위가 노출된 능선에서는 바람이 제법 불기도 했지만 자켓을 벗고 움
직여도 그다지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한 번 걸어본 적은 있지만 워낙 인적이 뜸한 곳인데다 길이 온통 눈으로 덮여 우리가 길
을 만둘어 가다 보니 낭만적인 대청호 주변 길 산책한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 나섰을
여자들이 다소 걱정스러웠다.
게다가 장계교에서 능선 정상에 위치한 봉우리 까지 오름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게 솟아
있어서 몸이 채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꽤 힘들게 올라야 했을 게다.
허기까지 겹친 탓인지 거북이 와이프는 유독 힘들어 했다.
식당개 3년에 라면을 끓인다고 그래도 백대명산에 대청호 둘레 길에 바람처럼 쏘다니는
남편을 따라 부창부수하다 보니 마눌은 제일 쌩쌩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야 고등학교 절친들은 이제 바쁜 세상에서 조금씩 놓여나서 이렇게
함께 산 길을 걷는다.
새치도 늘고 머리숱도 줄어든 채로….
친구와 산
결국 우리가 늙어서 돌아가는 고향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꽁시 빠자이”
“이렇게 풍성하고 황홀한 눈 길을 걸으니 올해는 모두 돈 많이 벌고 부자 되어라 …”
눈이 돈을 상징한데서 떠오른 덕담이지만
이제 세상의 모든 욕심 내려 놓은 나이에 아직 돈에 집착하는 것 같아 썩 인상깊은 멘트
는 아니었다.
돈은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많을수록 좋긴 하겠지만 살아보니 돈이 중요하긴 해도 전부는 아니었다.
삶을 좀더 누릴 수 있는 편익이라고나 할까?
아마 내가 필요한 이상 돈이 있었으면 무엇을 했을까?
여전히 산을 탔을 게다.
한국의 산이 아닌 해외의 산을 부지런히 다니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 두루두루 여행
이나 하고 다녔을 게다.
그리고 누가 읽어주던 말던 내 돈을 들여서 여행기나 한 권씩 쓰면서…
세계를 방랑하는 한량 도삿갓
더 넓은 세상으로 무대가 바뀌었을 뿐 여전히 거친 산을 빠대고 다녔겠지…
매이지 않는 자유직업을 가졌을 거란 것과 행동반경의 범위를 빼면 지금과의 삶의 방식
과 큰 차이는 없을 듯 싶다.
아쉬울 것도 없다.
열심히 살았고 내게 정해진 큰 틀은 이만큼이다.
궁색할 정도만 아니라면 부자는 마음이 만드는 거다
늘 마음은 부자였다.
굳이 인간이 만든 등기란 수단으로 내 소유임을 인정받지 않아도 세상의 아름다운 곳은
모두 나의 영지이고 그 곳으로 난 길이 나의 길이었다.
자신의 영지를 돌아보며 자신의 쌓아 올린 부에 흐뭇해하는 지주들이나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찾아가는 세상의 아름다운 곳이 모두 나의 영토라고 우기며 무수
한 아름다움에 감동받는 나나 다를 게 무어냐?
어짜피 다 내려 놓고 훌훌 떠나야 하는 짧은 인생이거늘…
하야 눈밭
산상의 분위기 있는 노천 커피숍
그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커피의 맛은 쥑인다.
눈 밭이라 당근 진행속도가 예상보다 느렸다.
다시 이슬봉에 섰다.
해발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대에 걸출한 산이라 아이젠은 안하고 스패치만 한
터라 눈 내린 오르내림 길이 꽤 미끄러웠다.
2년 전 늦가을에 이어 겨울에 다시 찾은 이슬봉
이슬봉에는 정상의 기쁨과 고원의 평화가 펄펄 날렸다.
대청 호반의 가장 아름다운 길
5월의 봄날 다시 걸어보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다.
이슬봉을 지나서 금강 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능선 구간이 꽤 많아지고 날씨가
점점 좋아졌다.
멋진 조망처에는 해님까지 구름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환상의 타이밍 이었다.
신의 보살핌이 느껴졌던 선자령의 장엄한 감동이 다시 밀려왔다.
참으로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다.
내사는 곳 가까이에서 어디에 내어도 손색이 없을 이렇듯 호젓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대
할 수 있다니….
마음 통하는 사람들만 함께 나눌 수 있는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같이 풍경도 계절이 변화에 따라 이렇게 그 맛이 다르다.
며느리재 까지는 금강줄기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구간이 많았다.
거북이 와이프는 체력적인 힘겨움에다 고소공포증까지 있어서 거의 패닉 상태였다.
금방 나온다던 며느리재가 가도가도 안 나오고 이젠 내림길 만 남았다고 해놓고 계속 오
름길이 나타나니 거북이 와이프는 내가 눈길에 길을 잘 못 잡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까
지 들었는지 길 중간에 “이 길 우리가 가는 길 맞아요?” 한다..
나는 거친 산행 길을 널널 산책길로 호도하고 3시간 걸린다는 부드러운 길을 5시간의
고행의 길로 바꾸었고 모두를 쫄쫄 굶겨가며 모임을 주도한 죄로 친구들 와이프에게는
거짓말 장이로 낙인찍히고 그 간 쌓았던 신뢰를 완죤히 잃었다.
그래도 괜찮다.
아무런 문제 없음을 난 안다.
시간이 지난면 그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은 더 맑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정제되어 더 강하
게 우리의 가슴에 살아 남을 것임을….
그건 우리가 변화 없는 우리의 삶의 길에서 만났던 멋진 변화였고 아름다운 충격이었다.
결과가 좋으면 모든게 다 좋은 거다.
멋진 날이었다.
대전 가까이 돌아보지 못햇던 아름다운 풍경을 확인했고
우리의 우정을 확인했고
신성한 노동이 가져다 주는 환상의 미각을 확인했다.
거북이 녀석 멋진 눈밭 산책길이 너무 좋았는지 지 와이프는 힘들어 죽을 지경이 되어
음식점에서 밥도 못먹고 실신지경으로 누웠는데 혼자 삼겹살과 엄청 먹고 술도 마시고
도착안부전화 할 때는 1월에 다시 한 번 날 잡자고 얘기한다.
음식값도 거북이가 쐈다.
“이넘들아 오늘 멋진 호반 산책길 괜찮지 않았느냐?
형님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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