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일 : 2013년 2월 9(토)
산 행 지 : 덕유산 종주
산행코스 : 삼공리(04:30) → 향적봉(07:20) → 중봉(08:27)→ 백암봉(08:47) →
동엽령(09:33) → 무룡산(11:22) → 삿갓봉(14:03) → 남덕유(15:50)
→ 영각사 지킴터 (17:25)
날 씨 : 맑고 춥다 . 바람불고 가끔 흐림
거 리 : 29.km
소요시간 : 약 13시간 (휴식 약 1시간)
동 행 : 거북이와 두리
교 통 : 삼공리까지 마이카
영각사에서 콜택시 차량회수 (5만원)
시간 |
경유지 |
비 고 |
02:30 |
둔산동 출발 |
금산 인삼랜드에서 가락국수 |
04:30 |
삼공리 매표소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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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
향적봉(1,614m) |
일출감상 및 사진 , 아침식사 |
08:27 |
중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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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 |
향적봉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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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7 |
백암봉 |
향적봉2.1km, 동엽령2.2km,삿갓재8.4km |
09:33 |
동엽령 |
향적봉4.3km,남덕유10.5km,삿갓재6.2km |
10:32 |
무명봉 |
향적봉6.3km, 무룡산2.1km |
11:22 |
무룡산(1,492m) |
향적봉8.4km, 남덕유6.4km, 삿갓재2.1km |
12:40 |
삿갓재 대피소 |
향적봉10.5.km, 남덕유4.3km |
14:03 |
삿갓봉(1,418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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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6 |
월성치 |
삿갓재2.9km, 남덕유2.4km, 황점 3.8km |
15:50 |
남덕유(1,507m) |
향적봉15km, 영각사지킴터 3.4km |
17:25 |
영각사 지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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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잎 클로버가 더 좋다.”
“너는 왜 멀리만 가려느냐?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나니….”
아직도 난 먼 산엘 간다.
돌아보면 나의 젊은 시절의 주제도 온통 산이었다.
더 높은 산 . 더 먼 산 . 세상에 유리된 더 깊숙한 곳
일주일에 하루씩 주어지는 나의 날에는 늘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고
토요일이면 다시 더 멀리 떠나는 꿈에 부풀었다.
백두대간과 정맥길을 안방드나들 듯 오가고
지리산,소백산,덕유산,속리산 한국의 걸출한 4대산의 능선을 종주하고 설악의 깊은 곳을 염탐하지
않고는 한 해를 보내기 못했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사실 그런 갈망이 사그러 진 것도 아니다.
아직 체력도 짱짱하다 (자가당착인지도 모른다)
산악회의 회장을 맡은 기간에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가까운 곳을 오가고
마눌과 대청호반 길을 누비면서 비로소 여백과 여유가 가져다 주는 또 다른 여행의 멋과 기쁨을
만났다.
마눌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면서 먼 산에 대한 집착도 조금씩 누그러 졌다.
우연이었을까?
그 또한 세월이 깨우쳐 준 삶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무지개와 파랑새 그리고 행운의 네잎 클로버
그것들을 찾아 헤메던 젊은 시절의 방황도 아름다웠고
옥천버스 호반길에 빗끼던 석양 빛도 아름다웠다.
지나간 그리운 것들은 내 인생의 책갈피에서 코끝이 싸한 추억의 향기를 날리고
나는 다시 그 향기를 따라 길을 떠난다.
나는 몇 장의 네 잎 클로버를 모았다.
젊은 시절엔 네 잎 클로버를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을 때는 불행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젠 무수한 세 잎 클로버가 눈에 보인다.
내가 그 숲에서도 늘 밟고 지나면서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들
가까운 곳에 그리고 너무 평범하다는 이유만으로 폄하된 것들
흘러만 보낸 세월이 아닌 모양이다.
방랑은 삶의 내공을 키우고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아 낼 수 있는 지혜를 주었다..
젊은 시절 무지개를 찾아 방황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먼 숲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고 파랑새를 쫓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지금도 내 마음 속에서는 그 시절의 무지개가 뜨고 파랑새가 난다.
추억의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젊은 시절의 감동을 다시 만나고 싶은 날이 있지 않은가?
혼곤히 어둠이 길을 걸어 덕유의 장엄한 해돋이와 숨막히는 설경을 만나고 싶었다.
구정 연휴 첫날에 …
혼자 떠나려 했는데 거북이 함께 가자고 했다.
나의 젊은 시절처럼 뒤늦게 산에 대한 강한 집착과 열정에 사로잡힌 친구
우린 새벽에 떠났다.
대전발 새벽 두시 사십분 마이카
그리고 네 시 반
그 옛날 두려움 속에 떨리는 가슴을 안고 홀로 스며 들었던 덕유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칠흑의 산 길
어둠 속에 고립된 혼자 라는 절대 고독
혼자서도 어둠이 두렵지 않고부터 나의 방랑은 더욱 아름답고 황홀했다.
친구와 둘이 어둠을 헤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래도 내게 모든 걸 맡기고 함께 어둠을 동행해 줄 친구가 있으니 그것도 좋다.
2시간 50분 만에 덕유의 정상에 섰고 나는 다시 덕유의 찬란한 일출을 맞았다.
어쩌면 덕유의 일출이 내 무수한 여정의 나침반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덕유의 어둠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쳐 주고
덕유의 일출과 가슴을 흔들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더 멀리 나를 떠나게 했는지도 모른다.
거북이가 없었으면 콧날이 시큰하고 울컥 했을 것이다.
덕유산 일출은 여전히 장엄했고 고원의 푸른 새벽은 신비로웠다.
홀로 다시 어둠의 길을 걸어갈 열정과 체력이 아직 내게 남아 있었다.
"변함없는 능선에서 한결같은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가슴 벅찰 수 있구나! "
마이클 폴리라는 친구가 “행복할 권리”에서 그랬다.
“황홀경은 슬프게도 짧다.
이런 경험은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느닷없이 당도하며 절대적으로 확실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으며 그 즐거움이 강렬한
반면 지속시간은 짧다.
그것은 전적으로 까닭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정도 공감이가긴 하지만
황홀경은 우리의 의지로 찾아갈 수도 있다.
그 황홀경은 그리 짧은 것은 아니다.
신기루처럼 사라지긴 해도 꿈처럼 아련해진 채로 멋진 풍경들의 잔상은 늘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물 때가 맞으면 그것은 우리 가슴을 다시 뜨겁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멋진 풍경을 찾아 떠나는 이유를 만든다.
다시 흔들리는 내 가슴을 위하여…
그리고 그리움과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오랜 습관이 배면 머릿 속에는 한 장의 보물지도가 그려진다.
그 지도는 늘 내게 말을 건다.
“어느 때 어느 곳으로 가면 가슴을 울리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제는 다시 떠나야 할 때다.
네 영혼을 춤추고 노래하게 하는 멋진 풍경을 찾아서 다시 떠나라 ! “
덕유나라에는 예상보다 눈이 적었다.
차가운 날씨에도 화려한 눈 꽃은 한 송이도 피어있지 않았다.
동엽령으로 하산하려 했다.
눈이 적어도 그 동안의 적설이 상당하고 차가운 날씨에 눈이 포슬거려 능선 오름길에서는 아이젠
차고서도 발길이 미끄러져서 평소보다 힘이 훨씬 더 든다.
덕유의 풍경에 감동 먹은 거북이가 종주를 하잖다.
오랜 해외생활에서 돌아와 교수신분의 여유와 특권(?)을 이용해 설악산과 지리산을 빠대고 댕기
더니 이젠 제법 체력에 자신감이 붙었다.
허기사 홀로 겁 없이 한겨울 지리산을 종주까지 한 터이니 눈에 뵈는게 없을터이고 만류하는 내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게다가 지금 까지 걸어 온 덕유의 능선은 부드럽고 후덕하지 않은가?
친구를 보면 더 높고 더 먼 산과 사랑에 빠진 흡사 나의 40대를 보는 것 같다.
한국에 온지가 이제 햇수로 삼 년 째 인가?
늦은 나이 임에도 단기간에 그렇게 빨리 산에 빠지는 모습이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거북아 설산은 위험하단다.
베테랑들도 덕유종주는 삿갓재에서 하루쯤 자면서 하는 거야”
거북이는 막무가내 였다.
꼭 가고 싶다는 거다.
눈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나 역시 조금은 난감했다.
사실 올해부터는 종주산행은 접으려 했다..
산의 욕심도 이젠 조금씩 내려야 할 나이가 되었음이다.
숱하게 했던 덕유종주는 모두 여름이나 가을이었다.
화려한 눈꽃의 기대로 찾아가는 덕유 이다 보니 눈 꽃이 멋드러지게 필 때면 눈이 너무 많아 당일 종주는
꿈꾸기 어려웠다.
그 타협점이 매번 동엽령 하산길이었다.
삼공리를 출발해서 향적봉에서 일출을 만나고 중봉을거쳐 동렵령까지 멋진 설경을 감상하고 안성 계곡으로
내려서는 7시간 30분여 여정
어쩌면 오늘이 덕유산신령님이 겨울 종주에 초대하신 날인지도 모른다.
신령스런 덕유의 해돋이도 만났고 눈도 그다지 많진 않다.
게다가 저렇게 가자고 보채는 ㅍ철 없는 동행이 있다.
우린 결국 애초에 내려가고자 했던 동엽령을 지나쳤다.
하나의 위안은 남덕유 까지 여정이 힘들어 지면 황점으로 내려서는 탈출로는 아직 남아 있다는 거다..
능선의 눈을 헤치고 달려나가는 거북이의 모습은 흡사 한 마리 토끼였다.
“누가 태연이를 거북이라고 했나 ?
덕유의 겨울 능선은 장쾌하고 바람 맛은 강렬했다.
털모자를 내리고 목두건을 올려 귀와 입까지 막지 않고는 칼바람의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
햇빛이 차단 된 봉우리아래에는 눈 꽃과 상고대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고 가끔 눈구름이 몰려와 봉우리를 덮기도
하고 바람의 미세한 눈가루를 허공으로 솟구치게 하기도 했다.
눈은 바람 반대방향으로 누워 때론 그 쌓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곳도 있었다
향적봉에서 눈 꽃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과 삿갓재 대피소에서 숙박을 하고 내려오는 산객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우리처럼 종주의 먼 길을 작정하고 나선 이는 없었다.
"미친 넘들!"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 치는 눈덮힌 능선
외로운 늑대처럼 인적 없는 1000고지 능선을 홀로 걸어가는 친구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고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 였다.
우린 돌탑이 쌓여져 있는 무명봉과 일대에 호탕한 무룡산을 거쳐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했다.
삿갓재 대피소
여기서 황점으로 내려갈 수 있고 좀더 지난 월성치에서 황점으로 내려설 수 있는 마지막 산길이 있다.
“못먹어도 고 ! 여기까지 왔으니 포기할 수 없잖아 !”
우린 삿갓재 대피소 취사장에서 간신히 추위를 피하면서 처음 휴식을 취했고 고산지대의 기압강하로
쪼그라 붙는 가스버너 불에 어렵게 라면을 끓여먹고 다시 남덕유를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월성치를 지나면서 거북이의 발걸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월성치를 지난다는 것은 황점의 탈출로로 내려설 마지막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능선은 남덕유를 향해 기운차게 솟구치고 있었고 긴 여정에 피로가 가중된 거북이는 조급씩 힘든 기색을
보였다.
13시간이 넘는 거친 장도였으니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었는데 짧은 산행 경력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거북이인 셈이다.
우린 결국 남덕유 산에 올랐다.
우린 덕유의 끝 남덕유 산에서 우리가 걸어 왔던 길을 바라 보았다.
얼룩 갈기를 휘날리며 파도처럼 진군하는 유장한 능선
그 꿈틀거리며 기운차게 흘러가는 능선의 잔등을 타고 넘었다.
어리석은 시도였을지언정 생애 처음으로 겨울 덕유산을 종주한 날이었다.
두 친구와 함께한 멋진 고공 비행이었다.
지나간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세월이란 친구와 거북이와 …
장하다 거북아...!
여전히 짱짱한 체력과 아직까지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사그러지지 열정이 남아 있음을 다시 확인한 날이었다.
망설임 없이 어둠속으로 떠났고 새벽의 빗장을 열었다.
손으 흔드는 그 날의 추억을 다시 만났고 1000고지에서 내 삶의 구성진 노래를 다시 불렀다.
삶의 작은 변화였고 살아가는 날의 흔쾌한 기쁨과 감동이었다..
세월이란 친구에게 한마디 해 주었다.
“여보게 친구 난 아직 늙어갈 생각이 없다네…”
우린 무수한 철계단 봉우리와 능선을 지나 영각사로 내려왔다.
13시간 30분의 장도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5만원 짜라 콜택시를 불러 구천동으로 회귀했다. 집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