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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사자산 -일림산

 

 

 

 

 

산 행 일 : 2013 4

산 행 지 : 사자산 일림산

산행코스 : 제암산 주차장 -곰재-사자산-삼비산-일림산- 회령리 삼거리 회령리

    : 맑고 화창하다.

    : 귀연 24

소요시간 :  6시간 20

 

 

아직 살아 있네…!”

지난번 도망치던 겨울이란 녀석이 뒤돌아 올려 붙이던 한 방을 맞고 들것에 실려나가던

봄은 이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허기사 어제 까지도 혼수상태로 입원가료중이던  봄 아줌씨는 사월의 마지막 주말에야 겨우

원기를 회복했다.

세상에 무신 망신이여?”

지난주 4월 황금의 봄날을 노래해야 마땅한 날에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도록 흠씬 두드려 맞았다.

철썩 같이 믿고 찾아온 진달래와 개나리 처녀 머리 위에 허연 눈발을 뒤집어 쓰게하고 푸른 빛으로

 깨어나던 4월의 연두 빛 산릉을 무자비한 눈으로 덮히게 했다

머여? 남쪽나라에서 뭐 먹고 살았길래 그리 힘이 없어?”

 

아자씨들은 워쩌?”

아줌씨는 간지러운 교태와 유혹으로 가슴만 설레게 만들어 놓고 약속장소에도 나오지 않았다.

리서방은 진눈깨비 날리던 능선에서 홧김에 애꿎은 깡소주만 두병 까고 돌아 왔다.

 

 

호남정맥을 따라가던  내 발자국은 방장산과 존재산을 너머 주릿재에서 끊어졌다.

정맥길은 제암산과 사자산 그리고  일림산을 너머 한치로 이어진다.

그 길은 환상의 꽃 길이고 가지 못한 길의 진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곳이다.

오늘 다시 먼 남도의 땅을 간다.

 

산에 관한 무신 소리를 들으면 가보지 않고는 못배기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귀연도 없었던 아주 오랫 옛날

언젠가 제암산 철쭉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차로에 제암산으로 떠나는 산악회 차가 떴다.

대국 산악회

홍명상가에서 탔는데 아침부터 흘러 나오던 뽕짝의 포스가 예사롭지 않았지만 제암산의 철쭉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기꺼이 버스에 올랐던 그 날.

영취산 진달래 밭보다 더 붉고 화려한 원색의 물결을 만났다.

처음 마주한 제암산과 사자산의 드넓은 붉은 철쭉의 능선은 장관이었다.

바래봉, 황매산,소백산 등 훗날 더 아름다운 철쭉의 화원도 많이 돌아 보았지만 제암산은  상상

너머에 있던 당시 내가 만난 가장 광활하고 화려한 봄의 정원이었다.

사자산을 댕겨오는데 나중엔 꽃이 징그러워 졌다.

꽃에 물리고 사람에 지치고

 

철쭉 밭을 찾는 인파는 해마다 늘어났다.

다른 나무들은 다 도륙내고  철쭉나라를 만들어 무수한 상춘인파를 이끌어 모은 보성군의 관광

마인드는 보성녹차와 함께 강력한 브랜드와 성공스토리로 각인되었다.

 

어쨌든 난 그날 내 인생 최초로 곰재의 철쭉 밭을  만나기 위해  수 많은 인내의 고통의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가는 길은 그래도 양반 이었다.

얼마간 조용히 가는가 했더니 한 아줌씨가 앞으로 나와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게 했다

시끄러워 잠을 청하긴 어려워도 그런대로 참을 만 했다.

순번을 돌다 나한테 노래를 시키길래 몇 번을 못 한다고 빼다가 할 수 없어서 노고지리의 찻잔

불러주었다.

뽕짝으로 한참을 분위기 띄우는데 달아 오르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진 꼴이었다..

 쟤 누구야?”

 

멋진 철쭉밭을 구경하고  돌아 가는 길에는 그런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조용히 노래를 부르던 아줌씨,아줌마들은 산은 오르지 않고 꽃 밭에서 술만 마셨는지 불콰하게 오르고

기분이 업되어서  버스가 출발하자 마자 시종일관  통로를 메우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귀에 거슬리는 엿장수 뽕짝은 가는 길 내내 내 귀를 어지럽혔다.

당시 유명했던 일출산악회나 에델바이스 산악회는 늘 조용히 산을 다녔던 터라 그런 분위기가 너무

생소하고 당혹스러웠다.

도저히 그 먼 길을 참으며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중에는 아줌씨들이 마구 통로로 끌어 댕기는 통에 엄청 곤욕을 치루다가 급기야 휴게

소에서 다른 버스로 옮겨타고 대전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제암산이 그렇게 먼 길인 줄 그 때서야  처음 알았다.

 

그 다음부터는 낯선 산악회차를 타려면 꼭 물었다.

음주 가무 있어유? “ (귀연은 술은 쬐끔하고 가무는 없다)

 

지나고 나니 그런 날도 잊혀지지 않는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일요일에는 집나간 아줌씨가 다시 돌아 왔다.

멋진 날이었다.

봄비도 내리지 않고 그 흔한 황사도 없다.

봄빛은 눈부시고 바람은 부드럽다..

 

집행부에서 짤리고 나니 법석거리는 만석버스보다 호젓하고 조용한 여행길이 좋다.

작은 버스인 줄 알았는데 45인승 버스에 24명이 가니 널널하고 편하기 그지 없다.

나 한테 먼 길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차가 밀치는 창 밖의 눈부신 봄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즐겁고 편하게 잠을 청하는 것도 좋다.

이것저것 무료하면 읽을 요량으로 책도 한 권 챙겨왔다.

이런 장거리 이동 기회에 책이라도 한 권 읽어 보자고 욕심을 내 보지만 바램일 뿐이다.

봄과 책과 술은 모두 잠을 부르는 주문일 뿐이다.

난 등면적 1/2이 무언가에 닿으면 잠이 든다.

버스가 일정하게 흔들어 주면  머리만 의자에 닿아도 잠이 든다.

근데 이번 기사님이 아주 떠프하고 박력이 있어서 몇 번 깨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잠들었다.

잠을 잘 자면 순간이동의 초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버스는 잠깐 만에 제암산에 도착했다.

 

인간의 유한한 기억은 얼마나 다행인가?

걸었던 길의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오래전 왔던 제암산에서 난 새로운 길을 걷는 호기심을 느끼며 다시 그 길을 걸었다.

 

철쭉은 아직 필 생각이 없다.

허기사 먼저 핀다고 껍적대다가 찬 바람과 눈에 얼어서 한방에 가는 친구를 보았지

이넘들 모두 눈치 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아이스께기 장사 아저씨가 10일은 더 있어야 핀다고 했다.

속담은 하나 더  추가되어야 한다.

아이스께끼 장사 3년이면 철쭉꽃몽오리 보고 개화 시길 안다 ?.”

 

그래도 인간이나 꽃이나 승질 급한 넘은 있게 마련이다.

엄동설한에 반팔 입고 설치던 큰놈처럼…”

승질 죽여야지 먼저 핀다고 더 오래 피는 것도 아니고

반팔입고 설친다고 설사 안 하는 거 아니다.

 

사자산 가는 평원 가는 철쭉 군락지는 더 넓어 진 것 같다.

철쭉 꽃은 안 피어도 괜찮다.

세월을 보낼수록 세상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눈이 밝아지는 법이다..

사소한 들꽃에도 애착이 가고 절정을 준비하는 꽃밭도 아름답다.

몽오리 아래 맺힌 기다림과 꿈꾸던 갈망을 안다.

한처럼 피어날 그 꽃들이 시새울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그 길을 걸었다.

 

둥근 곡선미가 살아 있는 후덕한 길이다.

육산이라 걷는 발은 편하고 햇빛은 따사롭다.

둏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

걷고 싶은 길을 걷고 보고 싶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음이

 

아직 철쭉은 피지 않았지만 그 길에 많은 이름 모를 꽃들이 손을 흔들었다.

눈부신 봄에 흠뻑 취했다.

봄과 부드러운 햇빛 그리고 푸른 하늘과 맑은 바람 

무언가에 취한다는 것 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무릇 도인이 아닌 범인에게

더 완전한 세상이나 더 완벽한 세상으로 가는 길은 없다.

내가 살아 가는 세상이 스스로 진화하고 조화를 찾아가는 완전한 세상이다.

그 곳에서 삼라만상이 구름처럼 생성하고 바람처럼 소멸하는 가운데 이별과 만남, 미움과 사랑, 슬픔과

기쁨이 뒤엉켜 도도한 삶을 역사를 이루어 간다.

 

친구여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 말라.

더 나은 세상의 기대보다 인생은 훨씬 짧다.

그냥 취하라 .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과 가치 있는 것들에

별과 시, 꿈과 낭만 , 자연과 사람 , 그 어느 것에게라도 취하라

시원한 바람과  멋진 풍경 아니 한 잔의 술이라도 또 어떠랴 ?

 

그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가는 자신의 선택일 뿐이다.

하지만 만물이 순환하는 생로병사의 과정 속에 머지 않아 우리가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만큼이나

명확한 사실은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릴수록 인간은 더 건강해지고  영혼은 더 맑아 진다는 거다.

오늘 나는 사자산 능선을 종횡하고 일림산 정상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다.

 

후미에서 느릿느릿 걸었다.

만나는 꽃은 죄 찍어 보고

먼 훗날 내 기억의 실마리를 들추어낼 멋진 풍경들은 카메라의 기억으로 표구했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 놓고 속도를 내려 놓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대한 다원 삼나무 숲길

또 다른 세상을 만나실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한석규가 스님과 함께  011 광고를 촬영한 대나무 숲이 거기 있다.

예전에 마눌과 심야 영화를 보고 즉흥적으로 보성으로 출발해서 대한다원에 들렸다.

어슴푸레한 새벽에 도착해서 너무 일찍 왔다 했는데 웬걸 어둠 속에 무막지하게 큰 카메라를 들과 기다리던

사람들이 왜 그리 많던지….

차 밭은  은은한  산 안개가 깔리는 해뜨는 아침이 가장 아름답다는 그 때 처음 알았다.

그 때가 오월이었고 차밭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그 곳에는 아련히 손을 흔드는 옛 추억이 있었다..

 

대한 다원의 새 잎이 돋아 나는 녹차밭을 둘러보고 또 입구의 삼나무 숲 길을 걸어 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회령리 쪽 계곡 길로 선두팀의 표지기가 놓여 있어 모두들 그 쪽으로 내려 갔다.

 

조용한 삼나무 숲 길 대신 아름다운 득량만의 모습을 바라보이는 임도를 걸어 내렸다.

 

일림사 까지 내려와서 도로를 따라 걷다가 다시 제2 대한 다원 차 밭에 들렸다.

덕분에 꼴찌로 일행과 합류했다.

느림의 미학이 살아 있는 한가로운 사월의 남도 여행길이었다.

해사한 봄 빛에 쌓인 오늘 같은 날이면 어느 길을 걸어도 좋을 것 같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10일쯤 뒤에 다시 와서 만개한 철쭉의 화원을 다시 보고 싶은데 봄엔 몸도 마음도 늘

바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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