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엔 큰 산에 가야지
생명으로 충만한 대지의 기운이 내 몸으로 들어와 겨우내 막힌 혈을 뚫어야지 .
그래야 또 한여름을 건강하고 무탈하게 보내지
덕유에 철쭉 꽃 필 무렵
망망한 수림의 바다에 초록의 파도가 넘실대는 곳
그 강인하게 구비치는 국토의 대 혈맥을 따라가는 멋진 5월의 여행 길
워낙 출중한 루트라 차 한 대는 너끈하다고 생각했는데
“일헐수가 !”
비박 산우들까지 포함해서 꼴랑 19명
귀연 늙었어
귀연 정말 많이 약해졌어…
지리산 둘레길은 짐밥 옆구리 터지듯 버스가 터져 나가더니….
6시간 30분 써 넣고 초보자 오지 말랬다고 정말 다 안 와 버리네
사람들 알랑가 몰라
여름 같은 봄에는 깊은 산이 둘레길 보다 훨 시원하다는 걸
시골 마을 길 죄 포장되어 있고
그늘 없는 그 길을 걸으면 콘크리트 지열이 팍팍 올라오고
매연으로 가려지지 않는 직사광선에 온몸이 용광로처럼 벌겋게 달아 오르는 걸
더워서 집 나간 바람은 모두 산속으로 숨어 든다는 걸
부재중 회장이야 흥행 실패에 콧김 팍팍 나올지 몰라도
단촐하게 엄선된 올드멤버들과 함께 가는 길이 이렇게 널널하고 여유롭네
35인승 뽀스 좌석 두 석씩 의무 할당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편안 자세로 산행지 이동하다.
(남덕유를 향하여 )
처음 준비안 된 몸이 화들짝 놀랐지
수직으로 곤두서 있는 절개지를 치고 올라갈 때엔…
덕유가 아름답지 않은 날이 있겠냐 만은
초목이 춤추는 오월의 싱그러운 봄날의 덕유나라에는 피어오르는 대지의 축복과 생명의
환희가 넘쳐났어
8년이 넘은 남령을 치고 오르니 감개가 무량하기도 하고
“아 ! 무상한 세월과 인간 기억의 유한함이여 ..!”
하봉 까지는 마치 새로운 길을 가는 듯 그 길의 기억이 전혀 나질 않았어
그것도 좋은 거지
휘발성 강한 기억에 계절과 바람의 변화무쌍한 변수까지 개입되면
길 위에는 늘 새로운 세상의 호기심이 펄펄 날린다네..
그래서 마음속에서 복잡한 세상사 다 비우고 호기심 많은 아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우리가 가는 길은 워낙 거칠고 사람의 출입이 제한된 곳이라 무수한 산야초와 야생화가
자연 그대로 보존되고 식용 가능한 산나물이 지천이었어
식물자원의 보고인 덕유의 숲
역시 오늘 온 사람들의 공력은 출중했지…
이제 봄이 막 피어 오르는 천고지 가파른 오름 길
그냥 올라가는 것도 힘든데 사람들은 올라가는 내내 무언 가를 계속 뜯더군
취나물,달 다래,고사리 …
어제 대작의 후유증인지 난 사진도 그리 많이 찍지 않고 나물도 뜯지 않고 열씸히 따라 갔는데
하루종일 계속 꼴지였지…
그렇다고 그리 힘들지도 않았어
자연과 깊이 교감한다고나 할까?
풍경이 좋아서 바람이 좋아서 명상과 사유의 숲의 거니는 내 걸음은 점점 더 느려졌지
내가 오늘 산행대장이란 것도 잊은 채 ….
지난 겨울 눈덮힌 암릉의 철계단 위로 불어가는 칼바람을 맞으며 영각사로 흘러 내렸어.
거센 바람이 쌓인 눈을 솟구치게 하여 반짝이는 눈보라를 흩날리게 하던 그 길
철계단으로 휘감긴 회색의 암릉 위에는 그날의 가득한 눈 대신에 초록의 생명이 무성했지
고도를 높일수록 초록의 바다에 둥둥 떠오르는 덕유의 영봉들, 말없이 흘러가는 능선들은
덕유의 겨울풍경 만큼 감동적이었어
초록 바다를 유영하는 한 마리 갈매기처럼 넘실 대는 푸른 파도를 너머 멀리까지 날아 갔어
가끔 외로운 섬에서 잠시 쉬기도 하면서…
남덕유는 너무 자주 올랐지..
근데 단 한 번의 일출과 일몰도 만나지 못한 곳이야
영각사 처마에서 하룻밤을 유하고 작심하고 오른 그 날에도 자욱한 비안개와 무심한 바람만
가득했던 곳
전체 꼴찌로 남덕유에 도착했어
남령을 오른지 3시간 만에…
산행력이 많이 떨어져도 괜찮아
난 여전히 남덕유에 올라 큰 산의 기를 가슴 가득 받을 수 있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가고 싶은 산 어디라도 오를 수 있잖아..
꼴찌들만 모여서 마주한 산상만찬은 최고의 성찬 이었어
상추와 김치의 소박한 식단이 만들어 내는 미각의 마술
내가 늘 욕심이 너무 과한 거야?
아름다운 자연을 향한 사그러 지지 않는 갈망과 결코 사라지지 않는 미각의 즐거움
서봉
정말 오랜만에 서봉에 올랐어
난 알지
더 큰 감동은 더 높은 봉우리에 머문다는 것을
태양은 여전히 눈이 부시고 바람은 너무 시원했지
유장한 능선들은 어디론가 말없이 흘러가고
1500고지 고원에서 나뭇잎과 철쭉 꽃은 이제 막 피어나고 있었어
오래 바위 위에 앉아 있었지
마치 깨달음의 궁극에 다다른 도인처럼
마음이 편안 해졌어
난 살아 있네
내 눈이 바라보는 만큼 내 마음은 넓어지고
내가 느끼는 이 흔들리는 가슴이 큰 산의 감동이라면…
혼돈의 세상에서 내 가슴은 아직 딱딱해 지지 않았고
내 피는 아직 차가워 지지 않았네
기꺼이 순례의 먼 길을 돌아 고원 망루에 서서 살아가는 날의 감동을 노래할 수 있으니…
난 여전히 싱싱하게 살아 있네
할미봉 능선 길
화창한 날씨에 고원을 흐르는 바람이 감미로웠지
이런 날을 자주 만날 수 있을까?
여름 같은 오월의 무더운 날
신록이 달려가는 눈부신 오월의 능선을 실바람을 목에 걸고 주유할 수 있는 오늘 같은 날을 ?
정말 중요한 것은 벼름박에 덩칠할 때 까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날 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
열심히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즐겁게 잘 노는 것
자연은 욕심이 없어
아낌없이 다 비우고 필요한 것만 채우며 가볍게 살아 가지.
산에 자주 오를 일이야
높은 산 위에 서면 세상의 욕심과 미망이 한갓 뜬구름이고
살아감이 이렇게 가벼워 지는 걸
쓸데 없는 욕심과 집착을 버리기 좋은 곳을 알지
햇빛 눈부시고 바람 좋은 날의 높은 산
할미봉 가는 길은 가장 편안한 능선 길이야
능선을 따라 내릴 때 태양은 구름 속에 숨었고 시원한 바람은 나무 숲 능선 길 아래
이리 저리 불어 지나 갔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지
좀 아쉬웠어
추억의 할미를 보고 싶었는데….
할미봉
서봉에서 저만큼 아래 힘없이 앉아 있는 풀 죽은 봉우리
할미라고 우습게 봤다간 큰 코 다치지
죽은 듯 잠을 자던 할망이 무언가에 놀라 벌떡 일어난 거야
백두대간의 먼 길을 걸어 솜처럼 지친 몸으로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다 짜내야 간신히
넘을 수 있었던 그리운 그 할미봉 말이야
왜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거야?
꼴등 가는 산행대장이 할미봉 너머 내려 갔다간 경을 치겠지...
부드러운 자연학습원 내림길을 따라 내려갔어…
귀연 표지기가 가르키는 대로 …
그 길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지...
능선의 바람과 계곡의 물처럼 여유롭게 흘러 갔어
그리고 계곡 아래서 탕탕한 물속에 뛰어들어 마지막 자연과의 합일하는 성스런 마무리
의식 까지 모두 마치고 콧노래를 부르며 이동 베이스 캠프로 무사히 내려왔어...
시원한 바람 길에서 먼저 내려온 동료들이 반겨주고
차가운 한 잔의 맥주가 낭만적인 여행과 행복한 하루를 완성해 주었지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멋진 봄날의 즐거운 여행길 이었어
할미봉 근처에도 못가고 자연 학습원 길을 다 내려와 이름없는 묘지 옆에서 아직 싱싱한
할미 꽃을 보았어
벌써 오래 전 모두들 머리를 풀고 하늘로 올라 갔는데
혼자 꽃을 피우고 있는 할미봉 같은 할미꽃 한 송이
귀연은 정말 골때리는 산악회야
회장과 총무 집행부가 다 빠져버리고
산행대장이 건들건들 제일 꼴찌로 내려와도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 가는 산악회
선두가 가다가 표지기 방향만 바꿔 놓으면 간단히 산행루트가 변경되고 왜 바꿨냐고 시비
거는 사람 하나 없이 다 좋아라 그 길 따라 내려오는 산악회
“세월이 좀 먹어유 낭중에 또 가면 되지유”
그리고 진짜 잘 먹는 산악회
버스 기사님 포함 요리의 달인들이 너무 많은 산악회…
몸보신 제대로 했어
생명력 가장 왕성한 오월 대지의 기운을 쭉쭉 빨아 들였고
무공해 바람과 푸른 하늘을 가슴 가득 호흡했고
흐르는 물에 세상의 진폐를 모두 씻어 내었어
그리고 갖은 재료가 다 들어간 백숙에다 홍삼 액기스 풀어낸 닭죽과 맥주 까지
맞는 말이야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고, 손님 없는 날 식당에 가면 더 융숭한 대접을 받는 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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