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찬이 다리를 다쳐서 단양 제비봉 산행은 내년 봄으로 연기했다.
함께 저녁식사를 같이 하려면 수원에서 가까운 곳을 모임장소로 잡아야 해서 군포 수릿길
트레킹하기로 했다.
카톡에서 모임을 설왕설래하다 보니 정작 모임 날에는 봉규마저 싱글로 나타났다.
쯧쯧 녀석 평소에 어떻게 처신했길래 불쌍하게 마눌한테 팽당하누…
수도권에서 움직이려면 전철을 이용해야 하는데 차 한데 없이는 불편할 까봐 거북이한테
차를 가지고 천안역에서 나를 픽업하라고 했다.
거북이는 유사시에 에어백이 4개나 터진다는 미국에서 산 3800 cc 차를 끌고 왔다.
나는 마눌의 마티즈 몰고 조선팔도를 누비는데
거북이는 길에다 기름을 들이붓는 무스탕 전투기를 몰고 다닌다.
“이걸 생활수준의 차이라고 하겠지?” 교수와 회사원의 차이
대야미 역에서 만나서 기념촬영을 하고 출발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가 겁나게 더운 날
.
당초 수릿길 트레킹 루트를 잘못 찾아서 갈치호수를 거쳐 덕고개 까지는 도로를 걸었다.
여름 같은 땡빛에 지열이 팍팍 올라오는 포장도로를 ..
덕고개에서 부터는 산허리를 따라가는 임도길로 원래의 산책길의 모습을 되찾았다.
급할 것 없이 여유롭게 느릿느릿 걷는 길이다.
거부기 와이프가 준비해 온 체리도 먹고 임도오거리 근처 에서는 한적한 숲에 아얘 자리를
잡고 퍼질러 앉았다.
마눌이 준비한 편육과 돼지족발을 안주삼아 막걸리 세통을 비웠다.
기부기 와이프가 점심과 전라도에서 공수한 김치 까지 모조리 다 먹어 버렸다.
“불가사리 같은 넘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좋고
급할 것 없이 하루를 느리게 보내는 이런 날도 좋다.
수리사를 거쳐 대야미 역으로 휘돌아 가는 길이 대부분 산길이기는 한데 산을 못타서 안달
이난 거부기 땜시 우리는 할 수 없이 다시 산 길로 올라 갔다.
신이내린게 아니라 산이내린 거부기 녀석 …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도 산 욕심이 점점 사나워 가는 걸 보니 보이는 산이란 산은 다 가고
싶어했던 30대 후반의 나를 보는 듯하다.
“못 말리는 거부기 쉐이키…”
가파르게 올라 친 슬기봉에서 태을봉이 건너다 보인다.
한남 정맥 길에 슬기봉과 수암봉에서 바라보던 걸출한 그 산이다.
벌떡 일어나 있는 슬기봉과 태을봉
평상시 운동량이 적었던 거부기 와이프가 가장 힘들었을 테지만 제수씨의 고생은 순전히
거부기 때문이다.
개 풀 뜯는 소리나 하면서 힘들어 하는 사람 약올리는 거부기
“후랑당 말코 같은 거부기 쉐이키”
“지 마눌 생각은 조금도 안 하는 이기적인 넘 “
슬기봉에서 태을봉을 오르려면 다시 한 번 바닥 까지 하강 했다가 솟구쳐야하는 암릉길이다.
열심히 올랐던 오름길을 다시 반납해야 하니 평소 산행을 안 해본 사람에게는 힘들 수 밖에
없는 산세 이지만 만일 둘레길이 포장도로를 따라 가는 길이라면 그래도 풍경과 그늘이 있는
이 능선 길이 더 나을 게다.
막걸리의 취기가 오르고
트림과 똥트림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태을봉에 올랐다.
거부기 똥고집 때문에 오긴 왔지만 그래도 높은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고행의
시간과 세상의 시름이 바람에 훨훨 날아간다.
오늘도 내 인생 길에서 가보지 않은 산을 하나 더 오른 날로 기억될 것이다.
우린 태을봉에서 문화예술회관 쪽으로 하산하여 황찬 부부와 합류했다.
당초 둘레길 트레킹을 하려된 계획이 변경되는 바람에 우리의 산행은 6시간 40분이나 걸렸다.
산본역 근처 아구찜 식당에서 시아시된 소맥과 아구찜요리로 우리는 오늘의 뜻 깊은 회동의
자리를 자축했다.
함께 갔던 거부기는 팽개치고 수원역 발 8시 15분 열차를 타려고 똥줄타게 서둘러 대전으로
돌아 오다 ( 거부기는 주말 귀성에 고생좀 혔것다)
거부기 녀석 나 때문에 고생허긴 했는데 아우란 원래 성님 때문에 손해보기도 하는거다.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하는 7월의 대전모임을 다시 기대해 본다.
“이넘들아 .. 다음 번 모임에 한 명이라도 낙오자가 있으면 느그들 그 때는 각오혀라”
2013년 5월 25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