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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휴가셋째날 (담양 죽녹원-관방제림-메타세쾨이어길-면앙정-소쇄원)

 

 

 

 

 

 

 

 

 

 

셋째 날  (2013.11.25)

 

호텔조식 부페

죽녹원 산책

국수거리 진우네 식사 : 국수와 계란

관방제림 산책

메타세쾨이어 길 산책

면앙정 답사

소쇄원 산책

 

 

늦잠을 자고 느즈막히 일어났다.

호텔에서 여유롭게 조찬을 즐기고 담양으로 이동했다.

원래 생각은 승주 선암사를 돌아보고 가려 했는데 담양 길이 늦어지면 담양의  많은 볼거리를 제대로

보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 담양으로 갔다.

 

 

 

 

 

 

 

 

 

 

 

 

 

 

 

 

 

담양에서는 죽녹원을 돌아 보고 국수거리 진우네집에서 국수로 점심식사를 했다.

국수거리는 관방제림의 시작점에 있다..

차는 애초 죽녹원 앞에다 파킹한 채  맞은편에 있는 국수거리에서 식사를 마치고 관방제림을 걸어

메타세콰이어 길까지 연결했다.

담양의 유명관광지가 죽녹원 부근에 몰려 있기에 죽녹원을 관광 기점으로 삼으면 차 없이도 여유

로운 산책길이 될 수 있다.

우린 메타세콰이어 길을 산책하고 택시로 돌아 왔지만 자전거를 빌려타고 돌아와 죽녹원에서 반납

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어쨌든 관방제림과 메타쉐콰이어 길을 연결하는 길은 지금 까지 내가 걸어온 수 많은 인상적인 어느

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멋진 길이었다.

 

 

 

 

 

 

 

 

 

 

 

 

 

 

 

 

 

 

 

 

 

 

 

 

 

 

 

 

 

 

 

 

 

 

 

 

 

 

 

 

 

 

 

관방제림은 옛날  홍수를 막기 위해 쌓은 제방 위에 심은 나무들로 200년 넘은 나무들이 350수 가량 줄지어

있는데 그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개인적으로는 담양에서 가장 감동적인 볼거리는 단연 이 관방제림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세월의 풍상을 견디며 꿋꿋이 살아 온 아름드리 나무들이 조금씩 물들어 가는 모습은 장관 이었다.

그 길을 걸었던 무수한 사람들이 떠났는데 수 많은 나무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서 있는 그 모습만으로도 백전노장의 당당한 위엄과 담대한 기가 전해왔다..

그 길을 걸으며 오랜 세월의 향기와 느껴 보고 새삼 짧은 삶과 지금의 소중함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메타세쾨이어 길 까지 돌아보고 죽녹원으로 돌아와서 차를 회수하여 면앙정으로 갔다.

고등학교 때 면앙정가를 읽고 어떤 느낌이 가슴에 와 닿았던 기억이 있어서 송순이라는 이름을 잊지

않고 있었다.

담양 관광안내지도에 그 면앙정이 나와 있길래 갑자기 둘러보고 싶어졌다.

조금 가파른 언덕을 올라 가서 면앙정 앞마당을 둘러보고 정자 뒤쪽을 내려다 보았는데 예사롭지 않은

지기가 느껴진다.

면앙정은 일곱 구비로 이루어진 제월봉의 머리에 해당되는 부분에 지어져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라고 면앙정가에 묘사되어 있는데 면앙정 앞을 흐르는 영산강 쪽에서 바라보면 큰 학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는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모든 명당은 본산에서 흘러내려 평야지대로 부드럽게 낮아지는 야산에 있다고 했다.

솔바람 감도는 그 정자에서 송순의 시심과 감회가 느껴지는 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몸과 마음이 먼저 느끼는 이곳은 정말 명당인 모양이다.

 

 

 

 

 

 

 

 

 

 

 

                                                                                                                 면앙정의 겨울

 

 

 

 

송순(宋純, 1493~1583) "본관 신평. 자 수초(遂初). 호 면앙정(俛仰亭) ·기촌(企村). 시호 숙정(肅定).

1519(중종 14) 별시문과에 급제, 1547(명종 2) 주문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개성부유수를 지냈다.

 1550년 이조참판 때 죄인의 자제를 기용했다는 이기 일파의 탄핵으로 유배되었다. 구파의 사림으로

 이황 등 신진사류와 대립하였다. 1569(선조 2) 대사헌 등을 거쳐 우참찬에 이르러 기로소(耆老所)

들어갔다가 치사했다.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로 시조에 뛰어났다. 담양 구산서원(龜山書院)*

제향(祭享)되었다. 문집에 《기촌집》 《면앙집》이 있고 작품에 《면앙정가(俛仰亭歌)》가 있다."

                                                                                                                         <출처; 두산백과>

 

 

 

 

 

                                                        한국가사문학관 1 로비에 걸려 있는 "俛仰亭歌(면앙정가)"

 

 

 

 

                                                                     俛仰亭歌   송순 

 

                           무등산 한 줄기 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멀리 떨쳐 와서 제월봉이 되었거늘

                    무변대야(無邊大野)에 무슨 생각하느라고 일곱 구비가 함께 옴쳐 문득문득 벌렸는 듯’

                     가운데 구비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잠을 갓 깨여 머리를 얹었는 듯

                     너래 바위 위에 송죽을 헤치고 정자를 앉혔으니

                     구름 탄 청학이 천리를 가려고 두 날개 벌였는 듯 ‘

                     옥천산 용천산 내린 물이 정자 앞 넓은 들에 올올이 펼친 듯이

                     넓거든 길지나말지 푸르거든 희지나말지 쌍룡이 뒤치는 듯 긴 깁을 펼쳤는 듯

                     어디로 가느라 무슨 일이 바빠서 가는 듯 따르는 듯 밤낮으로 흐르는 듯

                     물을 따르는 모래벌은 눈처럼 펼쳐졌거든 어지러운 기러기는 무엇을 어르느라고

                     앉으락 내리락 모두락 흩어지락 갈대꽃을 사이 두고 울면서 좇아가는가’

                     넓은 길 밖이요 긴 하늘 아래에 두르고 꽂은 것은 산인가 병풍인가 그림인가 아닌가

                     높은 듯 낮은 듯 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듯 숨기도 하고 뵈기도 하니 가는 듯 머무르니

                     어지러운 가운데 이름난 것처럼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 우뚝하게 서 있는 것이

                     추월산으로 머리를 하고 용귀산, 몽선산, 불대산 어등산 용진산 금성산이 허공에 벌였거든

                     멀고 가까운 푸른 절벽에 머물기도 머무는구나

                     흰구름 뿌연 노을에다가 푸른 것은 아지랑이로구나

                     천암만학(千巖萬壑)을 제 집을 삼아 두고 나면서 들면서 이렇게도 구는구나

                     오르거니 내리거니 장공에 떠나거니 광야로 건너거니

                     푸르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엷어지기도 하고 짙어지기도 하면서

                     비끼는 저녁 해와 섞어져서 가는 비조차 뿌리는구나’

                     가마를 서둘러 타고 솔 아래 굽은 길로 오며 가며 노닐 적에

                     숲 속에 우는 꾀꼬리는 교태를 이기지 못하는구나

                     나무와 억새가 어울려서 녹음이 엉킨 때에

                     높은 난간에 긴 졸음을 내어 펴니 물위에 바람이야 그칠 줄 모르는구나

                     된서리 빠진 후에 산 빛이 비단 같구나 누른 구름은 또 어찌 만경(萬頃)에 펴져 있는가

                     어적(漁笛)도 흥에 겨워 달을 따라 부는구나

                     초목이 다 떨어진 후에 강산이 매몰되었거늘 조물주가 야단스러워서 빙설로 꾸며내니

                     선녀가 사는 곳과 하얀 세계가 눈 아래 펼쳤구나’

                     건곤도 풍족하여 간 곳마다 놀랍구나 인간을 떠나와서도 내 몸이 겨를이 없다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바람도 끌어당기려 하고 달도 맞으려 하니

                     밤은 언제 줍고 고길랑 언제 낚을 것인가 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꽃은 또 누가 쓸 것인가

                     아침이 부족하다 해서 낮이라고 싫을 것이냐 오늘이 부족한데 내일이라 여유가 있을까

                     이 산에 앉아 보고 저 산에 걸어 보니 번로(煩勞)한 마음의 버릴 것이 하나도 없구나

                     쉴 사이 없거든 길게나 전하리라 다만 한 청려장(靑藜杖)이 다 무디어 가는구나’

                     술이 익었으니 벗이라고 없을 것이냐 불게 하며 타게 하기도 하며

                     켜도록 하기도 하며 흔들기도 하며 온갖 소리로 취흥을 보이거니

                     근심이라 있으며 시름이라 붙을 것인가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며 굽히기도 하고 젖히기도 하고 읊기도 하고

                     휘파람불기도 하며 마음대로 놀아 보니 천지도 넓고 넓은데 일월도 한가하구나’

                     희황(羲皇)을 몰랐더니 이것이야 그렇구나 신선이 어떻든지 이 몸이 그렇구나

                     강산 풍월 거느리고 내 백년을 다 누리면 악양루 위의 이태백이 살아오는구나

                     호탕 정회하여 이보다 더할 것인가 이 몸이 이렇게 사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로구나

 

 

면앙정가는  면앙정에서 바라본 산과 강 그리고 나는 새의 모습을 세밀하게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그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시심과 사색에 잠기는 선비의 감상을 잘 표현했다.

흰구름 뿌연 노을과 푸른 아지랑이에 쌓인 평화로운 들판의 풍경이 눈에 잡힐 듯하고 면앙정의 사계가

한 눈에 그려진다.

하지만 이 글의 한계와 아쉬움은 자연 속에 노닐면서도 관직에 대한 희망과 세속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선비의 마지막 한마디가 아닐까?

초야에 묻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듯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 임금이

언제라도 불러주기를 바라는 선비의 또 다른 속내와 아쉬운 미련이 묻어난다.

그 마지막 귀절이 자연과 풍류를 사랑하는 맑은 선비의 아름다운 서정시의 흠결과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쇄원

1983 7 20일 사적 제30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 5 2일 명승 제40호로 변경되었다. 전체 면적은

4,060(지정구역), 118,866(보호구역)이다. 이곳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각 건물을 지어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는 대표적 정원이다.

제월당(
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 오곡문(五曲門), 애양단(愛陽壇), 고암정사(鼓巖精舍) 10여 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제월당은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고, 광풍각은 정면 3, 측면 4칸의 팔작지붕

이다. 또한 광풍각에는 영조 31(1755) 당시 소쇄원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 남아 있다.

 

 

 

 

 

 

 

 

 

 

 

아무도 없는 면앙정을 둘러보고 소쇄원으로 갔다.

소쇄원은 개인정원이다.

소쇄란 말은 중국 문장가 공덕장이 북산이문이란 글에서 등장하는 말로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의미

라고 한다.

소쇄원은 2008 5 2일 명승 제 40호로 지정되었다.

기묘사화에 연루된 스승 조광조가 화순 능주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하자 정치에 환멸을 느낀 당시

홍문관 대사헌 이었던 양산보가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기거한 곳이라 한다.

물러날 때를 알고 홀연히 벼슬을 등진 채 고향에 내려와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쓰던 지조 있는 선비가 가꾸었던 소박한 정원으로 자연의 모습을 해치지 않고 조화롭게 정원을 조성한

지혜가 돋보이는 곳이다.

규모는 작았지만 어느 한 군데라도 맑고 깨끗한 선비의 마음과 정성의 손길이 느껴지지않는 곳이 없다...

 

조화로운 정원 속에 아름다운 건물 2 채가 있다.

광풍각과 제월당으로 양산보가 계곡 가까이 세운 정자를 광풍각이라 하고 방과 대청마루가 붙은 위쪽의

집을 제월당이라고 한다.

광풍이란 비갠 후의 상쾌한 바람을 일컫는데 작명의 유래는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춘릉(春陵) 주무숙

(1017~1073)의 인물됨을 얘기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을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 라고 한 데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바람과 달의 집이다.

광풍각은 바라 보는 것만으로 시원하다.

사방의 벽체가 트여 바람과 빛이 거침없이 소통한다..

바람도 통하고 자연과 사람도 통한다.

 

제월당은 정자라기 보다는 정사精舍 성격을 띄는 건물로 주인이 거처하며 조용히 독서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의미한는 당호처럼

그 곳에서 오래 은거한 이는 비갠 후의 바람과 달처럼 참으로 맑았을 것 같다.

 

 

 

                                                                                                                                                           소쇄원 광풍각

 

 

 

 

 

 

 

 

 

 

 

 

 

 

하루의 담양 여행으로 그 동아 다소 숨가빴던 여정이 조용히 정돈되었다.

선비의 고장 담양은 오랜 역사가 살아 있고 아쉬운 옛 향기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그런 곳이다.

죽녹원 판소리 체험관 누각의 편안한 힐링도 좋았고 대 숲길도 좋았지만 가장 기억과 여운에 남는 것은

역시 관방제림을 걸어보고  면앙정에 올라본 것이다.

담양 메타쉐콰이어 길 주변은 시에서 매입하여 나무도 심고 쉼터도 만들어 좀더 공원처럼 조성하는 것이

좋겠다.

공장 같은 집이나 주차장 등이 목가적인 길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말없이 지나간 오랜 세월과 사라진 아쉬운 것들이 그리움을 남긴다.

두루 두루 세상을 돌아 다니는 여행이 취미이다 보니 어떤 큰 인물의 성공과 업적 보다도 자연과 더불어

소요하며 풍류를 벗삼은 사람들의 소박한 삶이 더 마음에 와 닿고 그런 특별한 장소가 주는 향기가 가슴에

더 큰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역사의 향기에 취해 경험 하지 못한 아련한 시절 이야기를 바람결에 전해들은 것 만으로도 살아 있음과 그

따뜻함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가득해 졌다..

돌아 오는 길에  농협에 들려서 호박과 감을 한아름 사고 나서도 점심 때 먹은 국수와 계란이 다 소화되지

않아 결국 마눌이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담양 떡갈비는 먹어보지 못한 채 귀로에 올랐다.

추월사의 하루를 더 보내지 못했지만 3일간의 즐거운 휴가를 보내고 우린 담양의 향기와 어둠을 꽁무니에

매달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