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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12구간

 

 

 

난 수많은 길을 걸었네

또 걷지 않은 수많은 길도 있었네

길 위에 무수한 갈림길이 있었네

무수히 많은 갈림길에서 난 하나의 길을 선택하였고

때론 그 길 위에서 길을 잃기도 했었네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나서 내가 걸은 길과 내가 선택하지 않은 무수한 길을 바라보았네

 

시간이 많이 지난 어느날 무수한 길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네

내가 걷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잘못 선택한 길에 대한 이쉬움들

마치 내가 걸은 그 길과 내가 선택한 그 길이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내가 길을 지금도 잘못된 길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내 인생의 괘종시계가 셀 수 없을 만큼 울린 어느날

내가 수 없이 걸어온 그 길들을 되돌아 보네

난 아직 알지 못하네

그 길이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에서 끝나는 줄

 

난 세월이 지나고야 단지 알았네

내가 잃어버린 건 그 길이 아니라

그 길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걸

내가 잃어버린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라

꿈과 희망 이었다는 걸

내가 잃어버린 건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갈채가 아니라

나의 흔쾌한 웃음이었다는 걸

 

어떤 길을 걸었어도 그 만큼의 눈물과 그 만큼이 기쁨이 있었으리란 걸

수 많은 슬픔의 시간은 잊혀지고

수 많은 행복의 시간은 추억으로 남는 다는 걸

길 가운데서 지고 온 무거운 짐을 내릴수록

발걸음은 더 가벼워 자고

지난 길은 모두 아름다운 것이란 걸

난 세월이 많이 지나고서야  알았네

 

!  내가 걸어 온 그 길이 나의 인생이었네

세월에 잃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네

단지 하나씩 내리고 되돌려 주어야만 하는 것들 이었네

내 앞에 다시 힘들여 걸어야 할 길이 있다는 것

단지 아직 걸을 수 있고 열심히 걷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 행복임을

난 이제야 알았네….

 

 

 

 

 

 

 

 

수 많은 날들이 또 엊그제처럼 지나 갔다.

그런 수많은 날들이 단지 또 한 줄의 나이테를 긋는다.

 

이제 2013년은 한 달이 남았다.

또 무너지는 한 해에 씻어낼 허물과 씻어낼 아쉬움이 하도 많아서

사람들은 그 많은 술을 마셔야 한다.

꺽꺽이며 엎드려 울 수만 없으므로

맨 정신으로 아까운 이 한 해의 뒷다리마저 모두 놓아주기 너무 서러워서….

 

몽롱한 눈으로 깨어났다.

아침부터 뿅 뿅 거리며 스마트 폰이 운다.

거미가 살기 위해 똥구뇽에서 거미줄을 빼내 듯 내가 살아 가면서 여기저기 걸쳐놓은 인연의 거미줄이

메뚜기의 한철이 또 지나감을  알린다.

오랫동안  잠잠하던 사람들 조차 연락을 해댄다.

한 해가 허물어지니까 우린 술을 마셔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안다.

! 아직 2013년이 다 가버리지 않았음을...

내 인생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13년이 정말 떠나고 있음을….

 

꼭 겨울이라서 추운 것은 아니다.

가을보다 더 따뜻한 겨울이 있다.

예전엔 나가봐야 춥고 더운 걸 아는데

이젠 나가기 전에 내일 날씨가 어쩔 거란 걸 안다.

하다하다 할 것  더 없어서 이젠 손바닥 위에 아애 세상을 죄 올려 놓았다.

교활한 인간들…”

 

 

푸근하고 맑은 날씨라 가볍게  행장을 꾸렸다.

바쁜 연말의 주말부부

이래저래 얼굴보기 힘든데

나 떠난 후에  혼자 집에 덩그라니 남겨질 마눌이 안쓰러워 함께 지리산으로 떠났다.

 

엊그제 한 해를 허물어뜨리는 거한 의식을 치룬 산 친구들

집행부도 다 갈고 이젠 일회용 스테인레스 국그릇 하나씩 선물로 받으면서 이젠 일회용수저와 국 그릇을

쓰지 않겠다는 통보를 묵묵히 수용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새벽에 일어나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산과 자연이 먼저 거기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면  친구가 보이고 순환하는 삶이 보인다.

우리가 걸어온 길과 또 걸어갈 길이 보인다.

 

세월이 말했다.

인생은 산처럼 묵묵하고 물처럼 유연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한 장의 잎새마저 털어내고 빈 가지 끝에서 다시 기쁨과 희망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모자란 잠을 잤다.

나는 한 해를 보내느라 피곤하고 아직 밖은 어둡고 기사님은 소등하여 주었으므로

아침밥을 먹었으니 싸늘한 휴게소에서 밖으로 나갈 일 없어 내쳐 자다가 구례쯤에서 깨어났다.

태양은 구름 밖으로 들락날락 하고 자욱한 안개가 이리저리 흘러 다닌다.

악양 벌판을 지나기 전에 섬진강가에 차가 멎었다.

피어나는 물 안개

여전히 자연은 가슴 시리게 몽환적이고  단지 둥지를 떠난 늙은 새들만이 그 기쁨을 노래할 수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늙은 새

 

 

 

 

 

 

 

 

 

 

 

 

 

 

 

 

가슴 설레는 행복한 여행길 귀연이 만들어 갑니다.

귀한인연! 아름다운 자연!

 

일 자 : 2013년 12월 8일 (일요일)

장 소 : 지리산 둘레길 12구간

코 스 : 대축-악양천뚝길(0.3km)-입석(1.9km)-개서어나무숲(2.3km)-아랫재(0.6km)

          -너럭바우(0.2km)-묵답(2.3km)-원부춘(1.0km)

난이도 : 상

거 리 : 8.6 km

소요시간 : 약 4시간 30분

 

 

귀연 지리산 둘레길

시작이 반이고 벌써 반을 넘어 섰으니 이제 겨우 4분의 1만 남았나?

2012 12 7일은 대차게 눈이 내렸다.

그리고 우리는 이틀 뒤 1 9일에 지리산 둘레길 대장정의 첫발을 내 디뎠다.

우리의 발걸음은 눈 덮힌 주천 운봉길을 시작으로 구비구비 지리산자락 12구비를 넘나들었고 우리의

발걸음 위에 다시 1년의 세월이 쌓였다.

오늘 2013 12 8

12번 째 눈 없는 지리산 둘레길을 간다.

사계절이 바람처럼 흘러 갔다.

자연은 벌써 모든 걸 털어 버렸는데

우리는 이제  지리산 길 위에서 한 해를 떠나 보내고 남은 2013년을 보낼 준비를 한다.

 

김밥 옆구리 터지던 사람들

어느 땐가 두 대의 버스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짧은 세월에 뿔뿔히 흩어졌다.

그래도 누군가는 남아 그 길을 걷는다.

여전히 종달새처럼 즐겁게 ….

대자연 속에서 기쁨을 수확하는 사람들이다.

자신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오늘도 귀연은 11년의 역사를 마무리 하고 열 두 해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

 

 

 

 

 

 

 

 

 

 

 

 

지난 해 흰 눈이 들판을 뒤덮고 삭바람이 들판을 휩쓸었는데

악양 들판은 아직도 왜 푸르다냐?

엄동설한에 햇빛은 왜이리 좋다 더냐?

 

어제 술이 들깨 , 아직 잠이 들깨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인 줄 알았다.

 

어느 봄날 걸었던 평사리 토지 길

한 달 만에 그 많던 대봉감은 모두 떨어졌다.

평사리 뚝방길을 지나간다.

그 뚝방 길은 흡사 봄이 오는 것처럼 그렇게 산뜻하고 아름다웠다.

초록빛 머금은 넓은 들판과 가지를 털어낸 나무들이 먼 고향의 향수와 잊고 살았던 정겨운 추억을 불러내 준다.

 

 

 

 

 

 

 

 

 

 

고라니가 무언가에 놀라 들에서 튕겨 올랐다.

순식간에 써니를 뛰어넘어 멀리 들판으로 사라진다.

고라니 쫓던 사냥개와 사냥꾼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13구간은 거의 산행수준의 둘레길이다.

난이도가 상이라고 했는데 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 길은 짧고 바람과 풍경에 몸을 맡기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흐르면 된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 풀어내기도 하고

가진 것 다 털어 버린 빈 들판과 숲 그리고 말없이 머리 풀고 흐르는 섬진강과 백운산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형제봉 능선 아랫재 고개를 쉬엄쉬엄 넘어 가면 된다.

재 넘어 아직 붉은 감나무와 나른한 휴식이 드리운 평상 쉼터를 지나 계곡의 물과 함께 흘러내리다 보면

어느 결엔가 산아래 원부춘 마을이 선다.

 

 

 

 

 

 

 

 

 

 

 

 

이 길은 평사리 뚝방 길에서 악양 무딤이 들을 온전히 되돌아 볼 수 있어서 좋다.

소설 토지의 고향  83만평

우리의 삶의 애환과 서희의 땅

 

길 옆에 최참판 1.7 km 입간판이 서 있다.

취간림 쪽으로 가면 상소마을에서 소설 속 최참판 댁 실제 모델인 조씨 고택을 만날 수 있다.

어느 봄 시멘트 포장된 그 길을 걸으며 토지의 애절한 감동이 떠 올랐다.

한과 눈물로 점철된 고난의 지리산

그 역경의 너머에 유토피아처럼 기다리던  풍요와 약속의 땅 악양들판

 

둑방길을 걸어가면 멀리 부부송이 보인다.

3월의 황량한 들판에 엷은 푸른 빛 띠를 두르고 외롭지 않게 서 있던 두 나무

먼저 오는 봄을 만나러 남해 금산 가는 길에 그 풍경을 기억해 두었다가 벚 꽃이 활짝 핀 이듬해 사월에

기어코 그 길을 걸어가서 그 나무 아래 앉아 보았다.

그 해 겨울의 견딘 소나무의 푸르름과 목을 휘감는 봄바람을 만나고 돌아왔다.

 

 

 

 

 

부부송 (2012년 4월)

 

 

 

부부송 아래 (2012년 4월)

 

 

 

 

 

 

 

 

 

 

 

 

 

 

 

입석마을을 지나간다.

당산나무가 선다.

300년 수령의 푸조 나무라는데

푸조는 차이름 아닌가?

입석마을의 역사를 증거하는 그 오래된 거룩함 앞에 잠시 옷깃을 여미다.

 

멀리 흘러가는 섬진강과 하늘금을 그린 백운산과 억불봉을 바라보면서  형제봉 자락을 휘감아 올라간다.

 

 

 

 

 

 

 

 

 

 

 

 

 

 

 

 

 

 

형제봉 능선을 넘어가는 본격적인 산 길이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백두대간은 잠시 허리를 낮추었다가 힘을 끌어모아 다시 형제봉을 일으켜 지맥을

세우고 그 여세를 몰아 지리산으로 진군한다.

산길은 낮은 곳으로 곧장 넘어가지 않고 선 허리를 길게 휘돌아 능선에 오른다.

 

인생길도 그렇지 않나?

처음 좋았던 길이 갈수록 어려워 지기도 하고 주저 않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길을 지나면 녹양방초

우거진 아름다운 꽃 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길이란 때론 똑 바로 뻗어 있기도 하고 때론 구부러지고 뒤틀리기도 하면서 궁극에는 모든걸 무로

수렴하여 자연으로 돌아간다..

 

 

 

 

 

 

 

 

 

가는 길 헐벗은 흰 나무들이 만세를 부른다.

파이팅 귀연!”

이 길이 양반의 굴레와 부잣집 안주인의 굴레를 훨훨 벗어 던지고 머슴 구천이와 야반도주한 서희가 달 빛에

넘었던 그 길이 아니었을까?

 

소리 없이 떠난 가을이 아니다.

뒹구는 낙엽과 낙엽 마르는 냄새가

가을이 남기고 간 그리움을 들춰 낸다.

내 인생의 가을에도 봄은 다시 돌아 올 것이다.

오늘처럼 황량한 겨울에도 따뜻한 봄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길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 인생이 계속 되어야 하듯이….

 

 

 

 

 

 

 

 

 

 

 

 

능선에서 앞선 산 친구 들이 가파른 산길 한 모퉁이 나무아래

어렵게 찾아낸 작은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장소가 너무 비좁아 우리는 능선 너머 평평한 길을 찾는데

길은 다시 정상으로 가는 것처럼 계속 올라 간다.

 

넓은 곳이 쉽사리 나타날 것 같지 않아 조금 넓은 길가에 앉아 요기를 한다.

그냥 너머가도 이른 시간에 도착하겠지만 지리산 둘레 길도 식후경이라  삼삼오오 모여 산상만찬을 즐긴다.

 

 

 

 

 

 

 

 

낯도깨비 님이 인삼주 한 잔 권하는데 코를 찌르는 인삼의 강렬한 향기와 어우러진 소주 의 날카로운 맛이

일품이다.

맑은 하늘과  적당한 포만감 그리고 인삼주의 취기에 더 기분이 좋아져서 능선을 넘어간다.

넘어가는 길에 또 부르는 산 친구들이 있다.

도루묵 매운탕 한 그릇 자시고 가슈..”

예의상 부른다고 난 그냥 방앗간을 스쳐 지나갈 참새가 아닌데…”

 

지난번 강릉의 도루묵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하늘 가득 날리는 도루묵 매운탕 향기를 참을 수 없어서

비탈길을 내려가 슬며시 자리를 잡았다.

역쉬~~~

산도 잘 타지만 먹는 기쁨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

공달이 잡아 놓은 자리까지 꿰어차고 양푼까지 빌려서

뜨거운 도루묵탕 두 양푼에

소주와 으름주 까지….

내려가면 기다릴 짜글이 탕을 위해 남겨놓았던 위 속의 빈 창고를 순식간에 가득 채워 버리고 말았다.

워쩌 ~~ 짜글이…”

 

 

 

 

 

 

 

 

 

쏟아지는 햇빛에 등 따시고 도루묵탕 한 주발에 배가 부르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무어냐?

수북한 낙엽을 밟으며 콧노래를 부르고 고갯길을 넘어 간다.

살아감이 이만하면 되지

오늘 하루 이렇게 푸근하고 즐거우면 되지..

 

 

 

 

 

 

 

 

 

 

그만 내려가야 하는데

감이 고염처럼 빽빽하게 달린 감나무 한 그루 길을 떡 허니 막고 선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처럼  먹고 갈래? 그냥 갈래?”

그려 후식은 사과 밖에 안 먹었 잖여

장대도 있어서

눈에 뵈는 대로 휘둘렀는데 홍시가 밤처럼 우수수 떨어져 길에서 다 터져 버린다.

취기가 올라서 힘 자랑 하느라 나무에 까지 올라서 털어 보는데  감 따는 게 산타는 것 보다 더 힘들더라

 

 

 

 

 

 

 

 

 

 

 

 

 

 

 

 

 

평상이 놓여진 그림 같은 쉼터에서 오래 쉬었다.

쉬어도 바람이 불지 않아 춥지 않은 겨울이라

후미팀들이 거의 내려올 때 까지 쉬었다가 다시 길을 잡는데

전망좋은 빈 절에 붙어 있는 일필휘지가 발길을 잡는다.

天上天下 無如佛

천상천하에 부처님과 같은 게 없다.

天上天下 無如我

 

부처님만 그런가?

세상에 나와 같은 넘도 또 없는 거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부처고 내가 신선이다.

 

 

 

 

 

 

 

 

 

 

 

 

 

 

 

 

 

 

 

원부춘 마을

벌써 길이 끝나고 또 하나의 끝점에 섰다.

짧은 마무리가 아쉬워 진다.

서둘러  떠난 가을의 여운을 더 가슴에 담고 싶은데 ….

물 따라, 계절의 수심 따라 마음은 더 걸어가고 싶은 곳에서 누군가 오늘은 여기까지라고금을 그어 버렸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다시 돌아 올 것이다.

나의 길은 계속될 것이기에

나는 다시 눈 덮힌 지리산길을 걸어 갈 것이다.

승냥이 울음을 우는 차가운 겨울의 따뜻한 역설

그 차가운 들판에서 다시 따뜻해진 가슴으로 꿋꿋히 세상의 찬바람을 마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