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일 : 2014년 4월 5일 토
산 행 지 : 천태산
날 씨 : 맑고 바람 많았다가 산행 후 비가 내리다 .
거 리 :
소요시간 : 약 4시간
동 행 : 마눌 과 거북이
이번 토요일 마눌과 100대 명산 순례를 위해 벌써 몇 주전에 예약을 했다.
거북이도 함께하기로 한 날이라 혹시 몰라 두 군데 중복 예약을 했다.
한밭 산사랑 산악회 무학산
소월 산악회 사량도 지리망산
출발이 가까워지면서 갈등이 생긴다.
결국 한 곳은 취소해야 하는데 어떤 곳을 취소해야 할 것인가?
당초 산행 안내가 잘 공지되지 않는 무학산에 가기로 했다가 다시 마음을 바꾸었다.
확인해보니 무학산 진달래는 4월 중순이 넘어야 만개한다.
벚꽃의 개화가 10일 이상 빠르다 해도 진달래는 벚꽃보다 온도에 덜 민감하니 우야튼 4월 초는 무리다.
무학산의 유명세는 진달래 밭인데 진달래가 안 핀 무학산은 앙꼬 없는 찐빵 아닌가?
거북이한테 통보하고 마눌보고 목요일날 오후에 무학산을 취소하라고 했는데 웬걸 사량도 지리망산 산행 취소
메시지가 먼저 떴다.
성원미달!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한 군데가 남았고 목전에에 손수 취소하는 부담도 덜었다.
잦은 취소로 산악회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면 자연 경계대상이다.
하여간 꿩대신 닭이고, 노니 장독 깬다고 진달래 덜 핀 무학산이라도 가자 했는데 이건 또 우짠일이래?
몇 번 확인 전화할 때마다 철썩 같이 가겠다고 우기던 미리뽕 아줌마가 전날 오후가 되어서야 직접 전화로 취소를
통보했다.
출발 목전에서 당당히 취소하는 대단한 미리뽕 아줌마
어쨌든 2군데 산악회의 출정취소로 갑자기 토요일이 허탈해졌다.
출정 무산을 통보하며 낼 뭘 하냐는 물음에도 바쁜지 대꾸도 없던 거북이 녀석이 12시가 넘어 막 자려는데 띡하니
메세지 하나를 보낸다.
"낼 오데 갈데 없냐?"
자다가 봉창 뚜드리는 것도 유분수지 어넘이 스토커여 뭐여?
“미리뽕 아줌마 같은 녀석”
하여간 집요한 거북이 넘이다.
뒤늦게 산이 내려 백두대간과 백대명산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허긴 욕심과 집착이 그렇게 강하니 거친 세상 등 따시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게다.
난 마눌과 대청호 500리길 가려 했는데 거부기가 하도 우겨서 결국 천태산 가기로 했다.
어짜피 갈 수 없는 100대 명산이라면 이 봄에 어느 산에 간들 무슨 차이 있으랴
난 이미 마눌과 갔다 온 100대 명산이고 틈나면 무수히 갔던 산이지만 죽은넘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친구
소원하나 못 들어 줄까?
기록에 따른 가장 최근 산행은 2008년이다.
2007년 마눌과 좋은친구들과 공식 100대 명산 산행을 하고 2008년 홀로 산행에서 갈기산과 천태산을 함께
아울렀다.
기록과 사진이 남아 있지 않으면 시간과 동행에 관한 기억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혼란스러울텐데 무릉도원에는
지나간 즐거운 시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기억은 세월의 바람에 쉽게 날리어 간다.
잊어버리는 안타까움보다 잊지 못하는 괴로움이 더 커서 신은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망각을 선물했다.
그 소중한 선물로 인해 인간은 행복에 한 발 더 다가 갔다.
신의 선물을 지헤롭게 활용하는 자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인생이란 여정을 좀더 즐겁게 만들어 갈 것이다.
슬픔은 밀어두고 쉽게 잊어버리고 기쁨은 기록으로 남겨 추억의 이름으로 다시 불러낸다.
무릉도원은 마르지 않는 나 혼자를 위한 기쁨의 샘이다.
글과 사진을 따라 들추어지는 그날의 추억이 엊그제 기억처럼 생생하게 살아나 새삼 속절없이 빠른 세월을
이야기 한다.
세월은 앞으로만 가는 관성에 이제 가속도 까지 붙었다.
엊그제 같이 선명한 그 세월이 다시 지나고 나면 어쩌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보다는 지난 추억에
잠기는 시간이 더 많아질지 모른다.
세월에 마모되는 내 몸을 따라 의욕과 열정도 조금씩 사그러 들 것이다.
삶의 해답은 늘 역사와 내가 걸어 온 길 위에 있다.
카르페디엠 !
삶은 게속되어야 한다.
무너지고 낡아지는 무수한 것들 속에서도 간직해야 할 것과 새로 채워야 할 것이 있다.
난 웅크리거나 칩거하지 않는다.
여리고 어린 4월 초의 천태산 길
시적인 길이다.
아침 산행길이 맑고 가벼워서 내 마음이 종달새 같이 즐거워서
산의 화폭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걸리고 길에는 진짜 많은 시가 걸려 있어서…
따스한 햇살이 잠자던 대지를 깨우고
차가운 바람이 봄의 불청객을 잠재운 날
연초록의 잎새들은 살며시 고개 들어 새봄을 노래하고 진달래는 수줍게 미소를 짓는다.
맑은 봄날
내 인생에서 오래 함께할 마눌과 친구와 피어나는 대지의 기쁨을 누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으니
오늘도 행복한 날이다.
천태산은 머리를 곳 추 세운 고압적인 자세로 상대방을 노려보며 벽처럼 막아선다.
타협과 소통을 거부하는 그 모습은 역설적으로 가로막는 난관을 뛰어넘으려는 도전의 의지를 자극한다.
천태산에는 헤아릴 수 없이 올랐다.
혈기 왕성한 어느 젊은 날에는 아무런 사전정보도 없이 마눌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A 코스로 올랐었다.
은비와 마눌은 홀로 로프를 잡고…
나는 태현이를 목에 걸고 두손으로 밧줄을 잡고 …
절벽 중간 좁은 공터에서 간담이 서늘했다.
천태산에 기가 꺾여 오도 가도 못하는 막막한 상황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산에서 마주한 그런 공포는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올라 가는 길이 더 험하지만 내려가는 일은 더 위험하다.
자칫 불안해 할 가족들을 독려하며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해야 했다.
나는 태현이에게 아빠 머리를 단단히 잡으라 이르고 그 어리고 여린 병사들을 이끌고 천태산을 넘었던 것이다.
천태산은 내 젊은 날의 신화이고 전설이었다.
내가 아는 그 누구도 상상하거나 실행할 수 없는 무릉객만의 무모한 도전 이었다.
천태산을 오르면 그 때의 공포가 실감나게 살아 온다.
지금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걸 보면 오히려 그 때보다 그 때를 추억하는 지금이 오히려 더 공포스러운지 모른다.
극단의 공포를 극복한 자신감이 세상을 즐기는 여유와 힘을 내게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대자연을 함께 누리며 나누었던 소중한 시간과 경험들이 아이들의 마음 속 어디엔가 남아 그들의 삶을 더 따뜻하게
하리라 믿는다.
부모의 마음과 사랑이 이신점심으로 전해지고 오래도록 우린 서로에게 위안과 기쁨으로 남을 것 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계룡산 황적 절벽에서 얼굴 가득 적나라한 공포심을 드러내 던 거북이는 자신감에 찬 여유 있는 표정으로 절벽을
차고 올랐다.
욕심이 사나운 만큼 거북이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러다 거북이 진짜 닌자 거북이 되는 거 아녀?
우라는 A스를 올라 D코스로 내려왔다.
바람은 거칠게 불고 하늘은 드맑은 날
온통 봄이 하늘 거리며 피어나는 그 날 우린 거친 암릉을 독수리처럼 가볍게 날아 올라 즐겁고 여유롭게 능선을
활공했다.
연초록의 신록이 눈부시고 걸을수록 가슴에 기쁨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봄날 이었다.
돌아 오는 길에는 빗방울이 떨어졌고 우리는 이평리에 들러 부소담악을 돌아보고 둥그나무 집에서 옷닭으로 즐거운
여행길을 축하했다.
뒤풀이는 거부기가 쏘았다.
내친구 거부기 만세……!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 칠암자 순례 (0) | 2014.05.09 |
---|---|
다시찾은 덕룡산 -주작산 (0) | 2014.04.10 |
속리산 (0) | 2014.03.24 |
봄맞이 남도 산행 (괴음산-송등산-호구산-용문사) (0) | 2014.03.03 |
광덕산 시산제 (0) | 2014.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