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자 : 2014년 4월 13일 (일요일)
장 소 : 지리산 둘레길 16구간
코 스 : 가탄(화개장터, 쌍계사 벚꽃길)-법하(0.7km)-작은재(어안동)(1.4km)
-기촌(2.1km) - 목아재(3.7km) - 송정(3.4km)
난이도 : 상
거 리 : 11.3 km
소요시간 : 약 5시간
맑게 씻기운 지리산 자락이 곱다.
벚꽃이 피는 일정에 맞추어 출정일을 조정했는데 나무엔 꽃 잎 한 장 남아 있지 않다.
꽃이 피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듯이 인생 역시 시간표 대로 흘러 가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무르익는 때는 하늘이 준비하신다.
오늘 벚꽃은 남김없이 바람에 날리어가고 산길엔 비가 내린다.
나는 작은 우산을 하나 받쳐 들었다.
무슨 문제 있으랴 ?
촉촉히 비에 젖은 초록의 대지가 그렇게 싱그럽고 비에 고개를 떨군 하얀 연다래도 그리 아름답거늘 ….
지리산 둘레길 제 16번 째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 가탄마을과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송정마을을 잇는 11.3km의
둘레 산길이다.
법하마을에서 연분홍 벚꽃 대신 무성한 푸른 잎이 빗물에 번들거리며 씩씩하게 손을 흔들었다.
법하마을이 있는 화개골 전체가 수많은 사찰이 있는 불국토라고 했다.
그래서 인지 비 긋는 둘레길이 마치 수행 길인 듯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 해진다.
허리를 꼿꼿이 곳추 세우고 있는 작은재는 하동과 구례를 넘나드는 고개였다..
제법 서늘한 날씨에 비옷을 꺼내 입은 산우들은 법하마을을 지나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 동안 거추장
스러워진 비 옷을 죄 벗어 버렸다.
겨울비가 아닌담에야 비 옷을 입은 채 등산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조용히 내리는 비가 자연스럽게 사색과 명상에 빠져들게 한다.
무언가 비워지고 정리되는 그 느낌들이 좋다.
이 비 그치면 초록은 춤추며 번져갈 것이다.
아쉬운 한 해의 봄을 보내는 서러움이 비를 타고 먼저 내린다.
새벽밥을 먹고 나온 터라 산허리를 내려 11시 넘어서자 허기가 동하는데 기촌 마을에서 다리를 건넌 후
우린 다시 목아재 까지 올라야 한다.
오늘 동행이 몇 명 되지 않아 개울을 건너 언덕 위에서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려가며 함께 산 길을 오른다
목아재 오르는 길데 공터가 나와 식사를 하자고 했는데 더 올라 간단다.
“난 배고파 못가유 !”
먹을 것 다 챙겨먹고 피어나는 대지의 기쁨을 온 몸에 받아 내면서 느리게 느리게 걸어가고 싶은 길이다.
잦아든 비에 혼자 주섬주섬 도시락을 꺼내 먹으려는데 진달래 님이 도착하고 수채화님 일행들이 도착해서
한 무리를 이루었다.
식사를 마치고 100미터도 못 가서 먼저간 선두팀이 마을 어귀에서 식사중이다.
불고기에 …. 라면에…..갖은 진수성찬으로 …
함께 했으면 성찬을 포식했겠지만 하산 후 마실표 수육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을 터이니 무릇 세상사
모두가 조화와 균형 속에 머물게 된다.
산우들을 뒤로 하고 가파른 산길을 따라 목아재에 올랐다.
지난 달 조용하던 목아재는 대구에서 온 산악회로 흥청거렸다.
송정마을로 가는 목아재에서 송정마을 가는 둘레산 길은 지난 번에 걸었으니 오늘은 임도를 따라 내려
가기로 했다.
지도상 섬진강변으로 내려서는 데 19번 국도를 따라 가면 송정마을이 그다지 멀지는 않다.
얼마 후 목아재에서 합류한 수채화님 동료 분들 세 명이 나를 따라 나섰다.
구태여 의도한 건 아닌데 한적한 내림길에 괜시리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서 한껏 속도감에 취해 보았다.
그들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임도를 내려서는 길은 온통 싱그러운 연두와 초록의 봄 세상 이었다.
산속 포장 길이라 아쉽긴 했지만 움트는 대지의 기가 온몸으로 들어와 발걸음은 가볍고 기분은 날아 갈 듯
상쾌했다.
이리저리 구불거리며 내려가던 길은 갑자기 섬진강을 따라가는 19번 국도로 떨어졌다.
내려오는 일행들 세분을 기다렸다가 초록이 넘실대고 붉은 영산홍이 흐드러진 국도변을 함께 걸어 갔다.
현대 오일뱅크 주유소 옆 길로 내려왔는데 주유소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송정마을 까지는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단다.
주말이라 관광 버스가 내달리는 섬진강변 국도를 걸어가자니 소음이 다소 거슬리긴 했지;만 강변의 풍경이
좋아서 지루한 줄 모르고 즐겁게 걸었다.
내려선 길에서 송정마을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송정마을엔 일행들이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휘돌아 가는 임도길이 훨씬 길었는데 둘레산 길로 걸어내린 산우들은 우리 보다 더 늦게 내려왔다.
16회 출정 지리산 둘레길 통산 일등 하산은 처음 이었다.
내림 길은 좀 빠르긴 했어도 느리게 느리게 걸은 길 인데도 하산이 가장 빨랐던 걸 보면 다른 산우들도 다
내 마음 같았던 모양이다.
지리산과 섬진강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교훈이고 위안 이었다.
산은 수 많은 아픔을 보듬은 채 넓은 가슴과 푸르름을 잃지 않고 강은 무수한 세월의 애환을 실어 묵묵히
흐른다.
산과 강이 만나는 마을을 휘돌며 그 언저리를 돌아 내릴 수 있는 것 만으로 삶은 이미 기쁨이고 눈부신
축복이었다.
오늘 기쁨의 빗물이 모여 내일 행복의 강으로 흐른다..
내가 누린 평범한 오늘은 어제 결국 마주하지 못한 채 꽃 잎처럼 떨어져간 친구가 그렇게 애타게 소망하던
특별한 내일 이었다.
산다는 것은 내 안에서 무언가 하나씩 허물어 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삶은 죽음 연결되어 있지만 인식의 끈은 짧은 인생보다도 더 짧고 죽는다는 것은 너무도 아득해서 생각조차
쉽사리 그 끝에 닿을 수 없다.
살아감이 바쁜 우린 천천히 다가오는 그림자 조차 아랑곳 하지 않는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욕심과 집착은 마치 영생을 누릴 것처럼 만족을 모른다.
산 그림자려니 ….
그 그림자는 누군가의 외로운 노을과 함께 서산으로 뉘엇뉘엇 넘어갈 뿐이다.
나의 황혼은 노을처럼 낭만적일 것이다.
하지만 늘 푸를 것 같은 청춘도 시들고 마냥 넘치던 샘물도 바닥을 드러낼 때가 온다.
가끔 내 주변을 흘끔 거리는 사신(死神)을 본다
죽음이란 세월의 바람에 내 안의 모든 것들을 날려 버리고 마지막 남은 나의 몸이 한줌의 재로 훨훨 날아가는
것이다..
열씸히 살아가는 어느 날 죽음이 손을 흔들며 내 옆을 지나간다.
우린 비로서 죽음의 존재를 깨닫고 그가 내게 조금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종인이가 찾아 왔다.
머리를 깎고 암투병 중이었던 친구는 모처럼 밝은 표정이었다.
요즘은 가끔 통원치료를 하는데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우린 그간의 이야기를 나무며 함께 맛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이틀 뒤 종인이 핸드폰에서 한 통의 메일을 메일이 왔다.
“오늘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습니다.”
통 연락이 없던 친구는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았을까?
친구는 나와 한끼의 점심을 나누고 홀연히 먼 길을 떠나갔다.
마지막 인사는 딸에게 맡겨 놓고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채 피어보지 못한 꽃다운 생명들은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고 통곡의 바다에 침묵했다.
21세기 눈부신 과학과 세계 7위 경제대국 대한민국과 자랑스런 국민들은 눈 앞에서 뒤집히고 가라앉는 배와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슬픔과 분노는 숨막히는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 어처구니 없고 부당한 죽음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았을 뿐이다.
어느 날 입원 중이었던 남실장이 광덕산 시산제에 참석을 했다.
얼마 전 갑자기 기력이 떨어지고 몸이 안 좋아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췌장암 3기로 판정이 되어 급하게 입원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갑작스런 산행 참여는 놀라움이었다.
요리의 달인이고 무쇠 같이 단단한 체력으로 산행과 엠티비 자전거를 즐기는 아웃도어 매니아 였던 그의
얼굴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큼 힘들게 병마와 투병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방사선 치료가 저런거구나! “
내 일찍 무서움을 알고 있지만 무표정한 세월의 폭력은 너무도 가혹하고 무자비했다.
걱정을 많이 했지만 남실장은 그 가파르고 험한 그런대로 잘 올랐다.
각자 준비해온 음식으로 고사상을 차리고 산신령님께 절을 하는데 고삿상 앞에 엎드리며 소원하는 남실장의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그냥 이만큼이라도 산을 다니게 해주세요 “
그 말은 내가 허리를 다치고 거친 산을 오르지 못하던 때 부처님께 빌던 말을 생각나게 했다.
“욕심부리지 않겠습니다. 허리만 예전처럼 돌려 주세요”
그건 나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벼랑 끝에선 삶의 절박함 이었다.
그 말은 더 허약해진 채로 살아가야 하는 수 많은 나의 날들에 대한 절망과 두려움을 일깨웠다.
광덕산 시산제가 2월 23일 이었다.
그리고 3월 9일 지리산 둘레길 15번 째 길을 그와 함께 걸었다.
원래 지리산 둘레길 길동무가 아니었지만 이미 체력적으로 거친 산은 오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는 산꾼들의 고향 지리산에 지친 가슴을 기대고 싶었던 것 같다.
귀연에 가끔 얼굴을 내밀다가 엠티비 자전거에 빠져 자주 오지 못했지만 힘든 현실을 마주하면서 산친구들의
따뜻함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그는 4월 13일 지리산 16번 째 길을 함께 걷지 못했다.
4월 24일 그는 무쇠 같은 체력과 요리의 전설을 남긴 채 홀연히 먼 길을 떠났다.
난 임자도의 전설을 기억한다.
지금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절세 고수가 보여 주었던 미각의 진수
벌써 빛 바랜 내 사진첩에는 그날의 기억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린 불갑산과 벙산을 지나 김제평야 같은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대광
해수욕장으로 내려왔지
금빛 사구에 뿌리를 내린 고사리를 바라보며
보리수 열매를 따 먹으며 ….
내려오니 난리가 났더군
풍차 앞 해변에서….
무신 큰 잔치가 벌어진 줄 알았어
점심을 빵으로 대신한 시장함과 갈증으로
난 소주를 타서 맥주 세 잔을 거푸 마시고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아니 말을 할 겨를이 없었어
갑오징어가 너무 맛있고
병어회는 환상이고
병어찜과 꽃게탕도 쥑였지
소림사 주방장이 금방 튀겨낸 튀김과
단비님의 순간배송은 미각의 감동이었어
물론 마실표 돼지볶음과 소고기조림도 일품이었고
정암표 가죽나물 무침도 너무 서러운 맛이야
난 할말을 잊고 오직 본능에 충실했을 뿐.
다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
내 잘못이 아니여
원래 분위기를 위해서 단체음식은 좀 맛이 없어야 되는데
땀을 흘린 시장함에
일품요리에
독감에도 꺾이지 않는 모진 입맛의 삼위 일체에
난 이방인처럼 말 없이 먹을 수 밖에 없었어
그리고 조용히 헐떡이며 버스에 올랐지…
돌아오는 길
우린 유럽 지중해의 한적한 어느 마을을 댕겨온 듯
가슴이 뿌듯하고 따뜻해 졌어
잔잔하고 아름다운 섬의 영상과
소박하지만 산 친구의 넘치는 인정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
감동을 먹는다는게 이런거야
살만한 세상이고
떠나야 할 이유가 다섯가지도 넘는다는 걸 보여준 여행길이었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바라보면
온 세상엔 보물이 가득해
신안 앞바다에 보물이 가득 가라앉아 있다 하지만
임자도가 바로 그 보물이 아닐까?
찾아준 기쁨과 잘 먹어준 기쁨에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아이처럼 기뻐하던 남실장
임자도 여행길이 혹여 불편할세라 노심초사했던 그 인정이 너무 고맙더군
귀연이란 이름으로 기꺼이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함께 노래할 친구가 있어서 좋구
아직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좋다네
가슴엔 여전히 아름다운 길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살아 있으니
5월은 그냥 훌쩍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봄이야
살아 있는 동안 아직 찾아 낼 보물이 너무 많음을 새삼 감사하면서 돌아오는 길엔
하늘이 더욱 푸르고 기분 좋은 취기가 쉴새 없이 행복한 추억과 상념을 불러다 주더군
안녕 임자도
안녕 친구들
그 때가 5월 이었다.
5월도 되지 않았는데 남실장은 서둘러 떠났다.
그는 한 줄기 바람처럼 잠시 세상을 스치고 그렇게 지나갔다.
난 안다.
궁극에 그가 잊지 못한 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가슴 시린 자연이었음을 …
그가 애절했던 건 우리 모두가 넘치게 누리면서도 알아 채지 못하는 소박하고 평범한 날의 하루 였음을 …..
지리산의 한줄기 맑은 바람과
따뜻한 햇살
환하게 웃어주는 산우들의 사심없는 웃음 이였음을….
사촌형이 돌아가실 때도 그랬고
짱짱했던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떠나갈 때도 그랬다.
그 모질 다는 삶은 모두 그렇게 허망했다.
죽음이란 경우도 없고 순서도 없다.
삶이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 흔적은 사랑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다 조용히 희미해져 간다.
굵고 뜨거운 땀으로 야생마처럼 질주하던 아쉬운 젊은 날의 추억을 못내 아쉬워하며 남실장이 떠났다.
나는 그가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리라 믿는다.
누구보다도 산과 자연을 가까이 하고 산 친구들에게 무언가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그 였기에 …
어쩌면 그는 훌쩍 떠나야 하는 아픔보다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에 더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죽음은 예측할 수 없고 죽는 자의 고뇌와 안타까움은 늘 남은 자들의 몫으로 확정될 뿐이다.
아픈 가슴을 안고 무책임하게 떠난 그가 이승의 모든 아쉬움 훌훌 털고 저승에서도 명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남은 그의 가족들이 그의 공백에 실의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행복한 인생을 살 아갈 수 있기를 빈다.
오늘 하루 다시 그 죽음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어쩌면 누군가의 죽음은 신이 살아 있는 자들에게 보내는 경고 인지 모른다.
인생은 시간이 정해진 짧은 여행길이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그 여행길은 취소될 수 있다.
여행 길은 마음이 홀가분해야 한다.
배낭에 너무 많은 짐을 넣고 떠나면 즐거워야 할 여행길이 힘겨울 수도 있다.
걷지 못한 무수한 갈래 길을 아쉬워 할 것도 없다.
어느 길에나 사랑과 기쁨과 있고 어느 길에도 기쁨과 슬픔이 등을 맞대고 있다.
하지만 여행길은 원래 신나고 즐거워야 한다.
카르페디엠 ! 현재를 즐겨라 !
죽음이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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