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졸업식 날이다.
19개월이 바람처럼 흘렀다.
놀멍 쉬멍 한 달에 한번씩 걸었는데 그 길이 274km나 이어져 오늘 우리는 출발했던 그곳으로 다시 되돌아 왔다.
구비구비 산길과 고갯길을 넘어가고 때론 논둑길과 들판 걸어 가며 3개도와 5개시군 21개 읍면을 넘나들며 120개
마을을 지났다.
낙동정맥을 마무리하는 날 낙동 산신령님 화끈한 폭우로 축하세리모니를 해주시더니 지리산신령님 오늘 축복처럼
이슬비를 뿌리시고 여름날의 연무를 모두 걷어 맑고 깨끗한 산천을 열어주셨다.
19개월 동안 내가 팍삭 늙었나?
오늘이 지리둘레학교 졸업식이디 왜이리 엄숙하고 숙연하다냐?
백두대간 종주를 마무리 할 때는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 솟구쳐오르고 감정이 복바쳐 올라 왔었다.
개인일정 때문에 동료들보다 한 주를 먼저 지리산에 올랐던 그 날.
천왕봉 표석 옆에서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 볼 때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두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 장중한 태양은 무수한 날 내 가슴속에서 다시 떠 올랐고 그 감동의 여운은 오랜 가슴앓이의 지병으로 남았다..
오늘 지리산 둘레길 대장정의 마무리는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또 하나의 큰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에 들뜨지도 않았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던 내가 그리 대견하지도 않았다.
아니 조금은 우울하고 슬퍼졌다.
이젠 지리산에 자주 못 올지도 모른다.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거기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내 마음의 고향
어느 마을 길 혹은 어느 고갯길 이정표에 걸어 놓은 동심과 내 어린 날의 추억은 솔바람에 풍경처럼 흔들리고 있는데…
귀연마차는 이제 한 달에 한 번 고향으로 떠나지 않는다.
그 길은 치열한 도전과 인내의 길이 아니었다.
그 길은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순례의 길이었고 나를 돌아보고 잃어 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길 이었다.
한 박자 늦추고 한 템포 느린 걸음으로 우리가 도시의 창 밖으로 던져버린 삶의 여유와 낭만을 찾아가는 시간 이었다.
내 살아가는 세상의 따뜻함으로 위안 받고 내 영혼의 평화와 안식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난 그 길에서 지나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났고 이제 막 고갯길을 넘어가는 지친 나그네의 사무친 향수를 만났다.
나는 기꺼이 스스로를 무장해제 했다.
허기를 때울 소박한 도시락 하나 달랑 넣은 배낭이 개나리 봇짐처럼 내 등에서 춤을 출때 나는 세상에서 쌓인 피로와
욕심 그리고 분노까지 길 위에 모두 토악질했다.
세상의 찌꺼기를 다 쏟아낸 가슴에는 맑은 하늘과 깨끗한 바람을 담았고 달캉 거리는 빈 도시락 안에는 기쁨과 추억을
넣어서 돌아왔다.
어느 날은 술이 들깨 아픈 머리인 채로 그 길을 걸었다.
지리산이 아니면 떠날 수도 없는 날이었다.
거침없는 질주와 더 높을 곳의 열망을 잠재우고 세상이 만든 가장 자연스런 길을 따라 마음공부를 떠나는 길이었기에
난 오늘의 일정으로 인해 어제를 배려하지 않았다..
두통은 그랬다.
들판 길을 걷고 멀리 마을을 바라보며 산허리 길을 돌아 내리면 끝이었다.
무거운 머리의 날카로운 통증은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 듯 후드득 거리고 지나갔고 솜처럼 지친 몸은 다시 비 맞은
풀처럼 풋풋하고 싱싱해졌다.
세상의 화기와 독기가 몸에서 빠져 나가면 머리 속은 다시 맑아졌다.
마치 비 갠 후 공기가 더 깨끗하고 들판의 풍경이 더 아름다워 지는 것처럼…
아 ! 내가 걸은 그 길은 치유의 길이었다.
산길은 인생길을 닮았다.
우리의 산길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녹아 있다.
때론 가슴이 터질듯한 고통으로 험하고 가파른 산 길을 올라야 하고 때론 강둑을 따라 녹양방초 우거진 꽃 길을 걷기도
한다
정상을 향한 희망에 부풀기도 하고 뜨거운 땀과 열정으로 오른 정상에서 고원의 바람을 목에 감으며 성취의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우린 평생 정상에 오를 수 없을지 모른다.
무수한 산과 봉우리를 넘어 기진맥진 한데 다시 거대한 알프스가 벽처럼 솟아 오른다.
수 많은 산을 넘고 나서도 거기 또 넘어야 할 무수한 산이 남아 있다.
우리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더 높은 정상을 꿈꾸고 세상은 지친 여행자에게 평화와 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느 봉우리를 오르기 전에 우리는 먼저 내려서야 하는 좌절과 아픔을 느낄지도 모른다.
가야 할 길의 지난함이 어느 산모퉁이의 달콤한 휴식에 나그네의 수심을 드리우면 등짐과 다리는 더 무거워 질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인생의 산 길에서 노여움과 슬픔을 빼어 버린 길이다.
스스로를 되돌아 보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는 길이다.
자연과 대지의 기운으로 회색도시에서 빼앗긴 기력을 회복하고 삶에 지친 스스로를 위로하는 길이다..
그 길에는 고통과 좌절이 없고 슬픔과 아픔도 없다.
톡쏘는 맛이 없어서 때론 맹송맹송하지만, 그 길을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맑은 기쁨이 고인다.
급행열차를 타고 가다가
신경림
이렇게 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언가
환한 봄 햇살 꽃그늘 속의 설렘도 보지 못하고
날아가듯 달려가 내가 할 일이 무언가
예순에 더 몇 해를 보아온 같은 풍경의 말들
종착역에서도 그것들이 기다리겠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산역에서 차를 버리자
그리고 걷자 발이 부르틀 때까지
복사꽃 숲 나오면 들어가 낮잠도 자고
소매잡는 이 있으면 하룻밤쯤 술로 지새면서
이르지 못한들 어떠랴 이르고자 한 곳에
풀씨들 날아가다 떨어져 몸을 묻은
산은 파랗고 강물은 저리 빤짝이는데
"급행열차를 타고 가다가"
나이가 들면서 아쉽고 더 소중해지는 것들이 무엇일까?
지리산 둘레 길은 발이 부르트도록 걸을 필요는 없다.
다만 자연 속을 소요하는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 튼튼한 두 다리와 따뜻한 가슴은 잃지 말아야 한다.
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 개울이 지나가고 강이 흐르다.
길은 산허리를 돌아가고 고갯 길을 넘어 다음 마을로 이어진다.
그 길에서 아카시아와 찔레꽃 향이 등천하고 감과 배와 사과가 익어 갔다.
그 길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내 어머니 같은 할머니가 논두렁에서 나물을 뜯고 경로당 할아버지가 팔고 남은 밤이라고 벌레 숭숭 먹은 찐 밤을
한웅큼 쥐어 주신다.
마을회관 앞 할머니들이 말했다.
“아이구 사진 찍지 말랑께 !”
“내가 뭣할라고 할머니들을 찍어유? 시방 마을회관 찍는 거지”
산길 능구렁이 무릉객이 말했다.
오미마을 운조루 앞에서 아침일찍부터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할머니들께 인사를 드렸더니 뚝방 길에 물앵두가
맛있으니 따먹고 가라신다.
엥? 따먹을 까봐 눈부릅뜨시는게 아니고 대 놓고 따먹으라고?
“동네 청년들 한테 혼나지 않을까유?”
농작물에 손대지 맙시다” 그런 표지판을 하도 봐왔던 터라 할머니들께 되물었는데 할머니들 왈
“동네 청년놈들두 읍구 우리가 따먹으라 했다면 뭐라할 놈 하나도 읍응께 많이들 자셔 !”
우리는 벼메뚜기처럼 둑방에 즐비한 물앵두 나무로 달려들었다.
나는 그 길에서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로 다시 돌아 갔다.
풀섶의 산딸기를 따먹고 바람 길에 벌렁 드러 누웠다가 다시 길을 걸었고 어느 계곡 길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나와서 그냥 걸어 갔다.
가을에 그리고 겨울에 나는 수 많은 시를 썼다.
내 가슴에 쓴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그 시들은 다 지워지고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그 감동의 여운은 지금도 내 마음을
울린다.
그 길에서 내가 흥얼거리고 불렀던 콧노래는 바람결에 실려 갔지만 그 노래는 삶의 주문이되어 내가 어디선가 다시
그 노래를 부르면 둘레길의 평화로운 풍경을 다시 눈앞에 되돌려 준다.
임제선사가 그랬다.
“기적이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며 살아 있음의 기쁨을 느끼고 내 가슴에 가득한 사랑을 확인했으니 그 것이 기적이다.
그 길이 언제 끝나는 지에 관심이 없었다.
걸을 수 있는 그 시간이 소중했고 그 길 위에서 만났던 사소하고 소박한 것들이 일깨워주었던 작은 기쁨과 감동을
사랑했다.
무거운 발걸음과 지끈거리는 머리, 그리고 답답한 가슴으로 떠났어도 그 길을 걸어 돌아 오는 발길은 늘 가벼웠었다.
그냥 그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좋았고 그 길에서 누린 자유와 평화가 좋았다.
세상사에 메마른 가슴이 다시 촉촉해지고 내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
내 마음에서 무언가 비워지고 새로운 무언가가 채워지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
그 길을 걸으며 한번의 가을과 , 두 번의 봄,여름,겨울을 보냈다.
한 달에 한 번 친구를 만나듯
한 달에 한 번 고향을 찾아 어머님의 얼굴을 대하듯
그리움을 향해서 난 반갑고 익숙한 그 길이 이젠 끝났다.
새로운 어느 길인가 다시 걸어 갈 것이다.
그 길에 남긴 아쉬움이 다시 아름다운 시작을 만들 것이다.
다행이다..
그렇게 무수한 길을 걸었는데 아직 걸어야 할 길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다니…
멋지다 무릉객
그렇게 오래도록 먼 길을 걸어 왔는데 여전히 이렇게 푸루뎅뎅하다니…
나를 힐링하고 나를 자유롭게 했던 그 길의 휴식과 평화가 남아 있는 다른 나의 길 위에서도 펄펄 날리기를 바란다.
대자연에 기대어 평화를 꿈꾸는 선한 사람들에게 그 대지의 축복과 기쁨이 늘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오랜만에 나타난 큰놈이 옆에서 뭐라뭐라 떠드는데도 자꾸 졸음이 쏟아졌다.
기주떡 안에 팥앙고를 넣은 작은 떡은 맛이 좋았다.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고 나서는 산동 면사무소에 도착할 때 까지 내쳐 잤다.
비맞은 배추처럼 싱싱하던 큰놈도 잠에 취한 내게 감염이 되었는지 절인 배추처럼 널부러 졌다.
지리산 산신령님이 분위기 잡아 주신다.
“얼쑤”
여름비가 가을비처럼 분위기 있게 내린다.
걸어가는 아스팔트 길 위에서 바라보는 안개와 구름에 휘감긴 지리산 자락이 몽환적이다.
저수지 물빛에 비친 그림 같은 현천마을이 베네치아에 뒤질소냐?
간밤에 이슬을 맞고 내리는 이슬비에 함박 웃음을 머금은 원추리가 손을 흔든다.
이건 알프스 하이디 마을 풍경보다 더 아름답잖아.
연관마을 앞 정자나무 잘생겼다.
교회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아주머니께 꼭대기 회장이 땅값을 물어보니
“안 갤켜 주지”
셈이 잘 안 되시는 아주머니는 그냥 몇백만원 한단다.
한 평에 몇백인지 폐가 한 채에 몇백인지…
구례구 산동면에서 남원시 주천면으로 넘어가는 15.9 km의 비단길은 시목지가 있는 개척마을을 지나 편백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침울한 겨울의 한 가운데서 일대에 봄의 희망과 기쁨을 가장먼저 알리는 산수유는 가는 길마다 지천이다.
지난번 구간의 후반부 탑동마을에서 산동너머가는 길과 이번 구간 산동에서 개척마을 까지는 봄에 걸으면 무척이나
화사하고 아름다울 그런 길이다.
계척마을에서는 시목지를 돌아보지 못했다.
꼭대기 회장의 생체 나침반이 고장 났는지 그 길을 거치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애초 산수유 시목을 시작으로 산동면 일대에 산수유가 이렇게 퍼지게 된 사연이 있었다.
옛날 중국 산동성의 장삿군이 장사하러 왔다가 이곳의 풍광과 따뜻한 인심에 반해서 자기 딸을 불러와 눌러 앉았다고
한다.
이 딸이 마을 총각에게 시집을 가면서 중국의 고향마을이 하도 그리워 고향마을의 산수유를 옮겨다 심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산수유 시목이 되었고 이후 산수유가 일대에 퍼져나가면서 마을이름 까지 바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편백나무 숲은 아주 잘 조성되어 있었다.
빽빽한 편백 숲의 초입에서부터 정자가 나타난다.
시간은 11시
비가 촉촉히 내리니 정자에서 식사를 하고 가면 좋겠다 싶었는데 꼭대기 대장이 그냥 가잖다.
밤재 오르려면 힘들다고…..
“우씨.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사실 다른 때 같았으면 새벽밥을 먹고 나왔으니 지금쯤이면 배가 많이 고플텐데 아침에 기주빵을 댓개 먹었더니
별로 배가 고프지는 않다.
하지만 김사장님과 써니총무, 단비와 정인까지 가세해서 맛있게 끓여 놓을 ㅇ계백숙과 닭죽은 어떻게 하고?
귀연은 늘 아침일찍 서두르는게 버릇이 되어서 때 맞추어 점심을 먹으면 얼마 지나지 않고 하산하는 통에 뒤풀이
성찬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꼭대기 대장 말 잘 들어야지.
편백나무 숲은 정자와 침상이 잘 조성되어 있고 숲 사이로 작은 개울 까지 끼고 있어서훗날 숲속의 힐링과 겸해서
일대를 돌아 볼 때 비박지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꼭대기 대장 말 듣고 밤재까지 꽤 올라치나 했는데 편백나무 숲과 계곡이 끝나는 곳에서 큰 임도가 나타나더니 길은
별로 힘들지 않게 편안하고 완만하게 밤재로 휘감아 오른다.
오르는 길에 19번 국도가 내려다 보이고 밤재에 서면 남원 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비는 조금씩 약해졌다.
밤재의 정자는 벌써 다른 여행객들이 점거하고 식사 중이라 우리는 밤재를 너머서 점심을 먹었다.
졸업식 뒤풀이를 위해 식사량을 조절한다고 했는데 복분자에 소고기 불고기에 갖은 반찬들을 한번씩 섭렵하다보니
또 먹을만큼 먹었다.
밤재에서 견두산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몇 개의 봉우리를 거쳐 계척마을 쪽 월암으로 내려서는 산행로가 총 29.8km에
이르는 견두지맥이다.
밤재(490m)-견두산(775m)-천마산(658m)-깃대봉(691m)- 형제봉(622m)-천왕봉(698m)-갈미봉(497m)- 깃대봉(242m)
-병방산(160m)
있을 건 다 있다. 천왕봉이 있고 천마산도 있다.
깃대봉은 2개나 된다.
일대의 산세를 보아하니 이 산길의 풍경도 예사롭지 않을 터 언젠가 한 번을 걸어보고 깃대봉에서 귀연의 깃발을
휘날려야 할 것 같은 필이 팍팍온다.
길은 내림 길을 따라 폐쇄된 주유소와 짓다가 중단된 흉물스런 콘도를 지나간다.
이름도 박물관 주유소
사라진 한 때의 아쉬운 영광을 황폐한 모습으로 쓸쓸히 증거한다.
지자체가 야심차게 진행했던 관광 산동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채 저렇게 씻지 못할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다시 산길로 접어들은 길은 지리산 유스호스텔을 지나더니 가파르게 올라간다.
밤재를 넘는 건 둘레길의 애교
길은 막판에 한 번 붙어보자는 듯 이제 제대로 땡빛을 뿜어내는 태양을 원군 삼아 제법 거칠게 들이 댔다. .
비 온 후의 높은 습도로 오름 길의 열기와 체감온도는 엄청났다.
용궁마을에서 길은 비로소 둘레길의 여유를 다시 되찾는다,
300년된 배롱나무와 사당 그리고 고색창연한 고택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맞은편에 이끼를 뒤집어 쓴 채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느티나무의 카리스마는 순례의 길을 숙연하게 한다.
길은 장안지를 지나 내용궁마을과 용궁마을에 다다른다.
누군가를 칭송하는 비석이 서 있는 곳에 정자가 있다.
참으로 야박하다.
길손의 발길을 멈추어 하고 조상의 덕을 칭송하는 그 자리에 선 정자는 철책으로 둘러 쌓이고 자물쇠 까지 채워져 있다.
무릇 정자의 소임이 지나는 나그네가 잠시 쉬어가며 풍류와 여유를 돌아보게 하자는 것일 진데 어느 인심 사납고 마음이
가난한 후손은 팔 걷어 부치고 조상의 덕에 대놓고 먹칠을 한다.
그 까칠하고 공허한 덕이란 내 알바가 아니라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외평마을로 넘어갔다.
외평마을은 넓은 평지에 있는 남원 가까운 마을로 여기 사는 시골사람들은 웬지 행세께나 하는 부농일 듯하다.
수 많은 농작물들이 뜨거운 태양의 열기 이래서 풍요로운 결실을 향해 왕성한 광합성을 하는 그 길을 따라 19개월에 걸친
우리의 긴 여정은 조용히 마무리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거기 차가운 계곡물이나 따뜻한 온천수가 기다리고 있진 않았지만 우린 화장실 앞의 작은 용수대에서 웃통
을 벗고 오늘의 땀과 먼지를 말끔이 씼어냈다..
오늘도 차가운 맥주와 시원한 수박 그리고 산우들의 정성이 빚은 부침개와 백숙 그리고 닭죽은 정말 맛있었다.
다른 곳에서 뭇 매 맞고 살 빠지면 지리산길이 도로 살을 찌웠다.
평균체중 3kg 증가에 지리산 신령님이 일조하셨음에 이의 제기하고 보상 청구권 행사할까 하다가 아서라!
내 마음이 살찐 게 또 얼마인데…..
괜히 지리산 종주오라고 마음 흔들어 놓으시면 이젠 반쯤 죽다 살아나야 하지 않겠나?
부드러운 바람과 아름다운 대지의 향기가 있고 함께 그 길을 걸어 갈 친구가 있어서 즐거운 길이었다.
내가 걸었던 또 하나의 아름다운 실크로드였다.
나처럼 자연을 사랑하는 산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멋진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일정을 조율하며 아름다운 순례를 이끌어 준 산꼭대기 회장과 늘 뒤에서 치닥거리하고
뒤풀이 준비하느라고 수고하신 써니 총무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 전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꽃다발 하나 조차 준비하지 못한 그 미욱함. 그리고 맛과 분위기에 흔한 들꽃과 망초대라도 걱어 축하하지 못했던
그 빈한한 마음들
요리면 요리 ,운전이면 운전 팔방미인 김시권 사장님 님이 있어 안전하고 행복한 여행길이었다.
잊지 않고 찾아와 졸업식을 빛내준 큰놈,단비 정인 에게 감사하다는 말 전한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걸었던 모든 분들께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산수유 시목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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