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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과 백대명산

마눌과 추는 춤 - 가을의 사량도 지리망산 (100대 명산 제 87산)

 

 

 

 

 

 

 

 

 

 

 

 

 

 

사량도 지리망산

 

10월의 황금연휴

10 3일 개천절 금요일, 4일 토요일, 5일 일요일

10 2일 금요일 표부장 장인어른이 돌아 가셨다.

빈소는 서산시의 서산 의료원

그날 저녁 직원들 모두 함께 문상을 가는데 나는 대전으로 내려갔다.

우성 동기들 모임 때문에

 

가지 운문 여독이 풀리고 마눌 컨디션이 좋아지면  개천절 날 사량도 갈까 했는데 갑작스런 부고로

토요일은 마눌과 함께 서산으로 떠나다 보니 가을의 사량도 여행은 자동 토요일로 연기되었다.

 

괜히 남당리가서 대하나 먹고 올 거라고 그 쪽으로 얼쩡 대다가 1시간이나 허비하고 7시가 넘어서

대전으로 돌아왔다.

본레거시 티비 영화 한편 때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사량도에 가기 위해 새벽 5 5분에 기상했다.

 

10 5일 회사 일정이 있으니 달랑 10 4일 토요일만 나의 날인데 어디론가 떠나지 않을 수 없는

가을 아닌가?

 

용암포에서 9 40분 배를 타고 사량도에 들어 가서 내지에서 금평까지 산을 타고 오는 길에 삼천포에

들러 회한사라 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난 사량도 지리망산에는 10번도 넘게 올랐다.

해마다 사람들이 꼬이기 훨씬 오래 전 때묻지 않은 풍광이 보석처럼 빛나던 그 때부터

젊은 시절 봄이면 늘 사량도로 혼자 떠났다.

  겨울이 지배하던 도시의 갑갑증을 잘 견디지 못했고 주말에 하루라도 떠나지 못하면 안달이 나고

몸에서 군둥내가 나는 체질이었다.

3월 산수유와 매화 소식이 뜨고 나면 남해 물길 따라 뭍으로 먼저 오르는 봄을 만나러 그렇게 훌쩍 혼자

사량도로 떠나곤 했다.

 

마눌도 3번이나 다녀왔다.

하지만 공식적인 마눌과의 100대 명산 종주 시작 이후에는 한번도 같이 가지 못했으니 마눌과 함께 갔던

86개 무도장 리스트에는 당근 빠져 있다.

 

남해는 태풍의 영향권에 든다는 예보 때문에 은근히 걱정되었다.

내륙이라면 아직 뜨거운 태양 아래서 시원한 푸른 가을산행의 낭만을 만끽할 절호의 찬스 일 텐데 섬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기껏 쇠똥 빠자게 내려 갔는데 배가 안뜰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들어 갈 때는 괜찮았는데 나올 때 파도가

높아져 배가 운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혹여 섬 밖으로 나오지 못하면 일요일 회사 일정에 낭패를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산에 가는데 그렇게 재수 나쁘기야 하겠나?

해마다 산신령님께 엎드려 비는데 그 정도는 봐주시것제….

 

대전에서 새벽 6시 출발

산청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용암포 선착장으로 전화를 때리니 지금 배가 뜨고 있다고 했다.

일단 다행스러운데 산청의 날씨는 꽤 쌀쌀하고 바람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우린 흑돼지 김치찌개와 순두부로 아침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사천 ic에서 고속도로를 빠져 나갔는데 

사천 나들목에서 삼천포로 빠지는 길은 도로가 확장되어 넓어진 탓에 교통의 흐름이 아주 양호했다.

우린 밥 먹은 것을 감안하면 2시간 45분 만에 용암포 선착장에 도착한 것이다.

 

사량도에서 나올 배 시간표를 확인하는데 내지에서 4시 배가 있고 금평에서 5 30분 배가 있다.

우린 내지에서 금평까지 종주산행을 할거라서 금평에서  5 30분전에 들어오는 배가 없을까 하고

두리번 거리며 혼자 말을  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친절히 알려준다.

주말이라 4시쯤 임시배편이 운항될거라고….

그럼 들어오는 배편은 아무런 문제없이 해결되는 거다.

아마 사량도에 들어서 10시부터 산을 타면 3 30분에 금평항으로  내려 올 수 있을거구 거기에서 4시경

임시배편으로 용암포로에 도착하면 삼천포에서 회한사라 까지 먹고도 귀향할 시간은 충분하다.

 

용암포에서 사량도 가는 배는 오전 7 40분부터 1시간 간격으로 있다고 했다.

그 탓인지 용암포의 썰렁한 분위기는 봄과는 확연히 달랐다.

물론 통영 가오치 항에서 사량도 들어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는 하지만 용암포에서 떠나는 우리의 9

40배는 예전보다 훨씬 작은 여객선이고 그리 이른 시간이 아님에도 그 작은 배에 승선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날씨는 화창했다.

우리는 갑판에서 오랜만에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그렇게 사량도로 떠났다.

바람은 많이 불었지만 바다는 생각보다 잔잔했다.

 

내지의 풍경은 별로 바뀢 것이 없다.  

우린 포구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일주도로를 따라 내지 등산로 들머리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내지의 숲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이리 저리 지나 다녀서 그늘 아래는 너무 시원했다.

빤질빤질해진 등로는 내가 오랫동안 사량도에 가지 않은 동안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었

는지 내게 낱낱이 알려 주었다.

 

내지의 산비탈을 치고 올라 능선을 따라 가노라면  쪽빛 푸른 바다가 둥둥 떠오른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다시 멋진 풍경을 대하니 속절없이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어느 해 11월 해무 한점 없는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 한 가운데서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던 사량도의 가

을과 푸른 신록이 솟아나는 4월의 그림 같은 봄은 아직 내 기억의 책갈피에 잘 접혀진 채 남아 있다.

 

젊은 날 사량도는  사유와 은둔의  이어도였다.

견딜 수 없는 날에는 멀리 달아날 곳이 필요했다.

회색도시로부터

다람쥐 같은 일상으로부터

난 점액질의 어둠을 질러 새벽의 담을 넘어서 바다를 건너 갔다.

  스스로를 섬에 유배시키고 기꺼이 그 맑은 고립과 고독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 그림 같은 섬 .

한 마리 새의 눈으로 거친 능선과 푸른 바다를 내려다 보고 어느 암릉 소나무 아래  걸터 앉아 시원한

해풍을 한 번 맞고 나면 세상사 시름은  머리를 풀고 푸른 하늘로 훨훨 날아 갔다.

그걸로 그만이었다.

분노도  욕심도  답답한 세상이 만든 삶의 찌꺼기들도 모두 푸른 바닷물에 말없이 녹아 들었다.

흐트러진 생체 타이머는 다시 리셋되고 막혔던 기와 혈은 다시 뚫려서 내 피는 다시 뜨거워 졌다.

 

오랫동안 그 섬에 가지 않은 건 이젠 그 섬이 더 이상 조용하지 않아서 이다.

난 다시 나의 이어도를 찾아야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내 가슴은 자꾸 딱딱해지고 슬프게도난 좀더 능란

게 세상과 타협하고 무감각해지는 방법을 배우고 말았다.

 

9월의 지리망산에서 마눌과 100대 명산 길에 올랐음을 증거로 남겼다.

바람은 능선에서 계속 불어 주었지만 먼 바다 태풍의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태양은 구름밖으로 분주히  들락날락 거린다.

그늘아래 한참을 앉아 있으면 으실으실 추워지고 그늘 밖에서는 태양아래서는 등이 따가워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는 변덕스런 9월이다.

 

우린 지리망산을 지나 햇살이 뜨거운 능선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마눌은 달마봉 능선에서 우회길을 타고 나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바위능선 길만 고집하면서 

아름다운 섬의 풍경과 해풍을 즐겼다.

 

오지 않은 몇 년 사이에 사량도 지리산은 너무도 많이 변했다.

난이도가 있었던 절벽구간은 예외 없이 나무 계단이 설치되었다.

수직 철계단도 더 넓고 안전하게 보수되었고 밧줄 구간도 나무 계단을 놓았다.

옥녀봉의 변화는 압권이었다.

 

섬처녀 옥녀는 대대적인 성형수술로 도회녀가 되어 버렸다.

.”너 참 낯설다

기암 사이를 연결한 두 개의 출렁다리로 옥녀의 예전 얼굴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세월이란게 그렇게 무상하고  잔인하다.

난 시도 때도 몰리는 사람들이 싫어서 그 섬으로 가지 않았는데  그 섬은 더 많은 사람들을 욕심내서

살을 벗기고 뼈를 깎아 더 화려하게 치장을 한다.

결국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아름다운 자연의 속살을 보여주겠다는 대의 명분아래 우리 산하는 저렇게

피흘리고 있다.

결국 가장 큰 자연의 적은 인간일 뿐

난 때묻지 않은 순수했던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데 ….

 

다시 남해 어느 섬으론가 떠나야 겠다.

더 늦기 전에 잃어버린 나의 섬을 다시 찾아야지…..

조용하고 고독하고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섬

아직 나의 이어도는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가는 길에 금평항으로 배시간을 물어 보았다.

임시 배는 뜨지 않는다고 한다.

그 용암포의 친절한 아자씨는 뭐여?”

아마도 성수기가 지나서 그런 모양이다.

우린 금평항에서 1시간 30분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대항으로 내려가 해변도로를 산책하고 4시 배를

타기로 했다.

옥녀봉에서 올랐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면 대항으로 내려가는 산행로가 있다.

그 길은 경사가 급한 산비탈을 따라 아래로 나 있었는데 내려 갈 때 까지 수많은 잔돌들로 이루어

있었다.

아마도 헬기로 잔돌들을 공수하여 길을 낸 듯하다.

능선에서 주막을 열고 있는 아저씨 말로는 대항에서 내지 까지 30분에서 40분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고

했는데 걸어보니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길 옆에서 장사하시는 할머니는 금방 버스가 온다고 버스타고 가라 하시는데  우리가 걸어서 내지에 도

착할 때 까지 버스는 오지 않았다.

섬 사람들은 그렇게 느긋하다.

그래서 나도 섬에서는 느긋해진다.

버스가 오면 손들고 타는 거고 안 오면 걷는 거고...

 

 

그러고 보니 대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내지 까지 걸어보는 것은 또 처음이다.

걸출한 지리망산 능선에서 굽어보는 사량도 풍경이 하도 아름다워서 길에서 내려다본 사량도의 풍경은

평화로웠지만 그렇게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산 길을 구불거리며 오르내리는 차 길에서 내려다 본 욕지도의 풍경은 산행로의 풍경과 별로 다를 바

없고 여수 앞바다 금오도 비렁길의 풍경은 산길보다 훨씬 아름다웠는데

우리는 4시 배라 여유롭게  도로를 따라 내려 왔는데  여객선이 고동을 울리며 막 용암포로 떠나련던 참이었다.

시간은 3 35

원래 3시 배가 늦어져서 지금 떠나는 거라고 했다.

우린 재수 좋게도 단 5분도 기다리지 않고 용암포 나오는 배를 탈 수 있었다.

20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우린 널널한 선실에서 누어 잠을 자면서 느긋하게 용암포로 돌아왔고 시간도 많이

남아서 삼천포 어시장에 들러 회한사라 까지 먹고 여유롭게 대전으로 돌아 왔다.

 

우리의 가을 섬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우린 시원한 바다를 가슴에 품고 거침없이 불어오는 해풍을 맞았다.

언제나  변함없이 거기 남아 마음을 흔드는 것들

바다와 바람 그리고 지나간 추억에 관해 이야기 하며 그 길을 걸었다.

변함없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던 섬은 그 동안 세상이 눈부시게 변한 것처럼 많이도 변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사량도

사량도도 내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무릉객도 이젠 마이 늙었네?

하지만 난 아직 이런 말을 더 듣고 싶다.

옛날하고 똑 같아….”

내가 사량도가 변함없이 있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