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로 성삼재 도착
산행 들머리 이정표
뒤돌아본 노고단
작은 고리봉에서 내려다 본 풍경
작은 고리봉을 내려가는 산객
작은 고리봉에서 바라 본 만복대
작은 고리봉에서 반야봉 배경으로 원샷
만복대 가는 산죽길
여긴 벌써 늦가을 ....나뭇잎은 모두 떨어지고...
홀로 외로운 용담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다.
계속 따라오다 멀어진 반야봉
만복대가 지척에 보인다.
아직은 끄떡없지?
우리기 걸어 온 까마득한 길
만복대에서 조망
만복대 조망 - 높은 고도로 인해 다시 우뚝하게 다가 온 반야봉
가야할 능선 길
머나먼 노고단
세월은 많이도 흘렀다.
백두대간의 시작점에서 내가 정말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던 그 시간도 서둘러 과거의 강으로 갔고 난 아들과
다시 그 길을 되짚어 간다.
온갖 세상의 아름다움이 그 길 위에 있었다.
나는 시간이 풀어 놓은 추억과 감동을 배낭에 담으며 바람처럼 그 눈부신 세월을 밟고 지나갔다.
2년이란 세월이 얼마나 짧은지 그리고 그 2년의 여정이 얼마나 많은 감동과 기쁨을 품고 있는지…
백두대간을 종주할 수 있었음은 행운이었고 그 장정을 끝내고 삶과 자연에 대한 더 깊은 애정과 따뜻한 사랑을
간직할 수 있음은 살아가는 날의 축복 이었다.
아들아
너와 함께 아름다운 그 길을 다시 걸을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세상에서 메마른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고 길을 걸어 가는 기쁨과 더불어 누리는 행복에 대해서 알려준 그 길
오늘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다.
아버지의 30년이 그리 빨리 지나간 것처럼 세월은 기다리는 법이 없고 사람은 쉬 늙어 가는데 더 늦기 전에
우리가 기억할 만한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으니 얼마냐 좋으냐?
이렇게 건강한 채로 너와 나란히 그 길을 걸어 가고 있는 오늘은 참으로 소중한 날이다.
훗날 너의 기억 속에 땀과 고난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는 늙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또 많은 세월이 흘러 네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도 우리가 누린 아름다운 대자연의 감동이 네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고 그 사랑이 대물려 유전되길 바란다.
하지만 진정 내가 바라는 것은 대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네 인생이 좀더 풍요롭고 행복하지는 것이다.
아들아 우린 정말 부자임이 확실하다.
피를 나누고 땀과 고난의 등짐을 함께 나누며 가슴 가득 사랑을 채우고 이렇게 광활한 우리의 영지를 둘러
보고 있지 않느냐?
갑작스런 회사일 때문에 산우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트레킹으로만 구성했던 빡빡한 울릉도 휴가 일정을 마무리하고 우린 다시 백두대간 길에 올랐다.
아들녀석이 너무 피곤할 것 같아서 아짜피 산우들과 함께하지 못한 길이니 다음에 시간날 때 해도 된다고
했는데 녀석왈 “어짜피 갈 길인데 빨리 하시죠!”한다.
ㅋ 기특한 녀석.
가을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붉은 나무 숲이 지나간 아쉬운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어쩐지 가을이 낭만에는 열차가 더 어울릴 것 같아서 기차 여행을 하기로 했다.
욕심 같아선 밤열차로 구례에 가서 만복대 일출 까지 욕심내고 싶지만 아서라 애 잡을라!
우린 서대전 발 6시 26분 KTX 기차를 타고 구례로 갔다.
생각 보다 배낭을 멘 산객은 많지 않았다.
택시를 탈까 했는데 때마침 버스가 들어와서 기사님한테 물어보니 터미날 까지 가는데 거기서 8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연결할 수 있다 한다.
빠듯한 버스 시간 때문에 아저씨는 달랑 1명 남은 아주머니한테 양해를 구하고 정류장 하나를 생략하면서
안개 피어나는 아침들판을 바람처럼 달렸다.
덕분에 우리는 가까스로 매표하고 버스에 올랐다
“고마운 기사 아자씨”
사실 택시타는 거와 별 차이도 나지 않는다.
택시는 4명만 채우면 인당 만원씩 4만원을 받는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터미날 까지 인당 1400원 그리고 터미날에서 성삼재 까지 4500원
성삼재 오르는 들머리 매표소에서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관리직원인 듯한 청년 하나가 올라 오더니 통행료 1600원 내라고…
내가 숱한 날 새벽에 노고단에 올랐어도 통행세는 또 처음이다.
내 옆의 아저씨는 대놓고 분통을 터뜨리며 청년과 입씨름을 했다.
절에 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어쨌든 이 길이 화엄사 땅이란다.
세상에 국립공원이고 나발이고 간에 풍경 좋고 산수 좋은 곳은 죄 절 땅인 모양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건지?
내가 옆에서 볼멘 소리로 역성을 드는 통에 아저씨 목청은 더 커지고 부아는 더 치밀어오르는 듯 했다.
내가 싸움을 부추킨겨?.
하지만 어쩌랴 저 사람이 뭔 죄가 있다고?
인월 쪽에서 오르던지 더 높은 사람을 잡고 흔들던지…
하여간 우리가 성삼재에 도착한 시간이 9시 30분
주차장은 이미 만차고 차들은 도로변에 줄지어 주차하고 있다.
오호라 때는 바야흐로 추시월 단풍철이라
이제 뱀사골과 피아골로 붉은 단풍이 낭자하게 흘러 내리겠구나
경유지별 시간 | |||
09:30 |
성삼재 |
10:03 |
작은고리봉(1,248m) |
11:30 |
만복대(1,438m) |
12:23 |
정령치(1,172m)약 40분휴식 |
13::20 |
큰고리봉(1,305m) |
14:30 |
고기삼거리 |
15;15 |
노치샘: 여원재 6.7km/정령치6km |
15:37 |
덕운봉 (745m) |
15:51 |
수정봉(804.7m) : 여원재4.4km |
16:22 |
입망치 : 여원재 3.1km |
17:22 |
여원재 |
|
|
이번 여정은 변화무쌍하고 다이나믹하다.
특징적인 5구간으로 뚜렷하게 나누어 진다.
첫 번째 구간은 성삼재에서 제1 고리봉을 거쳐 만복대에 오르는 길로 가을 낭만 가득한 부드러운 억새 능선
길이다.
두 번째 구간은 만복대에서 발이 조금 불편해지는 길을 따라 정령치로 내려섰다가 다시 제 2고리봉으로 오르는
다소 굴곡 있는 길이고 세 번째는 1304m의 제2 고리봉에서 급하게 수직 하강하여 마을 까지 떨어지는 낙차 큰
비탈구간 네 번째는 고기 삼거리에서 노치마을로 가는 평지구간 다섯번 째는 노치마을에서 마을 뒷동산 같은
수정봉에 올라 아기자한 소나무 길을 따라 여원 째 까지 진행하는 마무리구간 이다.
만복대 가는 길
지리산에는 어느 새 가을이 깊어 갔다.
이 멋진 가을날인데도 모두 단풍놀이 계곡으로 빠지고 만복대를 향해 오르는 이는 우리밖에 없다.
가는 길 오름 길에 작은 고리봉이 나서는데 힘들여 정상에 오르니 나이드신 아저씨 한 분 홀로 정상에 앉아
있다.
그 모습처럼 조금 쓸쓸한 고원에서는 우리가 지나온 성삼재와 버스로 달렸던 구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나무들은 마른 잎새마저 바람에 떨구고 억새는 하얀 갈기를 바람 길에 훨훨 날려 보냈다.
만복대
야호 드디어 만복대다.
그 날의 함성과 친구들은 모두 사라지고 오늘 아들과 함께 다시 이 곳에 섰다.
점점 멀어지던 반야봉은 고도가 높아지면서 다시 우측에 우뚝하고 멀리 우리가 지나온 능선이 호쾌하게 조망된다.
가야 할 능선 길은 조금씩 고도를 낮추어 북으로 굽이친다.
가을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고혹의 여인이다.
어제는 화려하게 치장한 채 화사한 웃음과 교태를 날리고 오늘은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로 나와 아들을 위해
한 잔이 맑은 차를 준비한다.
만복대의 가을은 세월을 달관한 원숙함이 따뜻한 미소에 배어나는 그렇게 편안하고 그윽한 얼굴이다.
만가지 복을 전하는 만복대는 그 넉넉함을 잃지 않았다.
복을 지음이 꼭 지세와 연관이 있겠냐 만은 만복대에 서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부드럽게 구비치는 지리세상의
능선과 계곡을 바라보니 절로 마음이 편안해 진다.
만복은 너그럽고 편안한 마음에 깃드는 것이리라
산속에서 소요한 오랜 세월만큼만 내 마음도 둥글어지고 그 만큼 복만 누려도 좋겠다.
푸근한 갈색의 가을이 불러주는 조용하고 감미로운 노래가 좋다.
지리의 품이 이리 넓으니 내 오늘은 그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제 2고리봉 가는 길
정령치로 내려가는 길은 여기저기 암릉과 돌길이 많아 발이 다소 불편하다.
산 길은 40여분 정도 진행되다가 정령치로 떨어진다.
정령치에서 식사를 하고 식수를 보충했다.
아들까지 대동 했으니 충분히 휴식한 후에 특별히 아이스크림까지 하나 물고 배가 불러 둔해진 몸으로 고리봉을
치고 올랐다.
제 2고리봉
고리봉은 능선상에 이정표 하나를 걸고 있을 뿐 1300고지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앞으로 유장하게 흘러가는 능선이 백두대간이 아니다.
백두대간은 이 고리봉에서 바래봉 능선으로 계속 흘러가는 듯한 착각을 이르키지만 애석하게도 백두대간은
고도를 낮추어 바닥으로 자즈러 진다.
길은 거칠게 내려가다가 평지에 다다르면서 완만해 지는데 아늑한 잣나무 숲이 주종을 이룬다..
어떤 아줌마가 백두대간이 뭐하는 거냐고 묻던데 백두대간이 한참 끊어져 있음을 사람들은 알까?
백두대간은 분명 끊어진 모습이긴 하지만 끊어졌다는 것은 어패가 있다.
운봉인근인 여기도 다른 지역에 비해 지대가 높은 지역이어늘…
덕유산에서 내달아 온 백두대간은 그 기상과 격정을 잠시 억누르고 수정봉을 마지막으로 숨고르기에 들어 간다.
암중모색 30여분 길게 누워 휴식을 취하며 조용히 지리산의 태동을 준비하는 것이다.
고기삼거리에서 노치마을 가는 길
백두대간 길이 맞긴 맞는데 마치 둘레길을 걷듯이 평지를 걷는다.
하지만 이 길도 엄연히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충실한 백두대간 길이다.
“산은 스스로 물과 고개를 가른다”
그리하여 이곳에서도 산은 물을 가르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빗물은 삼수령 피재처럼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을 따라 운명이 갈린다.
서쪽 즉 우리가 걸어가는 길의 좌측으로 떨어지는 물은 섬진강으로 흘러 들고 우리의 우측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강의 지류인 남강으로 가서 낙동강으로 흘러 든다.
노치마을은 유일하게 대간 마루금에 위치한 마을이다.
갈대노(蘆) 고개치(峙)
말 그대로 갈대가 많아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우리의 지혜로운 선조들도 일찍이 대간의 고갯길임을 알아보고 노치란 지명을 사용했던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고개의 갈대는 사라지고 일대의 갈대 숲은 농지로 변했을 뿐이다.
백두대간의 유일한 샘 노치샘은 폐쇄되었다.
12년전에는 그래도 그 곳에서 머리를 감았었는데…
수정봉 가는길
세월이 흘러 대간 길의 기억이 희미해도 노치마을 뒤의 큰 소나무 세 그루의 기억은 너무도 뚜렷이 남아
있다.
당당하고 기품 있는 그 모습은 한 번 본 누구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 곳이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라고 했다.
얼어죽은 거지를 묻어주고 마을이 번성한 이후 산에 대한 보답으로 마을사람들이 지금도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계속 오름 길을 올라 덕운봉에 다다른다.
덕운봉에서는 지리산 둘레길 1구간 환종주 구간인 절경의 구룡폭포 갈림길이 있다.
덕운봉을 지나 수정봉 마지막 오름길인 듯 한 곳에서 아들이 귀연의 노란 표지기를 발견했다.
산우들이 지난주 다녀 갔다는 표시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고 다시 힘이 솟는다.
가파르게 치고 오른 곳이 수정봉 인줄 알았는데 수정봉은 거기서 조금 더 가야 했다.
노치에서 수정봉 까지는 1.8 km인데 속도를 낸 덕에 35분 걸렸다.
수정봉
운봉읍 행정리와 이백면 양가리 경계에 산으로 중턱에서 수정이 생성되던 암벽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운봉은 지대가 높은 탓에 수정봉은 운봉읍 주촌리에서는 250m의 낮은 산이 되고 이백면에서는 650미터의 높
은 산이 된다.
수정봉에 도착 시간이 3시 51분
수정봉에서 여원재 까지 남은 거리는 4.4km
10년이 넘어 그 길이 기억이 훨훨 날아간 터라 소요 시간을 잘 가늠할 수 없지만 2시간 정도 예상하면 남원에서
6시 35분발 열차를 타기가 쉽지가 않다.
우리는 좀더 속도를 올리기로 했다.
여원재 가는 길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은 편안한 솔 숲이고 그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다녀서 쉽게 속도가 붙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 여유롭게 길의 부드러움을 음미하며 걸으면 좋은 길이지만 우리는
저물어 가는 해보다도 훨씬 빨리 내달렸다.
녀석은 잘도 따라 왔다.
수정봉에서 약 30분 정도 걸린 입망치를 지나고서도 여원재 가는 길은 몇 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야 했다.
큰 봉우리를 하나 넘어서 뒤돌아 보니 엷은 무지개 빛 노을이 잠긴다.
조용히 해가 저물어 간다.
백두대간에서 기울어 지는 해를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 하루가 쌓여서 무수한 세월을 만들었고 그 세월은 이제 인생의 황혼을 부른다.
더 소중해지는 날들이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오늘이다.
우리는 이제 다 왔을 거라고 생각한 곳에서 두 개의 봉우리를 더 넘었다.
마지막 봉우리 두 개에서는 녀석이 나를 제치고 뛰어 올라 갔다.
“오잉?”
지금도 상당한 속도로 올라 가고 있는데 그리고 산행 시간이 7시간을 넘어서는데 녀석은 뛰어서 올라 가는
것이다.
봉우리에 먼저 가서 헥헥거리며 내가 올라 올 때 까지 쉬는 게 더 편한 모양인데 그렇다고 산행 막바지에
뛸 수 있는 힘이 있다니…
뜨는 해와 지는 해의 차이란 이런 건가?
이렇게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젊음 이라면 백두대간 중반쯤 되면 내가 저 녀석 쫒아가다가 명줄 단축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간 백두대간의 부드러운 솔숲 구간을 음미하지 못하고 광분한 대가로 노치샘에서 여원재에 이르는 6.7km의
구간을2시간 7분만에 주파했다.
여원재
여원재에 내려서니 주막은 간데 없고 왕방울 장군이 반겨준다.
가슴 아픈 전설이 있다고 했다.
왜장에게 정절을 유린 당한 주모는 스스로 가슴을 도려내고 목숨을 끊었다.
주모는 이성계의 꿈에 나타나 승리의 전략과 비책을 알려주었고 장군은 고남산에서 기도한 후에 황산
대첩에서 대승을 이루어 냈다.
훗날 이성계 장군은 그 여인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이 곳에 여원(女院)을 세워 주었다 한다.
그리하여 女院이 있는 고개라 하여 여원재란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고려말 우왕 3년 500여척의 대선단으로 침입한 왜구는 충청,전라,경상 3도를 유린하며 파죽지세로 운봉까지
북상한다.
이때 적장 아지발도가 이끈 왜구가 이성계에게 섬멸되는데 이 전투를 역사는 황산대첩으로 적고 있다
이성계는 운봉의 황산에서 치룬 왜구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조선 개국의 전기를 마련한다.
농민 봉기운동 당시에도 호남지방과 충청 일부지역을 근거로 한 동학군은 백두대간 동쪽의 영남지방으로 진격을
시도하기 위해 이 고개로 진격했으나 운봉군수 이의경의 부하 박문달 장군에게 패퇴하여 남원으로 물러났다.
동학군은 결국 이 여원재에서 패하는 바람에 영남지방으로의 진출이 좌절되었다.
여원재는 이래저래 우리나라 격동의 역사와 애환을 말없이 지켜 온 한 많은 고갯길이다
우리는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여원재에서 하이파이브로 오늘의 승리를 자축했다.
우리는 다시 메고 갈 추억을 여원재에 잠시 걸어 두었다.
10분을 채 기다리지 않고 버스는 바람처럼 달려와 주었고 우린 여유롭게 남원 역으로 돌아와 참았던 갈증을 목젖이
얼얼한 맥주 두 캔으로 날려버리며 의기양양하게 대전으로 귀향했던 것이다.
정령치 가는 길에 뒤돌아 본 가을
정령치 가는 길
정령치 가는 길 - 멀리 반야봉
정령치
정령치에서 큰 고리봉 까지 800미터 가파르게 올라간다.
고리봉 오름길에 되돌아 본 풍경
큰 고리봉
고리봉 오름길 반야봉 쪽 풍경
멀리 만복대
고리봉에서 고기리 삼거리 까지 낙차 큰 가파른 내리막 3.2km
가파른 경사길을 내려와서 완만해진 소나무 숲을 걷는다.
산죽도 있지만
대세는 잣나무와 소나무 길
계단을 내려온 등로 날머리 고기삼거리에 있는 비각
고기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노치마을로 가는 길
이 곳에서 덕치보건진료소를 거쳐 노치샘 가지 구간은 지리산 둘레길과 중복 구간이다.
노치마을 전경
노치마을 정자나무와 백두대간 돌지도
맥두대간에 있는 유일한 생이나 음용불가
12년 전에는 머리를 감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머리를 감을 수도 없음
2012년 12월 9일 지리산 둘레길 첫 출정에서 귀연과 함께 둘러 보았음
노치마을 뒤편의 백두대간 들머리에 있는 소나무
지리산의 기가 덕유산쪽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아준다 함
백두대간이 자즈러지는 이 곳이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
그 옛날 첩첨산중인 이 마을에 짚신을 만들어 팔았던 가난한 거지가 있었는데 추운 겨울에 얼어죽자
묻어줄 곳을 찾을 수 없었다한다.
그런데 우연히 관 하나 들어갈 정도로 눈이 녹아 있는 땅을 발견하고 그 거지를 묻어주었는데 그 이후에
마을의 일이 잘풀리고 자손들이 번창하여 마을사람들이 산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음력 1월 1일밤 12시에
주산제(主山祭) 즉 당산제(堂山祭)를 지낸다고 함
들머리에 있는 백두대간 지도
수정봉 오름길 계단
반가운 귀연 표지기
멀리 지나온 길
입망치 이정표
입망치에서 넘어온 봉우리을 뒤돌아 보고
다시 두 번째 봉우리
기분 좋은 소나무 숲길
가야할 고남산
나를 추월하고 입방치 이후 세번 째 봉우리를 먼저 달려올라와서 휴식중인 태현
우짜 이런 일도 ...
또 하나 넘어가는 가 했더니 산 옆구리로 간다.
느닺없이 넓은 임도와 마주하고..
얘는 정신이 없어요..
차시간만 널널하면 한잔 티고 갈텐데...
다왔네
여원재의 운성대장군
전쟁이나 민란, 반란등이 있을 때마다 항상 쌍방이 서로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접전을 벌렸던
전략적 요충지 이다.
10년넘은 기억이 가물거려서 여원재는 높은 재인줄 알았는데 거의 평지 수준
운봉이 해발 500미터 고지대라 남원 쪽으로 구비구비 내려가야 이 곳이 높은 곳인 줄 비로소 실감한다.
교통 쥑이네 !
교통의 요지라 각 방면으로 가는 버스가 많기도 하다.
남원으로 가는 버스는 약 20분 마다 1대꼴로 거의 밤 10시까지 운행
우리는 10분도 채 기다리지 않아 남원가는 버스에 탑승 저녁 먹을 시간이 없어서 맥주와 간식을 사서 열차에
올랐다.
시원한 맥주 4캔으로 성공적인 대간 땜빵을 자축하고 둘만의 조촐한 뒤풀이를 즐기며 귀향하다.
'아들과 백두대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과 부르는 노래 6 - 백두대간 제 6구간 (무령고개-영취산-깃대봉-육십령) (0) | 2014.11.25 |
---|---|
아들과 부르는 노래 5 - 백두대간 제 5구간 (복성이재-봉화산-백운산-무령고개) (0) | 2014.11.11 |
아들과 부르는 노래 4 - 백두대간 4구간 (여원재 -고남산-복성이재) (0) | 2014.10.27 |
아들과 부르는 노래 2 - 백두대간 제 2구간 (성삼재-노고단 -명선봉-벽소령-음정) (0) | 2014.10.07 |
아들과 부르는 노래 1 - 백두대간 제1구간 (중산리-천왕봉-세석-벽소령-음정) (0) | 2014.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