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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백두대간

아들과 부르는 노래 4 - 백두대간 4구간 (여원재 -고남산-복성이재)

 

 

 

여원재의 아침

주민들은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준 제비가 넘나들던 고개라 하여 ‘연재’라고도 부른다..

 

 

45명 출정 인증

 

 

 

 

 

 

 

 

 

 

평화로운 장교리 장동마을 지나고

 

                                      장동재를 넘는다. 

 

 

 

 

 

완만한 소나무 숲을 올라 간다.

 

가동마을과 우리가 올라온 장동마을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사진 찍는 사이 아들녀석은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소나무 숲 길이 좋다.

오름길이 계속되면서  양쪽을 내려다 보는 성벽 같은 능선을 따라  가는데 탁 트인  양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시원하다.

 

 

대간 마루금에 떡 버티고 있는 묘소

잘 관리된 묘소로 보아 백두대간의 기를 받아 자손들이 번성한 듯

이곳에서 운봉읍 장교리의 합민성으로 연결된다.

쌀을 저장했던 곳이라 합미성이라고도 불린다.

 

 

고남산 오름 길 암릉

 

고남산 오르는 계단 길

 

등로 좌측 산 아래 풍경

 

벌써 많이도 왔네

좌측 반야봉부터 우측 노고단을 휘돌아  춤추며 흘러오는 백두대간 능선

바닥으로 내려선 지난 대간 길은 보이지 않는다. 

 

 

정상은 더 가야 한다.

 

요런 바위도 옆으로 비켜 지나가고...

 

내려다 보이는 운봉 일대

 

능선의 멋드러진 소나무도 만난다.

 

코 앞에 고남산 중계탑이 내려다 보인다.

 

 

 

예전엔 없던 큼직한 표석은 헬기장에 세워져 있다.

먼저 도착하여 기다린 아들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그대에게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회는 없노라고? “

마왕이라 불리던 가수 신해철이 불렀던 노랫말이다.

그는 훌쩍 떠났다.

 

보미 엄마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돌본다.

그녀는 이제 세상의 아름다움과 여행의 기쁨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다..

친구가 있으면 친구와 떠나고 시간이 많지 않아 혼자일 땐 혼자 떠난다.

보미 아빠는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

배 아픈 것을 몇 시간 참다 병원에 갔을 뿐인데 다시 돌아 오지 않았다.

그녀가 떠나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은 슬픔과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다.

인생이 그리 허망한데 아둥바둥 허리띠만 졸라메고 사는 것이 무슨 소용 있는가?”

그것이 어느 날 죽비처럼 내리치던 그녀의 화두였다.

외로워서가 아니라 이 좋은 세상 아까워서 그녀는 떠난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인생이 그리고 더 빨라지는 시간이…..

어쩌면 그것이 한 마디 말없이 떠난 남편이 그녀에게 남기고 간 값진 유산이었을까?

 

정녕 그런 극단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인생은 짧은 여행길이다.

두루마리 화장지 풀리 듯 세월이 흐르는 속도는 나이가 먹어갈수록 더 빨라진다..

세상의 가장 확실한 모든 통계는 100% 확률로 말한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이건 90%쯤 될까?

지금 숨쉬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는 100년 안에 사라질 것이다..”

 

언젠가는 결코 오지 않는다.”

내일은 오늘과 상황이 달라질지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이란 여행을 마감할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몸져 누울 수도 있다.

정나미 없는 세상에 갑자기 다리 힘이 빠지고 입맛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판이 바뀌면 모든 게 달라진다.

지금 당신이 하는 사소한 고민과 그리고 욕심과 집착들은 참으로 공허해 질 것이다.

세상의 소중하다고 세뇌하던 가치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통절하게 깨닫게 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 올 것이다..

그래서 항상 별에,시계에 참새에 물으라  나는 오늘 행복한가? “

 

 

산 행 일 :  201410 26일 일

산 행 지 :  백두대간 4구간

    : 여원재- 고남산 사치재시리봉 아막산성 복성이재

    :  맑고 다소 무덥다.

    :  19m

소요시간 : 7시간 20(식사 약 20)

 

    : 아들 (귀연 산악회 51)  경유지별 시간

08:49

여원재

10:19

고남산(846.4m)

10:30

헬기장

10:33

통안재

11::08

임도

11:50~12:12

식사

12:20

매요마을

13:09

사치재

14:13

새맥이재

14:51

781

15:23

시리봉

15;48

아막성

16:09

복성이재

 

 

 

 

 

 

 

반가운 산친구들과 시작하는 싱그러운 아침이다.

우리는 백두대간 4구간 인증샷을 찍고 출발했다.

오늘 구간은 낮은 포복으로 진행하는 백두대간 구간으로 전반적으로 길이 동네 산처럼 순하고 부드럽다.

등로는 여원재에서 평지 길을 잠시 진행하다가 일대에 걸출한 고남산에 올라선 후 다시 매요마을로 내려서서

평지 길을 따라간다.

평지로 진행하던 대간길은 사치 삼거리 쪽에서 88고속도로 확장관계로 제대로 된 마루금을 우회하여 사치

마을을 통과한 후 마을 끝단과 연결된 사치재에 도달한다.

길은 다시 사치재에서 부드럽게 때론 다소 가파르게 고도를 올리며 시리봉으로 진행한 후 다시 점진적으로

고도를 떨어뜨리며 아막성을 거치고 복성이 재로 넘어가 4구간을 마감한다. .

 

지난 구간 워낙 큰 산인 지리산을 넘어서 만나는 동네 산이라 고남산을 치고 오를 때와 사치재에시리봉을

오를 때 말고는 그리 낙차가 큰 산길이 없어서 백두대간 종주란 기분이 들지 않는다.. 

 

백두대간에 얽힌 설화 (?)

백두산부터 심혈을 기울여 한반도의 혈맥을 이르키던 조물주께서 수려한 덕유 능선을 빚어 내시고 피로가

몰려 왔다.

영취산과 백운산을 이르키고 잠시 졸다 복성이재 까지 내려앉았다가 깜짝 놀라서 부랴부랴 시리봉을 만들긴

했는데 배고프고 심신이 피로해서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다.

다시 대간은 슬금슬금 사치재 까지 떨어지는 중에 하늘나라 내시가 와서 식사하고 하세요했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어난 조물주님 손안에 있던 흙을 털어내고 식사하러 가셨다.

그 때 털어낸 흙이 고남산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신 조물주님께서는 하던 일을 마저 한다고 자리에 앉긴 하셨는데 때는 바야흐로

아지랑이 흐물거리는 춘삼월 호시절이라 밀려드는 식곤증을 어찌 참는다는 말인가?

고남산에서 주저앉은 한반도 혈맥은 다시 조물주님의 쏟아지는 졸음에 운봉벌을 기다시피하며 여원재로

가는데 그 때 마침 상궁이 차 한잔을 내왔던 것이다.

불로장생차 대령하였나이다.”

차 한잔 마시고 정신을 수습하여 여원재부터 작업을 조금씩 진행하신 조물주님, 수정봉을 빗어 놓고 소나무

세그루를 심어 놓긴 했는데 오호통재라 또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애라 모르것다. 조물주님 조각도구 내던지고 어수를 의자에 기대며 본격적인 졸기모드에 돌입 대간은 끊어진

채 한참을 흘러 갔다.

내가 왜 이러지?”

바로 그 때  오래 전에 한반도 관찰사로 내정되어 있던 환웅님이 한반도를 굽어 살피던 중 그 갈팡거리는 모양을

보고 큰일났다 싶어 부랴부랴 입궐하였다.

아바마마 통촉하여 주옵소서!”

조물주님 놀라 일어나며 

내가 또 졸은 거여?”

아이구 영생차를 마시니 죽을 일은 없구 그냥 졸려서 죽것네 너도 내 나이 돼봐라!”

그리고 휑하니 침전으로 들어가시며  야 나머지는 니가 혀라!”하였다.

환웅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고기리 까지 자즈러진 혈맥을 혼신의 힘을 다해 일으켜 세웠고 급기야 한반도

최고의 명품 지리산을 빚어냈다.

아 원통하도다.

그 때 조물주께서 졸지만 않으셨더라면

일찌감치 환웅님께 작업을 맡겼던라면 1200키로 잘룩한 백두대간은 한반도를 아얘 일본까지 댕겨 늘려서

10000킬로로 만들어 버렸을 텐데…..  

안타깝도다.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 다만 흘러갈 뿐이다.

 

대박 !”

근데 무릉객 지금 모하는 시츄에이션 ?

불경스럽게 조물주님을 모독,폄하하고 황당무게한 야그로 혹세무민하는 거 아닌가?

소설가 이병주님 

하나의 사실이 햇빛 아래서는 역사가되고 달빛을 받으면 전설이 된다했거늘

내 뜽금없는 소리가 별 빛이라도 받을 일  있겠나?

하찮은 무릉객이 세치 혀로 설화를 조작한들 누가 믿을거며 그걸로 또한 누가 시비 걸일 있겠는가?

용서하시길다 웃자는 이야기고 재미 있자는 얘기라네

설설 기어가는 백두대간이 아깝고 서러워서 그냥 웃으며 그 길을 넘어가자는 무릉객의 넋두리 일뿐

 

고남산 가는 길

우린 멀리 고남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는데 등로는 고남산을 옆으로 두고 말굽형으로 돌아장동마을을

지나고 장동재를 넘어서 진행한다.

장동마을은 운봉읍 장계리에 속한다.

운봉읍은 거문고의 명인 옥보고가 은거하면서 거문고를 전수한 곳으로 예부터 문화 예술이 번성한 고을이며

십승지의 한 곳이다..

 

십승지(十勝地)란 천지 대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에 좋은 10군데의 지역을 말한다.

정감록이나 격암유록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 인간은 끔찍한 질병과 굶주림,

추위와 더위, 공포에 시달리게 되고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인류는 절멸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십승지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러한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목숨을 보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자손이 끊기지 않고 후세에까지 보존될 것이라고 하여 재난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십승지가 있다고 하는 곳은 다음 열 곳이다.
1.
영월 정동 상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
2.
봉화 춘양 일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
3.
보은 속리 난증항 일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화남리 일대
)
4.
공주 유구 마곡 두 강 사이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
5.
풍기 차암 금계촌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
6.
예천 금당동 북쪽 (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
7.
합천 가야산 남쪽 만수동 일대 (경북 합천군 가야면 일대
)
8.
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아래 방음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
9.
부안 변산 동쪽 호암 아래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10. 남원 운봉 두류산(지리산) 아래 동점촌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정감록' 에 따르면 이 도시들보다 지리산으로 오르는 중간지대인 운봉 (雲峰) 을 십승지의 하나로 꼽고 있다.

운봉은 오늘날 전북 남원시 운봉읍과 그 주변을 가리킨다

이곳은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가 연달아 나며 가히 오래 몸을 보전할 수 있는 곳" 이라고 했다.

운봉은 동으로 팔랑치, 서쪽에 여원치라는 큰 재를 두고 있다. 북에는 덕유산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막고 있고 남에는 지리산이 자연경계를 이룬다.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운봉으로 가려면 각각 팔랑치와 여원치를 넘어야 한다.

가령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려면 이 두 재만 단단히 지키면 된다.

해발 평균 450m로 서울 남산의 두배 높이에 자리한 운봉은 그런 점에서 '하늘의 요새' 라고 하겠다.

고려말 남해안을 날뛰던 왜구들도 이곳을 범하지 못했고 근세의 동학농민전쟁은 물론 해방 후 빨치산전투에서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인터넷 발췌

 

운봉은 또한 판소리 동편제의 고향이다.

발성이 가볍고 소리의 소리의 꼬리가 긴 서편제는 전라도 서남 지역의 소리고, 무겁고 호쾌한 발성의 동편제는

백두대간 아님 즉 전라도 동북지역인 이곳 운봉에서 태어났다.

지리산 둘레길을 순례하다 보면 비전마을에서 이성계의 황산대첩비와 그 옆에 잘 조성되어 있는조선의 가왕

송홍록과 국창 박초월의 생가를 둘러볼 수 있다.

 

황산의 실제 위치는 인월 가까운 곳에서 임천강을 면하고 있는 695미터의 암벽으로 형성된 산으로  고려 우왕

6(1380) 9 5 10배가 넘는 왜구를 이곳 황산협곡에서 섬멸시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선조

10(1577) 화수리 강변에 황산대첩비를 세운 것이다.

화수리 비전마을에는 황산대첩 사적비와 황산대첩비,파비각 어휘각 등을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빼놓지 말고 돌아보아야 할 곳은 운봉읍 행정리의 마을 숲과 심산리 소나무 숲이다.

행정리 마을 숲은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을 받은 곳이고 심산리 소나무 숲은 오랜 세월의 풍화를 견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멋드러진 자태로  풍치를 자아내는 곳이다.

 

완만하게 오르는 길 중간에 잠시 우리가 올라온 장동마을과 가동마을 일대가 내려다 보이고 등로는 점점 가팔라

진다.

잠시 사진 찍는 사이 아들녀석은 선두팀하고 휑하니 가버렸다.

오늘 컨디션이 괜찮은 모양이다.

바람이 없어 날씨는 약간 더운 편이지만 솔숲이 무성하고 양쪽이 트인 성과 같은 길에서는 제법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었다

가는 길에 산이님이  아들이 지나가는 것을 못 보았다고 하는 통에 혹시 길을 잘 못든게 아닌가 해서 전화를

넣었더니 앞에서 어떤 아줌마와 함께 간다고 한다..

고남산 아래 로프가 메어진 바위를 지나자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 위에서는 시원하게 일대가 조망된다.

계단 위 봉우리에서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오르자 아래로 송신탑이 보이고 고남산이 나타났다.

 

고남산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치려고 이곳에서 제를 올렸다하여 태조봉또는 제왕봉이라고도 한다.

일대에 우뚝하여 사위가 모두 내려다 보이고 우리가 지나온 고리봉과 바래봉 그리고 수정봉 능선길이 한 눈에

조망된다.

사방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었다.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다가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다..

아이구 아들이 없어요 !”

별로 알바 할 데도 없었는데

사방을 둘러 보아도 보이지 않는데 조금 더 내려가자 안부의 헬기장에 서 있는 거대한 표석 옆에서 녀석이 손을

흔든다.

같이 가는 아줌마는 휑하니 가버리고 표석 앞에서 혼자 한참 기다렸단다.

우리는 뒤이어 내려온 산 친구들에게 부탁하여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출발했다.

 

매요마을 가는 길

길은 가파르게 내려서서 저수지를 끼고 돌아 가다가 통안재로 떨어진다.

통안재는 포장도로로 몇 굽이 산길과 마주치면서 매요리로 내려선다.

시간이 12시가 다 되어 조금씩 출출해지는 터라  매요리로 내려서기 직전 능선에서  뒤이어 도착한 일행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매요리는 식사한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매요마을

매요마을은 운봉읍 매요리로 지세가 말의 허리에 해당되는 형국이라 하여 ‘말 마()’자와 ‘허리 요()’자를

합하여 마요리(馬腰里)라 칭하게 되었는데 임진왜란·정유재란이 7년 만에 끝나자 고승 사명당(유정(惟政))

산천을 두루 유람하다가 마요리에 오게 되었고, 사명당은 매화의 꿋꿋한 정기가 감도는 것을 보고, 이 마을

사람들은 매화같이 선량할 것이니 지형과 인심에 맞게 매요리(梅要里)로 고치는 것이 합당하다 하여, 그 후부터

매요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진즉 알았으면 동네에서 매화나무좀 찾아 볼 걸 그랬다.

아무래도 물이 좀 부족할 것 같아서 한 집의 대문을 밀고 들어 갔는데 할머니 한 분이 홀로 담배를 피고 계셨다.

식수 보충을 부탁 드리고 사치마을 가는 방향을 물었는데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

물을 채우고 나가는데도 다시 방향을 이야기 해주고는 그래도 혹여 길을 잘못들 까봐 걱정이 되셨는지 뒤 따라

나와 몇 번 불러 세워 방향을 확인시키고 우리가 매요휴게실 방향으로 길을 제대로 잡을 때 까지 대문 앞에 서

계셨다.

꼭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같아서 코가 찡했다.

 

넓은 마당에 마을회관은 낯이 익다.

12년 전  복성이재에서 출발하여 시리봉을 넘어와 점심식사를 했던 곳이다.

매요 휴게실에서는 먼저간 일행들을 만났다.

아주 여유만만하다.

그 먼 길을 가면서 취사장비 까지 짊어지고 대간 길에서 소주를 나누며 삼겹살 까지 구워 먹는다.

덕분에 우리도 소주 한잔과 고기 몇 첨을 얻어 먹는 대간길 호사를 누렸다.

 

사치재 가는 길

대간이 왜 이려?”

다시 바닥에 붙어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는 백두대간이 안스럽고 아들녀석 마음이 해이해질까 걱정스럽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비실대는 대간을 보기는 힘들어 질 것이다.

잠시 도로를 따라 가다 산길로 접어들긴 하는데 길은 이내 다시 돌아 나와 도로와 합류한다.

등로는 포장 국도를 따라 사치삼거리 까지 진행하는데 88고속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유치재로 연결되는 산 길을

따라 갈 수 없다.

우리는 고속도로 위 유정육교를 건너 사치마을로 들어 서서  그 옛날과 같이 사치 마을을 관통하여 사치재 까지

진행했다.

사치재에는  복성이재 까지 7.2km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이정표 바로 우측으로는 대간 길을 끊어내고 

확장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사치재

사치재 아래에는 옛날 전란시절 재 아래 숲 속에 몇 집이 살고 있었다 한다.

군사들이 이곳을 지나며 아낙이 베 짜는 소리를 듣고서도 그 새소리 참말 처량하다하면서 동리가 있는 것을

모르고 지나 쳤다 하여 모래재라 이름 하였다고 전해진다.

풍수설에 의하면 비안낙사(飛雁落沙)라 하여 기러기가 모래밭에 앉은 형국의 지형이란다.

 

시리봉 가는 길

11월의 태양도 그 열기가 대단하다.

바닥을 설설기는 대간 길을 따라 오다 보니 마음이 해이해져서 갑자기 기력을 회복하여 올라치는 대간길이 힘들게

느껴진다.

무릉객 정신차려라 ! 오늘은 가장 수월한 대간길이여

한참 힘들게 올라서 봉우리 안부가 나타나는데 예전에 불이 난 곳인지 관목들 밖에 없어서 쉴만한 그늘이 별로 없다.

그 다음부터는 완만한 오름길이 지속되며 동네 뒷산처럼 길이 부드러워지고 운봉마을이 평화롭게 내려다 보인다.

조금씩 가파라지는 능선 중간에  묘소가 있는 쉼터를 지나 계속 오르면 큰 바위가 나타나는데 그 바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장관이다.

멀리 아스라한 지리산 주능선과 먼발치의 고남산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능선들이 한눈에 조망된다.

 

그 봉우리를 넘어서니 새맥이재에 당도한다.

새맥이재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술술 불어 왔다.

여긴 사람과 바람이 같이 넘는 길이여

무더운 날 바람 길에는 무조건 쉬어 가는 법이라 배낭을 내리고 털썩 주져 앉았다.

푹 쉬어 갈거라 하니 태현은 아얘 누워 버린다.

삽겹살 굽던 일행들과 진달래 님이 지나가고 요산요주님이 도착했다.

한참 쉬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아들왈 이게 푹 쉬는 거예요?”한다.

그럼 아얘 누워 잘래?

 

시리봉은 시원한 소나무 숲 길을 따라 봉우리를 두어 개 더 넘어서 거대한 입석이 수문장처럼 비키는 길을

올라야 비로소 나타난다.

 

시리봉

시리봉에서는 우리가 가야 할 봉화산과 오늘 우리의 목적지인 복성이재와 연결된 743번 국도가 멀리 산

허리를 지나가는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우리가 가야할 등로는 이제 여유롭게 고도를 낮추며 약간 죄측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한 눈에도 오늘 산행은 이제 여유로운 하산 길만 남았다는 감이 팍팍 온다.

가다가 아들한테 오늘 산행은 거져 먹는 거야 했더니

거져는 아니지요한다.

 

복성이재를 향하여

다소 가파른 철쭉군락 길을 내려서니 길은 한 결 편안해진다.

내려가는 길에 개구리가 한 마리 튀어 올랐다..

그래도 삼사백 고지는 족히 될 텐데 가을이 깊어가는 날에 개구리라니

아주 성질 느긋한 넘이다. 

모두들 불타오르고 마른 잎새 까지 떨어뜨리는데 아직 푸르뎅뎅한 저  나무처럼

녀석은 도망가는 개구리를 계속 따라가서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다시 놓아 준다..

 

가는 길에 아막산성이 있다.

시리봉에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 1.8km 내려온 지점이다.

여기가 백제에서는 아막성 , 신라에서는 모산성이라 불린곳으로 두 나라의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했던 전략적

요충지다..

성의 둘레가 632.8m 정도로 추정되고 주변에서 기와조각과 백제토기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에서 마주한 역사의 현장은 지난 10년의 추억도 일깨워 주지 못한 채 쓸쓸히 세월에

잊혀가고 있었다.

아막성터를 내려오면 바로 이정표가 선다.

복성이재는 1.2km남았다.

편안해지는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작은 임도를 두 번 만난다.

다 왔다는 생각이 들지만 대간의 대부분 재는 임도를 따라 가다 만나는 게 아니라

등로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만나게 되어있다.

우리는 대간 길의 마지막 페인트모션을 즐거워하며 복성이재에 내려섰다.

 

복성(複星)마을에서 연유되어 생긴 이름인데 그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복성마을은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와 남원시 아영면 성리 사이에 있는 조그만 한 산골마을로 행정구역으로

번암면 논곡리에 속한다.

이 마을은 백두대간의 능선이 크고 작은 봉우리를 이룬 첩첩산중이어서 농로도 제대로 없었다.

엣날에 변도탄 이라는 기인(奇人)이 있었는데 나라의 군량미를 관리하는 양관(糧官)으로 있었다.

어느 날 천기를 보고 삼년 내에 국가에 큰 전란이 있을 것을 알았다. 앞으로 전란에 대비하여

국방을 튼튼히 할 것을 상소 했으나 평화시에 흑세무민(黑世誣民)한다는 이유로 삭탈관직을 당했다.

변도사는 하는 수 없이 피난처를 물색 하던 중 지리산을 의중에 두고 천기를 보니 북두칠성의 복성(複星)

갑자기 남쪽에서 비치므로 별빛을 따라 지리산 쪽으로 가다가 별 빛이 멎은 곳에서 쉬었다. 이곳이 오늘날

복성부락에서 약간 떨어진 웃 복성마을이다.

변도사는 이곳에 움막을 짓고 피난을 했으며 전란 후에도 머물러 살게 되는데 그런 연유로 이 마을을 넘어가는

길을 복성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인터넷 발췌

 

먼저 온 산우들이 반색을 하며 과일을 나누어 주고 이동 베이스캠프는 불타오르는 복성이재의 단풍아래 휴식하고 있다.

산우들은 거의 내려왔다.

몇몇 산우들이 사치삼거리 쪽에서 대간이 고속도로 공사로 끊어진지 모르고 유치재쪽 산길을 따라 갔다가 되돌아

느라 좀 쳐져 있고 항상 후미조로 함께 움직이던 양반곰과 크로바님,낯도깨비님을 마지막으로 모두 내려왔다.

시간차도 별로 나지 않고 크게 뒤쳐지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장수번안 전주식당으로 이동하여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소주를 한잔 타서 마시는 맥주 한잔에  거친 대간길의 피로와 갈증은 훨훨 날아 갔고 산우들과의 정담을 나누며

백두대간 4구간의 마무리를 축하했다.

아쉬움이라면 인원과 시간이 나누어져서  모두 함께 건배하며 인사를 나룰 기회가 없었다는 거

차차 친해질 것이다.

점점 더 정이 드는 대간 길처럼

 

아들아 오늘 너는 무엇을 느꼈느냐

그렇게 달고 시원한 맥주를 마셔본 적이 있느냐?

먼 길을 걸어 내려왔을 때 산우들이 쳐주던 박수와 격려를 받으면서  그리고 거친 길의 시장함으로 순식간에

비워내던 그 촌돼지 김치찌개를 그렇게 맛나게 먹으면서

그리고 그렇게 어울려 신나고 즐겁게 떠들던 아저씨들을 보면서 너는 무얼 느꼈느냐?

 

무엇보다도 대간을 종주하겠다고 의지가 강하고 산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라 앞으로의 지속전망도 상당히

밝은 아주 양호한 대간 팀들임을 새삼 느낀다.

사실 워낙 먼 거리라 서로간 페이스를 맞추기 힘들지만 도중에 함께 걷게 될 때 서로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인사도 나누고 또 오늘처럼 더 친해질 수 있는 자리가 앞으로 많았으면 좋겠다.

귀연의 1세대들이 대간을 통해 깊은 우정을 나누면서 귀연을 이어왔듯이 오늘 대간을 같이하는 이들도 서로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고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산에서 만난 사람치고 그리 모진사람 못 봤다..

정주고 뒤돌아보지 않고 귀연을 떠난 몇몇 아쉬운 친구들 빼고는 ….

계절의 낭만에 기분 좋은 취기가 더해져 아들과 나는 버스 안에서 잠들 생각도 잊은 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집으로 돌아 왔다.

 

 

 

 

 

 

매요마을을 향해 계단길을 내려간다.

 

포장임도를 만난다.

 

아랫 쪽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되지만 구불거리는 길이 더 멀다.

화살표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면 메타세콰이어 나무 사이 지름길이 있다. 

 

 

기둥에 리본ㄴ이 달린 요기로...

 

 

다시 포장임도 에서 한번 더 지름길로...

 

그리고선 다시 임돌르 따라 죽 내려간다.

 

다시 나무사이 숲길로 들어간다.

 

 

 

마루금에 있는 묘지 - 볕이들지 않는 소나무 숲 음지라 가문의 영광을 위해 빨리 이장하는 게 좋을 듯  

 

임도길을 만나다.

 

 

가는 길 우측 옆으로 내려다 보이는 저수지

 

                           길은 휘돌아서 작은 저수지와 고남산을 올려다 본다.

 

                            너도 가을을 타는 구나

 

 

고속도로가 보인다.

 

                            즐거운 식사시간

 

 

야생,천사,산산애,산미남부부,알티엔

 

 

 

매요마을 가는 통로

 

 

 

 

매요마을 풍경

 

 

오메 반가운거!

다른건 기억 안나도 이 매요마을 회관에서 밥먹던 기억은 살아 있다.

 

매요 휴게소에서 일행들에게 소주 두잔과 돼지 삼겹살 세첨 얻어 먹다.

취사장비 까지 챙겨서 백두대간 종주하는고수들 처음 보네

 

 

 

매요마을 교회

 

따지 않아 휘어지는 감나무

 

도로를 따라가다가 좌측 산길로 들어선다.

 

산 길에 접어들며 바라본 도로

 

계속 산길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밭둑을 휘돌아 등로는 다시 도로와 만난다.

 

철없는 나비도 아직 대간 길을 나른다.

 

도로를 따라 사치마을 가는 길

 

 

우리가 내려 온 고남산이 아득하게 보인다. - 위대한 워킹

 

 

 

 

 

 

뭐 망설일 것도 없고 마을구경하면서 쭉 가는 된다.

사치재는 마을 끝나는 곳 까지 게속 올라 간다.

 

 

가죽이 아니라 박을 말리고 있는 풍경

 

 

 

                                   어느 우사 아래 비석

 

 

끊어진 대간 길 - 이 공사가 끝나야 유치재를 밟을 수 있는데 ...

12년 전에도 사치마을을 통과 했음 

 

사치재  -오늘의 목적지 복성이재 가지는 7.2km

하지만 날씨는 점점 여름처럼 무더워 지고 등로는 시리봉 까지 하염없이 올라 간다.

 

제1봉우리 헬기장에서 잠시 휴식

 

뒤 돌아 보니 고남산ㄴ은 저리도 아득하더라

 

봉우리 헬기장 등로로 다시 출발

 

등로는 부드러워지고 작은 관목 숲길이 평화롭다.

 

가는 길 좌측 풍경

 

벌목된 동네 야산 분위기

 

 

등로 우측 길 풍경.

 

저 봉우리는 아직 시리봉이 아니다.

 

 

 

두 번째 쉼터에는 다시 묘소가 있다. -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발견한 세번 째 묘소

지형 설명을 해주시는 청산님

 

오름길에 땀이 많이나서 힘들어 하는 요산요주

 

멀리 지나온 고남산과 고속도로 고가가 보인다.

 

우리가 걸어 올라 온 부드러운 능선 길

 

또 올라 간다.

 

 

무명봉  - 여긴 벌써 낙엽이 무성한 가을

 

드디어 새맥이재 도착

 

푹 쉬었다 간다는 말에 아얘 드러누워 버린 아들

 

 

 

이젠 잠잘 시간이란다.

 

시리봉 가는 시원한 소나무 숲길

 

이런 바위가 있는 곳을 지나면

 

봉우리의 멋진 쉼터 의자   781봉 앞봉우리

 

 

781봉

 

틈만나면 눕는다.

 

 

또 봉우리를 먼저 치고 올라가는 알티엔

 

 

지나 온 능선길 조망

 

시리봉이 코앞에 보인다.

 

키높이 철쭉 길을 지난다.

 

시리봉 입석

 

시리봉 조망 - 저수지 좌우측으로 함양군 아영면 구상리와 일대리가 내려다 보인다.

                   

우리가 진행해야 할 능선 길 -  도로 위에 다음구간 봉화산이 있다.

산허리를 관통하는 도로가 743번 지방도로 우리가 내려설 복성이재와 연결된다.

앞에 있는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면 아막산성이 있고 길은 부드러운 내림길이다. 

 

                           가야할 능선 길

 

 

                           철쭉길 사이로 내려선다.

 

                            계단을 내려오다 미끄러 넘어 지자 다친 시늉을 하는 녀석

 

 

편안한 숲 길을 지난다.

 

 

우린 이렇게 살아 갑니다.

 

봉우리 오름길

 

성벽의 잔해인가?

 

 

 

작은 봉우리에서 뒤돌아 본 시리봉

 

멀리 보이는 산이 고남산인 듯

 

 

멍청한개구리 - 잡지 말랬는데 굳이 잡아서 확인하는 아들 

 

헐 죽다 살았어!

 

드디어 나타나는 아막성 표지

 

쌓아진 아막성 흔적

 

 

 

 

허물어진 성벽

 

 

얼마 남지 않았다.

 

포장임도 - 다 내려온 줄 알았는데 아니네  / 국도로 내려서야지 이런길의 마무리는 없음

 

다시 봉화산 이정표 쪽으로

 

 

 

또 만나는 비포장 임도길 - 국도가 빤히 보이지만 여기도 아니네

 

 

다시 올라감

 

 

복성이재는 바로 여기여

 

길옆에서 기다리는 이동베이스 캠프

 

깊어가는 가을

 

 

 

 

 

 

 

 

 

 

 

 

촌돼지 김치찌게 정말 맛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