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할머니는 95세 까지 사셨다.
할머니 위로 그 나이 만큼 사신 분들 4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병자호란이다.
그 때는 활과 조총으로 싸우고 말을 타고 다녔다..
천지창조는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천지개벽은 할머니 네 분의 삶보다 짧았다.
땅 위로 굴러가고 , 땅속으로 달리고 하늘을 날라간다.
고래처럼 바닷속을 헤엄쳐 가고 더 갈 데가 없어진 인간은 달나라 까지 가서 옥토끼를 쫓아내고 계수나무를
뽑아 버렸다.
찰라의 풍경을 잡아내는 기술이 나오더니 목소리가 훨훨 하늘을 날고 상자 안에 세상의 재미를 들여 놓은 것도
부족해서 www란 거미로 세상을 옭아맸다.
하도 머리를 많이 써서 머리가 다 빠졌던 스티브 잡스라는 마술사는 아얘 손바닥에 세상을 넣어 놓고 멀리
도망쳐 버렸다.
내 기억에 울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린 또래 할머니들은 한 분도 없었다.
우리 할머니 임종을 지키신 아버님과 친구분들도 한 분씩 세상을 떠나 갔고 종삼이 형과 내 친구 종인이는 80을
넘기신 아버님 보다도 먼저 떠났다.
얼마 전에는 항상 싱싱해 보였던 자옥이 누님도 훌쩍 떠나 갔다.
가끔 지난 앨범을 꺼내 본다.
후지필름, 코닥필름 만드는 회사가 잘 나갈 때 판치던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들…
아직 그다지 빛이 바래지 않은 그 시진첩에는 결코 짧진 않지만 순식간에 지나간 젊은 날들의 아쉬운 추억들이
가지런히 표구되어 있다.
커다란 카세트 녹음기를 갖다 놓고 대학시절 금강 다리 밑에서 춤추는 사진도 있고 직장에 첫발을 디디고 동료
들과 자전거 하이킹 가서 찍은 사진도 있다.
싸리 꽃 향기의 기억마저 아직 남아 있는 어느 지나간 세월의 길목에 갓난 아이를 어깨위로 들어 올리며 웃고
있는 청년 하나 서 있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전해주는 추억은 이리 선명하고 그 기억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딸래미는 시집갈 때가 되고
난 퇴직할 때가 되었다.
손에 잡힐 듯한 그 기억의 날 위로 30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이제 엊그제 같은 그 만큼 더 살면 이 세상의 소풍과
여행이 거의 마무리 될 것이다.
울할머니가 그러시고 울아버지가 그러신 것처럼 …
아직 쓸만하다고 우기는 젊은 노인 둘이 30년 전 사진을 들여다 보며 웃는다..
열심히 살고 재미 있게 논다고 놀았는데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갔다.
짧은 인간의 역사와 할머니와 아버님은 똑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허리가 온전하고 다리가 튼튼한 때 더 넓은 세상을 누리라고…
더 멋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권세와 부귀영화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더 늦어지면 다리에 힘이 먼저
빠지게 될 거라고….
150억년 우주, 50억년 지구에서 100년도 못살다 가는 인생 길
고뇌하고 한탄하며 보내기에 인생은 너무도 짧다.
오늘도 쉬지 않고 늙어 가는 사람들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은 열심히 살아온 나를 위해 헌정하라!
난 오늘도 봄빛 가득한 우리 산하를 걷는다.
단순한 그 걸음이 행복을 이끌고 내 영혼을 노래하게 한다.
“우물 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할거 다해보고 신나게 살았던 버나드 쇼 옹이 묘비에 그렇게 새겼다는데 할머니처럼 어느 날 걷
지 못하게 되기 전에 난 부지런히 길을 걸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산 행 일 : 2015년 4월 12일 일
산 행 지 : 아들과부르는 노래 15- 백두대간 15구간
코 스 : 작점고개-무좌골산-용문산-국수봉-큰재-회룡재-개터재-위왕실재-백학산-개머리재
날 씨 : 흐리고 바람이 시원하다..
거 리 : 26.9km
소요시간 : 약 9시간 30분 소요
동 행 : 귀연산우회 대간꾼들 44명
산 행 일 : 2015년 4월 12일 일
산 행 지 : 아들과부르는 노래 15- 백두대간 15구간
코 스 : 작점고개-무좌골산-용문산-국수봉-큰재-회룡재-개터재-위왕실재-백학산-개머리재
날 씨 : 흐리고 바람이 시원하다..
거 리 : 26.9km
소요시간 : 약 9시간 30분 소요
동 행 : 귀연산우회 대간꾼들 44명
시간 |
경유지 |
비 고 |
08:07 |
작점고개 (340m) |
출발 |
08:24 |
무좌골산 (473.7m) |
|
09:29 |
용문산(730m) |
|
09:38 |
이정표 |
국수봉1940m, 웅북리(상웅), 용문산(370m) |
09:51 |
이정표 |
국수봉1490m, 용문산정상 820m |
09:56 |
이정표(안부쉼터) |
국수봉1210m, 용문산정상 1100m |
10:09 |
이정표 |
국수봉 0.65km(30분), 용문사 3.0km(1시간 30분) 국수봉 까지 실제 16분 소요 |
10:22 |
전위봉 |
|
10:25 |
국수봉정상(795m) |
큰재 3km (1시간 20분) 공성면 영오리 3.5km(2시간) 용문산 0.65km(30분)->잘못된 표기 |
10:38 |
휴식후 출발 |
|
10:52 |
683.5m봉 |
|
11:27 |
큰재 (320m) |
회룡재3.9km(2시간) – 실제 1시간 40분 소요 공성면5.3km, 모동면12.5km |
12:02 |
식사후 출발 |
|
12;31 |
회룡목장 임도 이정표 |
회룡목장120m, 버스타러가는 길 1km(30분) 큰재 1.6km(40분) |
12:33 |
회룡목장 이정표 |
회룡목장, 회룡재 2.1km(1시간) 큰재 1.7km(50분) 실제 회룡목장 까지 33분 소요 |
13:06 |
회룡재(340m) |
나무등걸 표지판 : 개터재 약 1시간, 큰재 약1시간 이정표 표지판 : 개터재 1.7km 50분, (실제 30분소요) 공성봉산(회룡마을)600m, 큰재 3.9km 2시간 (실제 1시간 40분) |
13:35 |
개터재(380m) |
백학산 6.3km,(약세시간) – 실제 2시간 25분 소요 |
15:01 |
윗왕실재(400m) |
너무등걸 : 백학산 1시간 30분, 개터재 1시간 30분 이정표 : 백학산2.9km 약1시간,-> 실제 1시간 소요 개터재 3.7km 약1시간20분-> 실제 1시간26분소요
|
15;35 |
백학산 전위봉 |
|
15:51 |
백학산 248m 전방 |
|
16:00 |
백학산(618m) |
개터재에서 2시간 25분 소요 |
16:26 |
대포리(400m) |
지기재2.8km(1시간)- 잘못된 이정표 실제 약 2시간 소요 |
17:18 |
개머리재전 임도 |
|
17:33 |
개머리재(295m) |
9시간 26분 소요 |
이기자 전우들과 거제도에 갔다.
향그러운 봄이 바다 위를 둥둥 떠가는 모습은 장관 이었다.
흠뻑 취한 날
화사한 봄빛에 , 아름다운 섬의 풍경에 그리고 좋은 친구들과 나눈 한잔 술에…
세 시간을 채 자지 못하고 출정이다.
원래 조령의 암릉구간을 가야 하는데 때 아닌 가뭄으로 산불통제로 인한 입산금지가 풀리지 않아서 비상시를
위해 아껴 두었던 작점고개 – 개터재 구간을 가기로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의 등로는 부드럽고 봄은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나를 유혹할 것이다.
어제 상춘의 여흥에서 굳이 깨어나지 못한다 해도 느리게 느리게 백두대간의 봄을 누려도 될 터이다.
아뿔싸
봄빛에 홀린 회장 겸 산행대장께서 봄날의 짧은 산행이 아쉬워 산행구간을 늘린단다.
봄날의 향기와 춘정에 들떠서 게으르고 몽롱한 하루를 보내려고 했는데 산행대장의 말 한마디에 여유로운 봄날의
산행은 훨훨 머리를 풀고 하늘로 날아 갔다.
누가 감히 정권 실세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랴?
죽었다고 복창하던지
아님 예전 페이스대로 움직여 그냥 개터재나 윗왕실재에서 효곡리로 내려가던지…
근데 그건 애초에 가당치도 않다.
효곡리에서 택시를 불러 지기재 까지 가야하고 다음에 다시 날을 잡아 남은 4시간 30분 코스를 이어가기 위해
다시 돌아와야 한다.
게다가 중간에 탈출하면 어두울 때 까지 후미를 기다려야 한다.
아들아 오늘은 봄날의 유희가 아니라 전쟁이다.
등산화 끈 단디 매라 !
오늘 목표는 10시간내 목적지 도착이다.
오늘의 전략은 초반 스퍼트 그리고 중단없는 전진 !
정상 컨디션이 아니기 때문에 초반에 피치를 올려 먼저 치고 나가서 최대한 거리를 줄여야 하고
후반부에 속도가 떨어지더라도 쉬지 않고 진행해야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
어제 술도 꽤 마셨고 잠도 얼마 자지 못했지만 아들이 더 걱정이다.
나야 산전 수전 공중전 까지 다 겪었고 새우잠 무박산행도 많이 해보았으니 어떻게든 대처가 가능하겠지만
아들은 산행이 길어 질수록 힘들어 했다.
오늘 백두대간은 작점고개에서 기운차게 용문산과 국수봉에 올랐다가 고도를 급격히 낮추어 평지
같은 큰재로 내려서고 일명 중화지구로 일컬어지는 평균 고도 250m 의 낮은 산릉을 따라 개머리
재까지 진행한다. 가는 길에 회룡재와 개터재 윗왕실재의 고갯길을 졸며 지나고 군계일학처럼 불
끈 솟아 오른 백학산에서 화들짝 놀라 잠을 깨었다가 다시 개머리재로 슬그머니 누워 버린다.
오늘 백두대간 길의 인상 깊은 감회는 앞으로 다시 만나기 힘든 내 고향 뒷동산 같은 부드러운
산길과 아직 갈색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산릉을 붉게 물들이며 가는 길목마다 수줍게 손을 흔들어 주던 고운
진달래들 그리고 아직도 내 가슴에 울리는 국수봉의 얼음 종소리
용문산 가는 길
갑작스레 발발한 봄날의 전쟁에 발과 마음이 모두 무거웠지만 등로는 부드러웠고 약간 흐린날에 시원한 바람
까지 줄어주어 컨디션이 조금씩 살아 났다.
거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진달래가 가는 길마다 함박 웃음을 날리며 봄날의 여정을 축하해 주어 분위기는 더
없이 좋았다.
계속 선두를 유지 했다.
느려지는 나의 걸음이 답답했던지 오름 길에 아들 녀석이 먼저 치고 나가고 뒤이어 활력소님과 광주산님이
추월해 갔다.
용문산 가는 능선 길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기도원이 내려다 보인다.
제법 바람이 강해서 혼자 봉우리에 기다리려면 추울거라 생각했는데 몇 개의 잔봉우리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더니 급기야 도착한 용문산에도 녀석의 .아무런 자취와 흔적이 없다.
얼러리여? 이놈이 뭔 일이래? 용문산 인증샷을 남겨야 하는데 …
용문산은 영동과 김천의 경계에 위치하며 고려 건국 후 태조가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 용이 반겼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산이름이다.
함께 움직이던 산 친구 산꼭대기와 호나우드와 함께 헬기장인 용문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국수봉을 향한다.
국수봉 가는 길
가는 길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도 받지 않는다.
별다른 갈림길이 없었지만 괜시리 신경이 쓰인다.
나를 철썩 같이 믿고 등로에 대한 기본 정보도 숙지 하지 않은 채 건들건들 따라 다니는 넘이라 혹여 삼천포로
빠지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한참 후에 전화가 왔다. 활력소님과 함께 가고 있다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르는 녀석…
활력소님을 따라 갈 생각을 다 했으니 오늘도 컨디션은 나름 괜찮은 모양이다.
활력소님과 전화를 바꾸어 인증샷을 남겨야 하니 국수봉에 알티엔을 남겨두고 먼저 가시라 했다.
국수봉에서 기다리던 아들과 만나고 산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15분여
휴식을 취했다.
국수봉은 영동과 상주의 경계에 있는 산이며,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으로 국수(掬水)라 한다.
높이가 상당하여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상주평야와 지장산(771m),와곡산(576m), 백화산(933m),
기양산, 묘함산, 황악산, 민주지산이 파노라마처럼 조망된다.
13년 전 백두대간 종주시절 내 생애 최고의 얼음 상고대를 본 곳이다.
그 이후 수 많은 가슴을 흔드는 풍경을 만났지만 그날 국수봉 얼음나라의 장관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난 이렇게 그날의 감동을 적어 놓았다.
국수봉 가는 길은 아름다운 빙원이다
대자연이 빚어낸 불세출의 걸작
해빙과 눈꽃이 절묘한 온도와 기후의 타이밍으로 만나서 조각된 산하는
그저 환호와 탄성의 메아리에 쌓여
걸어가는 걸음마다 투명한 얼음 종소리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엄청난 상고대 숲이 생성되다니...
보기 드문 상고대 터널이 관목 지대에 형성되어 아름다운 설경을 빚어 놓고 있었다.
눈이 녹았다가 나무 가지에 얼어붙어 생긴 상고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휘어져 버린 소나무, 철쭉들…
지금까지 그 어떤 곳에서도 못 보았던 희한하고 기묘하며 아름답게 수놓아진 상고대와 설화
들이 지나는 걸음마다 가지를 털어 흰 눈가루를 흩날린다.
김 대장은 수십 년 산행에 처음 보는 멋진 눈꽃과 결빙된 상고대의 풍광이란다.
겨울이 가장 깊어 있는 숱한 시간대에서 수 없이 만났던 장엄한 눈꽃의 설경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과 특성으로 오묘한 자연의 조화를 시새우 건만
설악,지리,덕유,계방,태백 그 어느 유명한 겨울산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대자연의 불후의 명작을 오늘 마주한다.
해빙과 함께 녹아 내리던 눈이 갑작스럽게 하강한 날씨에 결빙되어 나뭇가지마다 고드름이
매달리고 가지들은 흡사 보석처럼 투명한 얼음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 얼음위로 눈이 내려 일부는 흘러내리고 일부는 날을 세워 얼음에 칼날을 만들어 놓았다.
원래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은 등산로에 나무들이 거칠 것 없이 가지들을 늘여 놓았는데
그 가지들이 투명한 얼음으로 둘러싸여 그 무게를 길 위로 드리우니 가파른 등산로를
헤쳐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얼음 숲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다.
음악소리처럼 경쾌하게 부딪히는 얼음 가지 소리를 들으며 동화와 같은 아름다운 눈꽃의
화원을 지나는 경이로움 그리고 그 가득한 신비감
항상 경탄해 마지 않는 아름다운 자연들은 이제 또 다른 새로움으로 감탄할 일이 없을 거라고 기대를 접어둔
곳에서 다시 홀연히 나타나 황홀한 아름다움의 빛을 발한다.
전율처럼 가슴이 저려오는 빛나는 삶의 기쁨과 축복들이다.
경주에서 그냥 하루를 유하고 천천히 올라왔으면 그저 내 삶에서 무심히 지나쳐 어쩌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눈부신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인생은 아직 많은 익살과 모험이 남아 있는 신나는 여행길이고 그 길 위에 뒹구는 무수한 행복은
먼저 배낭에 주워 담는 자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큰재 가는 길
아들 녀석에게 활력소님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할만하단다.
“오마이 갓”
오늘 전쟁의 문제사병은 아들이 아니라 바로 나란 얘기
저 녀석이 지난번 이화령-조령부터 완전 달라진 모습이다.
힘든 구간에서도 자연스레 콧노래가 나오고 표정도 더 밝아 졌다.
어쨌든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발이 점점 낮아지면서 산길은 파스텔톤 연록과 초록의 빛으로 깨어 난다.
603.5봉에 표지판이 있다. “산님 힘내세요!”
참으로 살가운 산꾼의 정이다.
군대 친구들과 술을 그리 마시고 잠을 몇 시간 자지 못한 걸 감안하면 인생의 가을날에도 무릉객 아직 시푸르
둥둥한 편이다..
찔레 숲이 싱그럽게 피어나는 봄을 온통 초록으로 흩뿌리는 곳에서 갑자기 등로는 바닥으로 떨어져 작은
도로와 만나더니 이내 벚꽃이 만개한 큰재와 조우한다.
길 옆에 이정표가 등로 정보를 전해준다.
너희는 3km 떨어진 국수봉에서 1시간 30여분 왔을 것이고 여기서 2시간여 걸쳐서 3.9km 산 길을 가면 회룡재를
만날 것이다.
실제로 국수봉에서 큰재 까지는 50분 걸렸고 큰재에서 회룡재 까지는 1시간 4분 걸렸다.
큰재에는 벚 꽃과 개나리가 만개해서 봄의 향기가 가득했다.
큰재 옆에는 원래 옥산초등학교 안성분교가 있었는데 오 간데 없고 넓은 운동장과 백두대간 생태학습원 건물이
들어서 있다.
시간도 적당하고 자리도 좋아서 함께 동행이 된 산꼭대기와 호나우드 그리고 프로윤 과 식사를 하는데 산친구들이
속속 도착한다.
“아이구 새똥 빠지게 왔는데 벌써들 다 따라 왔어!”
백두대간 등로는 큰재에서 화령재 까지의 구간을 일컬어 중화지구라 한다.
상주시 모동면과 모서면은 고려 때 중모현이라 불리웠고 화동면,화서면, 화북면은 조선시대에 화령현이라 불리
웠는데 이 두 지명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중화지구는 비산비야(非山非野)란 말로도 표현하는데 평균고도 250m 구간으로 이곳에서 백두대간은 200~300
미터의 능선을 낮은 포복으로 기어간다.
중화지구는 백두대간 상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지역에 속한다..
회룡재 가는 길
아들과 나는 먼저 행장을 수습하고 다시 대간의 길을 잡았다.
우리가 식사한 곳에서 바로 위쪽으로 대간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던 모양인데 우리는 흐르는 능선의 모습을
보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서 원두막 옆에 있는 지능선을 따라 다시 백두대간에 올라섰다.
가다가 임도를 만나 잠시 진행하니 회룡목장이 나타난다.
회룡목장은 백두대간 마루금에 있는 있는 제법 큰 농장인데 등로는 목장 옆 산길로 올라서서 유난히 붉은
진달래가 등로 곳곳에 피어나는 부드러운 산길을 따라 회룡재로 이어진다.
.
회룡재는 상주시 공성면 봉산리에 위치하며 회령마을에서 골가실을 넘어가는 고개로 그 이름은 아래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마을이 은거하던 산이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마치 용이 하늘에서 내려오다가 뒤돌아 보는 형국이라 해서 회룡(回龍)
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회룡 마을에는 상판저수지가 있다.
상판저수지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물이지만 행정구역상 경상북도인 상주시 모동면에 위치해 백두대간 밑으로
수로를 뚫어 상주시로 물길을 돌려 이용하면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금강수계가 되었다.
영역과 집단의 이익에 민감한 인간들의 무모한 노력은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 물길의 운명 까지 바꾸었다.
개터재 가는 길
회룡재에 있는 나무등걸 이정표에는 개터재 까지 2.1km로 약1시간 소요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실제로는
30분 걸렸다.
개터재 가는 길의 산은 제법 높은 편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길은 마루금을 따르지 않고 시종 산허리를 휘돌아 간다.
산비탈로 인위적인 길을 내는 것이 더 힘들었을 텐데 기이한 일이다.
어감상 산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긴 하지만 어쨌든 오늘 개터재는 개털이다.
원래 이곳이 오늘의 최종 기착지 였다.
현재 도착시간이 1시 35분으로 작점고개에서 5시간 27분 걸렸다.
13년전 겨울에 효곡리 까지 5시간 40분 걸렸고 나와 페이스가 비슷한 선답자의 파란문님은 6시간 30분이 걸렸으니
계절인 봄인 것을 감안해도 상당히 빨리 온 셈이다.
벌건 대낮에 그것도 예정 시간보다 앞서 도착했으니 욕심이 동할만한 상황은 분명 맞지만 개터재에서 지기재는
너무 멀다.
나무등걸에 표시된 거리와 이정표로 보면 백학산 까지 3시간 표시 되어 있고 백학산에서 지기재 까지는 2시간 이상
족히 가야 한다.
평균 5시간, 빨리 가도 4시간 30분은 걸릴 것이다.
우리의 페이스이면 오후 6시 30분경에 해지기 전에 도착하겠지만 후미는 1시간 정도 야간산행을 해야 할 것이고
A팀은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모두들 후렛쉬도 준비 안되고 물이나 간식도 부족할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나와 아들은 계속 선두 세 번째를 유지하고 있다.
아들도 짱짱하고 나도 생각보다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그냥 내처 가기도 뭐해서 한참을 쉬다 보니 산 친구들이 속속 도착했다.
잠시 후 도착한 산행대장과 회군을 논의 했지만 이미 오래 전에 넘어간 사람도 둘이나 되고 일일이 후미에 연락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어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윗왕실재 가는 길
중간에 오늘 구간에서 두번 째로 높은 512봉과 463봉을 넘어 간다.
효곡리와 소상리를 잇는 고갯길인 윗왕실재는 개터재에서 1시간 20여분 걸린다.
한자로는 갈왕(往) 집실(室)을 써서 마을을 넘나드는 윗 고개란 의미이다.
어짜피 소요시간이 개인차가 있으니 정확치 않다 해도 이왕 표기를 했으면 나무등걸의 표지판과 이정표의 소요시간
표시를 통일해서 표기하면 좋을 것 같다...
개나리 만발한 농로를 따라 효곡리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길로 오늘 이곳 까지 만 끊었으면 아주 적당한 산행이
되었을 텐데 우리는 오늘 제법 험한 백학산을 넘어야 한다...
백학산 가는 길
등로는 오늘의 부드러운 관성을 벗어나서 거칠고 가파라 졌다.
백학산은 장벽처럼 앞을 가로 막고 좀처럼 거리를 좁혀주지 않았다.
가는 길 노파심에서 아들에게 한마디 했다.
“아들아 오늘 갑자기 더 많은 길을 걸어서 힘이 드느냐?
살아가다 보면 종종 하는 일의 계획이 바뀌고 갑자기 더 많은 일을 맡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짜증을 부리고 불평하면 일을 하면서 느꼈던 보람과 기쁨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지금 까지도 수월했던 그 일이 점점 더 힘들고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그건 일의 힘겨움 때문이 아니라 언짢아진 네 마음 탓일 뿐이다.
늘어난 그 일도 네가 노력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변함없이 즐겁게 하던 일을 하면 된다.
하물며 산행은 즐겁자고 하는 것인데 다음에 걸을 길을 오늘 좀 더 걷는다고 불평하면 다른 건
아무 것도 변하는 게 없는데 네 기분만 더 나빠지고 네 마음만 더 불편해지지 않겠느냐?
“네!” 하고 대답하는 아들녀석은 여전히 짱짱하기만 한데 사실 그것은 좋지 못한 컨디션으로 불평을 토로하던
내 스스로에게 하는 소리였던 것 같다.
경사는 점점 더 심해 지는데 갑자기 아들녀석이 내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와우!”
난 눈에 뛰게 오르는 속도가 느려졌는데 녀석은 낮은 산길을 걸어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산길을 뛰어 올라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호랑이가 사라진 세상에서 여우가 왕 노릇을 한다고 했다.
시간상 정상이 아닐 거란 생각은 했지만 백학산은 앞에 근위병을 세워 두고 저만큼 물러나 앉아서 힘겨워하는
산객들에게 한껏 여우의 권위와 위엄을 과시한다.
어디 그것 뿐인가?
전위봉에서 백학산에 오르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245미터 전방 봉우리에 올라서고 장성 같은 능선 길을 더 걸어
올라야 한다
너무 오래 아들녀석 소식이 없어 혹시 딴 길로 새지 않았나 적정이 되어 몇 번 전화를 걸었는데계속 받지 않는다.
녀석의 뒤를 쫓아 쉬지 않고 백학의 등에 오르리라 했지만 결국 중간 날선 비탈에 주저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해야 했다.
쉬는 사이 산꼭대기가 도착해서 함께 출발하는데 전화가 왔다.
백학산 242m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라는데 더 진행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백학산 초입 나를 추월하던 곳에서부터 이 녀석은 한 번도 쉬지 않고 봉우리 까지 뛰어 올랐다고 한다.
도대체 어찌된 녀석인지 지난 겨울만 해도 힘들고 지쳐서 틈만 있으면 눈 위에 벌렁 드러눕고 하더니 이젠 산행
후반부에도 가파른 산길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가히 내 전성기를 능가하는 체력이다.
봄이 젊음에 먼저 반응하는지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돌아오니 양상이 완전 바뀌었다.
어쨌든 힘든 여정에 아들녀석 걱정은 완전 덜었고 이젠 백학산을 지척에 두었으니 예상과 별다른 오차 없이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겠다.
백학산
경주 상주시 공성면 효곡리와 내서면 노류리, 그리고 모서면 대포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일대에서 단연 걸출한 산이다.
학의 형상을 닮은 산이고 또한 학이 많이 날아드는 산이라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봉우리가 높아서 인지 찬 바람이 거세게 불어 정상은 많이 추웠다.
앞서간 사람은 활력소님, 광주산님, 한림정회장, 서서서님 4명이고 산꼭대기와 호나우드와 함께 사진을 찍고
쉬는 사이 젊은 일행들이 속속 합류했다.
개머리재 가는 길
백학산을 내려서서 20여분여 비탈길을 내려가면 대포리 임도를 만난다.
이 임도에 지기재 2..8 km(약 1시간) 이정표가 눈에 확 들어오긴 하는데 이것도 완전 새빨간 거짓말 이다..
백학산 정상에서 지기재 전에 있는 개머리재 까지도 거리가 4km나 되는데…
이런 잘 못된 이정표 때문에 괜히 사람들은 하릴없이 기대에 부풀었다가 맥이 빠진다.
이번 구간에서는 특히 예전 이정표와 새로 세운 이정표간에 거리표시나 소요시간 표시가 맞지 않는 곳이
유독 많았다.
명색이 백두대간인데 지자체에서 좀더 신경써서 관리했으면 하면 좋겠다..
임도에서 산길로 접어 드는데 허기가 밀려왔다.
이제 그리 힘든 길도 없을 것이고 이 페이스를 유지하면 어둡기 전에 지기재에 도착할 수 있기에 아들과
함께 산비탈에 앉아서 남겨둔 마지막 빵을 먹었다.
언제나 먹지 않은 채 집으로 되가져 가서 먹던 비상식량이 오늘은 제대로 역할을 해 주었다.
오늘은 싸늘한 바람과 차가운 날씨가 일등 공신이었다..
지난 봄날처럼 무더웠으면 더 힘들고 물도 많이 먹혔을 텐데 두 통씩 밖에 가져오지 않은 물이 먼 길에서도
남아 있었다..
대포리 임도에서 채 1시간 걸리지 않아 개머리재 임도에 도착하고 평지와 같은 밭 길을 휘돌아 가니 멀리
버스가 보인다.
“아들아 내가 잘못 보았냐? 저거 우리 버스 아니냐?”
난 지도도 어영부영 보았고 산행대장이 구태여 지기재를 오늘의 기착지로 끊었기에 당근 개머리 재는 버스가
다니지 못하는 길인 줄 알았다.
그래서 백학산에서 요산요주님이 개머리재로 버스를 불러야 되지 않겠느냐고 할 때 목적지 까지가야지 어떻게
소로 길로 큰 차를 들어오게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던 것이다.
개머리재
한림정 회장이 반갑게 마중 나온다.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후미는 윗왕실재에서 효곡리로 내려서게 했고 오늘 산행은 개머리에서 마감한다고…
갑작스런 구간 연장과 잘못 된 정보로 완주를 못한 사람들은 아쉽겠지만 후미나 A팀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결정 이었다.
우리는 버스에 올라 A팀과 오늘의 유일한 완주자 활력소님과 광주산님이 기다리고 있는 지기재로 이동했다.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다소 힘든 여정이었지만 큰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했고 아들 역시
먼 길을 걷고도 여전히 혈기왕성하고 짱짱한 모습을 보여 주어서 나름 기억에 남을 행복한 산행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예상한 전략대로 긴 노정을 차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어서 더욱 뿌듯했던 여행길이었다.
날은 저물어 가고 을씨년스러운 찬바람이 불어 가는 고갯길 정류장에서 아들과 나는 작년과 올들어 통산 제일
맛 있었던 백숙을 먹었다.
A 팀에겐 늘 미안할 따름이다.
지난 겨울에도 추운 날에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리게 했는데, 바람이 더욱 싸늘해 지는 오늘도 평소보다 늦어
지는 사람들을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밖에서 떨었을 것이다..
귀연의 오랜 우정과 끈끈한 정으로 수고로운 여행길을 감수하며 대간 길을 묵묵히 응원하는 A팀 모두에게 항상
고맙다는 말씀 전한다.
님들 덕분에 우린 맛난 음식과 술을 마시고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혼곤히 잠들 수 있다.
항상 앞에서 리딩하느라 고생하는 집행부 그리고 함께하는 모든 산친구들께도 감사한다.
앞으로도 서로간의 배려와 화합으로 더욱 여유롭고 즐거운 백두대간 순례 길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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