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젊은날의 추억)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작은 생명만 유지했으니….
4월은 잔인한 달
죽어가는 자의 입이 검은장미(증오)를 피워내고
성공과 좌절을 뒤섞고
도덕과 신의가 욕망의 뿌리를 캐어낸다.
차라리 그 해 겨울은 따뜻했다.
산자의 분노가 팽목항을 뒤덮고
총리의 권위가 하늘을 가리웠으니…..
4월은 정말 잔인한 달 맞는 개벼
T.S 엘리엇도 그러고 완구 총리님도 그러구…
겨울 내내 게으른 동면을 이어가다가 다시 또 치열한 삶과 마주해야 하고
염라대왕처럼 목소리 높이며 빼어 든 부패척결의 칼날을 자신이 가장
먼저 받아야 했으니…
4월은 잔인한 달
차가운 땅에서 진달래(사랑의 기쁨)를 키워내고
추억과 김동을 뒤섞고
맑은 햇살과 생명의 향기로 잠든 욕망을 일깨운다.
잠자던 침상의 아랫목은 따뜻했다.
고립과 침묵이 나를 감싸고
마른 기침만으로 삶의 가래를 내 뱉을 수 있었으니…
내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이야
라일락 향기가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들춰내고.
시도 때도 없이 봄은 코맹맹이 소리로 유혹한다.
봄은 생명을 누르는 겨울을 견디고
인내와 기다림의 끝에서 묵묵히 돌아 온다.
그리고 조용히 귀속말로 속삭인다.
“먹고 사는 문제에 치중하다 죽음에 이르고 만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완벽한 실패인가?”
떠나지 않을 수 없어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어서
그래서 4월은 잔인한 달이야
너의 선택이 옳았기를 바란다.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고 콘크리트 숲을 지키려는 너의 봄날
견딜 수 없는 건 지난 간 봄날의 추억이 아니야
견딜 수 없는 건 너무 짧은 봄날이 아니고
너무 빨리 바람에 날리는 아쉬운 꽃잎이 아니야
견딜 수 없는 건 봄보다 더 빨리 식어가는 너의 사랑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또 물끄러미 바라보아야 하는 너의 병약한 봄날일 뿐이야
산 행 일 : 2015년 4 월 26일
산 행 지 : 아들과부르는 노래 16- 백두대간 15구간
코 스 : 개머리재-지기재-신의터재-무지개산갈림길-윤지미산-화령
날 씨 : 맑고, 화창하고, 무덥다 약 27~8도 바람약간
거 리 : 약18.9km
소요시간 : 약 6시간 50분 소요
동 행 : 귀연산우회 대간꾼들 37명
시간 |
경유지 |
비 고 |
09:00 |
개머리재 |
|
09:13 |
산중임도 |
|
09:28 |
평상쉼터 |
|
09:43 |
지기재 |
|
10:18 |
바위능선이정표 |
신의터재:2.8km(1시간), 지기재:1.9km(40분) |
10:33 |
안쑥밭골 |
|
10:35~ |
이정표 |
신의터재:2.5km(55분), 지기재:2.2km(45분) |
10:49 |
이정표 |
신의터재:1.2km(20분), 지기재:3.5km(1시간 20분) |
11:04 |
신의터재 |
5분휴식 |
11:09 |
신의터재 출발 |
|
11:18 |
이정표 |
화령재11.4km(4시간), 신의터재0.5km(10분) |
11:28 |
이정표 |
화령재:10.8km(3시간40분), 신의터재:1.1km(30분) |
11:44 |
서어나무 군락 |
|
11;45 |
이정표 |
화령재:10km(3시간30분), 신의터재:1.9km(30분) |
11:53 |
이정표 |
화령재:9.7km(3시간30분), 점심식사 약 30분 |
12:26 |
노간주나무 군락지 |
|
12:30 |
노루골 밭 |
|
12:38 |
이정표 |
화령재:8.8km(3시간), 신의터재:3.1km(1시간10분) |
12:44 |
작은봉우리, 노간주군락지 |
|
13;00 |
무지개산 갈림길 |
|
13:07 |
무지개산(441.4m) |
|
13:18 |
다시 무지개산 갈림길 |
|
13:23 |
이정표 |
화령재:7.1km(2시간30분), 신의터재:4.8km(1시간40분) |
13;27 |
잣나무 조림지 |
|
13:30 |
이정표 |
화령재6.7km(2시간20분), 신의터재:5.2km(1시간50분) |
14:17 |
이정표 |
화령재:3.8km(1시간20분), 신의터재:8.1km(2시간50분) |
14:27 |
이정표 |
화령재:4.4km(1시간30분), 신의터재:7.5km(2시간40분) |
14;47 |
윤지미산(538m) |
화령재:2.9km(1시간), 신의터재:9km(3시간10분) |
15;15 |
개활지 밭 |
|
15;19 |
무덤 |
|
15;31 |
임도이정표 |
화령재:1.0km(25분), 신의터재:10.9km(3시간45분) |
15;40 |
고속도로 터널 위 |
|
15:49 |
화령 |
총 6시간 50분 소요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지지난 주 백두대간 길에서 진달래 처녀는 옷고름 씹어 가며 수줍은 미소를 보냈다..
어제 고창 청보리가 바람에 눕고 아직 만발한 유채가 향기를 폴폴 날려서 아직 봄날은 오고 있는 줄 알았다.
아뿔사
벌써 봄날은 간다.
날리는 벚꽃과 서둘러 가버린 아쉬운 우리 기쁜 젊은 날처럼….
오늘 백두대간은 개머리재 에서 화령 까지 남은 중화지구를 순례한다.
등로는 개머리재에서 3.5km 완만한 산등성이를 따라 진행하다 지기재로 내려서고 다시 비슷한 고도의 산릉을
따라 4.5km 진행하여 신의터재로 내려선다.
신의터재에서 등로는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며 4.8km 진행하여 무지개산 옆구리를 휘돌아 가고 그곳에서 4.3km
정도 더 진행하여 윤지미산에 오른다.
신의터재에서 윤지미산 까지는 3시간여 걸리는데 등로는 윤지미산에서 가파르게 떨어졌다가 완만한 임도와
산길을 따라 2.4 km 더 진행한 후 화령으로 내려서서 오늘의 구간을 마감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잔인한 사월의 들판에 울려 퍼지는 감미로운 전원 교향곡 그리고 낮게 낮게 파도치며 흘러
가는 초록의 바다.
개머리재
A팀은 신의터재에서 화령재까지 유람하겠다고 해서 우리는 신의터재에서 기념촬영을하고 개머리재로 이동했다.
백두대간이 다 밭이다.
이곳은 모서면 소정리 속하는데 개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개머리재로 부른단다.
당최 고개 어디가 개머리를 닮은겨?
개머리는 고사 하고 지나가는 똥개 한 마리 없다.
아침 잠이 없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늙은 새들만 개머리재를 날아 오른다.
지기재 가는 길
좌측에 선유동이란 마을을 두고 400미터 정도 되는 야산을 넘어 지기재로 간다.
가다가 산중임도를 만나고 평상쉼터를 지나며 3.5km 산길을 40여분 걸으면 지기재에 당도한다.
화창한 봄날이다.
쓰나미 처럼 덮쳐오는 눈부신 초록이 아니라면 영락없는 여름이라 해도 되겠다.
갈수록 성질이 급해지고 사나워지는 봄처녀는 늙은 세월을 닮아간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선보러 나왔던 산골 총각이 요모조모 뜯어보고 궁금한 것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전에 “일없습네다 !”하고 강원도로 넘어갈 심산이다.
“야야 ! 승질머리좀 죽여라 그래 갖고 시집이나 가긋나?”
꽃샘추위에 황사에 봄비에, 무막지하게 터지는 애경사에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바쁜 날들에 속절없이 내어
주어야 하는 봄날을 빼면 나의 봄날은 몇 일이 남았나
그래 오늘일랑 투덜거리지 말고 막돼먹은 춘자씨 초록 치마 꽁무니라도 부여잡고 즐겁게 대간여행 떠나보자
지기재
내려가는 길 멀리 395.4봉이 보이고 그 옆으로 우측으로 백두대간이 지나는 바위슬랩 능선이 보인다.
지기재를 바라보는 밭둑에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너무 고운 봄빛에 발길이 밀려 오래도록 도원에서 봄처녀와 시시덕 거렸다.
2주 만에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변덕스런 춘자씨
그날 추위에 떨면서 차가운 바람이 부는 버스 정류장에서 최고로 맛있었던 백숙을 먹었는데
오늘은 때이른 무더위에 등허리에 땀이 흐른다.
모동면 방향으로 바라보면 강인한 포스의 백화산(996m)이 보인다.
아이러니 하게 1000고지 가까운 백화산은 대간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백두대간 길은 주눅이 들어 바닥을
설설 긴다.
지기재의 옛이름은 적기재(賊起峙)였다고 한다.
명색이 백두대간이긴 해도 이렇게 낮은 야산에 도적이 들끓었다 하니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다.
표지판에 잘 기록되어 있다. 상주시 백두대간 길이는 69km라고…
김천시 백두대간 길이는 60km라는데….
신의터재 가는 길
백두대간은 지기재에서 신의터재 가는 길에서도 어느 재에서 다시 끊어질 세라 조심조심 흘러 간다.
이곳에서 백두대간의 권위는 능선의 고도 만큼 땅에 떨어졌다.
마을은 손에 잡힐 듯 지척에서 내려다 보이기도 하고 많은 구간에서 대간 마루금이 밭과 무덤으로 파헤쳐지고
소로와 임도로 잘려 나간 황폐한 모습이다.
여기저기 폐기계와 폐자재가 방치되어 있는 곳도 있다.
조그만 야산을 하나 넘으면 395.4m 봄능선이 훌쩍 가깝게 다가오고 그 아래 금은 마을이 보인다.
원래의 마을이름은 검은 마을 이었다고 한다.
바라다 보이는 395.4m봉과 근처의 원통산(569.9m)에 흑연광산이 있어서 동네가 온통 새카만 먼지를 뒤집어
썼던 탓에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훗날 마을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금은마을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금은 마을은 모서면에 속하고 산을 너머가면 화동면이다.
모동면과 모서면은 소울음소리 모(牟)자를 쓴다.
어디선가 두엄냄새는 폴폴 나르는데 소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395.4m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른 거대한 바위 지대이다.
바위지대에서 백두대간은 이정표를 걸로 우측으로 휘돌아 가는데 좌측 395.4봉 방향으로 좀더 높이 오르면
지기재와 지나 온 산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조망처 바위를 만날 수 있다.
바위를 지나 등로는 싸리꽃 향기가 등천하는 평지수준의 안쑥밭골로 떨어지고 조그만 야산을 넘어 15분여
더 진행하면 신의터재로 내려선다.
신의터재
커다란 입간판은 팔음산 포도를 대대적으로 광고한다.
팔음산은 신의터재에서 약 10km 떨어진 상주시 화동면 평산리에 위치한 산으로 여덟 짐승들이 내는 울음
소리가 가득했던 산이라서 팔음산이라 불렀다 한다..
해발 200~300m의 중화지대는 평지보다 높은 고원지대로 일교차가 커서 포도,사과,감 등의 당도가 높다고
하는데 이 지역에서는 팔음산 포도가 특히 유명한 모양이다..
임진왜란 때 혁혁한 동을 세웠다는 김준신(金俊臣) 장군을 기리는 유적비가 서 있다,
13년전 최고로 짧은 백두대간 산행 구간으로 기록된 날이다..
화령재에서 신의터재 까지 11.9km 구간을 3시간 산행하고 서둘러 귀향했다.
2003년 2월 26일 그날 산행 중에 큰 눈이 내려서 도로가 막히면 차가 고립된다고 했다.
“에효효효 ~~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녀!”
살다 살다 폭설 때문에 차가 고립될까 봐 산행을 중단 한 별 희안한 날도 다 있었다.
무지개산 가는 길
신의터재에서 윤지미산은 9.1km의 거리이다.
나무 숲 사이로 원통산과 화동면 선교리 마을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눈부신 봄날 초록 숲길은 그 옛날 내 고향 마을 뒷동산을 거니는 것처럼 푸근하다.
가는 길에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장남이 개나리 봇짐을 싸고 도시로 떠나고 난 후
시린 옆구리 쾡한 바람구멍으로 외롭고 쓸쓸한 고향을 지키셨던 할아버지
아버님 손 잡고 고향을 찾을 때면
목이 메던 반가움과 그리움에도 애써 툇마루로 내려서지 않으시던 할아버지
“곰이 왔구나!”
할아버지 그 곰이가 벌써 할아버지가 되어 가네요
아들하고 능선 길을 뛰어내려가 사랑방으로 달려가면 거기 할아버지가 있을 것 .같은데
짧은 봄은 아직도 고향생각을 떠올리게 하는데
세월은 참 많이도 흘렀다.
“할아버지 곰이 왔어요.. 아들하고 같아 왔어요 !
할아버지 그때는 전 몰랐네요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가슴 시린 일이 더 많다는 걸
순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 아픔을 겪는다는 걸 “
지리산 둘레길에서도 그랬고 지금 백두대간 때도 그랬다.
진달래가 핀 산등성이에서 시골 마을을 내려다 보면 어릴 적 고향마을과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보내면서 그러셨던 것처럼
아버지가 힘든 일을 하면서 나의 형제를 키워냈던 것처럼
나 역시 아무런 대가 없이 내 아들이 이 험한 세상에서 좌절하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길 바란다.
왜 아들과 힘든 백두대간 길을 걷냐고 묻는다.
옛날 소몰고 북한으로 간 할아버지가 그랬다.
“임자 해봤어?”
백두대간을 걸어보지 않고 내게 물어 보지 마라 마라
백두대간은 내 젊은 가슴을 흔들던 아름다운 길이었고 세상의 어느 책과 선생님 보다 인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해준 길이었다.
아들과 내가 함께 걷는 것은 소중한 부자의 정을 뜨거운 가슴으로 느껴보기 위함이고, 인생의 위대한 스승
으로부터 삶을 지혜를 배우게 하기 위해서다.
봄날의 마법이다.
봄은 황토 색의 화폭에 파스텔 톤 연초록 바탕을 칠하고 2주 사이에 나무에 붉은 꽃을 피우고 여기저기
초록의 여백에 이름 모를 야생화 고운 빛을 수 놓았다.
내가 이름을 아는 꽃이라고는 노란 민들레와 자줏빛 할미꽃 뿐
올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할미꽃을 만나러 일부러 길을 나서지 않았는데.
어느 무덤가 흰 머리를 훨훨 풀고 하늘로 올라가는 할미들 속에 다소 곳이 앉아 있는 아낙을 보았다.
공기가 맑고 깨끗한 무덤가를 좋아한다던
하도 수줍은 수수한 모습으로 봄이면 고향 뒷동산에 피었던 그 꽃
지난번 대청 호반길에서 뜻밖의 반가운 해후를 했던 할미꽃은 오늘 다시 백두대간 길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인생을 살아 가면서 가까이 있는 것들 그리고 작고 소박한 것들이 점점 그 의미가 소중해진다.
4월이 누구에게나 주는 봄날의 축복은 만패불청하고 받아야 한다
서어나무 군락지를지나 화령재 9.7km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는 일행들을 만났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봄빛을 받으며 느리게 걷는데도 그리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벌써 식사들을 마무리하는 상태고 자리도 협소해서 일행과 떨어져서 아들과 둘만 식사를 했다.
아들녀석은 밥을 반쯤이나 남겼다.
휴게소에서 제육볶음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중간에 산친구들로부터 계란과 막걸리 한잔에다 돼지머릿고기
까지 얻어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은 모양이다. ?
어쩌면 예상보다 무더운 날씨 탓이지도 하겠지만 등로가 허기를 부르지 않을 만큼 편안하고 부드러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식사시간은 30분여 소요되었다.
등로는 노간주 나무 군락지를 거쳐 노루골 밭으로 떨어진다.
분명 여기도 평지는 아니겠지만 자꾸 바닥을 치는 힘없는 백두대간이 안스럽고 안타깝다..
마을지형이 노루처럼 생겼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길게 늘어진 골짜기”라는 뜻으로 장곡(長谷)
마을이라고도 불린단다,
노루골 밭에서 바라보면 수레를 끄는 형상의 윤지미산이 멀리 바라다 보인다.
저 먼 산을 올랐다가 다시 1시간여 산길을 걸어야 화령에 도달할 것이다.
노루골밭에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다가 잠시 배낭을 내렸다.
지난 번에 멀고 긴 여정에서도 힘이 펄펄 남아 돌았던 아들은 오늘 무더위에 맥을 못추고 있다.
내가 얼음물 한 통을 얼려 올까 하다가 벌써 그리 덥기야 하겠냐 해서 그냥 왔더니 물과 포카리 스웨트는
순식간에 미지근 해졌고 마음 놓고 먹을 만큼 양도 충분치가 않았다.
아들아 무덥다고 불평하지 마라
백두대간을 순례하면서 이런 날이 더 이상 만나기 어렵다.
대간은 바닥을 낮게 낮게 흐르고
세찬 비바람과 뼈를 깎는 추위도 없고
바지 까지 흥건히 적시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도 없다.
우리는 지금 훗날 폭우가 오거나 폭설이 내려 떠날 수 없을 때를 위해 남겨둔 비상식량을 축내고 있는 거다.
산길을 오래 걷다 보면 언젠가 거리를 따지지 않을 것이다.
겨울이 가고 새봄이 돌아 오듯 예상했던 시간만큼 걷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살다 가다 보면 그리고 산길을 걷다 보면 깨닫게 될 것이다.
시간과 거리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걸어 가는 과정 과정이 너의 기쁨이 되고 그 길 위에서 느끼는 많은 것들이 살아감을 좀더 가볍게 해주리라는 걸
걸으면 걸을수록 너의 가슴이 더 넓어지리란 걸
쉬었던 봉우리 바로 아래로 다시 노간주나무 군락지를 지나 30여분 쉬엄쉬엄 가다보면 무지개산 갈림길이 선다
일행들은 그냥 지나 간다.
그래도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도 없는데 봄날을 무지재를 만나지 않고 그냥 갈 수 있나?
우린 배낭을 길목에 풀어 놓고 갈림길에서 200m 오름길에 있는 무지개산으로 올랐다.
무지개산 정상은 아무런 조망도 없이 삼각점표시 하나 덩그러니 서 있고 오색의 표지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우린 봄날의 무지개를 만나지 못했지만 산비탈 그늘아래로 시원하게 불어가는 맑은 바람을 만났다.
어느 길을 걷느냐는 것보다 도시의 길을 벗어나서 초록이 번지는 산길을 걸어간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봄날이다.
윤지미산 가는 길
상주시에서 신경을 많이 쓰긴 했는데 산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해 놓았는지 여기 까지 오는 길에도 이정표는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게다가 백두대간 표지판은 또 얼마나 많은지..
과잉 친절이 조금 거슬리긴 해도 그 정성을 고마워 해야 한다고 굳게 마음을 먹을 때쯤 화령재 3.8km 1시간
20여분 남았다는 이정표가 선다.
별로 힘든 길도 없었는데 20여분이면 윤지미 산에 오르겠구나 생각했는데 웬걸 10분을 더가 윤지미산이 본격
적으로 기지개를 켜는 산아래 이정표에는 화령재 4.4km 1시간 30분이 걸린다는 이정표가 뿌리가 뽑힌 채 누워
있다.
10분을 걸어 왔는데 거리와 시간이 더 늘어 난다?
아뿔사! 어느 공무원이 위치를 바꾸어서 잘못 설치한 걸 뽑아서 교체하려다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게
아닐까?
하여간 그 곳에서 윤지미산은 날선 비탈을 가파르게 올라 멀리서 보이던 길쭉한 능선의 끄트머리에 오르고
그 곳에서 능선을 따라 두 개의 봉우리를 더 올라야 도착한다.
오르는 길에 나뭇가지 사이로 선교리와 판곡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정말 산길은 인생길을 닮았다.
거칠고 험한 길은 원래 그렇게 생겨서 힘들지만 오래도록 부드러운 길의 평화와 안락에 젖다 보면 조금만 험한
길이 나타나도 또 힘이 든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
같은 길도 어떤 사람은 웃으며 걷고 어떤 사람은 찡그리며 걷는다.
어느 길을 걷느냐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그 길을 걷느냐는 것이다.
어짜피 걸어야 할 길이고 살아가야 할 인생이라면 즐겁게 걷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일이다..
윤지미산
야호 드디어 정상이다!
넓은 정상에는 외로운 돌무더기 하나와 소박한 표지판 하나
산의 이름이 말이 끄는 수레란 뜻인 산아래 마륜마을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윤지미산(輪支美山) 지(支)는 고개라는 뜻의 백제어 미(美)는 산을 의미한단다.
윤지마산은 화동면과 화서면에 위치하는데 멀리 노루골에서 보면 말이 끄는 수레의 형상이란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무지개산에서 목에 걸고 온 바람은 따라오지 않았다.
윤지미산에서 앞서간 일행들이 휴식하고 있다.
기념사진을 찍고 그들이 건네주는 포도의 달콤한 맛을 음미 하면서 오늘의 가장 높은 마천루에서 아쉽게 지나
가는 4월의 봄날을 노래한다.
휴식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모두 마셔 버렸다.
행장을 수습하여 다시 길을 잡는데 뒤늦게 도착한 로그인이 물 남은 것 없냐고 묻는데 건네줄 물이 없어서 일행
들에게 물을 수소문 해 주었다.
물어보는 단비에게 화령재 내려 가는 길에는 오르막이 없이 모두 내림 길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했는데 등로는
3개의 작은 봉우리를 오르고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위를 지나 임도에 떨어진 후에도 잘라진 산과 또 하나의
봉우리를 넘어 갔다..
어쨌든 우리는 봄날의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득의양양한 늑대의 울음으로 화령에 도착했다.
먼저 내려온 온 산친구들의 환영을 받으며 목젖이 얼얼한 차가운 맥주를 쉬지 않고 연거푸 세잔을 들이켜 불타는
목과 뜨거워진 심장을 수냉식으로 .식혔던 것이다.
돌아 오는 길에 우리는 화령장지구 전적비와 신정리 보살입상,상주 화서면 상현리의 반송을 돌아 보고 귀로에 올랐다.
알차고 유익하게 보냈던 멋진 봄날의 여행길 이었다.
감상과 감동의 물기를 머금기 어려워하는 메마른 가슴
더 빠르고 조급한 세상에서 더 강한 충격과 자극에 가위 눌려
변방을 겉도는 순수와 봄날의 서정
어쩌면 봄은 내 가슴에서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 가슴에 아무런 추억과 파문을 남기지 않은 채 내 곁을 지나간다는 사실이
어느 날 문득 견딜 수 없는 서글픔으로 다가오는 눈부신 봄날
난 뒷동산 같은 백두대간 길을 아들과 걸었다.
연초록 바다에 복사꽃잎 날리며 잔인한 사월의 봄날은 간다.
모동면 방향으로 바라다 보이는 백화산
.
멀리 우뚝한 백화산
금은마을과 395.4m봉 대간길은 우측 바위지대로 넘어간다.
노루골밭에서 멀리 바라 본 윤지미산.
윤지미산 가는 길에 되돌아 본 무지개산.
점점 가까워 지는 윤지미산
윤지미산 가는 거리와 시간이 더 늘어난 이정표
능선에서 윤지미산 오르는길
윤지미산 오름길에 뒤돌아 보다.
고개넘어 또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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