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0 차갓재 들머리 - 오미자 동굴 500미터 전방 들머리
우린 지난 번 송전 탑에서 시작했으니 오미자 동굴 전에서 밭을 지나 계곡으로 올라야 함
뒤돌아 본 파킹 spot
도로를 따라 가다 되돌아 본 안생달 마을 방향
차갓재 오르는 숲길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갔어야 송전탐으로 올라 가는데 직진하다 보니 중간지점표석 도착
베낭을 놓구 다시 송전탑으로 가는 길에 바라 우측 풍경
송전탑 찍구...
나리 꽃에게 인사하다. 안뇽!!!
친구가 카톡질을 했어 이른 아침에
" 단물같은 비가 내립니다. 하늘 향해 쳐다보면 얼굴에 부딪혀 오는
방울 방울 들이 참 고맙고 감사합니다."
지천명을 훌쩍 넘긴 친구의 해맑은 동심이 너무 이뻐서 이렇게 답장했지
"친구야! 천진무구, 순진난만 아이같은 너의 맑은 언어가 날 미소짓게 하네.
고개 젖히며 눈받아 먹던 코끝이 찡한 내 어린시절을 생각나게 해주었어. 고맙다 친구야..
근데 여기 하늘은 똥폼만 잔뜩잡고 아즉 내리지 않는다."
"나리야 고마워 거기에 피어주어서 !"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건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가장 햅복한 날이라는 거
08:45 차갓재 중간표석 초반 강렬한 포스의 알티엔
09:15 작은 차갓재 차갓재 중간표석에서 30분 소요
서서서님과 천사님이 표석을 지나서 간 것도 모르고 송전탑 댕겨와서 10분이상 기다리느라 시간소요가 많았음
작은 차갓재 지나서 만나는 헬기장
잣나무 숲길
황장산 가는 길에 내려다본 안생달 풍경
이꽃이 뭣이여?
전망바위에서 바라 본 지나 온 대간 길 풍경 - 대간길은 여기서 우측으로 휘어진다.
전망바위 에서 바라 본 우리가 가야할 길 풍경 - 묏등바위를 지나 황장산으로 가는 길
전망바위 풍경
전망바위 풍경
묏등바위
가운데 바위 봉이 험한 수리봉
묏등바위에서 내려다 본 백두대간 조망
88만원 세대, 삼포(연애,결혼,출산)세대, 실신(실업자,신용불량자)세대, 어느 청년이 그랬다.
“ 맹자 말씀에 백성이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건 왕이 은혜를 베풀지 않아서지, 못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 땅의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백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거지, 못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댁들은 일 안
하고도 잘 사는데 우린 무슨 희망으로 사는가?”
쉰 세대, 베이비붐세대 젊은 오빠가 말했다.
“지저분하고 더러운 대한민국 안마당 그렇게 열심히 쓸고 닦았는데, 아직도 안마당은 여전히 더럽다 .
해거름에 다시 쓸고 닦으려니 아이구야 일 없으니 빗자루와 걸레 내려놓고 이제 그만 돌아가소!” 하네
남들이 너를 잡초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넌 스스로를 잡초라 부르면 절대 안되지
남들은 그럴 수 있지
남들은 네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모르지
네가 도라지 밭에 핀 산삼인지, 드넓은 초지에 핀 한 떨기 야생화 인지…
하지만 넌 알잖아
네가 절대 호락호락 물러설 놈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네 가슴과 네 꿈은 지금보다 더 크고 높다는 걸
남들은 네가 성공하지 못했다거나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몇 번의 실패와 몇 번의 불운으로 네 삶을 실패한 삶으로 인정하면 안되지
남들은 그럴 수 있지
세상에 휘둘리는 그들은 자신이 기준이 너와 다르다는 것을 단지 모를 뿐이지
남들이 생각하는 가치와 네가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걸
세상의 어떤 가치도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넌 알잖아
아직 인생의 마지막 종은 울리지 않았고
네가 세운 스스로의 기준에서 너의 성공과 행복은 아직 유효하다는 걸
세상이 힘들어도 그냥 네 가슴에 높은 하늘을 그대로 두어
세상이 괴로워도 그냥 네 가슴에 출렁이는 바다를 그대로 두어
세상의 벽이 너무 높아도 탈옥을 유보하지 말고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도 네 가슴 속 별을 포기하지 말기를 ….
명예와 지위를 갖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깨에 힘을 줄 수 없어서 슬픈가?
하지만 넌 자유롭잖아
슬프다는 생각만 떨쳐 버리면 넌 경쾌하고 가벼운 나비의 날갯짓으로 어디든지 아름다운 곳으로 날아 갈 수
있잖아
큰 집과 멋진 차 그리고 막대한 은행잔고가 없어서 불행하다고?
돈은 많은 것을 살 수 있지만 넌 더 비싸고 가치 있는 것들을 더 싼 값에 살 수 있잖아
그리고 욕심을 비워낸 아직 따뜻한 너의 가슴엔 사랑과 감동을 한웅큼 채울 만큼 아직 여백이 많이 남아 있잖아
남들과 다르다는 것과 좀 못하다는 것이 결코 부끄러움이 될 수 없다.
장미가 들녘의 민들레 보다 절대적으로 더 아름답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처럼
백합의 꽃몽오리를 보고 철쭉보다 더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타고난 자질과 아름다움을 펼치지 못했다 해도 슬퍼하지 말아라
네가 세상 여행을 계속하는 날 까지 기회와 가능성과 변함없이 네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다만 네 가슴에 다다를 수 없는 별의 희망과 내일의 꿈을 그대로 남겨 두라
넌 그대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충분히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고 자신의 목청으로 세상을 노래하고 자신의
안목과 색깔로 자신의 세상을 그려가는 것일 뿐이다.
들풀과 들꽃이 더 향기롭고 아름다운 초원을 만들어가 듯 너의 존재와 너의 향기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더 아름
다워 질 것이다.
꽃과 침묵
정 채 봉
제비꽃은 제비꽃으로 만족하되
민들레꽃을 부러워하지도,
닮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디 손톱만한 냉이꽃이
함박꽃이 크다고 하여
기 죽어서 피어나지 않는 일이 있는가?
싸리꽃은 싸리꽃대로
모여서 피어 아름답고
산유화는 산유화대로 저만큼
떨어져 피어 있어 아름답다.
사람이 각자 품성대로
자기 능력을 피우며 사는 것
이것도 한 송이의 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산 행 일 : 2015년 7월 5일
산 행 지 : 아들과부르는 노래 20- 백두대간 24구간
코 스 : 차갓재-황장산-황장재-폐백이재-벌재-문복대–저수령
날 씨 : 더운 날씨이나 바람이 불고 오후에는 흐려졌다가 1020봉 이후 다시 햇빛
거 리 : 약14.67km
소요시간 : 약 8시간 45분
동 행 : 서서서,천사,아들
시간 |
경유지 |
비 고 |
08:20 |
파킹 SPOTt |
오미자 동굴 500m 전방 들머리 |
08:45 |
차갓재 중간표석 |
|
09:15 |
작은 차갓재 |
|
09:16 |
헬기장 |
|
10:00 |
묏등바위 위 절벽 |
|
10:13 |
황장산 |
약 10분 휴식 |
11:04 |
황장재 |
|
11:38 |
선바위 |
|
11:59 |
책바위 |
|
12:40 |
갈림길(길주위) |
우측으로 진행 10분알바,15분 중식 |
13:05 |
출발 |
|
13:17 |
페백이재 |
|
13:42 |
928봉 |
|
14:08 |
헬기장 |
|
14:16 |
벌재 이정표 |
문복대3.5km, 황장산 5.5km |
14:40 |
중간 봉우리 |
|
14:45 |
이정표 |
문복대2.5km, 황장산6.6km |
14:51 |
돌목재 |
|
15:23 |
1020봉 |
|
15:57 |
문복대 |
|
16:47 |
장구재 |
|
17:02 |
해돋이 전망대 |
|
17:05 |
저수령 |
|
아들녀석 기말 시험 때문에 출정을 귀연과의 출정을 유보했다.
서서서님이 보충산행 동행모집 공지를 올렸는데 그 날이 귀연 야유회 날과 중복되어 고민하다가
시간과 비용 등 여러모로 번거로워 함께 하기로 했다.
이번 구간 중 작은차갓재-황장산-황장재 구간은 2년전 2013년 5월 17일 마눌과 100대 명산 60번 째 순례
도중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온 산이 풋풋한 연초록으로 대지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5월의 그림 같은 날이었다.
석가탄신 일이었는데 연초록 신록과 진달래가 너무 화사하고 푸른 하늘아래 맑은 조망이 너무 아름다워 이 모든
황홀함이 부처님의 은덕이라고 했다.
초원아파트 정류장 앞에서 천사님과 서서서님과 5시 30분에 합류하여 우린 안생달로 출발했다.
오늘의 백두대간 길은 차갓재에서 작은차갓재를 거쳐 서서히 고도를 높이다가 전망바위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묏등바위에 오르고 그 곳에서 장성 같은 길을 따라 황장산으로 간다.
등로는 황장산에서 감투봉을 거쳐 절벽 전망 바위로 흘러 가다가 가파르게 계곡을 치고 내려 황장재에 도달한다.
백두대간은 다시 황장재에서 심기일전하여 선바위, 책바위 등이 있는 치마바위 능선을 따라 갈림봉 까지 진행한 후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폐백이재에 내려서고 그 곳에서 928봉을 넘어 벌재에 도달한다.
벌재에서는 약 400미터 이상의 고도차를 극복하며 중간봉우리와 돌목재를 거쳐 1020봉에 올라서고 30여분여 더
진행하여 문복대에 다다른다. 백두대간은 문복대에서 장구재로 내려섰다가 다시 튀어 올라 2개의 무명 봉우리를
더 넘어서야 비로소 저수령에 도착하여 숨가쁜 여정을 마무리 한다.
오늘 백두대간의 하이라이트는 묏등바위 절벽에서 바라본 출렁이는 초록바다와 그 위로 파도치며 진군하는 웅장한
백두대간 능선, 치마바위 능선에 걸터앉은 아름다운 청솔과 멋진 암릉들의 조화로운 풍경 그리고 벌재에서 고도를
높이며 치고 오르는 1020봉의 강한 카리스마
황장산 가는 길
갈림길에서 우측 길을 따랐더니 지난 번에 내려왔던 송전탑이 아니고 백두대간 중간표석 이더라.
잠시 배닝을 내리고 송전탑에 들렀다 오는 사이 서서서님과 천사님은 작은 차갓재를 향해 내처 길을 잡았다.
우린 지나간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동행을 기다리고…
바위가 막아 서는 곳에 갈림 길이 있다.
좌측으로 갈라지는 길은 뚜렷하고 우측 길은 바위 위로 나 있어서 무심코 가다 보면 알바하기 쉬운 곳이다.
갈림길 전망바위에 오르면 지금 까지 지나온 백두대간 길이 드넓은 초록세상 위로 유장하게 굽이치고 가야 할 길
위로 우뚝 솟은 바위 절벽이 보인다.
묏등바위에서 황장산으로 이어지는 암릉길의 카리스마와 수려한 조망은 가히 압권이다.
우린 차갓재에서 고개를 숙여 대간길에 경의를 표하며 황장산에 올라야 한다.
그 길은 아직 때묻지 않은 태고의 숨결과 대자연의 깊은 명상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등로 좌측으로 암릉의 산괴가 보인다.
날카로운 암릉과 수려한 노송이 잘 어우러지는 산으로 그 아래 단양8경중 상선암,중선암,하선암, 사인암의 4경을
품고 있는 도락산이다.
단양 8경은 그 외에도 도담삼봉,석문,구담봉,옥순봉이 더 있는데 모두 남한강과 그 지계곡에 걸쳐 분포하는 아름
다운 절경들이다.
옥순봉 가까이 위치한 장회나루 건너 강선대에 올라 푸른 물길을 바라보며 시 한 수 읽으면푸른 물위에 떠도는
퇴계와 두향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껴볼 수 있다.
관기 두향
이별이 하도 설워 잔들고 슬피울제
어느덧 술 다하고 님마저 가는 구나
꽃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단양군수 퇴계
누렇게 바랜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거문고 마주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말라
서로 주고 밭은 시문 편지 이다.
퇴계는 임종할 때 두향이 선물한 매화분에 물을 잘 주라고 유언 했고 퇴게의 임종 소식을 들은 두향은 님과
노닐던 강가에서 곡기를 끊고 지내다가 강나루에 몸을 던져 죽었다.
누굴 사랑한 다는 건 때로 죽음보다 더 무거운 고통이고 피를 토하고 가슴을 허무는 아픔일 수도 있다.
황장산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하는 1/25,000지도에는 황정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예천군읍지에
보면 작성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울창한 산림이 암벽과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우며 황장목이 유명하고 조선시대 봉산 표지석이 등이 있음을
감안 산림청 100대 명산으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황장산의 평가는 산 하나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게다..
강인한 백두대간의 한 축을 형성하면서 주변 산군들과 이루어 내는 멋진 조화와 내달리는 바위 능선에서 바라보는
훌륭한 조망미가 고려된 결과로 짐작된다.
차갓재 중간표석에서 황장산 까지는 약 1시간 30분 소요된다.
황장재 가는 길
황장재에서 위 능선을 따라 감투봉에 서면 고사목 뒤로 아래로 흘러내리는 바위 능선이 보인다.
황장재에서 등로가 연결되는 수리봉 능선 길이다.
능선 아랫쪽에는 대슬랩이 있는데 금지구역이라 로프를 모두 끊어 놓아서 웬만한 바위고수가 아니면 내려가는
길에 오도가도 못하기 십상이다.
중간에 갈림길에서 희미한 계곡 하산 길을 찾으면 폭포 쪽으로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는데 지도에도 잘 나타
나지 않은 길이라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통상 안생달에서 황장산 원점회귀 산행을 하려면 감투봉 가기 전에 갈림길에서 산태골로 하산하여 안생달로
회귀하거나 황장재에서 수리봉 능선을 따라 생달리로 하산 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정표와 리본도 모두 없애버리고 길의 흔적이 희미한 그 곳에서 하산로를 찾기란 그리 만만치 않아서
아주 조심해야 한다.
감투봉에서 바위 능선을 따라 황장재로 가다 보면 등로는 바위절벽에서 막히는데 좌측 하산로를 따라 가파
르게 내려서야 황장재에 도달한다.
바위절벽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능선 남쪽의 수려한 풍경 멀리 천주산과 공덕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황장재
2년전에는 황장산과 벌재 방향이 표시 된 이정표가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당시에도 비록 거리 표시는 지워져 있었어도 해발 985m 표시는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차갓재 이정표도 철거 되었다.
흐미 아무리 금지구간이라고 해도 표지기는 뗄 수 있다 쳐도 이정표 까지 철거할 건 또 무언가?
내림 길에 미끄러져서 뒤쳐진 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 우린 다시 길을 잡았다.
폐백이재 가는 길
암릉 위에 멋드러진 청솔들은 아름답기 그지없고 멀리 보이는 천주산과 공덕산은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선경을 그리며 우리를 계속 따라 온다.
바위 암릉길을 따라 가다 보면 넓은 전망바위와 선바위가 서고 20여분더 진행하면 책을 쌓아 놓은 것 같은
책바위가 나타난다.
치마바위 능선 어느 곳에서나 따라 붙는 멋진 풍경이 속도를 줄여 느릿느릿 걸으라 하고 가끔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은 홀가분하게 마음의 짐을 내리라 한다.
능선을 따라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행하다보니 어느 결에 길이 가파르게 내려 간다.
페백이재로 내려서야 하니 내림 길은 맞을 것 같으나 등로의 흔적이 그리 뚜렷하지 않다.
대간의 흐름을 살펴 보니 대간의 걸 맞는 능선의 흐름이 아니다.
앞선 서서님에게 대간길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 하고 GPS 위치를 확인하여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 갔다.
그래도 빨리 알아차려서 왕복 500미터 정도의 경미한 알바에 그쳤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내친 김에 갈림길에서 식사를 마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폐백이재
한참을 가파르게 내려간다.
곱게 차려입은 새색시가 시부모에게 폐백을 드리는 광경을 떠올려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마을사람들이 절대 혼자는 지나 가지 않는 고개라 한다.
“이곳에 출몰하는 귀신은 혼례를 치루다 비명에 간 처녀귀신 이겠지?”
가야 할 앞 길을 우뚝 막아선 928봉의 만만치 않은 위용을 보니 땀 꽤나 흘려야 할 것 같다.
벌재 가는 길
가끔 바람이 불어 주는데다 아직 힘이 남아 있어 25분여 만에 928봉을 치고 올랐다.
정상에는 아무런 표지석도 없고 신갈나무 아래 잔금이 많이 간 둥근 바위 하나 있다.
928봉에서 등로는 헬기장을 지나 벌재로 가파르게 떨어졌다.
선답자의 산행기에 따른면 벌재에서는 국공직원의 감시초소가 있어 벌재 도달 직전에서 우측 길로 내려서야
한다고 했다.
벌재가 가까워 지자 내가 선두에 나서서 사주 경계를 철저히 하며 조심스레 진행했다.
차소리가 들려오고 아래쪽에 도로가 보이는가 싶더니 리본이 매달린 갈림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다시 등로는 가파른 좌측 하산 길과 산허리를 둘러가는 우측길로 갈라지는데 막바로
아래로 하산하면 벌재 터널 위를 통과하여 대간길로 바로 연결되고 우측 길을 따르면 아래쪽 표석과 정자가
있는 벌재로 내려섰다가 다시 대간으로 올라서야 한다.
하여간 우린 산꾼의 본능적인 예리한 촉으로 엉겁결에 길을 제대로 잡았다.
벌재
문경시 동로면과 단양군 대강면을 잇는 벌재(620m)에 도착한다. 적성이재의 적자가 '붉을적(赤)'이어서
'붉은재'가 된 것을 이 고장 말로 '벌재' 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고개 위로 975지방도로가 지난다.
우린 가장 단거리 코스로 백두대간에 접속하여 치마바위 능선의 짧은 알바를 만회했다.
이곳이 포암산 마골치에서 시작된 20.8km 자연보존을 위한 출입금지 구간의 종료지점이다.
2008년 3월 5일에 시작된 입산금지는 2017년 2월 28일 부로 해제된다.
우린 국공의 눈을 피하려 조심조심 벌재에 내려섰지만 저수령에서 안생달 까지 우리를 태우고 갔던 기사
아저씨는 허망하게도 지난달에 국공 감시초소가 폐쇄 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에잉! 괜히 쫄았잖아!”
그래도 금지구역을 산행한 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최대한 흔적을 남기거나 식생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조심했고 늑대 울음소리나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로
야생동물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문복대 가는 길
오늘 코스의 가장 힘든 구간이다.
이제 거리낄 것이 없어졌지만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다.
400미터의 표고차를 극복해야 하는 이 구간 오름 길 하나로 저수재- 차갓재 구간의 진행방향에 따른
난이도 비교는 게임 아웃이 되어 버렸다.
차갓재에서 전망바위와 묏등바위를 거쳐 황장산 까지 계속되는 오름길
황장재에서 선바위 오르는길
패백이재에서 928봉의 오름길
그리고 벌재에서 1029봉 봉우리 까지 오랫동안 계속되는 오름길…
이런 대표 오름길 외에도 능선 길의 크고 작은 오름 길과 낙차큰 봉우리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무더워 지는
날씨와 함께 체력이 소모되어가는 우리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빽빽한 관목 숲을 헤치고 1020봉에 도달하는 여정은 오늘 산행의 크라이 막스를
장식할 것으로 굳게 믿었지만 그 뒤에도 저수재 까지 아직 총결산과 완결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우린 앞에서 걸었는데 아들 녀석은 그 길을 먼저 뛰어 올라 중간봉우리에서 누워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체력을 앞세운 녀석의 치고 빠지기 전략이다.
중간봉우리에서 등로는 다시 돌목재로 잠시 떨어졌다가 1020봉을 치고 오른다.
바람도 불지 않는 산 길, 인내와 투혼을 자극하는 그 길의 은근하고도 묵중한 압력은 꽤나 고압적이었다.
걸어온 험한 길의 피로가 누적되어 힘들긴 해도 아직은 그다지 힘에 부친 건 아니어서 오름 길의 속도은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빌빌거리다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아들녀석을 쫓아 가속을 하긴 어려웠다.
황새가 뱁새 따라 가다 가랑이 찢어지게 생겼으니 어쩌면 벌써 황새와 뱁새가 바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1020봉에서 다리쉼을 하고 문복대를 향해 출발했다.
산 넘어 산 !
이젠 오름길은 다 마무리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다시 솟아오르는 봉우리들은 원래 사람을 더 지치게
하는 것이다.
크라이막스를 지나 다시 총결산에 임하는 무릉객의 자세는 불량하기 그지 없다.
1020봉에서 문복대는 35분여 더 가야 하는데 이젠 내림길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두 개의 봉우리와 계속되는
오르막을 만나니 오히려 벌재 오를 때 보다 힘이 더 들었다.
문복대
야호! 우리는 드디어 문복대에 도착했다.
문복대는 경북 예천군과 문경시, 충북 단양군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산으로 이 산에서 한줄기가 북으로 뻗어
수리봉.신선봉과 도락산으로 이어진다.
문복대는 백두대간이 죽령, 도솔봉, 향적봉, 저수령을 지나서 문경시 관내로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만나는
큰 산으로 당초 운봉산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먼저 온 아들녀석은 여유롭게 정상에서 휴식하고 있다.
녀석에겐 이젠 어김 없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백두대간을 걸어가는 만큼 발걸음이 점점 더 수월해지고 성취와 기쁨이 쌓이고 있다.
아들아! 인생은 단지 사는 게 아니라 재미있어야 한다. .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더라도 자꾸 웃다 보면 행복해질 수 있고 때론 땀과 고통이 너를 웃게 만들기도 한다..
행복을 미룰 수도 있지만 언제라도 그것을 찾고 만드는 건 네 자신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미칠 정도로 너를 몰입하게 하고 네 안의 열정을 흔드는 무엇인가를 이 백두대간 여행길에서 꼭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
저수령 가는 길
우린 문복대에서 남은 간식을 나누고 저수령을 향해 출발했다.
아들녀석도 사라지고 이것 저것 사진을 찍다보니 오늘의 꼴지를 내가 장식한다.
이젠 내려갈 길만 남았겠구나 했는데 웬걸 문복대에서 등로는 가파르게 하강하여 임도 같은 장구재를 만나
더니 다시 봉우리를 치고 오른다.
“어허 오늘 대간 길은 정말 대간하구나 !”
내려서는 길에 서서서님과 천사님을 만났는데 먼저 치고 나간 아들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어라 ! 이런 갈림 길에서는 반드시 기다릴 텐데..”
혹시 다른 길로 샌 게 아닌가 해서 갑작스레 모골이 송연해 졌다.
리본도 그다지 많이 달려 있지 않았고 여기저기 사진 찍느라 갈림길 같은 것도 보지 못했다.
장구재에서 몇 번 불러봐도 대답을 하지 않고 전화를 넣어도 받지 않는다.
잠시 후에 아들녀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장구재 반대편 리본이 많이 달린 곳을 따라 먼저 산에 오르고 있다고 ….
“:녀석이 이제 조금씩 산꾼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다.”
항상 건들거리며 뒤 따라 오다가 답답하면 먼저 휑하니 치고 나가는 녀석이라 오늘 산행을 하면서 노파심에
몇 군데 기억해야할 포스트와 목적지를 알려주었었다.
“넌 오늘 차갓재에서 저수재 까지 백두대간 구간을 산행하는 것이고 중간에 황장산과 벌재 그리고 문복대를
거친다.
길을 잃으면 문복대와 저수재 방향으로 진행하고 엉뚱한 곳으로 내려서면 택시를 타고 저수재로 오면 된다.”
어쨌든 장구재에서 무명봉 두 개를 더 넘고 나서야 저수령에 도착할 수 있는데 가는 길에 또 알바 할 수 있는
갈림길이 있다고 선답자 산행기에서 보았던 터라 이녀석이 길은 잘 잡았는지 걱정하면서 걸었다.
잠시 후 다시 연락이 왔다.
해맞이 제단석이라고 …
“다행이다 너 이 녀석 거기 꼼짝 말고 있어라! “
해맞이 제단석 바로 아래가 저수령이니 아들 녀석이 길은 제대로 잡은 것이었다.
천천히 봉우리에 올라 내려가다 보니 용두산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잠시 후 나는 제단석에서기다리던 아들과 다시 합류 했다.
서서서님과 천사님은 택시 기사님이 기다릴까봐 그대로 저수령으로 내려 갔다고 했다.
우린 제단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저수령으로 내려섰다.
기다리는 기사님에게 기념촬영을 부탁하고 우리는 그렇게 멀고도 험한 여정의 추억을 마지막 함께한 사진
으로 길무리 했다.
빨래 끝 !!
아흐디롱디리!!
지구총 지국총 어사화 !!
힘들었지만 아름답고 뿌듯한 여행길이었다.
많은 산우들과 함께하지 못했지만 단촐하고 호젓했다.
서서서님과 천사님과는 속내를 나누며 한 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아들녀석이 무덥고 힘든 길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패기만만하게 그 길을 마무리해주어서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이 험한 세상에서 어쩌면 수 많은 젊은이들과 많은 늙은 젊은이들이 쉽게 꿈을 접을 것이다.
우리 사는 세상은 점점 치열해지고 각박해져서 이전 보다 더 많은 노력과 인내로도 튀틀린 세상의 문이 쉽사리
열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가슴은 빈 채 한 쪽 골만 비대한 사람들,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위해 쉽게 양심과 영혼을 내어주는 가슴 차가운
사람들 그들만의 리그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소외되고 비자발적인 아웃사이더로 남아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아들아 난 네가 오늘처럼 힘든 세상을 여유롭게 받아 치길 바란다.
그리고 더 큰 힘겨움이 네 앞을 가로 막아도 희망과 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묵묵히 네 길을 걸어
가길 바란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가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바람 없는 벌재에서 1020봉 오르는 힘겨운 비탈길을 우리가 포기하지 않았기에 우린 목젖이 얼얼한 한잔의
맥주를 기분 좋게 마시며 다시 진부령을 향한 힘찬 걸음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것처럼 …
오늘의 한 걸음 한걸음이 다음 걸음을 좀더 수월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깨달아 가기를 바란다.
백두대간에서 누렸던 작은 성취의 기쁨들이 새로운 도전과 더 큰 성공을 자극하고 네가 짊어졌던 고난의 등짐과
네가 흘린 고난의 땀방울들이 너를 따뜻한 가슴을 가진 강한 젊은이로 만들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멀리 보이는 암릉미 도락산
묏등바위에 올라서서 바라 본 우리가 지나 온 대간 풍경 - 멀리 대미산
황장산에 오르는 천사님
가운데 암봉이 수리봉 능선
굽이 치는 백두대간 - 어찌 이 길을 걷지 않을 수 있으랴?
10:13 황장산 - 차갓재에서 1시간 28분 소요
오늘의 동해 - 천사,서서서 , 알티엔
멀리 바라보이는 천주산과 공덕산 - 오늘의 시각 나침판
10:47 감투봉 - 황장산에서 34분/ 차갓재에서 2시간 2분 소요
감투봉에서 바라 본 멋진 수리봉 능선
10: 54 절벽 전망바위 감투봉에서 약 7분
절벽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풍경 - 여기에서 대간은 좌측 아래로 급하게 내려가 황장재에 내려선다.
절벽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풍경
가야 할 백두대간 길
11:04 황장재 - 황장산에서 51분 / 차갓재에서 2시간 19분
2년전만 해도 이정표가 있었는데 사라졌음
벌재 까지 특별자연 보호를 위한 휴식년 출입금지 2017년 인데 조기 개방 진행중임
천주산 공덕산 멋져부러 - 귀연에서 겨울에 왔었는데 진짜 다이나믹 하고 멋진 산
그 겨울에 로그인과 친구가 아이젠도 없이 넘어 간 전설의 산
넌 살기위한 몸부림인데 남들은 그걸 멋지다 하지 - 상처 투성이 네 몸도 정말 아름다워
척박한 바위에서 푸른 솔잎을 피우는 너의 멋진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절벽난간에서 바라 본 풍경
생달리로 내려서는 수리봉 능선
가파른 계곡길을 내려서서 뒤 돌아선 조망 절벽
11:38 선바위 - 황장재에서34분 / 차갓재에서 2시간 53분
지나 온 봉우리
선바위 전망대에서 서서서님
11:59 책바위 - 선바위에서 22분 / 차갓재에서 3시간 14분
책바위에서 휴식 중인 아들
12:40 갈림길 길 주의 지점 / 책바위에서 약 40분 지점
이정표와 표지기가 없어서 정신줄 놓고 가다 보면 100% 알바 지점
약 200~300 미터 남짓 내려 갔다가 되돌아 옴
좀더 가까워진 천주산과 공덕산
13:17 폐백이재 - 대간 갈림길에서 37분 / 차갓재에서 4시간 32분
워쪄 한참 내려온다 했더니 - 앞을 턱 막아선 강한 카리스마의 928봉
할아버지가 사셨다는 문경시 동로면 풍경
13:42 928봉 - 폐백이재에서 25분 / 차갓재에서 4시간 57분
고로쇠여 오줌이여 ?
혤기장을 지난다.
14:16 벌재 이정표 928봉에서 34분 / 차갓재에서 5시간 31분
제대로 내려와서 터널위로 통과 하여 만난 이정표 - 대신 벌재 표석은 만나지 못했음
벌제에서 국공이 지킨다고 했었는데 한달전 쯤에 철거 했다고 택시 기사님이 알려주다.
무덤 가득한 둥글레 군락을 지난다.
1020봉 가기 전 중간 봉우리 - 겁나게 달려서 뛰어 올라간 알티엔이 물을 마시고 있다.
중간봉우리 휴식
14:51 돌목재 - 벌재에서 35분
돌목재에서 1020봉을 오르는 알티엔
1020봉을 향해 오르는 알티엔과 천사님
오늘 구간의 하이라이트 - 벌재에서 400여미터의 고도차를 극복해야 하는 가장 난코스
길은 험하고 풀은 무성하여 눈에 뵈는 것은 없고 ...
15:23 1020봉 - 돌목재에서 32분 / 차갓재에서 6시간 48분
13:57 문복대- 1020봉에서 34분 / 차갓재에서 7시간 12분
16:47 장구재- 문복대에서 50분/ 차갓재에서 8시간 2분
해돋이 전망대
17:05 저수령- 문복대에서 1시간 8분/ 차갓재에서 8시간 20분 / 생달리 들머리에서 8시간 45분
빨래끝 - !! 아흐 디롱디리 지국총 지국총 어사화
2003년 6월 추억의 사진
능선 해돋이
치마바위 능선에서 청산님과
지금하고 별차이 읍네!
함께한 대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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