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령 들머리 출발 : 08:48
촛대봉 : 09:13 저수령에서 25분
황당한 촛대봉 이정표
이 이정표로 보면 저수령 - 솔봉이 13.23 km라는 이야기 인데 정작 솔봉 지나서 있는 묘적령에는
저수령 까지 10.7m 라고 표기되어 있음 (결과적으로 묘적령 까지 14km라는 주장)
이거 세운지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완전 엉터리
묘적령 이정표거리가 거의 비슷한 듯
야생화는 흐드러 지고..
투구봉 : 09:22 촛대봉에서 9분
저수령- 솔봉 구간이 12.94 km 라는 말씀이신데 방금 촛대봉에서 한 야그와 또 앞뒤가 안맞는 야그
약 300미터 증발
투구봉에서의 멋진 조망
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문경시 동로면
어느 날 산에서 떨어졌다.
친구들이 그랬다 “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냐고?”
등뼈에 불 같은 충격과 함께 갈비대가 2대 나가고 몸통에 기브스까지
난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주말의 비자발적인 칩거를 시작했다.
난 어이없는 실족을 골백번 더 후회하고 잃어버린 자연과 자유에 통절해 했다.
몇 달만 고생하면 된다던 허리의 통증은 오래도록 내 허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통증은 강제적으로 내 삶의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했다.
산에서 잘려나간 시간은 마지못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책과 영화에 배분되었다.
하지만 난 예전에 대자연 속에서 내가 누리던 삶의 기쁨과 행복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다.
아파 보니 그건 내 삶을 지배했던 엄청난 중독이었다.
난 불가피한 오랜 칩거 후에 허리의 통증이 덧나거나 심해지지 않는 범위에서 산을 다녔고 절에 들어가면
늘 부처님께 엎드려 빌었다
“ 부처님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예전의 허리만 돌려 주소서 !”.
그 통증이 완전히 내 허리에서 사라지는 데는 꼬박 4년이 걸렸다.
삶이란 녀석은 어느 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우리의 팔과 목을 비틀어 버린다.
그것이 이미 프로그램 된 운명인지 불운인지는 모르지만 개인의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세상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아무리 용을 써도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보이지 않은 누군가 일을 저지르고 우린 그 일을 가장 피해가 없는 방법으로 수습해야 한다.
삶을 중단하거나 유보할 수 없고 내 어깨에 지워진 등짐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 실어 줄 수 없기에…
심하게 아파 본 사람들은 안다.
평범한 날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가족의 손을 잡고 오솔길을 산책하고 가파른 숨을 몰아 쉬며 산에 오를 수 오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사치
스런 행복인가를…
지나고 나면 인생만사 다 새옹지마란 말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난 허리가 아프고 나서야 거친 산길을 포기하고 비로소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더 낮은 산들을 더 천천히 걸었다.
4년이 지나 허리의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나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경이로운 산 세상을 다시 만나고
있다.
아내와 시작했던 100대 명산 주유를 이제 거의 다 마무리되었다.
산친구들과 낙동정맥과 한남정맥을 완주했고 지리산 둘레길을 순례했다.
아내와 대청호 들레 길을 완주하고 다시 500리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렇게 아들과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불의의 사고가 나의 거침없는 질주를 멈추게 하고 나를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지나고 나니 그 불의의 사고가 삶의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일깨우고 내 삶의 균형을 잡아 주었다.
건강한 신체의 축복,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의 고마움, 그리고 항상 가까이 두고 알아차리지 못했던 작은 행복들
또 하나 선물이 있다.
폭주 기관차는 어느 날 멈추었지만 본의 아니게 오랫동안 쉬었던 내 도가니는 아직 싱싱하다.
세월은 내게 말했다.
삶에 떠밀려 온 작은 불행 하나로 전체 삶을 예단하지 말고
지레 겁먹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삶은 소맷부리와 안 주머니에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수 많은 패를 감추고 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다.
멋진 반전의 영화가 우리에게 쾌감과 카타를시스를 가져다 주듯이 신은 우리 고통의 한계점에서 어이없는
반전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
세월이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지금 힘든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안다.
나의 죽는 소리를 누군가 들어주지만 아무도 그걸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걸
많이 힘들어도 소리 내어 울지 말아야 한다는 걸!
삶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건 사랑의 무게라는데
나의 신음과 울음 소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과 세상을 무너뜨리고
나의 울음소리는 부적격자의 조종이 되어 멀리까지 울려 퍼질 것이다..
어쩌면 나약한 나를 신이 먼저 포기할지 모른다.
산을 지나는 바람이 내게 말했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마라 !
불확실한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아라.
세월은 쉬는 법이 없고 불운은 눈에 뵈는 것이 없다.
갖지 않은 많은 것을 더 가지려 애쓰지 말고 이미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을 누리면서 즐겁게 살아가라.
행복은 모두 작은 네 가슴 속에 있다.
산 행 일 : 2015년 6 월 28일
산 행 지 : 아들과부르는 노래 18- 백두대간 25구간
코 스 : 저수령-시루봉-흙목정상-솔봉-뱀재–묘적령
날 씨 : 흐리고 자욱한 안개, 등로는 시원하다.
거 리 : 약19.3km
소요시간 : 약 6시간
동 행 : 귀연산우회 대간꾼들 44명
시간 |
경유지 |
비 고 |
08:48 |
저수령 출발 |
|
09:13 |
촛대봉(1080m) |
투구봉:0.73km,솔봉:12.43km / 저수령:0.8km |
09:22 |
투구봉(1081m) |
시루봉:1.46km,솔봉:11.41km /촛대봉:0.73km,저수령:1.53km |
09:47 |
시루봉(1110m) |
배재:1.85km, 솔봉:9.68km/ 투구봉:1.46km, 저수령:3km |
10:12 |
108봉(유두봉) |
배재:0.65km, 솔봉:6.96km/ 시루봉:1.19km, 저수령:4.19km |
10:28 |
배재 |
싸리재:1.2km, 야목:2km |
10:52~ |
싸리재 |
흙목정상:1.2km, 원용두:1.93km |
11:28 |
흙목정상(1070m) |
뱀재:0.55km, 헬기장:1.8km, 가재봉:2.21km, 싸리재:0.95km |
11:44 |
송전탑 |
|
11:55 |
뱀재 |
|
12:06 |
헬기장 |
|
12:32 |
솔봉(1021m) |
약 30분 식사 |
13:05 |
솔봉 출발 |
|
13;21 |
모시골 정상 |
묘적령:1.7km, 모시골마을:1.7km, 저수령:9km |
14:00 |
묘적령표석(1020m) |
고향치 2km |
14:48 |
고향치 |
산행끝 |
어이 없는 날의 계속이다.
메르스는 그 기세가 다소 누그러지긴 했지만 아직도 물러갈 기미가 없다.
가뭄은 농민들의 수심을 깊게 하고 점점 더 나빠지는 경제는 서민들의 한숨과 주름을 늘린다.
장마라고 하지만 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비판과 상호 비방만 난무하는 이전투구와 정치판에서 상호존중과
이해의 미덕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렵다.
망중한 휴일에 청소를 하다가 허리가 삐끗했다.
측구를 한 것도 아니고 모처럼 TV좀 보고 청소한 것 밖에 없는데…
몇 일간 한방 치료를 받고 좋아지기는 했는데 예전에 다쳤던 부위라 혹시 요즘 너무 달린 게 빌미를 준 게
아닌가 불안했다.
별 문제는 아니니 의사는 당분간 쉬라고 했는데 백두대간 출정이 돌아왔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10시간여 산행
별다른 이상이야 없겠지만 난 몸이 보내는 신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오늘의 백두대간 구간은 저수재에서 시작하여 죽령까지 진행하는 19.5km 구간이다.
저수령과 죽령사이에는 배재, 싸리재,뱀재,묘적령을 포함 6개의 재가 있고 촛대봉,투구봉,시루봉,유두봉,
흙목정상,솔봉,모시골정상,묘적봉,도솔봉,삼형제봉의 10개 봉우리가 있다.
문경을 넘어 온 백두대간은 저수령에서 촛대봉까지 가파르게 치고 올라 여러 봉우리와 고개를 넘나들며
묘적령까지 진행한다.
묘적령에서 백두대간은 전방바위와 묘적봉을 거쳐 일대에 걸출한 1314m의 도솔봉에 오르고 이후 삼형제봉과
1286봉을 거쳐 죽령으로 내려선다.
오늘 구간의 하이라이트는 묘적봉에서 도솔봉을 지나 삼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산길
한발한발 수행과 정진의 경건함으로 걸어가는 길 위에서 만나는 신비로운 풍경과 장엄한 조망
하지만 우리가 만난 건 무심한 안개가 흐르는 능선과 몽환의 안개가 고원의 숲길에 그린 신비로운 수채화
실측거리 736.72km 남한 백두대간에서 문경시 관내의 경계를 통과하는 백두대간은 99.45km이다.
대간의 14%에 해당한다.
육산의 부드러움과 강인한 골산의 빼어난 암릉미가 잘 조화된 수려한 풍경의 문경 백두대간 구간은 우리
산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저수재에서 비로소 바톤을 예천군으로 넘겨주었다. .
백두대간은 10.7km예천 군내의 산길을 따라 가다 묘적령에서 영주시 풍기읍으로 다시 바톤을 넘긴다. .
저수령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옥산리를 경계로한 도계지점으로 경북과 충북을 넘나드는
고개이다.
낮을저(低), 머리수(首)
옛날 고갯길의 경사가 하도 급하여 지나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또
한편에서는 피난 길인 이곳을 넘어가던 왜적이나 도적들의 목이 모두 잘려나가 고개를 숙인 채 두려움에 떨며
넘어야 하는 무섭고 험한 고개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장마 휴지구간
태양이 구름밖으로 오락가락 하는 것 같더니 저수령에 도착하고는 태양이 구름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내심 참아주길 바랬는데 …
날이 무더워지면 쉽게 지치고 물 무게가 무거워지는 만큼 발걸음도 무거워 진다.
기말 시험 때문에 지난 출정을 건너 뛰어서 아들녀석은 5주만에 산에 발을 들여 놓았다.
시루봉 가는 길
저수령에서 가파른 길을 올라 치니 1081m봉이 선다.
저수령이 해발 850m이니 고작 230미터 치고 올라왔는데 아들녀석은 혓바닥이 턱에 닿는다.
예상했던 대로 녀석의 몸은 한달 전의 빡센 산행의 기억을 벌써 잊어 버렸다.
산은 처음 한 시간이 힘든 법이고 나이에 상관없이 꾸준히 타는 넘이 장땡이다.
투구봉에서 멋진 조망이 트인다.
먼 산엔 낮은 흰구름이 산허리를 휘감고 있다.
점점 기대되는 오늘의 멋진 조망
투구봉을 지나 시루봉으로 가다가 아들녀석이 발 뒤꿈치가 아프다고 한다..
지난 번에 등산할 때 앞 발가락이 아프다고 해서 이번에 K2등산화로 거금을 들여서 사주었는데 이젠 뒷꿈치가
말썽이다.
그럴 것 같아서 대일밴드 까지 붙여 주었는데…
오래 신어 많이 닳아버린 내 등산화와 바꾸어 주었다.
시루봉은 저수령에서부터 1시간여 걸린다.
시루봉에서 좌측으로 단양면 무수천리와 신구리를 거쳐 장정마을로 내려서는 하산로가 있다.
허리에 이상징후가 느껴지면 중간에 내려설 생긱으로 하산로와 탈출로를 면밀히 살펴 두었다.
시루봉에서 배재 가는 중 잣나무 숲 지나면 좌측 단양쪽 남조리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배재에서 2km 내려가면 예천 쪽 야목 마을에 도달한다.
싸리재에서는 좌측으로 남조리로 내려설 수 있고 우측으로 1.93km 하산하면 원용두 마을에 도착 가능하다.
흙목정상에서도 바로 아래 임도를 따라 상백,하백 마을로 내려설 수 있고 솔봉을 지난 후 만나는 모시골 정상
에서는 1.7km 아래 모시골 마을로 하산할 수 있다.
그래도 가장 바람직한 탈출로는 묘적령이다.
저수령에서 10km를 넘어서는 지점이고 그곳에서 2km만 내려서면 고향치에 도달한다.
짧게 백두대간 산행을 이어가는 산악회에서는 이곳에서 한 구간을 끊는다.
싸리재 가는 길
시루봉에서 젖꼭지를 닮았다고 선정적인 이름을 갖다 붙인 1084봉(유두봉)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잠시 다리쉼을 했다.
배재를 지나 씨리재에 가는 길에는 녹음이 무성하고 아직 한창 때는 아니지만 산딸기가 많았다.
어릴 적에는 늘 산딸기가 많은 곳을 알아 두었다가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산딸기를 따먹곤 했다.
그 때만 해도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누렸다.
주변 산을 다 돌아 다녀서 자연 먹거리에 대한 고급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데다 메뚜기와 풍뎅이 매미 등의
서식지는 꿰차고 있었다. 게다가 말도 안 되는 옛날 이야기를 재미 있게 꾸미는 잔 재주까지 겸비하고 있었
으니 동네 아이들이 많이 따랐다.
옛날 생각이 나서 몇 번인가 산딸기를 따서 아들에게 건네 주었는데 아들녀석은 맛있다고 아이처럼 좋아라
받아 먹는다.
어릴적부터 산자락에서 놀기 좋아하던 습성은 어른이 되고서도 변치 않았고 이젠 산과 바람이 행복을 불러
내는 주술이 되었다.
지금도 산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산에 들면 세상을 잊는 버릇도 여전하니 아마 난 전생에 멧돼지
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내 가슴속에 남겨진 추억과 감동 내 머릿속의 보물지도는 내가 평생 벌어들인 것 중에 가장 값나가는
것들 일 게다
해발이 높아서 인지 바람은 별로 불지 않았지만 숲이 울창하여 무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조망이 없으니 자연 눈길이 숲 길에 머문다.
산딸기 덤불 숲을 지나고 이름 모를 야생화와 둥글레 군락을 지난다.
싸리재 가는 봉우리에서 모처럼 조망이 터진다
단양군 남조리,남천리,무수천리,신구리,장정리 방향 조망이 눈에 들어 온다.
무거운 등짐에 허리 오른쪽 뻐근한 통증이 왼쪽으로 이동했다.
옛날 아팠던 때처럼 느낌이 좋지 않다..
저수재에서 두시간여에 걸쳐 싸리재에 도착했다.
낭만파 길손 누군가 그네를 달아 놓았다.
잠시 배낭을 내리고 아들녀석은 본격적으로 그네타기 모드
다른 산우들은 후미까지 모두 지나 가고 우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잡았다.
그래서 싸리재라 했구나
싸리재와 주변에는 싸리나무가 지천이고 보라색 싸리 꽃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솔봉 가는 길
흙목정상이 다시 해발 1000고지를 치고 올라 온 것이라서 그런지 자욱한 안개가 깔린다.
미세한 물방울의 입자가 떠다니는 능선 길은 쾌적하고 시원하다.
웅혼한 조망의 아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는 듯 몽환적인 안개는 한 굽이 길마다 은은한 수묵화를 걸어 단조로운
여정을 위로한다.
흙목정상을 지나 가는 길에 참으로 맑은 새소리가 들린다.
안개 속 가까이에서 심금을 울리는 새소리는 청아하고 신비로운데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혹여 가는 길이 지루할 까봐 새는 솔봉에 도착할 때 까지 계속 노래를 불러 주었다.
아들녀석도 이젠 몸이 좀 풀리고 적응이 되는지 콧노래를 부르면서 따라온다
분위기 좋은 산길에서 아들녀석에게 물었다.
“너 이번에 한달 넘게 산에 가지 않았는데 몸이 근질 근질하고 산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더냐?”
녀석은 일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전혀 안 그렇던데요…”
허 눈치라곤 하나도 없는 이 녀석 다음에 직장상사한테 아부 떨긴 틀린 넘이다.
근데 이 녀석은 왜 아직도 산이 좋아지지 않을까?
내 생각대로라면 녀석은 벌써 산의 매혹에 푹 빠져야 하는데 …
“아들아 사람은 말이다 나중에 세상을 살아 가면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무언가를 꼭
찾아야 한단다.
아빠가 젊은 날부터 산을 좋아했던 것처럼 너의 삶을 위로하고 삶의 기쁨과 열정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 아빠 저는 산보다 여행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띠옹 ~~`”
이 녀석 나 따라 여행 몇 번 다니고 제 누나 하고 일본 다녀온 게 다인 녀석이 여행의 맛을 어떻게 안다고….
대답이 궁한 나는 이렇게 한마디 던지고 발길을 재촉했다.
“여행은 나중에 네가 돈 벌면 다할 수 있는 것이고 나이 들어서도 다 할 수 있는 것이여!”
이야기 해놓고 보니 참 어패가 있는 말이다.
요즘 산 타는 젊은이들이 있느냐 말이다.
그럼 나를 포함해 이 백두대간 하는 올드한 사람들이 모두 다 젊은이라고?
“제길!. 괜히 물어 보았네.“
초록의 풀이 무성한 길과 푸른 신갈나무 숲 길을 지난다.
능선 안부 바위틈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다.
아들녀석이 오지 않아 배낭을 내리고 한참을 쉬고 있는데 헐레벌떡 뛰어왔다.
잘 따라 오다가 몇 번씩 뒤쳐지기를 반복하길래 왜 그런가 하고 물어보니 보이는 산딸기 마다 따먹고 가다 보니
그렇단다.
나는 많이 쉬었으니 선풍기 바람보다 더 시원한 바람 좀 맞고 따라 오라고 했다.
송전탑을 지나니 작은 돌 표석이 있는 뱀재에 도달한다.
잠시 배낭을 내리고 기다리는데 녀석이 급하게 뛰어오다 바위에 부딪혀 내 앞에서 나동그라 진채 일어나질 못한다.
무릎을 부딪혀서 피가 흐른다.
“이넘아 그건 너무 경거망동하지 말고 조심하란 산신령님 경고다.”
아파 죽겠다는데 이건 또 무슨 경우?
어허! 나의 주특기는 아픈 놈 면박 주고 덧나지 않게 한답시고 상처에 고춧가루 뿌려 주는 것이다.
헬기장을 지나 25분여 산길을 진행하자 홀연히 솔봉이 나타난다.
솔봉에서는 후미 산우들이 식사를 마무리 하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진 않은 셈이다.
우린 과일을 얻어 먹고 봉우리 한 켠에서 천천히 식사를 했다.
굳이 서두르지 않은 것은 후미를 확인했으니 마음먹으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고 한편으로는
묘적령으로 내려서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허리는 조금 더 뻐근해 졌다.
나의 오랜 산친구들이나 산에서 만난 선배들은 모두 나만큼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산이 있어서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젊은 시절을 온 산을 헤집으며 삶의 기쁨을 노래했던 산우들이 점점 나이가 들어 가면서 욕심 사나웠던 산행의
크고 은 후유증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 될까 봐 조심스러워 진다..
일단 산의 중독성에 빠지고 체력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오버슈팅은 불가피하다.
더 많은 산에 대한 집착 그리고 더 빠르고 더 멀리 가고 싶은 욕심은 종종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은 도전과
기록 갱신의 욕구까지 자극해서 우리를 멈출 수 없게 한다.
10시간을 훌쩍 넘기는 무박 종주
하루 종일 비 맞고 감행하는 산행
짜릿한 속도산행과 하산로 내리 달리기
무거운 등짐을 지고 거친 능선을 오르내리는 비박산행
쉼 없이 몇 일을 계속하는 연속산행
울트라 마라톤 연계 산행
모두가 젊은 날의 멋진 날의 추억이고 강한 나의 자부심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날마다 세포와 조직은 내상을
최소화 하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막말로 골병이 드는 것이다.
유전자와 개인차는 분명히 있지만 사람이나 자동차나 보일러나 너무 오랫동안 과부하가 걸리면 가동 수명이
단축되는 법이다.
젊음은 몸에 가해지는 많은 무리와 충격을 묵묵히 감당한다.
하지만 그건 노후에 타먹을 일시불 고통연금 같은 거다
몸은 그 무리와 충격을 몸 속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 것이다.
마누라와 몸은 젊을 때 받은 학대를 모두 기억했다가 나이가 들고 힘 빠지면 그 고통과 외로움에 고금리 이자를
붙여서 돌려준다.
몸보다 늦게 늙어가는 마음이 난 여전히 짱짱하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사태는 더 가속화 될
것이다.
나이가 들고 지탱하는 몸이 감도가 다른 데도 짊어진 무게를 내리지 않으면 어느 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몸은
대놓고 소리칠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우린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의 선택을 강요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 동안 달성한 위업은 과거 속에 잠들고 우린 보통 사람들 보다 훨씬 먼저 산을 내려와 아직 젊은 나이에 옛
추억을 떠올리며 산기슭을 배회해야 할지도 모른다.
세월이 더 빨리 가면 갈수록 우리의 상대속도는 더 느려져야 한다
중량이 초과된 누적피로가 측정불가의 임계점을 넘어 기관의 고장을 초래하기 전에 쌓인 피로의 짐을 미리미리
내려야 한다.
어떻게 그 임계점을 아느냐고?
더 이상 즐겁고 행복하지 않은데 고통을 참으며 이를 악물어야 할 때…
몸이 비명을 지를 때
묘적령 가는 길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A팀은 아마도 안개 속에서 산행을 끝낼 것이고 우리는 후반부에 안개 걷힌 멋진 조망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아직 살아 있다.
벤치가 나타났다.
목 좋은 곳에서는 쉬어가야지!
허리도 뻐근하고 우린 2개의 벤치에 일자로 누워 잠시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허리 통증이 사라지고 낙동정맥을 시작했으니 세월은 또 5년이 지났다.
다시 찾은 높고 깊은 산들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리고 드넓은 대자연의 가슴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세상살이 어려울 것이 무엇인가?
난 이렇게 아무데나 가고 싶은 곳 다 갈 수 있고
자연은 이렇게 드넓고 푸르기만 한데….
무심하고 무상한 세월의 답은 물처럼 바람처럼 조용히 흐르는 것이다
사랑하며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것 .
신께서 눈을 희미하게 하심은 못 볼 거 더 이상 보지 말고 보고도 못 본체 하라는 것이고
귀를 희미하게 하심은 쓸데 없는 이야기 그만 들으라는 것이고
다리심 빠지게 하심은 너무 서두르거나 나대지 말고 좀더 느리게 삶을 관조하라는 것이야
나이가 들면 컨디션이 나쁠 때 가끔 두 놈들이 티격티격 싸운다.
노회한 마음이란 녀석은 다혈질이고 자존심이 강해서 늘 큰소리 친다.
“내 나이가 어때서 ? 난 원래 튼튼하구 아직 한창이야. 볼 것도 읍써! 오늘도 그냥 달리라구 !…”
그럼 몸이란 녀석이 받아 친다.
오늘 하루만 산 타구 더 안 탈 건가? 그 노무 산이 낼 어디로 도망가나?
그때 그때 상황은 다르지만 마음보다는 몸이란 넘이 먼저 늙어가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우린 묘적령 표석에 당도했다.
이곳은 묘적령 이정표가 세워져 잇지만 하나의 산줄기가 분기하는 봉우리다.. 모래재-옥녀봉-자구산-남산으로
흘러가는 자구지맥이 갈리는 곳이다.
좀 더 아래 쪽으로 내려가면 이정표가 서 있는 진짜 묘적령이 나올 것이다.
그 곳에서 소백산 국립공원이 시작되고 지역은 경상북도 풍기읍으로 넘어 간다.
첩첩의 산세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의 안개에 휩싸여 있다.
일단 우린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도착을 확인해 줄 산님이 한 명도 없고 안개에 쌓인 표석은 묵묵히 말이 없어서 우린 각자 사진을 찍어
주었다.
산신령님 진짜 너무 하시네
예전 죽령에서 저수령 백두대간 할 때 하루종일 비 퍼붓고 아무런 풍경도 안보여 주시더니 오늘도 안개를 풀어
도솔봉 풍경 안보여 주실 심산 이시네…
북망산천 지나 도솔천 건너기전에 또 한 번 다시 오라고….
가야할 길은 지금 온 길보다 더 거칠고 4시간 30분 정도 더 가야 할 것이다.
우린 이곳에서 하산 하기로 했다.
하산해야 할 이유가 더 많아졌으므로 …
배낭의 무게는 많이 줄었지만 다음주도 백두대간 보충산행이 예정되어 있어 굳이 무리하고 싶지 않다.
저승의 도솔천과 같은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묘적봉과 –도솔봉- 삼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풍경을 꼭 맑은
날 만나 보고 싶다.
산신령님이 다시 오라시니 죽기 전에 이승의 도솔봉 절경을 보여주시것제
시간이 허락된다면 아얘 내친김에 예천에서 1박하면서 예전 투어하고 도솔봉 해돋이까지 보고 싶다.
오래 전 귀연에서 청산님 가이드로 예천 투어를 했었는데 하루 종일 돌아 다녔는데도 다 둘러보지 못했다.
국내 유일의 재산세 내는 소나무 석송령, 유서깊은 용문사, 초간정,회룡포, 삼강주막 등등...
그리고 문경온천 짱이고 용궁순대는 정말 맛있다.
매제의 고향이 예천이고 나의 고향 역시 예천에서 멀지 않은 용궁 옆 동네 율현이다.
가을 날 언제 날 맞추어 함께 산행하면 좋을 것이다.
아들녀석의 컨디션은 펄펄 살아나고 산행하기 좋은 날의 아쉬운 감은 있지만 우린 즐거운 마음으로 고향치로
내려섰고 미리 전화하여 바람처럼 달려와 준 풍기택시를 타고 죽령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것이다.
다음에 한 번 더 가야 하지만 덕분에 녀석도 횡재했다.
물도 많이 남았고 과일도 남았다.
휴게소 전망대에서 비스듬이 기대어 처음으로 많이 남는 시간을 베짱이처럼 여유롭게 보내기도 하고 가을 바람
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어가는 죽령 인근을 배회하며 모처럼의 망중한을 즐겼다.
5시가 채 되지 않아서 B팀 선두가 도착하고 예정된 6시 쯤에는 거의 모든 산우들이 하산했다.
오늘은 A팀이 사동리에서 도솔봉으로 가는 들머리를 놓쳐서 묘적봉 쪽으로 오르는 통에 더 힘들과 먼 거리를
산행했다.
덕분에 한림정 회장이 후미를 봐주느라 고생했고 마지막 테이프는 예상과 다르게 A팀 수채화님이 장식하고 만장의
박수를 받았다.
시루봉 : 09:47 투구봉에서 25분, 저수령에서 1시간
저수령- 시루봉 12.68km 또 260m 사라지다.
시루봉에서 좌측으로 단양면 무수천리와 신구리를 거쳐 장정마을로 가는 하산로 있음 .
지도상 이 잣나무 숲길을 지나 단양면 남조리로 하산하는 루트 있음
1084봉 이정표 : 10:12 시루봉에서 25분 , 저수령에서 1시간 24분
저수령 -솔봉 11.15km 또 1.53km가 줄어 들었다.
내가 축지법을 쓰는 것인가?
이래 저래 해찰하다가 가장 후미로 밀렸느데 힘들다고 쉬었다 가자는 알티엔
배재:10:28 1084봉에서 16분 저수령에서 1시간 40분
싸리재 가는 봉우리에서 조망
단양군 남조리,남천리,무수천리,신구리,장정리 방향 조망
싸리재 :10:52 배재에서 14분 , 저수재에서 2시간 4분
싸리재에서 좌측 단양군 남조리로 한산하는 루트 있음
능선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예천군 원용두로 하산 가능 (1.93km)
싸리재에서 여유있게 그네타는 아들
흙목정상 : 11:28 싸리재에서 36분, 저수재에서 2시간 40분
정상아래 임도를 타고 상벽,하벽 마을로 내려갈 수 있다.
송전탑 : 11:44 흙목정상에서 16분 저수령에서 2시간 56분
뱀재: 11:55 송전탐에서 11분 , 저수령에서 3시간 7분
가다가 바위에 무릎을 부딪히고 나동그래진 채 아파하는 아들
헬기장 : 12:06 뱀재에서 11분 , 저수령에서 3시간 18분
솔봉 : 12:32 헬기장에서 26분 , 저수령에서 3시간 44분
먼저 식사하고 있는 후미대원들... 아들과 약 30분 식사하고 출발하다.
모시골 정상 : 13:21 솔봉에서 16분 , 저수령에서 4시간 33분 (식사 30분)
벤취 - 아들아 아버지 힘들다 쉬었다가 가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벤취에 자세잡고 누워버리는 아들
봉우리에도 벤취
여기도 벤취
내려갈까 말까 그것이 문제
묘적령비석 : 14:00 모시골정상에서 36분 저수령에서 5시간 12분 (30분 중식)
고향치 : 14:48 산행끝 묘적령에서 48분 저수령에서 6시간 (약 30분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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