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력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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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서 사진
대추 한 알
장 석주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 일게다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질리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아득한 세월이 흘러갔다. 참으로 먼 길을 걸어 왔다. 날씨는 변덕스러웠고 길 위의 풍경은 수시로 바뀌었다. 단조로운 여행 길에서 긴장과 짜릿한 기쁨을 맛볼 수 있었던 건 예측을 불허하는 그 무수한 변수와 수많은 변화의 조합들 때문이었다. 날씨와 계절 , 길의 난이도, 무수한 길 위의 사건들 그리고 복잡한 나의 심리 까지… 지나고 나면 한결 같았던 평범한 날들은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린다. 아이러니 하게도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어느 비바람 치던 춥고 괴로웠던 밤과 그 불면의 밤을 보내고 대면했던 찬란한 아침 이었다. 길 위에 쏟아진 뜨거운 햇빛과 모진 풍상들 진정 나를 단련시킨 것은 험한 길과 그 길을 가로 막은 어려움 들이었다. 세월의 물길과 길 위에 부는 바람으로 나는 그렇게 세상에 둥글어 갔고 가끔 지쳐서 주저앉기도 했지만 쉬지 않고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살아가면서 우린 많은 것에게서 배운다. 한 권의 책으로부터 노인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아님 우리의 아이들에게로부터 … 스승으로부터 혹은 산으로부터 세월로부터..
나는 세월에 젊음을 내어 준 대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돌려 받았다. 나이가 들어야 알게 되거나 깨닫는 것들이 있다. 쓸데 없는 고민이나 걱정은 어느 산모퉁이 나무 등걸에 그냥 걸어 두면 된다 세상에는 불평할 일 보다 감사할 일이 더 많고 어느 슬픈 저녁 또한 지나간다. 우리가 찾으려 하면 세상에는 아직 수많은 아름다움과 감동이 남아 있고 그것을 찾아내는 건 젊음이 아니라 아직 뜨거운 내 가슴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가지 나는 오늘도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길 위에 서 있고 남은 길은 더 즐겁게 걸어야 한다.
그래! 우린 그저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묵묵히 세월을 견디고, 배우고, 사랑하며 그렇게 익어 가는 것이다. 내가 살아 온 인생이 얼마고 내가 넘어 온 산이 몇 개 인데 내가 흘린 눈물이 얼마고 내가 건넌 슬픔의 강이 몇 개 인데… . 내가 만난 세상의 아름다움이 얼마고 내가 느낀 감동이 얼마나 큰데…
산 행 일 : 2015년 8월 9일 일 산 행 지 : 백두대간 27구간 코 스 : 마구령-미내치-고치령-마당치-연화동갈림길-늦은맥이재-어의곡리 날 씨 : 무덥고 가끔 바람 거 리 : 약22.82km 소요시간 : 약 8시간 (식사 약 30분) 동 행 : 귀연산우회 대간꾼들 3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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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해후
어머니 등걸에 업힌 것과 같은 편안함
오랜만에 만난 소백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
혹여 집행부에서 이번 대간 길 구간을 지난번 하산지점인 늦은맥이에서 고치령까지 너무 짧게 끊을까
걱정이되어 한림정 회장한테 전화를 했다.
고치령까지 끊으면 다음 고치령 –도래기재 구간이 너무 힘들어 지니 이번에 마구령까지 끊어야 하고
마지막 자연과의 합일 의식을 위해서는 마구령에서 늦은맥이 까지 역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마구령은 버스외에 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인데 임곡리에서 마구령 까지 올라가는 콜택시는 대당
만원 이라고 ,,,
구간은 그렇게 끊고 오름길은 그냥 걸어서 오르자고 했던 한회장은 임곡리 이장님과 협상을 해서
마구령 까지 회당 2만원씩 운행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오늘 구간은 임곡리에서 트럭타고 마구령에 올라 마구령에서 고치령 까지 8km를 진행하고 고치령에서
다시 늦은맥이 까지 9km를 진행하여 지난 번 하산했던 어의곡리로 내려선다.
등로는 평안한 숲 길을 따라 시종 하염없이 올라가는 단조로운 길이다.
숲이 울창한 편안한 육산길이지만 계속 오름길인데다가 날씨가 무더워서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마구령 가는 길
여자들과 후미팀 먼저 트럭에 탑승하라고 한다.
부동의 후미조이니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터라 아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트럭에 올랐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는 것이 좀더 여유로운 여정을 예약하는 것이라 무늬만 후미조들도 벌떼 같이
몰려와 탑승인원이 열댓명을 훨씬 넘겨버렸다.
그래도 출발은 모두 신나고 의기 양양했다.
커브길과 점점 가파라지던 산 길에서 애처롭게 빌빌대던 고물트럭은 날선 비탈에서 급기야 시동이
꺼져 버렸다.
그래도 경로석에 타고 있던 터라 젊은이들이 내려서 밀으라고 했는데 웬걸 몇몇이 내려서 밀어도
꿈쩍을 안하고 심지어 뒤로 밀리기 까지 한다.
위태로운 길에서 많은 산우들이 고분분투 하는데 경로석이고 나발이고 따질 겨를이 읍따.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야 하는 양반곰 땜시 나 역시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아 과감히 치고 내려 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밀려고 폼을 잡는 순간 아뿔사 트럭은 부르릉 소리를 내며 올라가 버린다…
삼손의 머리끄덩이가 뭉텅이로 뽑혀나간 듯 맥이 탁 풀렸다.
“ 애고 양반곰 내린 것으로 이미 해결된 상황이었어! ”
마구령
마구령은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에 위치한 고개다
남대리와 단양 의풍리를 이어주는 길로 13년전에는 비포장 도로였는데 지금은 포장이 되어 있다.
장삿군들이 말을 몰고 다녔다는 고개라서 마구령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경사가 심해서 논을 매는 것처럼
힘들다 해서 매기재라고도 불리는 고개길이다.
고개 위에는 넓은 공간이 있고 가운데 커다란 표석이 서 있다.
고갯길 남쪽 아래 봉황산 자락에 부석사(浮石寺)가 있고 북쪽으로 고갯길을 넘어가면 영월 김삿갓계곡으로
이어진다.
노심초사 하며 올라선 고갯길에서 마치 광장처럼 넓은 공간을 만나니 마음이 다 편안해진다.
마구령은 십승지 중 한 곳이라는데 아래 있는 부석사나 이 곳이나 범상치 않는 지세는 마음이 먼저 알아
보는 모양이다.
아들과 나는 동료들과 그 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혹여 누가 먼저 갈세라 서둘러 떠났다.
고치령 가는 길
등로는 가파르게 치고 오른다.
마구령에서 1km를 올라서서 1096봉 까지 300미터 표고차를 쉼없이 올라쳐야 한다.
봉우리를 지나고 나서 길은 빽빽한 신갈나무 숲 사이로 계속 이어진다..
군데 군데 숲 길에서 만나는 헬기장은 기반석을 모두 없애고 나무를 심어 숲의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평평한 육산이라 걷기는 편안한데 능선을 채운 무성한 나무들은 너무 융통성이 없이 폐쇄적이다.
햇빛을 들이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멋진 풍경과 바람마저 들여 놓지 않는다.
적어도 고치령 넘어서 선두를 내어주겠다는 생각으로 앞에서 부지런히 걸었다.
그런데도 4km도 못 가서 2차 트럭으로 올라 온 선두조 활력소님과 에마리오 님에게 추월 당했다.
단조로운 풍경의 길을 그냥 걷다 보니 눈 길은 자연히 가까운 숲 길에 머문다.
이제 더 이상 푸르러 질 수 없는 무성한 숲 길
눈에 뵈는 게 없는 길에는 어제 비가 왔는지 무수한 버섯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났다.
무수히 피어난 야생화와 기묘한 버섯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조용한 길
무더운 날의 고행보다 숲의 평화가 더 진하게 다가 온다.
호젓한 산 길은 마법처럼 쓸데 없는 잡념을 사라지게 한다.
걸을수록 마음은 차분하게 정리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 길 위에도 눈 길을 끄는 아름다움이 있고 기쁨과 위안이 있다.
오래 길을 걷는다는 건 마음을 닦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의 고요해지면 비로소 오감이 열리고 소박한 아름다움과 작은 기쁨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당치와 미내치를 거쳐서 고치령으로 가는 8km 구간은 약 3시간 정도 걸렸다
고치령
폐쇄적인 숲길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홀연히 고치령에 내려섰다.
고치령은 충북 단양군 의풍리와 강원도 영월군 하동리,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를 잇는 총 길이22km
이르는 고갯길로 비운의 역사와 보부상의 애환을 간직한 영남의 옛길이다..
고치령 아래 마락리는 오래 전 호랑이의 출현으로 시끌벅적 했던 산골 마을인데 지금도 고치령 서낭
당에 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마락리란 이름은 고치령을 오가던 보부상의 말들이 험한 고갯길에서 발을 헛디뎌 자주 떨어진데서
유래했다 한다.
다시 이 고갯마루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어딘가에 있을 고치령 그 맑은 물맛과 수 많은 샘터에서 표절한 싯귀도 기억이 난다.
“ 사랑하나 풀어 던진 샘물에는 바람에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 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무수한 인생의 고갯길을 넘어 난 다시 젊은 시절의 고갯마루에 섰다.
이젠 빛 바랜 추억이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빛깔로 채색된 그 날의 기억을 떠 올려 본다.
짧아서, 다시 돌아 갈 수 없어서 더 아름다운 내 젊은 날의 그리움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죽령에서 고치령 까지 소백 주릉을 떠돌았던 것은 어쩌면 잊을 수 없었던 백두대간의
감회였고 소백에 대한 깊은 사랑이었다.
고개 한 켠에 단종을 모신 산신각이 서 있다.
단종을 태백의 신으로, 금성대군을 소백의 신으로 모신 곳이다..
금성대군은 세종과 소헌황후 심씨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나 태종의 8남 의안대군 방석의 봉사손으로
입양되었는데 훗날 단종복위를 주도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분이다.
당시 수 많은 밀사들이 이 고치령을 넘어 청령포의 단종과 왕래했는데 한 노비의 밀고로 복위 계획은
수포로 돌아 갔고 역사의 순리와 정의는 바로잡히지 않은 채 그대로 흘러 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서 만나지 못한 조카와 삼촌을 맺어주기 위해 산신각을 지었다.
채 피어 보지 못한 어린 군왕의 애처러운 한과 어린 조카를 복위 시키려는 금성대군의 충절은 쓸쓸한
고치령에서 지나는 길손과 백성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신령으로 강림했고 고치령은 정의롭고 더 나은
세상을 염원하는 구도의 길로 남았다..
희방사 훈민정음 목판본이 잿더미 속에서 온전하게 발견된 건 두 분의 보살피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산신각에서 고개 숙여 두 분께 예를 올렸다.
늦은맥이 가는 길
고치령에서 늦은맥이 가는 길은 장난이 아니다.
해발고도 770m 고치령에서부터 1300m 늦은맥이 까지 9km 구간을 7개의 봉우리를 넘나들며 우린
줄기차게 올라야 한다.
알탕이 뭐길래…
길의 흐름이 이렇게까지 인 줄 알았으면 애시당초 역방향 산행을 고집하지 않았을 텐데…
무더운 날 계속되는 오르막에 체력소모가 많아지면서 일찍 허기가 밀려 왔다.
식사할 마땅한 곳이 없어서 봉우리를 하나 더 넘어 갔는데 다시 더 큰 봉우리가 둥둥 막아선다.
우린 그 위세에 화들짝 놀라서 그냥 중간지점 적당한 바위 위에 올랐는데 그곳이 두사람 식사하기에는
아주 그만 이었다.
오늘의 등로 특성 상 확트인 풍경은 없지만 그래도 길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고 골짜기에서 시원한
바람도 불어 주었다.
덕분에 우린 식사를 하면서 쌓인 피로를 시원한 바람에 날리면서 충분히 재충전할 수 있었다.
등로는 1032봉인 형제봉갈림길과 마당치, 배바위를 지나 연화동 삼거리로 이어진다.
연화삼거리는 늦은맥이 까지 2.9km남은 지점으로 3km 아래 연화동 마을이 위치한다.
이곳까지 왔으니 이젠 더 이상 오르막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늦은맥이 고개가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한 탓에 우린 마지막 한 방울 땀까지 남김없이 짜내야 했다.
괜시리 아들녀석 눈치를 살핀다.
여긴 숲과 나무만 있는 길이고 멀리 보이던 마을 풍경과 늘 이고 다니던 하늘도 보기 어렵다.
바람도 후련하게 불어주면 좋으련만 가끔 불어주는 바람은 어느 산길을 좋아하고 어느 사람을 좋아하는지
도통 종잡기 어렵다.
“아들아 지루하고 힘드느냐?
인생을 살다 보면 지루하고 따분한 날도 있다.
하지만 오늘이 어느 치열한 전쟁의 날보다 평화로운 날일 것이다.
앞으로 남아 있는 장대한 백두대간처럼 더 멋진 풍경과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넌 더 많은
땀을 쏟고 더 많은 고통을 견뎌야 할 것이다.
이런 날도 있다.
무덥고 답답하고 지루한…
하지만 더 많은 길을 걷다 보면 그런 길도 좋아질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1000고지 그 숲 길은 너무도 호젓하고 평화롭고 낭만적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산을 넘어가다 보면 머지않아 깨닫게 될 것이다.
삶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란 걸 “
늦은 맥이 가까워지면서 나무 숲 아래 수 많은 개체가 서식하는 야생화 지대가 계속 나타났다.
산상의 화원에는 노랑색, 분홍색,보라색 꽃들이 더 무성하게 잎새를 피워내며 조금씩 시들어 가고 있다.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산꾼처럼 다소 피곤해 보이긴 해도 아무런 아쉬움과 미련도 없이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만으로 행복한 얼굴이다.
이제 조금씩 붉은 색을 띠어 가는 태양빛 아래서 꽃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았고 나의 날은 아름다웠다.”
아마 이 야생화들도 돌아오는 겨울엔 마지막 생명을 더 많은 씨앗으로 갈무리 할 것이다.
사라짐을 슬퍼하지도 않고 이 고원엔 다시 더 많은 꽃들이 피어 날 것이다.
우리 삶도 그래야 할 것이다.
살아 있음은 축복이고 살아감으로 행복해야 한다.
늦은맥이
드디어 긴 여정의 막바지에 도달했다.
낯익은 데크에 낯선 산꾼 두 분이 휴식하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과 함께하는 백두대간 길이 안쓰러워 보이는지 이것저것 자꾸 주려고 하신다.
과일도 건네주시고 육포도 건네 주시더니 급기야 라면을 끓여 준다 하신다..
“ 아이고 괜찮습니다. 저희들은 율전마을로 내려가면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양하는 통에 결국 아저씨는 라면 하나만 끓이셨고 우린 소주에 그냥 라면 몇 젖가락만 얻어
먹었다.
근데 나중에 내려가고 보니 오늘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육포와 과일 안주만을 곁들인
간단한 맥주 뒤풀이란다.
‘아이고 라면 끓여 달라고 해서 먹을 걸…”
그 곳에서 소주 한잔에 얻어 먹은 라면 한 젖가락은 어느 추운 겨울날 군대에서 야간동초 서고 들어와서
뻬치카에 끓여먹던 바로 그 라면 맛이었는데…
우린 어의곡을 내려 오는 길에 지난 번 몸을 씻었던 곳에서 다시 알탕을 했다.
비가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계곡의 수량은 지난 번 보다 더 많았다.
아들녀석은 몸이 마비된다고 난리를 피웠던터라 계곡 소에만 몸을 담그고 나는 다시 폭포에 뛰어
들었다.
원래 우리가 이것 때문에 역방향으로 진행했으니 오늘 힘들었던 만큼 더 오랜 시간을 계곡물 속에
머물렀다.
고요하고 한적한 숲길이 삶의 철학을 설파했던 길이었다.
우린 지루한 그 길에서 많은 것을 만났고 살아가는 데 중요한 많은 것들에 관해 생각했다.
한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며
들꽃 한송이에서 천국을 보며
한 손에 무한을 움켜쥐고 영원을 추구하라
블레이크 - 순수의 예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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