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여행 중에
한 여인이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본다.
그녀의 손에는 한 권의 책이 들려 있다.
그녀는 가끔 창 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책 읽기를 반복한다.
가을은 사라져 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슬픈 위로
물거품 같은 생멸의 창에 잠시 어리는 진한 아쉬움과 그리움
창 밖에는 나뭇잎들은 물들어가고 들판에 떨어지는 햇살은 맑고 눈부시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
이 험난하고 광포한 인생의 바다에서
이젠 가을에도 쓸쓸하고 외로워하면 안 되는 것처럼 굳게 결심한 사람들
가을 속을 떠도는 시어들과 가슴 아픈 추억들은 고배의 잔에 남아 있는 숙취
급행 열차로 실어 보내야 했다.
가을에도 꿋꿋하게 흔들리지 않기를 !
언제까지 날카로운 이성을 잃지 않기를! …
기차는 가을 속으로 떠나간다..
우린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종착역을 향해 서둘러 떠난다.
기차가 실어 나른 건 버림받은 우리의 꿈만이 아니다.
젊음도 열정도 사랑도 녹슨 철로 위에서 풍화되고
이젠 아무도 너의 고독한 뒷모습을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한 여인이 창 밖의 가을을 본다.
고개 숙인 신인류 중 유일하게 창 밖을 바라보는 호모사피엔스가 너무 사랑스럽다.
가을이 가슴에 더 이상 바람소리를 내지 않는 날
우리의 가을과 사랑도 기차와 함께 떠나가리라
나를 잊지 말라고 네게 쓰던 손 편지를 부치지 않은 날부터
너는 가을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는 해마다 가을과 너무 많은 풍경들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창 밖을 보려 하지 않는다.
모두들 손바닥에 세상을 올려 놓고 바라보지만 사람들이 들여다 보는 건 그들의 말과 생각처럼 세상의
중요한 정보와 지식이 아니라 뒤쳐질 것 같은 강박관념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두려움이다.
짧은 가을과 지나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구태여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조급함과 피로를 붙잡고 작별
인사도 없이 낭만과 시린 가슴을 그저 훌훌 떠나 보낸다.
우린 정말 스마트하게 살고 있는가?
문지르거나 똑똑 두드리면 열어주는 신기한 세상의 문이 있어서 우리는 더 행복할까?
짧은 가을 조차 외면하고 살아가는 우린 내일 더 행복해 질까?
난 아날로그세대다.
디지털화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아날로그 세대의 비명을 난 모른다.
스마트폰 위에 축소된 세상에서 날고 기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SNS를 못하는 것도 블로그를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소중한 시간과 영혼을 헐값에 스마트폰에게 팔아 넘기는 데 반대하는 것뿐이다.
난 정말 스마트한 아날로그 세대가 되고 싶다.
난 오래 전에 관계와 소통을 빌미로 시시콜콜한 일상과 사진을 올려 놓고 친구들과 의미없는 좋아요와
답글을 기다리거나 그들에 답글을 달아야 하는 귀찮은 작업을 포기했다.
좀더 그럴듯하고 멋 있는 무언가를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나의 허접한 일상이 인터넷상에 까발려지는
낯부끄러움을 모면하기 위해 페이스북도 카카오스토리도 접었다.
열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버려야 우린 비로소 가을의 추억과 낭만 속으로 떠날 수 있다.
그래야 우린 열차 안에서 책을 읽다가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여인을 만나고 웃고 떠드는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다.
고개를 들고 창 밖을 볼 일이다.
현란하고 눈부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이상 메말라가지 않기 위하여.
세상에서 흔쾌한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우리가 만들어 갈 세상의 풍경을 더 이상 칙칙하게 하지 않기
위하여 .
부족한 게 없는 세상에서 오히려 쾡한 두 눈과 허한 가슴으로 결핍과 상실에 고뇌하지 않기 위하여.
가을이 깊어 간다.
이 가을이 지나면 영혼의 깊은 흐느낌도 사라질지 모른다.
난 창백한 가을을 기억하기 위해 열차에서 스마트폰도 보지 않기로 했다.
멀리 떠난 그리움이 언젠가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지도 모른다.
산 행 일 : 2015년 10월 11일 일요일
산 행 지 : 아들과부르는 노래 26- 백두대간 30구간
코 스 : 화방재-함백산-은대봉-두문동재-비단봉-매봉산-피재)
날 씨 : 바람불고 춥다, 햇빛나다가 비가 오다.
거 리 : 21.3km
소요시간 : 약 8시간 7분( 식사 20분)
시간 |
경유지 |
비 고 |
06:00 |
화방재 |
|
06:26 |
수리봉 |
|
07:13 |
군사시설 |
|
07:20 |
만항재(1,330m) |
|
07:45 |
함백산 보이는 공터 |
언덕 날머리 |
08:19 |
함백산 정상(1,572..9m) |
은대봉 4.2km, 두문동재 5.1km, |
08:34 |
산림유전자원 보호안내판 |
|
08:55 |
중함백(1,505m) |
함백산 1.1km, 은대봉 3.1km, 두문동재 4.0km |
09:57 |
은대봉(1,442m) |
함백산 4.1km, 두문동재 0.9km |
10:20 |
두문동재 |
금대봉 1.2km, 피재 8.8km |
10;44 |
금대봉(1,418m) |
두문동재 1.2km, 삼수령(피재) 7.6km |
|
중식 |
금대봉지나 수아밭령 안부에서 약 20분 |
11:59 |
느티나무/검룡소 갈림길 |
두문동재 4.0km, 피재 4.9km |
12;19 |
비단봉(1.281m) |
바람의 언덕 1.3km , 매봉산 2km |
13:07 |
매봉산(천의봉) |
|
13:13 |
풍력발전단지 표석 |
|
13:22 |
매봉산 갈림길 |
풍력단지 0.2km, 매봉산 50m, 작은피재 2.28km |
13;26 |
매봉산 (1.303m) |
|
13;48 |
백두대간,낙동정맥 분기점 |
매봉산 2.2km, 구봉산 0.85km |
14:07 |
삼수령(피재) |
|
유선방송 영화를 보다가 10시 30분에 잠자리에 들었다.
두어 사간은 눈을 붙여야지
8시간 남짓 걸리겠지만 그 부드러운 비단 능선 길은 잘 알고 있다
멋진 조망과 농익어 가는 단풍 그리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도와 줄 것이기에 야반출정도 별 걱정이 되지
않았다.
공식은 잘 깨어지지 않는다.
나는 거의 인사불성으로 차 안에서 잠들고 아들 녀석은 빨개진 눈으로 또 잠을 설치고…
“ 이 녀석 넌 아즉 멀었다.”
그 짧은 시간에 꿈도 꿨다.
잔뜩 기대하고 갔던 대간 길이 너무 어이없이 싱겁게 끝나는 꿈
“그럼 그렇지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느닺없이 거의 다 왔다고 깨우는 통에 아래로 내리 깔리는 몸을 추스르긴 했는데 맥아리가 없고 여전히
정신은 혼미하다.
그래도 비몽사몽 중에 거의 본능적으로 단무지 한 봉과 김밥 한 줄을 꾸역꾸역 다 먹어 치웠다
빨간 눈으로 아들 녀석도 다 먹었다.
화방재
바람소리가 윙윙 거린다.
태백의 관문으로 태백시와 영월군을 잇는 31번 국도가 지난다.
봄에 진달래와 철쭉꽃이 만발하여 “꽃방치 고개”라 하여 화방치라 불렀다는 고개다.
아직 날이 새지 않았다.
차 안에서 더워서 몸을 많이 뒤척거렸는데 남아 있던 온기 탓에 갑자기 표변한 차가운 날씨의 매서움을
뼈속까지 느끼지 못했다.
괜히 쓸데 없는 무게만을 의식해서 자켓을 벗어 놓고 얇은 여름 바람막이만 하나씩 입고 덜렁덜렁 길을
나선 것은 뼈아픈 실수였다.
추워서 덜덜 떠는 아들녀석에게 금방 벗어야 할 테니 파카를 가져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수리봉 까지는 30여분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땀이 날거고 능선에서 해가 나면 날씨는 금방 더워질 것이다.”
수리봉 오르는길
웬걸 가시지 않는 어둠처럼 바람도 내내 잠들려 하지 않았다.
수리봉 오르는 중에 나무를 흔드는 바람이 쇳소리를 냈다.
가을 바람은 마치 겨울인 듯 얇은 옷을 파고들어 온몸을 얼어붙게 했다.
난 그런대로 괜찮은데 추위에 맥 못 추는 아들녀석은 때이른 북풍한설에 완죤 패닉이었다.
오름 길 중간에 바람은 완전히 차단되는 우의겸 바람막이를 꺼내어 아들녀석에게 입혀주었다.
녀석은 얇은 바람막이 위에 모자 달린 우비를 단단히 동여매서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을 지경이다.
수리봉 못 미쳐서 붉은 여명이 뜬다.
붉은 태양에 차가운 바람
맑은 가을날의 조망은 환상적일 것이다.
조금씩 날이 밝아 오면서 울긋불긋한 산색이 드러난다.
가슴이 벌렁벌렁 거리기 시작한다...
수리봉
말이 긴 옷이지 완젼 여름용이라 잠자리 날개 옷 같은 얇은 나이롱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그래도 명색이 바람막이라고 조금 거들어주니 한결 낫다.
쉬지 않고 열심히 올라왔는데도 추운데 표석이 있는 정상에서 잠시 쉬려니 추위가 뼈속에 스민다.
쉬는 사이에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단풍 위에 떨어지는 황홀한 붉은 햇빛은 추위로 인한 질주 본능도 잠재운 채 일출의 장관을 놓칠세라
노심초사하게 했다.
아들과 백두대간에서 처음 마주하는 일출인데 나무숲으로 둘러 쌓인 수리봉이 야속했다.
수리봉에서 몇 컷을 찍고 능선을 따라 가는 중에 나무 가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백두대간의 붉은
해를 몇 컷 더 카메라에 담았다.
만항재 가는 길
몽환의 안개가 깔린다.
오색의 은은한 단풍들 속에서 신비로운 심산의 아침이 깨어난다.
계속 쇳소리를 내며 따라오는 바람마저 위엄을 더하는 장엄한 대간의 새 아침이다.
국가시설물인지 군사시설인지 철책이 나타나고 안개 속에 무리지어 피어난 보라색 야생화 꽃밭을
지나 갑자기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잠 시 포장도로를 따라 단풍 길과 낙엽송 길을 지나 홀연히 만항재가 나타난다.
앞서간 산우들이 한참을 내뺀 줄 알았더니 죄 만항재에서 만났다.
만항재
해발 1,330m의 고원의 분지는 넓은 도로가 관통하고 백두대간 진행방향 아랫 쪽에 하늘숲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 공원 앞에 거대한 표석이 서 있다.
우리나라의 가장 높은 포장도로 고갯길로 강원도 영월과 정선 태백의 세 고장을 잇는 고갯길이다.
갑자기 두꺼운 숲이 드러난 만항재에서 사진찍으며 잠시 휴식하다가 길을 잡는다.
함백산 가는 길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까지는 한 시간여 걸린다.
만항재에서 단풍 길 동산을 넘어가면 코 앞으로 함백산이 다가 선다.
정상부가 온통 허연한데 저게 정말 무서리나 눈일까?
“100고지에 왜이리 아스팔트 길이 많은 것이여?”
마치 해발 제로로 떨어진 것 같은 착각이 일정도로 넓은 길과 분지도 많고 풍경은 동네 뒷동산처럼
두루뭉실하다.
잠을 못한 아들녀석이 피곤하다고 한다.
“아빠 차라리 속도를 내는 것이 낫겠어요!”
듣던 중 반가운소리
이 추위에도 아들녀석이 혹여 지난번처럼 졸음이 쏟아질까 걱정되던 차라 기다렸다는 듯이 한껏 속도를
올렸다.
녀석은 제법 잘 따라 왔다..
넓은 분지를 지나 일행들을 추월하고 함백산으로 접어 들었다.
경사가 가파라지긴 해도 함백산은 제주도 오름처럼 부드러운 곡선의 넉넉한 모습이라 그리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 가을 함백.
이렇데 아름답고 다이나막한 산길이 또 있을까?
엊그제 여름이었고 가을인 듯 하더니 여긴 또 생각지도 못한 겨울이다.
그래도 다행스럽다.
난 백두대간에서 두 번의 사계절을 보내고 대한민국 산하를 제집드나들 듯 빠대고 다니면서 가을이
결코 짧은 게 아니란 걸 몸소 실감하며 산다..
봄과 가을이 참으로 짧다는 명제는 내겐 참이 아니다.
남도의 섬에서 봄꼬리를 잡고 주말마다 따라 다니다 보면 봄이 오지랍이 얼마나 넓은지 알 것이다.
9월말 설악의 단풍선을 타고 남도 의 가을까지 내달리면 가을은 겨울보다 더 길어진다.
산정을 오르는 길에 추위가 뼈 속까지 스며 들었다.
산정을 희게 뒤덮고 있는 건 무서리가 아니라 눈 이었다.
가끔 눈발들이 쇳소릴 나는 바람을 타고 수평으로 날아 간다.
포장된 차 길에서 고도가 그리 높은 게 함백산 정상부는 완전 겨울 이었다.
하지만 내려다 보는 함백 세상의 풍경과 산길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함백산
13년전 그날을 떠올리며 마치 히말라야의 설산에 오르는 비장함으로 함백산에 올랐다.
삼국유사에 묘범산, 산경표에 대박산(大朴山)으로 기록되어 있는 산으로 북서사면에 정암사(淨巖寺)를
품고 있는 큰 산이다.
엄청난 위력의 바람이다
바위 표석이 있는 정상에서는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200파운드에 육박하는 나의 덩치가 그 바람에
맥없이 밀려간다.
아들과 별능선은 혹여 바람에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갈세라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차가운 표석을
부등켜 안았다.
다시 만난 함백은 이 투명한 가을날에 날 선 겨울의 잊지 못할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야호 !
온 사방이 내 발 아래 놓여 지난 밤을 지나온 능선이 저 멀리 매봉으로부터 길게 구비친다.
온 사방이 첩첩이 포개진 갈색 능선이 흘러 내리고 멀리 다음에 가야 할 태백산이 보인다
함백산의 운해는 백두대간 제 44경 인데 오늘은 날씨가 청명해서 그 유명한 함백의 운해를 만날 수
없었지만 초겨울에 어울리지 않게 바람마저 불지 않아 끝 간데 없이 시야가 터진다.
충혈된 두 눈과 욕심 가득한 얼굴로 그리 허겁지겁 살아온 세월은 벌써 저 만큼 가 있다.
그저 스치는 바람처럼 떠나는 것이 인생 인 걸 ……
빈 손으로 왔다가 다시 훌훌 털고 말 없이 돌아서야 하는 걸
비워진 한 구석의 가슴엔 저기 빛나는 태양과 이름 없고 없는 들풀 그리고 물 빛 하늘만 담아두자.
13년전 내 가슴을 뒤흔들던 함백의 감동 이었다.
두문동재 가는 길
함백의 정상에서 산비탈에 서 있는 멋들어진 주목군락을 지나 중함백 가는 산속에 스며 들 때까지
바람과 추위는 무방비 상태의 우리를 괴롭혔다.
산 위는 잎새를 떨군 나목들로 황량하고 숲길에는 아직 고운 단풍들이 세찬 바람에 떨어지지 않으려
안깐힘을 쓰고 있다.
우리도 하얗게 얼어붙었다가 다시 갈색으로 물들어 갔다..
언덕진 산길 바람이 잠잠한 곳에서 휴식하다 한 굽이 비탈을 올라서니 거기가 중함백이다.
바로 산우들 몇몇이 따라 붙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바람이 조금씩 잦아드니 산행길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아무도 없는 은대봉에서 서성이다가 낯도깨비님과 솜다리님이 올라와서 서로 인샹샷을 찍어주었고
뒤이어 많은 산우들이 속속 도착해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은대봉 위로 빛나던 파란하늘과 흰구름은 넓은 정상부의 단풍과 어우러져 동화의 나라 같은 멋진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난 그날 은대봉의 감동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정갈한 고요와 새벽의 신선함 속에 가라 앉아 있는 첩첩 산들과 그 하늘 위에 붉게 퍼지는 아름다운 여명을
바라보며 오르는 은대봉 길에서 기쁨과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 오른다.
아름답구나 !
언제나 마주하는 시린 자연은 모두 제 각각의 얼굴로 이렇듯 아름다울 수 있다.
그 순수한 아름다움의 궤적은 충만한 감동을 만들고 우리의 영혼을 순화하고 정제한다.
은대봉에서 빽빽한 관목 숲 위로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만났다..
출정이 타이밍이 좋아서 매번 대간 산행에 해돋이를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하늘과 대지의 충만한 기가 온몸을 타고 오름을 느낀다.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언제나 세상의 아름다움 속으로 다가갈 수 있는 건강과 여유를 허락하소서”
은대봉에서 두문동재 내려가는 길은 후련한 풍경을 열어 준다.
능선은 멀리 금대봉과 매봉산을 향해 부드럽게 구비치고 황금빛 단풍 숲 위로 멀리까지 막힘 없는 시야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가을 백두대간 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두문동재
다시 마주한 포장도로
두문동재 표석 앞에서 좀더 여유로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매봉산과 함백산을 타고 넘는 두문동재는 남한에서는 제일 높은 표고 1268m로 고한에서 태백까지
50리 길을 38번 국도가 넘는다.
두문동은 원래 개성근처 개풍군 광덕산 자락의 마을이름 이었다.
조선의 개국에 반대하던 72명의 고려문신과 48명의 무신이 숨어살았는데 조정에서 불을 질러 마을을
없애버렸다 한다. 그 때 살아 남은 고려의 일곱 충신이 절개를 굽히지 않고 고한으로 흘러들어 이 고개의
서쪽에 마을을 이루었다.
여전히 두문불출하는 그 마을을 사람들은 다시 두문동이라 부르고 그 고개를 두문동재라 이름했다.
표지판을 보니 매년 11월 부터는 산불통제 구간이다.
매표소 아저씨는 대전에서 왔느냐고 묻더니 선선히 통과시켜 주었다.
비단봉 가는 길
두문동재에서 금대봉과 쑤아밭령을 지나 비단봉으로 가는 길은 걷기 편하고 가을이 농익어 가는
길로 오늘 구간 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서서서 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가다가 중간에 간식만 나누고 먼저 가시라 했다.
서서서님은 별도로 식사를 준비하지 않고 중간 중간 출출할 때 빵으로 허기를 때우며 산행한다.
점점 추워지는 겨울날에는 그것도 나름 좋은 방법이 되겠지만 밥심의 믿음과 버릇을 떨쳐버릴 수없는
나는 그런 산행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같은 나무도 물드는 때와 방법이 다 다른 것처럼 백두대간을 함께하는 산우들도 다 개성이 다르다.
빨리 가며 속도산행을 즐기는 산우들도 있고, 유유자적하게 풍경을 즐기는 산우들도 있다.
틈틈히 술 한잔 치며 풍류를 논하는 친구들도 있고 갈 길이 바쁜 와중에도 갖은 요리로 먹방을 오픈하는
친구들도 있다.
다 제 목청으로 노래하고 제 스탈로 백두대간과 시절을 즐기는 멋진 친구들이다.
금대봉
금대봉(1418.1m) 대덕산(1307.1m) 일대 126만평은 환경부가 자연생태 보호지역으로 지정으로 천연기념물
하늘다람쥐가 서식하고 꼬리치레 도룡용의 집단 서식지가 있다.
야생식물도 풍부해 모데미풀 ,한계령풀, 가시오가피등 희귀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금대봉 기슭에 있는 검룡소는 국립지리원이 1987년 한강발원지로 공식 인정한 곳이다.
이 검룡소는 이무기에 관한 전설을 품고 있다.
서해에 용이 되고자 하는 이무기가 살았는데 하늘에 오르기 위한 여행을 하다 검룡소에 정착 했고 검룡소
암반을 오르기 위해 지그재그로 몸을 뒤트는 바람에 바위에 길고 울퉁불퉁 한 자국이 생겼는데 그 자국이
세월 속에 폭포가 되었다.
이무기는 검룡소에서 승천을 위한 도를 닦던 중 마을에서 내려온 소를 잡아 먹었는데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연못을 메워버렸고 그 연못은 1986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
검룡소는 사계절 수온이 섭씨 9도로 일정하고 하루 2000~3000톤 많을 때는 5000톤 가량의 엄청난 물을
용출하여 그 물은 동강으로 흐르고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이되어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난다고 한다.
검룡소 아래 기념비에는 “태백의 광명정기 예솟아 민족의 젖줄 한강 발원하다”라고 쓰여져 있다.
우리 민족이 한강의기적이란 역사를 만들어 왔다면 검룡소는 그 역사를 키운 성수인 셈이다.
수아밭령
수아밭령은 한자의 수아전령(수화밭 고개)에서 유래한 말로 벼를 키우는 밭을 넘어가는 고개란 뜻으로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고목나무 옆에 있는 커다란 이정표는 능선 좌측의 .8km아래 검룡사가 있고 우측 아래 1.4km 아래에는
용연동굴이 있음을 알려준다.
중간에 바람이 다소 잠잠한 능선 안부에서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는 산우들이 있어서 우리도 그 곁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덕분에 맥주와 계란도 얻어먹고 뜨끈한 라면도 얻어 먹었다.
차린 상이 많은 산우들을 두고 먼저 출발해서 비단봉에 올랐다.
비단봉
가을에 붙인 이름인 모양이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산행 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뷰토인트로 마치 오늘이 최고의 날 인 것처럼 내려다
보는 능선의 풍경은 황홀하기 그지 없다.
휘감겨 펄럭이는 한 폭의 비단인 듯 비단봉으로 물결치는 황금능선의 단풍은 장관이었다.
아들은 힘겹게 치고 오르느라 표석 옆에 털썩 주저앉고 나는 햇빛이 구름사이로 들락날락하는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비단화폭을 표구하려 여념이 없다.
비단봉을 내려 가는 길에 날씨가 조금씩 스산해 지면서 간간히 빗방울이 날린다.
매봉산 가는 길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마지막 비단봉의 아름다움까지 죄 보여주신 백두대간 신령님은 마지막 관문에 비싼 관람료와 통행세를
징수했다.
풍차가 보이는 개활지로 나서니 아니나 다를까 쇳소리 내는 바람소리는 굉음처럼 귓전을 때리고 차가운
가을비가 들이치기 시작했다.
눈에 익은 목가적인 풍경이지만 비가 뿌리는 산길은 청승스럽고 우울했다.
아들에게는 내 우비를 입혀주었던 터라 난 1회용 우비를 꺼내어 입었는데 그나마 한결 보온이 되었다.
가을에 만난 겨울바람에 급기야 비까지 맞는 아들녀석은 대경실색이다.
피할 곳 없는 곳에서 마주한 고산의 칼바람은 작은 틈새 까지 놓치지 않고 파고 들었고 가슴 깊은 곳 까지
바람 구멍을 냈다.
비에 젖어 가는 매봉산 거대한 표석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정면에는 매봉산 후면에는 천의봉이라 새겨져 있다.
산 아래 금계포란형의 명당에서 이 산을 바라보면 매나 수리가 노려보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매봉산이라
불렀다는 산이다.
잔뜩 움츠린 채 꾀죄죄하고 불쌍한 모습으로 바람의 언덕을 넘는다.
고원 산 길에는 차가운 비가 바람에 마구 휘날리고 비와 바람이 휘감은 풍경화 속에는 비장미가 넘쳐났다.
찻길이 있는 곳에서는 몇몇 관광객들이 올라왔는데 그들 눈에 우리는 불쌍하고 외로운 두 마리의 들개였을
것이다.
그 황량하고 차가운 길 위에서 야릇한 쾌감이 일었다.
어떤 얼굴의 자연이던 내겐 모두가 추억 속의 사랑이었고 그건 고혹과 중독 이었다.
비 오는 산 길을 걷는 건 나름 낭만적이다.
가슴 울리는 대지의 울음 소리를 듣는다.
차가운 비안개가 목에 감기고 비바람이 따갑게 볼에 몰아칠 때 오히려 후련해지던 그 역설을 참으로 오랜
만에 다시 만난다.
“아들아!
축축히 젖어 보지 않는 사람은 파란하늘과 흰 구름이 그리는 아름다운 동화를 알지 못한다.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빗방울을 맞으며 대자연 속에 젖어가면 맑은 고요와 차분한 평화가 가슴에 고일
것이다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기를 받으면 넌 더욱 강해질 것이다.
힘든 길에서도 웃을 수 있고 길 의에서 뒹구는 행복을 쉽게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파랑새는 보지 못했지만 산길에서 만나는 홀딱새나 개똥지바귀가 파랑새라고 생각하면 너의 인생은
종달새처럼 즐거워 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갑자기 마주한 풍차와 드러난 민머리 대지의 가혹한 테러에 혼비백산한 녀석은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걸었다.
“저 배추들은 왜 캐지도 않고 그대로 두었어요?”
붉은 밭 위에 얼어 붙은 채 말라가는 무수한 배추포기를 보며 아들이 물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얼어버리니 상품성이 없어진 모양이댜 ”
아까운 배추들을 바라보며, 황량한 고원이 그려내는 풍경을 바라보며 순례자처럼 원조 매봉산에 올랐고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갈림길을 거쳐 피재로 내려섰다.
두 겹 골짜기 사이 가득한 불 빛이 빛나고 있다.
저 멀리는 바다 인 듯 어둠 속에서 한 줄의 불 빛 띠를 두르고
나는 달이 있어 기분 좋은 날 달 빛 가득한 길을 걷는다.
머리에 헤드렌턴을 쓰고 앞으로 전진하면서 달을 찾으려니 달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저렇게 달 빛은 교교하게 흐르는데….
그렇게 어둡지 않은 하늘을 두리번 거리다 고개를 활짝 젖히고 내 머리 위 하늘을 보자
거기서 만월을 조금 남겨 둔 훤한 달이 웃고 있다.
숨바꼭질이 재미있기라도 한 듯 …..
13년전 전 백두대간 때 어둠 속을 걸었던 바로 그 길 이었다.
피재는 이별의 아픔의 간직한 고갯 마루다
하늘에서 내려온 비 가족이 세 갈래로 갈라져 한줄기는 삼척 오십천으로 흐르고 또 한줄기는 낙동정맥
발원지가 되고 나머지 한 줄기는 514km의 한강 발원지가 되어 흘러내리는 한스러운 이별 고개 !
아쉬운 미련이 서성대는 피재의 송림과 정자는 백두대간 46경이다.
가슴까지 시린 차가운 날이었지만 아름다운 단풍의 숲을 거닐고 흰 눈을 밟았던 행복한 날이었다.
가을 속으로 떠나서 성급한 겨울을 만났고 세찬 바람을 맞으며 밝은 태양과 차가운 빗 속을 걸었다.
때론 맑게 웃고 때론 근엄하고 우울한 낯빛을 한 대자연의 따뜻한 속내를 만난 또 하루의 멋진 여정
이었다.
오늘은 우리가 후미가 아니라 꽤 빨리 내려섰다.
삼수령에서 먼저 온 산우들이 끓여 놓은 뜨거운 오뎅 국물을 먹으면서 오늘 하루의 파란만장한 산 길의
감회에 젖는다.
이 길을 걷는 건 사랑이다.
우리가 기꺼이 굴종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이라는 “사랑”
나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동행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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