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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비오는 날의 스케치

 

 

 

 

 

 

 

 

 

 

 

 

 

 

 

 

 

 

 

 

 

 

 

 

 

 

 

 

 

 

 

 

 

 

 

 

 

 

 

 

 

 

 

 

 

 

 

 

 

 

 

 

여유로운 주말

 

사는 방식을 바꾼다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세월이 열정과 호기심을 내려 놓게 하거나

내 다리를 후들거리게 하거나 병들게 하지 않는다면

 

정규직의 마지막 내 31년 째 가을이지만 그 가을도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신체는 멀쩡했고 역마살과 가을병만 또 도져서 주말은 온통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토요일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무주 학교길을 걷기로 했고 일요일은 아들과 백두대간 출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비가 내게 안식을 주었다.

말라 가는 대지 위에 내리는 반가운 비는 주말을 촉촉히 주었고 가을비는 단 칼에 모든 일정을 조정하거나

취소해 버렸다.

가을이면 도지는 발정난 숫캐의 역마살도 조용히 찾아 온 비에 슬그머니 꽁지를 내렸다.

 

12월의 일정을 친구들과 맞추어 보았지만 우린 비오는 천안에서 만나 망연회를 대신하기로 했다.

늙어가면서도 우린 여전히 바쁘게 살 수 밖에 없어서인지 만남의 인터발은 조금씩 길어 진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던 반가운 비가 단지 주말에 찾아왔다는 이유로 불청객처럼 되어버리고 나서

친구들과의 야외 일정은 갑자기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다시 일정 조정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건 우린 늙어가도 아직 짱짱한 건지?

아님 우리 세상은 늙어서도 누릴 여유가 없이 그렇게 팩팩하게 돌아가는 것인지?

이번 비는 우린 참으로 가까운 사이이지만 여건이 다르고 취미가 다른 친구들 부부가 한번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느끼게 했다.

 

비오는 천안역에서 만남을 정해 놓고 난 천안에 그냥 머물기로 했다.

마눌이 내일 아침 6 52분 무궁화 열차로 천안에 오기로 했다.

당연히 내려가셨다가 모시고 올라와야죠…” 웃으며 아야기 하던 지사장도 떠나고 커다란 사무실에는

나 혼자 남았다.

평상시와 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넓은 사무실에

 

가끔 빗방울이 떨어지는 주말

난 사무실에서 그 동안 밀어 두었던 글을 쓴다.

다닌 곳이 많고 가을이라 느낀 것도 많다 보니 그러지 않아도 기록이 밀릴 수 밖에 없는데 이 가을엔

저녁 일정까지 많아지니 조용히 사색하거나 명상에 잠길 한가로운 시간을 갖기도 그리 만만치 않다.

 

게다가 나의 가을은 너무 길고 서정적이어서 어느 정도 분위기를 타지 않으면 잠자코 앉아서 가을의

느낌과 추억들을 정리하기가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다.

  

혼자 사무실에서 글을 쓰다가 10시쯤 숙소로 돌아가서 청소를 하고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6시가 좀 넘어서 눈이 떠졌다.

운동을 할까 했는데 예보대로 밖에는 비가 추실 추실 내린다.

비를 꼬투리로 잠자리에서 밍그적 거리다가 마눌 올 시간 1시간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서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과 라면 1개를 먹었다.

 

스파이 브릿지

역에서 마눌을 마중하여 영화관으로 갔다.

천안에서 마눌과 처음 보는 영화

시놉시스를 보고 마션이나 인턴을 볼까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스파이 브릿지를 보았다.

사실  스필버그의 영화라 내용은 확인도 안하고 만패불청 이었던 셈이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뜨거운 열정과 따뜻한 휴머니즘이 남아 있는 톰행크스를 만나서 좋았다.

이 시대의 거장

늙어가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기술이 전혀 녹슬지 않는 스필버그의 건재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오랜 친구와 추억을 다시 만나는 기쁨 이었다.

이 영화는 오랜 세월을 보낸 만큼 깊어진 사람에 의한 인생의 깊은 맛을 아는 사람들을 위한 영

화이고 나이와 함께 시들어 가지 않는 것들에 대한 경의와 응원이다.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

눈이 흩날리는 스파이 브릿지의 풍경과 각자의 소신과 신념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감동이었다.

진인사 대천명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담담히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신념을 잃지 않았던

러시아 스파이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삶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베니니를  떠오르게 했다.

스파이 브릿지 위에서 아벨이 도노반에게 선물을 주었을 때 도노반이 자신은 줄 선물이 없다고 말한다.

아벨은 도노반에게 당신은 이미 내게 큰 선물을 주었다는 말을 하고 눈 내리는 다리 위를 걸어간다.

도노반이 아벨의 선물을 펼쳤을 때 거기 나타난 초상화가 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긴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서 골아 떨어지는 그 장면만큼 최선을 다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느껴지는 영화다.

 

각자의 조국과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았던 두 사람의 생애와 그걸 영화로 옮긴 스필버그 감독의 능력

그리고 그 상황과 심리를 훌륭한 연기로 소화해 낸 두 사람이 연기 모든 것이 잘 어우러져보는 이들에게 감

동과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좋은 영화가 되었던 것 같다.

 

잔잔한 감동과 따뜻한 영화의 여운으로 기분 좋은 천안의 휴일을 시작하다.

친구들과 만나서 손수남 황태정식을 먹고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걷다.

비 속에 실려 오던  서러운 가을 냄새를 맞으며  은행나무 길이 끝나는 곳 까지....

비가 오지 않았으면 만날 수 없었던 황홀한 도심의 가을이고 노랑 빛 단풍이 아름다웠던 비오는

날의 맑은 수채화였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비가와서 여유로웠던 날

우린 한잔의 커피를 마시고 또 그렇게 어둠이 내리는 도시의 가로등을 따라 일상을 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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