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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귀연산우회 시산제 (계룡산 연천봉)






















































































































































2015년이 다 가버리고 새해가 밝은지도 한 달이 넘었다.

다음주면 설날..

전통과 미풍양속의 음력에 근거한 진짜 새해의 시작이다.

 

살아 보니 세상 빠른 게 세월이라

그렇게 느리게 똑딱거리는 넘이 일주일을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그냥 술 몇 잔 마시고 헤롱거리는

사이 한 달을 먹어 치우고  “어!” 하는 사이 벌써 또 일년을 먹어 치웠다.

불가사리 같은 넘!

우린 황천행 급행열차를 타고 가는 중이다.

눈도 함부로 깜박이지 마라!

짐깐 졸다 보면 한 해가 지나고 우리의 남은 젊은 날은 모래 시계처럼 흘러내리는 중이다.

마지막 내 인생의 황혼열차는 브레이크가 파열된 채 멈출 줄 모르고 석양길을 내리 꽂는 중이다

 

아무리 아까운 시간이라도 할 껀 해야지…

내 인생의 멋진 여행 길을 위해 꼭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산신령님한테 와이로 쓰는 거

 

귀연이 생긴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으니 난 귀연과 함께 조금씩 늙어 갔다.

아니 자연과 더불어 세월에 곰삭아 갔다.

그래도 귀연이 큰 사고 없이 이렇게 그 역사와 명맥을 이어가는 건 다 산신령님 보살핌 덕분이고

시산제 때문이다.

 

오랜 산친구들은 안다.

이거야 말로 산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성스러운 의식이란 걸

산과 통하고 사람과 소통하는 영혼의 교감이란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귀연의 시산제는 각별하다.

집행부가 나서서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이 산우들이 서로 다투어 제물을 준비하고 정성스럽게

고사상을 준비한다.

누군가는 떡을 하고 누군가는 새벽에 일어나서 전을 붙인다.

누군가는 또 제단 까지 기꺼이 고난의 등짐을 진다.

정성스럽게 제물을 준비하고 오래 동안 숙성시킨 술을 꺼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은 소망의 제단이기에 하늘과 산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10m 절벽에서 떨어진 산우가 멀쩡하게 절벽을 기어 올라 오고 철계단에서 수직낙하하여 갈비대

대가 나가고 허리도 잘 펴지 못하던 어느 산우는 지금도 귀연과 더불어 훨훨 자연 속을 잘도 날아

다닌다.

차가운 겨울날 눈 덮힌 칠흑의 동엽령 하산길을 이끌어 주시고 형제봉 하산 중에 길잃 은 철없는 어린

양을 무사히 인도하신 것도 모두 다 신령님들의 보살핌이고 귀연의 시산 제 덕분임을 나는 믿는다.

 

바람도 조용한 계룡산 연천봉에서 조용히 엎드려 산신령님께 빌었다.

“아들과 백두대간을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향한 저의 열정을 지켜 주시고 늘 가득한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올해도 세상의 많은 아름다움과 감동을 찾아갈 저의 무대뽀 발길을 보호 하소서”

 

내 인생길에서 정말 잘 한 게 몇 가지가 있다.

 

젊을 때부터 산을 좋아한 거…

백두대간 길을 걸어 본거 ….

그걸 즐겁게 누릴 수 있는 좋은 일터가 있었고 좋은 친구들과 동료들을 만났던 거…

 

정말 기특하지 않는가?

술에 빠지지도 않고 여자에 빠지지도 않고 도박에 빠지지도 않고 건전하게 산에 빠졌으니…

난 일찍부터 산이란 위대한 스승에게 인생의 가르침을 개인지도 받았다.

내 생애 최고의 스승은 산과 자연이다.

그래서 난 나의 위대한 멘토를 닮고 싶은 거다

산 그리고 바다…

백두대간 길을 걸으며 수려한 금수강산 구비구비 아름다움들을 돌아보고자 했었는데 그 서리서리에

숨겨진 감동들이 이렇게 먼저 내 가슴을 흔들어 댈 줄이야…!

고기도 먹어본 넘이 먹는다고 자꾸 먹어봐야 맛있는 곳도 알고 맛 있는 거 먹으러 멀리도 갈 수 있는

거다.

난 대간길을 마무리하고 귀연의 이름아래 온 동네방네 쏘다니면서 평생 함께할 산 친구 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해마다 한 번인 산신제나 송년회에서는 그 동안 자주 만나지 못한 산우들을 만날 수 있다.

어느 세월의 모퉁이, 어느 산길에서 함께 추억을 나누던 그리운 친구들

그래도 오랜 연륜의 귀연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산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마부도 바뀌고 승객도 바뀌지만 귀연 마차는 늘 어디론가 떠난다.

누군가는 산을 떠나고 누군가는 다시 산으로 돌아오지만 10년을 한결같이 자연으로 떠나는 귀연이 거기

있으니 옛 친구가 그리우면 귀연으로 올 일이다.

거긴 산처럼 움직이기 싫어하는 누군가가 아직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고 새로운 젊은 친구가 그대에가

손을 흔들어 줄 것이다.

혹자는 오랜 세월에 빛 바랜 귀연이고 젊은피들이 오래 머물지 않아 귀연은 늙어간다고 이야기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부터 비로소 선순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귀연의 진면목은 이제부터 나타날 것이다.

못된 마눌이라도 필요하고 좋은 친구가 더 필요한 건 인생의 가을날 이라고…

그날의 패기넘치던 젊은이들은 이제 세월에 더 둥글어지고 사려와 분별이 깊어졌다.

불혹을 넘어 산에서 함께 만나고 또 지천명을 넘기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선배들이 여전히 뜨거운

가슴과 넓은 마음으로 젊은이들을 잘 이끌어 줄 것이다.

 

“젊은 넘들아 까불지 마라! 니들도 안 늙을 줄 아느냐 ?

“지금 너의 귀에 들리지 않는가? 

“시간이 날개 달린 전차처럼 네 등뒤에서 달려오는 소리?

늙은이 한명 죽는 건 도서관 하나 불타는 거라 하지만 산에서 20년 가까이 도 닦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 생불의 가르침을 받는 것과 다름없다.

“니들이 산맛과 살맛을  알어?

 

그래!  좋아하는 산을 가는데 산악회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깊이와 느끼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내려

스스로 밀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늘이 되면서 서로의 우정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고사를 마치고 음식을 함께 나누었다.

늘 차고 넘치던 술이 부족하다고 했다.

항상 술을 술병 차고 올라오던 몇몇이 올해는 보이지 않는다.

많이 바쁜 모양이다.

난해한 세월과 세상사는 통행세가 자연을 향한 그들의 발길을 잡지 말기를 빌 뿐

어느 산 모퉁이에서 우린 다시 만날 것이다.

 

연천봉에서 관음봉과 삼불봉을 거쳐 큰배재로 내려서서 다시 산 길을 따라 지석골로 내려왔다.

모처럼 만난 강원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었다.

자연성릉을  순례한지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은데 바위 능선은 나무계단으로 완전히 덮혀 있었다.

안타깝다.

산행하긴 편하게 했지만 어짜피 훼손될 리 없는 암릉길이었는데 나무 계단을 설치하느라 그 당당하고

멋진 암릉에 또 얼마나 많은 구멍을 내었을까?

산행로는 너무 밋밋하고 낯설다.

계룡산신령님 나무 견장 차시고 좀 깝깝하지 않으실 라나?

승질 많이 죽으셨다.

무릉객 묵사발 내면서 혼내실 때가 완죤 전성기였는데….

요즘은 계단 때문에 사람이 많이 꼬이니 시끄럽다고 자주 내려와 보시지도 않으시것네..

 

한 때 2년동안 계룡산을 쳐다보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열정과 욕심을 주체하지 못해 대자연의 더 깊고 먼 곳으로 떠돌던 어느 겨울날, 내 안방

이라던 계룡에서 산신령님께 한 방 맞아 널부러지고 나서…

악몽 같은 그날을 견뎌내기 너무 힘들어서…

 

어리석고 몽매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산신령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던 건 좀 더 세월을 보내고 지천명 너머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깨달을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였다.

날개가 꺾인 채 갈 수 없는 나라의 뼈아픈 꿈에 통절했던 그 시간도 모두 과거의 강으로 흘러 갔다.

난 비로소 그 고뇌와 아픔의 시간이 성숙과 성찰의 시간이었음에 감사한다.

하느님은 늘 한쪽 문을 닫으시면 다른 한쪽 문을 열어 두신 다고 했다.

내가 인생의 먼 길을 걸어오면서 깨달은 값진 교훈은 세상에서 전적으로 잃기만 하는 건 없다는

것이다.

산을 사랑하였기에 그만큼 내 인생이 풍요로웠고 아파 보고 다쳐보았기에 걸을 수 있는 그 엄청난

축복에 감사할 수 있다.

 

난 지금도 기억한다.

어느 절에서 부처님게 엎드려 빌던 그 날 !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그냥 옛날의 제 허리만 돌려 주세요”

 

그리고 죽비처럼 나를 후려치던 산친구의 말이 내 귀엔 아직도 쟁쟁하다.

몇 년 전 귀연 시산제 때 죽음을 앞두고 투병하던 남실장이 사력을 다해 광덕산 까지 올라와서 한 그 말

고삿상에 오만원 절값 놓고 산신령님께 엎드려 빌던 외마디 비명 같았던 그 말!

“오늘 만큼만이라도 산을 탈 수 있게 해주세요 !

 

나는 아이젠도 없이 눈덮힌 계룡 능선을 산우들과 즐겁게 걸어 내렸다.

오늘 연천봉을 비추었던 태양빛은 유난히 찬란했다.

난 여전히 살아 있고 여전 히 즐겁게 거친 산 길을 걷는다.

난 세월에 감사하고 산에 감사한다.

내가 누리는 이 행복에 감사하고 교만하지 않고 그 날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과 인생에 정답이라는 게 없다지만 난 답이 자연에 있다고 생각한다.

잘 살기 위해 많이 걸어야 하고 더 행복하기 위해 멋진 풍경과 감동을 더 많이 만나야 한다는 걸

그래서 좋다 “숲은 생명 ! 귀연은 친구!” 라는 그 말

 

“계룡 신령님 고마워유…!

 

2016 1 31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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