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일 : 2016년 2월 7일 일요일
산행코스 : 물한리주차장-민주지산-대피소-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물한계곡 주자장
날 씨 : 맑음
소요시간 : 8시간 (휴식 약 2시간 20분)
동 행 : 아들과
일출을 보기 위해 아래 시간을 고려하여 일정 편성 하여야 함
대전 – 물한계곡 : 약 1시간 30분
물한계곡- 민주지산 : 약 1시간 30분
내가 새벽에 떠나는 건 그 막막한 어둠과 고독에 남겨진 나를 만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멀리서 달려온 새벽이 어둠의 휘장을 들춰어 조용히 산을 깨우고 나는 그 순정한 고요 속에 서서 황금
빛 태양이 온 산을 물들이는 장엄한 풍경을 바라 본다.
내 가슴을 흔드는 것들
아직 내 가슴 속에서 꿈틀대는 갈망을 느끼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 시간이 좋다.
난 새벽산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세월이 너의 자유를 구속하게 하지 말라!”
“외로움을 견뎌야 자유로움을 얻는다. !”
더 먼 곳과 가지 못한 나라의 꿈은 단지 접혀져 있는 기다림일 뿐이다..
거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내가 해묵은 시간 속의 나를 기다린다.
나이탓인지도 모른다.
혼자만의 절대고독을 만나는 그 소중한 시간에도 길동무를 떠올리는 건
고부기 전화가 왔고 우린 7시 20분 민주지산 정상에서서 새해 일출을 마주하기로 했다.
시간이 되면 봉규도 합류시키기로 하고…
다시 고부기 전화가 왔다.
대청소 때문에 마눌이 가지 못하게 한다고….
오후에 대청소 해도 되지만 굳이 오전에 대청소 하려는 건 잠까지 설쳐가며 민주지산에 오르기 부담
스럽다는 이야기이고 고작 6시간여 산행을 위해 잠까지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깨우쳤다는 뜻이다.
“그래 예전처럼 홀가분하게 혼자 떠나자!”
아들녀석에게 지나가는 말로 묻는다.
“:제사 준비에 집도 비좁을 거구 도서관도 쉴텐데 아빠와 새벽산행 함 갈래?”
녀석이 즉답을 피하는 건 아주 싫지는 않다는 얘기다.
지난번 혹한으로 백두대간을 한번 거르고 1월달이 5주까지 있었으니 출정한지가 5주가 넘어간다.
다음번 밤재-늘재-대야산-버리미기재 구간도 험한 구간이라 리듬이 깨어진 아들녀석은 또 혹독한 신고
식을 다시 치뤄야될 텐데 겸사겸사 함께 가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애초 일정은 이랬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4시30분에 집을 나서고 5시30분에 물한계곡 도착하여 라면하나 끓여먹고 가벼운
행장으로 산행을 출발한다. 6시부터 산행을 시작하고 7시 20분 민주지산 정상에 도착하여 해맞이하고
석기봉과 삼도봉을 거쳐 다시 물한계곡으로 원점 회귀한다.
이동 시간을 잘 못 계산한 탓에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 했다.
아들녀석 땜시 출발이 4시 40분으로 늦어졌고 당초 1시간 정도 걸릴거라 예상했던 이동시간은 1시간
25분소요되어 우린 6시 10분에 물한계곡에 도착했다.
사간은 빠듯해서 막바로 올라가야 7시 30분 정도 정상 도착이라 라면은 올라가서 끓여먹기로 했다.
추운 날씨에 부랴부랴 산행 준비를 한다 설레바리를 쳤는데 어둠 속에서 배낭 다시 꾸리고 아들방한
준비까지 다 점검하다 보니 10여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예상이 빗나가는 바람에 라면 끓일 물에 버너 코펠까지 챙기니 베낭 무게가 제법 나간다.
그래도 어둠 속에서 헤드렌턴을 켜고 칠흙의 어둠 속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를 때 까지는
좋았다.
바람은 그리 거칠지 않았지만 얼어붙은 계곡은 차가웠고 제법 많은 적설로 경산진 비탈길은 다소
미끄러웠다.
일출의 욕심으로 속도를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배낭무게도 나보다는 훨씬 줄여 주었는데도 잠을 제대 못 잔 탓인지 아이젠을 안 해서였는지 아들녀석의
산행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이 급속도로 밝아오기 시작했다.
기다렸다가 다시 가기를 반복하다가 도저히 일출시간에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서 천천히 올라오라고 하고
혼자 발걸음을 빨리 했다.
한참을 가다가 돌아보니 동편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간다.
마음은 급해져서 속도를 더 올리는데 마지막 능선 오름 길을 남겨둔 곳에서 바라보니 민주지산 봉우리가
붉게 물들고 있다.
7시 25분 경이다.
아들에게 두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이 녀석이 받지 않는다.
지금 올라가면 정상에서 여전히 붉은 태양을 만나긴 하겠지만 이 녀석 힘이 빠진 상태에서 혹시 쓰러져서
힘들어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할 수 없이 배낭을 내려 놓고 되돌아 갔다.
한참 아래쪽으로 내려가 여전히 힘들어 하면서 올라오는 아들 녀석을 만났다.
“애물단지 같은 녀석”
배낭을 받아 짊어지고 다시 올라 간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빚쟁이 라고 했다.
내가 전생에 저 녀석한테 얼마를 빚을 진건지….?
옛날 같으면 이 녀석이 이제 날 봉양할 나이인데 나는 아직도 녀석의 학비를 대고 등짐까지 지어 나른다.
혼자 오면 편하고 더 자유로워질텐데 구태여 녀석을 대동하고 새벽산을 오른다.
그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과도 일맥 상통할지 모른다.
부모자식이 그런 게 아닐까?
그 존재가 살아감의 이유고 위안이 된다.
나무가 자신의 몸을 거름으로 하여 건강한 자연을 만들고 후손들을 번성케 하듯이 나의 존재와 흔적으로
세상이 좀더 아름다워지고 그 정신이 대자연 속에 사랑으로 스미어 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아들은 나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기력을 회복하여 세상에 봉사하고 또 그 사랑을 유전시킨다.
동행이 나를 더 힘들고 어렵게 하고 나의 황홀한 고독을 방해한다고 해도 백두대간이 건 민주지산이 건
그 외로운 길을 마다 않고 함께 걸어 줄 아들이 있으니 또 얼마나 좋은가?
혼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으면 언제나처럼 혼자 떠났을 길이었다.
함께 가자고 한 것은 나였고 어쩌면 이번 여행에 난 동행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오늘도 또 지각이다.
그래도 바람도 잠잠한 가운데 하늘이 저리 맑고 산 빛이 아름다운 건 산신령님이 무척 반가워 하심이다.
아직 민주지산의 새벽을 내가 열지 않았음으로 그 아름답고도 장엄한 풍경은 아직 나의 버킷리스트
장바구니에 남아 있는 셈이니 그 또한 나쁘진 않은 일이다.
아들과 나는 산신령님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붉은 일출보다 더 아름다운 새 아침의 축복과 감동을
함께 나누었다.
재작년 9월 백두대간의 시작을 앞두고 이 봉우리에 올라 신령님께 고하고 무사 완주를 기원했다.
벌써 1년 5개월이 바람 같이 흘러 갔고 우린 45구간중 32구간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이제 13구간을 남겨
놓았다.
산신령님들께서 보살펴 주신다면 우린 출발 2주년에 해당하는 올해 9월에 대장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린 아무도 없는 민주지산 정상에 술을 붓고 돼지 머리대신 돼지 다리를 올려 놓고 삼배를 드렸다.
“백두대간을 무시히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
“저와 가족들의 건강을 보살펴 주시고 늘 가는 길을 보살펴 주소서!”
“제게 주어진 남은 시간에도 세상의 멋진 아름다움을 죄 보여 주시고 늘 기쁨과 감동 속에 생활 할 수
있도록 굽어 살펴 주소서 !”
우리는 각호봉 쪽으로 민주지산을 내려 대피소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발과 손은 깨어지는 듯 시렸지만 바람과 냉기를 막아주어 나그네의 쉼터로는 안성맞춤 이었다.
추운 날씨라 가스버너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라면과 떡국을 끓이는데 시간 소요가 많았다.
점점 더 가스 버너 불꽃이 약해져서 두 손으로 가스통을 보듬어 주니 불꽃의 강도가 되살아 났다.
따뜻한 라면과 떡국을 끓인 건 가스와 따뜻한 체온 이었다.
이 세상을 살아 가는데 가장 필요한 건 따뜻한 사랑임을 작은 가스통은 1000고지 산장에서 말없이
내게 알려 주었다.
산장에서 식사를 마무리하고 스패치와 아이젠 까지 착용했다.
아들녀석도 충분한 휴식과 배를 태우고 원기 왕성하게 출발했다.
산장에서 머문 시간은 1시간 10분 이었다.
우린 힘차게 창공을 날아 기류에 몸을 실은 채 비행을 즐기는 독수리의 여유를 누리며 아름다운
능선에서 장쾌한 설산 위를 천천히 활공하며 날았다.
우리가 세상에서 잊어야 할 건 후회와 미련이다.
이미 지나간 날들은 모두 아름다운 추억 일 뿐이다.
우리가 누려야 할 건 남은 시간의 행복이고 만나야 할 건 아름다운 세상의 기쁨과 감동이다.
바람 불지 않는 석기봉에서는 때묻지 않은 멋진 석기시대를 굽어보면서 제물로 올렸던 돼지 족발을
안주로 술한잔 치면서 세상의 아름다움과 세상을 살아가는 멋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린 석기봉에서 한 시간 가까이 머물렀다.
삼도봉에서는 그리운 백두대간 길을 다시 만났다.
덕유의 날 등을 따라 기세 좋게 북으로 오르는 능선 길은 작년 겨울 거친 야생마의 추억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8시간 걸린 여정이었으니 대피소 1시간 10분, 석기봉 1시간을 제하면 6시간 정도 걸려서 민주나라를
종행 했던 멋진 겨울 여행 길이었다.
아들과 함께 만든 가슴에 남을 2016년 설날의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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