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라고 직원들이 저녁식사에 초대를 했다.
만패불청 가야지 – 안가믄 다음부터는 안불러 줄 테니…
그래도 떠난 사람을 챙겨주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맙다.
거북이 한테 통발을 했다. 목요일에 시간이 되느냐고…?
저녁식사만으로 천안을 가는 건 너무 서운한 일이라...
아직 방학 중!
대한민국 교수가 젤 좋은 직장이란 건 맞는 말이야
거북이가 천안역에서 11시 15 분에 날 픽업해서 호서대가 있는 거부기 나와바리로 갔다.
내가 오늘 저녁은 새조개로 잘 먹응께 점심은 간단한 걸루 먹자고 혀서 우리는 만두전골에 공기밥
하나씩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근데 모처럼 고부기한테 점심 좀 얻어 먹을라 했더니 난데없이 거부기 학교 모학장이 나타나서 밥값을
내주었다. “돈이 절로 붙는 넘!”
각원사에서 능선을 치고 올라서 우측 태조산을 단오고 다시 성거산으로 진행하여 정상 찍고 되돌아
오는 루트
성거산과 태조산이 능선으로 5.7km 거리이다.
능선을 왕복한 셈이니 11.4km + 각원사 등,하산 약 2km + 성거산 휘돌아 만일사 절구경 약 1.6km
해서 약 15km 걸은 셈이다.
12시30분에 시작하여 17:00에 마무리하였으니 시간은 꼬박 4시간 30분 걸렸다.
각연사
재일교포 각연거사(覺然居士) 김영조(金永祚)의 시주로 1977년 5월에 세워졌으며, 천안의 진산이라는
태조산에 자리잡고 있다.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사찰을 세우려
한 것이 발원의 본뜻이다.
현재 이곳에는 대웅전(大雄殿), 설법전, 관음전(觀音殿)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높이 12m,
둘레 30m, 무게 60t에 이르는 거대한 청동아미타불상과, 엄청난 규모의 태양의 성종이 특히 유명하다.
또한 1996년 10월 15일에
낙성된 대웅전은 목조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이 절의 언덕에는 203개의 계단이 있는데, 이것은
백팔번뇌와 관세음보살의 32화신, 아미타불의 48소원
및 12인연과 3보(寶) 등 불법과 관계있는 숫자를 합해서 정한 것이라 한다. 경주 불국사(佛國寺) 이래 최대의
사찰이며, 현재 각원사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각원사 [覺願寺] (두산백과)
태조산 오름길과 만일사 쪽 하산 구간이 경사가 가파르고 다져진 눈이 녹지 않아서 위험했다.
엄하사가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절벽근처에 가지 말고 조심 산행하라고 해서 아주 조심해서 산행하다.
날씨는 꽤 쌀쌀하고 능선에서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체감온도가 많이 떨어지는 추운날이었는데 태조산
오름 길에 땀이 나서 정상에서 자켓을 벗고 산행하다.
소나무 군락이 많았는데 길은 편안하고 부드러웠다.
태조산과 성거산은 금북정이 지나는 산이다.
금북점맥은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七長山:492m)에서 태안반도(泰安半島)의 안흥진(安興鎭)까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의 옛 이름으로 안성 서운산과 천안 성거산과 태조산 광덕산 등을 거친다.
태조산은 높이 421m의 천안의 진산으로 고려 태조가 이곳에서 양병하였다는 유래로 그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거부기말로는 태조 왕건이 태조산에 웅거하며 도읍을 구상하였다고 하는데 만약 잘 되였으면 천안이 고려의
도읍지가 될 수 있었다는 근거 없고 실없는 고부기의 욍설수설?
성거산은 높이 579m로 일대에 우뚝한 산이다.
성인이 거주한 산이라는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상에 성거산성이 있었다는데 군부대 시설이 들어앉아 있어 너무 아쉬웠다.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가면 백제 도읍지였던 위례산의 위례산성(충남기념물 148)에 이른다고 한다.
만일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921년(고려 태조 4) 연기(烟起) 도선(道詵)이 창건
하였다고 하나, 도선은 898년에 입적하였으므로 신빙성은 없다. 당시에는 비보사찰(裨補寺刹)을 많이
세웠는데, 이 절도 도선의 비보사찰설에 따라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당시에는 만일사(萬日寺)라
불렀다고 하며, 이것이
오늘날의 만일사(晩日寺)로 바뀐 데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옛날에 백학 한 쌍이 하늘에서 불상을 마련할
땅을 살핀 후 이곳에 내려왔다. 백학들은 부리로 불상을
새기다가 사람의 기척이 있으면 놀라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기를 몇 차례 되풀이하다가 그만 ‘해가
늦어서[晩日]’ 불상을 다 만들지 못하고 날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사찰 이름을 만일사로 부르게 되었
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절 뒤 암벽에는 마애불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
한편 고려 혜종(재위: 943∼945) 때 승려 만일(晩日)이 이 절에 머물면서 석굴 안에 석상을 마련하고 오층
석탑을 세우는
등 크게 중창하였으므로 그의 이름을 따서 만일사라고 했다고도 한다.
1481년(조선 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사찰 이름이 나오고,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
에도 등장하나, 1799년(정조 23)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폐사로 나온다. 1876년(고종 13)에 관음전을
세우는 등 중창한 바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영산전·관음전·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본래 약사전으로 쓰이던 건물로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50호로 지정되었다.
1002년(고려 목종 5) 제작된 관세음보살 동상이 모셔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0년에 개축하였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54호로 지정된 만일사오층석탑은 원래의
절터에 있던 것을 1970년 법당을 복원할
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것이다. 높이 227cm로 조성 양식을 보면 고려시대 유물로 추정된다.
백학이 새겼다는 만일사마애불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55호로 지정되었다. 법당 뒤 암벽에 새겨져 있는데,
심하게 닳아 얼굴은 알아보기 어렵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56호로 지정된 만일사석불좌상은 관음전 뒤 축대
위의 자연동굴 속에 조각된
불상이다.
높이 164cm로 머리는 새로 만든 것이다. 대웅전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은 본래 천흥사에 있던 것으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58호로 지정되었다. 밑면에 1002년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어 천흥사를 세우
면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 높이 127cm, 연화대좌 높이 34cm이다. 오른손에 감로수병을 들고 있고, 왼손에 청심환을 들고 있어
주목된다. 이밖에 1982년 8월 13일 법당 앞 마당에서 삼국시대 유물로 보이는 금동보살입상이 발굴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만일사 [晩日寺] (두산백과)
오늘산행의 하이라이트는 각원사 좌불상과 오름길의 매애석불
성거산과 태조산 사이의 부드러운 능선 길
성거산 앞쪽 절벽에서 바라본 흑성산 방향의 산군 풍경
만일사 윗 능선길에서 바라본 천안 충경
소박하고 평화스런 만일사 절 구경
삶의 아이러니다.
4년간 천안에 있으면서 한 번도 올라보지 못한 태조산과 성거산
정작 퇴직하고나서 고부기하고 오르게 될 줄이야…!
어쨌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가벼운 행장으로 속도감에 젖어보았던 즐거운 산행이었다.
정확하게 5시에 산행을 끝내고 사우나에서 피로를 풀고 약속장소인 성정동 남당리 횟집으로
고부기가 데려다 주었다.
고부가 수고 많았다.
덕분에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
사무실직원들과 김이사와 이부장님과 함께 즐거운 회식
옛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2차 맥주까지 마시고 10시 35분 열차로 대전으로 돌아오다.
31년 직장생활 꿈처럼 지나갔지만 돌아보면 즐겁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좋은 동료들과 열심히 일하면서 원 없이 하고 싶은 것 하며 살았고 또 지금도 이렇게 후배들이 챙겨주니
난 복 받은 넘이여 잉….
2016년 2월 11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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