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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백두대간

아들과부르는노래35-백두대간19(버리미기재-대야산-밀재-삼t송리)














































































































































































































도회지 위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던

그 시간은 지나 갔어

이젠 그 마음으로 돌아 갈 수 없어서 코끝이 찡한 그 시간

어느 날 세월이 내가 그린 그림을 건네 주었어

거울에 비친 내 얼굴과 추억의 교실에 포스터처럼 붙여진 내가 그린 그림들


누구야?

거울에 비친 저 낯 선 사람은 ….

병약한 회색도시, 오랜 세월의 병상에 누워 있던 수인

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문에 스스로 빗장을 걸고

불안한 자유 보다 자발적인 유배를 선택했던


전시회에서 보았어

세월의 화랑에 걸어 놓았던 회색 도시의 그림들

꿈을 잃어 버린 가슴이 그려낸 별이 사라진 하늘   

거울 속에는

나도 못 알아 볼 머리가 허연 한 늙은이가 어색하게 웃고 있었지

아하! 그게 바로 나였군.


난 알았네

내가 열심히 그린 그림이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니었음을

나를 위해 그리던 그림이 수 많은 덧칠로 다른 그림이 되었고

더 멋진 그림을 그리려 할수록 색깔은 흐리고 그림은 더 나빠졌다는 걸


난 오래도록 알지 못했네

떠나간 사랑의 슬픈 노래와 잃어버린 시에 관하여

더 이상 내 가슴을 흔들지 못하는 별에 관하여

난 내가 무엇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잊은 채 늙어 버렸네


난 비로소 깨달았네

그림은 손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그리는 거란 걸

어른의 욕심의 아니라 아이의 크레용으로 그려야 한다는 걸

내가 잃어버린 건 아이의 눈과 아이의 마음이었다는 걸


많은 세월을 보내고 이젠 다를 그림을 그리려 하네

내가 창문너머 던져버린 후회

다시 돌아오지 않는 않는 날의 추억들

그리고 내 가슴에서 사라져 버린 별에 관한 그림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고 붓을 든 손이 흔들리지만

난 다시 그림을 그리려 하네

남들에게 보여줄 그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그림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산 행 일 :  20163 27일 일요일

산 행 지 :  아들과부르는 노래 35- 백두대간 19구간

    :  버리미기재-곰넘이봉-불란치재-촛대봉-대야산-밀재-삼송리

    :  능선의 바람은 차나 산행하기 적당

대야산에서 밀재를 거쳐 삼송리로 하산하는 길은 포근한 봄날씨

    :  10.2km (대간거리:16km, 접속거리:3.2km)

소요시간 :  5시간 40

         

시간

경유지

비 고

09:00

버리미기재 출발

 

09:19

입석바위

 

09:21

소나무 전망바위

 

09:46

곰넘이봉(723m)

대야산이 조망 된다.

10:05

미륵바위

 

10:11

대야산 조망처

 

10:23

불란치재

 

10:43

촛대봉(668m)

 

10:49

바위 전망대

대야산 코앞 조망

11:05

바위인근 오름길 식사

20

11:34

대야산 앞 작은 봉우리

 

12:07

정상 앞 조망바위

잠시 조망 감상하며  휴식

12:14

대야산 정상(930.7m)

15분 휴식

12:29

하산

 

13:00

대문바위

 

13:21

밀재

 

14:07

이정표

농바위:30

14;20

개활지

 

14:32

마을 느티나무

 

14:40

마을 주차장

산행종료

 

 

요약표

버리미기재 - 곰넘이봉 1km 45

곰넘이봉 - 촛대봉 1.8km 57

촛대봉 - 대야산 1.3km 1시간 30 ( 20분 휴식)

대야산 - 밀재 1.1km 1시간 7  ( 20분 휴식 , 쉬엄쉬엄)

밀재 삼송리 5km 1시간 21

 

상대적인 짧은 구간이라 별다른 준비도 없었고 출발시간도 6시로 늦추었다.

어제 친구들과 위도에서 만난 봄처녀는 꽃샘추위로 새초롬 했지만 고양이처럼 가르랑거리는 교태와

헤살거리는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가슴을 출렁이며 어깨춤 추는 그녀를 만나는 것보다 더 신나는 일이 어디 있으랴?

여수 돌산 길과 위도의 섬목길에서 난 약속도 없이 그녀를 기다리다가 매화꽃 생강꽃과 진달래의

향기로 나타난 그녀와 하루종일 히히덕 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백두대간에서 후회 없이 대찬 겨울을 보내고 이젠 대간의 봄을 맞을 채비를 한다.

자연은 늘 변화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어서 여름도 좋고 가을도 좋고 겨울도 좋은데 벌,나비와 함께

날아드는 봄은 마음마저 싱숭생숭하고 들뜨게하니 고목에 꽃을 피우려는 그 가상한 노력이 고맙기

까지 하다.

 

어제까지 꽃샘추위이고 오늘부터 날씨가 풀린다고 했는데 어제 위도에서 맞은 봄은 너무도 화사하고

부드러웠다. 능선에서는 바람결이 다소 차갑게 느껴지기는 했는데 오히려 거친 섬산을 오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백두대간 출정을 앞두고도 멀리 섬으로 떠나 술까지 한잔 치고 돌아오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건 오늘

구간이 비교적 짧다는 것과 봄의 유혹을 견디기 힘든 탓이었다.

몇 번 데이트도 못해보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를 또 보내야 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라서

 

오늘의 백두대간은 버리미기재에서 가파르게 치고 올라 곰넘이봉을 넘고 미륵바위를 지나 촛대봉

에 오른다. 등로는 촛대봉에서 다시 가파르게 수직 강하하여 몇 개의 능선 봉우리에서 숨을 고르다가

날카로운 북벽을 따라 대야산에 올라 강인한 대간의 근골을 자랑하며 속리의 세상을 굽어 보는 것이다.

두대간은 대야산에서  좌측으로 휘돌아 내려 밀재에서 오늘의 구간을 끝마치고 우린 그곳에서 우측

 삼송리마을 방향으로 하산하여 제 35차 대간종주를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조금의 방심과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는 대야산 북사면 직벽 로프코스와 대야산

정상에서 바라 본 웅장하고 아름다운 우리산하 그리고 우리가 숨가쁘게 걸어왔던 대간 길의 거친 파노라마!

 

머지 않아 한줌 흙으로 바람에 날려갈 덧없는 인생길.

살아 있는 동안 내강산 내강토를 등줄기를 걸어보겠다는데

아직 두다리 멀쩡하고 가슴이 벌렁거릴 때 내 사는 세상의 기쁨을 즈려밟고 가고 싶다는데 웬 시비가

그리 많은지

 

버리미기재

버리미기재는 아홉 번 시집을 가서 낳은 자식들을 벌어 먹이던 팔자 센 주막집 과부의 전설이 전해오는

고갯길로 민초들이 팩팩한 삶의 등짐을 지고 오르내리던 길이다.

유래에 대한 다양한 가설이 흥미로운데 버리미기(빌어먹다의 사투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고.

다른 하나는 문허비고와 산경표의 기록에 의거 희양산과 대야산 사이에 주현(周峴)이라는 고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우리말로 보면 주의(周衣)두루마기라고 하는데 두루마기버리미기로 변음되었다는 해석이다.

그 외 또 다른 속설로 보리 먹이로서 버리(보리)와 미기(먹이)의 합성어라는 설과, 벌어 먹이다의 경상도

사투리에서 비롯한 지명 이라는 설도 남아 있다.

 

곰너미재 가는 길

출발이 다소 늦어서 도둑고양이처럼 버리미기재를 염탐하다 우린 고개 전 도로에서 하차하여 황급히

여장을 꾸린다.

바람결이 생각 보다 싸늘하다.

버리미기재에는 국공직원이 대간꾼의  출입을 통제하고 그 한 켠에는 겨울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밀려드는 봄의 검문 검색을 강화하고 있다.

 

마치 적진 깊숙히 침투해 들어가는 침투조처럼 우린 목소리를 낮추고 행동을 민첨하게 하여  길도

없는 산비탈을 무막지하게 차고 오른다.

우리가 무장공비여? 약초 꾼이여

산비탈이 거의 80도 경사로 바짝 성을 내고 곳추 선 길을 준비동작도 없이 냅다 오르다 보니 장단지

알집은 터져 나가려 하고 숨은 턱에 차오른다.
아들녀석은 초장부터 어안이 벙벙한 채 덩달아 혼비백산이다.

해발이 너무 급속히 높아져서인지 마치 고산병 초기증상처럼 속이 다 메스껍다.

 

정신 없이 길도 없는 된비알을 치고 올라 능선에 올라서 잠시 숨을 고르며 걷다 보니 바위 위에 걸터

앉은 노송이 물끄러미 우릴 바라 본다.

쉬엄쉬엄 가지  무애 그리 바쁜가?

그 소나무 아래 서자 비로소 흐린 연무 아래 산아래 세상이 눈에 들어 온다.

맞다 . 봄날을 코 앞에 다가오고 우린 오늘 모처럼 널널 산행인데 이렇게 꽁지 빠지게 내 뺄 이유가 없다..

어느 정도 각오는 한 길이지만 산세는 초장부터 예상을 초월하여 날과 각을 세우고 있다.

곰넘이 봉은 애써 오른 능선을 내려서면서 골짜기 건너편을 막아선 또 하나의 걸출한 봉우리를 차고

올라야 만날 수 있다.

잎을 떨구어낸 나목과 소나무 사이로 드러난 가파른 산비탈 사이로 앞서 간 산우들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한 숨이 절로 나는 그 길은 곰처럼 네발로 기어야 오를 수 있는 그 길

그런 길에서 아들녀석은 나보다 한 수 위다.

 

 

곰넘이봉

곰넘이봉은 바위 위에 초라한 표석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다.

고립된 깊은 산중임에는 틀림없으나 산세에 대해 논 하기에는 제한된 시야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곰들이 많이 넘었던지 아님 사람들이 곰처럼 네발로 넘어야 해서 붙여진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예사롭지 않은 산세는 사람의 발길을 드물게 하고 곰들이 대야산 북쪽 골짜기를 서식처로 삼아 그들의

세상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법 하다.

 

촛대봉 가는 길

거북바위와 코끼리 바위를 지난다.

곰넘이 봉을 내려서서 나뭇가지 사이로 봉우리 윗부분만 올려다 보이는 대야산을 멀리 바라보며  다소

편안해진 길을 걷다 보니 묘한 형상의 거대한 바위가 막아 선다.

거대한 몸뚱이에 귀와 같은 돌기가 솟아 있다.

약간 해학적인 외계 동물의 형상을 한 집채 만한 바위는 미륵바위 라고 한다.

미륵바위 우측으로 멀리 솟아 오른 대야산 봉우리가 바라다 보인다.

 

산우들이 앞다투어 위험한 바위 정수리에 올라 사진을 찍는다.

아들과 나는 사진을 찍고 잠시 휴식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바위에 오르고 싶지만 나는 세월의 눈치를 보고 아들은 나의 눈치를 살핀다.

무리하지 말자 !”

행동보다 생각이 앞서는 것 또한 늙어감 이겠다.

사고는 늘 조심보다는 방심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젠 젊을 때 유연했던 몸이 많이 뻣뻣해지고 반사신경이

무뎌진 것이 느껴지는 나이이고 또 한 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 지는 걸 숱하게

보았기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다.

 

가파르게 떨어지는 등로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보니 우뚝한 대야산이 제법 가까이에 보이는데 대야산

으로 연결된 능선 길이 없다.

으헉 일헐수가!”

우측으로 멀리 휘도는 능선은 백두대간이 아니다.

아뿔사 ! 백두대간은 곰넘이 봉에서 폭포수처럼 계곡으로 떨어지고 우린 절벽 같이 막아 서는 그 산을

거의 바닥에서 다시 기어 올라야 하는 모양이다.

13년 전 걸었던 이 길의 기억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미륵바위에서 내림길을 잡다 보면 아래로 완만하게 흘러가는 능선이 내려다 보이고 그 능선의 끝에서

우뚝 솟아 오른 대야산이 막힘 없이 드러나는 조망처가 선다.

대야산의 위용이 가장 먼저 가슴을 흔드는 곳이다.

그 곳에서는 한동한 완만하게 이어지는 굴참나무 능선 길을 따라 진행해야 골짜기에 위치한 불란치재에

내려설 수 있다.

불란치재는 불한령(佛寒嶺) 분한재로 불리다가 변음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대간을 경계로 남쪽은

내선유동이라 하고, 북쪽은 외선유동이라 한다.

이곳은 그 옛날에는 길이 넓어 사람의 왕래가 많고 우마차 까지 통행했던 곳이었다는데 버리미기재

신작로가 개설됨으로써 완전히 폐로가 되어버렸다 한다.

 

불란치 재에서 바닥을 치고서야 비로소 대야산 오름길을 시작하게 되는데 먼저 대야산의 관문을 지키고

있는 전위봉인 촛대봉에 올라서 대야국 입국비자를 발급 받아야 한다.

 

촛대봉 오름 길도 온통 굴참나무 숲길이다.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낙엽이 쌓인 산릉의 속살이 허허롭게 드러나고 그 위를 움직여 가는 산우들의

모습이 가을 풍경화처럼 눈에 들어 온다.

 

촛대봉

잘생긴 표석이 반긴다.

소나무에 기대 선 낯선 표지석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그 때는 지금의 표석이 아니었을 텐데 빗속에 스쳐 지나 기록을 남겨두지 않아서 내 낡은 기억으로 빛

바랜 그 세월을 기억해 낼 수 없다.

산우들과 잠시 사진을 찍고 휴식하다가 오늘의 최고관문이자 속리와 등을 맞대고 있는 대야산 등정의

길을 잡는다.

 

대야산 가는 길

로프가 달린 바위를 내려 조망 바위에 섰다.

바로 코 앞에서 우뚝한 대야산이 웅자를 드러내며 앞을 막아서고 우측으로는 바위 난간에 걸터 앉은

푸른 청솔이 골짜기 멀리에는 버리미기재 도로가 통과하는 관평리외 숯가마골 인근을 내려다 본다.

사위가 터진 그 곳에서 후련한 바람이 불어 왔다.

장대한 풍경 앞에서 다시 가슴은 부풀어 오르는데 담대한 큰 상의 위용에 주눅이 들기보다 옛 친구를

만나는 반가움이 먼저 인다.

비 안개 속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친구의 얼굴이다.

우린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한 동안 말없이 심원한 대야국의 영토를 내려다 보았다.

 

11시가 조금 넘어서 우린 오름 길 중간 안부에서 식사를 했다.

거친 등로라 마땅히 식사할 공간을 찾기가 어려운 차에 바람이 오가는 곳일 망정 평평한 곳을 만나 배낭을

내렸다.

배부른 채 오르기에는 너무 험한 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단계 별로 고도를 높여 가는 계단식 오름 길을

따라 먼저 마의 직벽에 도전장을 던졌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뒤풀이는 배고플 때

해야 그 즐거움이 뼈저린다는 나와 같은 부류들은 그 곳에서 식단을 펼쳤다.

 

대야산 오름 길에 대한 나의 기억은 신기하리 만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건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거나 그다지 힘들지 않은 길이었다는 의미와도 같은 거라 난 식후 오름길에 대해

별달리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아니 배낭에 먹을 걸 지고 가는 것이나 배에 넣고 가는 것이나 매한가지 아닌가?

엉덩이나 방뎅이나 그게 그거지….”

 

대야산 오름길

식사후 포만감을 느끼면서 대야산을 오른다.

 

출입금지 구역이 실감이 간다.

가파르게 일어선 절벽은 온통 너덜거리고 있다.

갈라진 바위들과 불안전한 상태로 절벽 난간에 자리잡은 낙석들은 해빙기를 기다리며 호시탐탐 불법

난입자들을 내려 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세찬 바람 말고는 아무도 없다.

로프가 연달아 매달린 마지막 직벽의 관문은 아찔한 고도감과 함께 상당히 힘들었다.

긴 로프구간이 서너 번 나오는데 수직으로 내려 뜨려진 로프에 의지해 발디딤이 여의치 않은 절벽난간에

매달려 육중한 나의 몸을 끌어 올리는 건 흡사 힘든 노역과 같았다.

특히 참호 같은 수직 통로를 배낭과 큰 카메라를 메고 올라 가는 마지막 구간이 가장 힘들었다.

세월과 나이는 못 속이는 모양이다.

상대적으로 몸이 가벼운 아들 녀석은 힘든 기색도 없이 어려운 난코스를 쉽사리 극복하며 아찔한 고도

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잘도 올라 왔다.

아무튼 우린 길의 개념이 허물어진 수직의 등로를 아무런 사고 없이 올라 무사히 대야 산에 도착 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팔에 힘이 다 빠져나가 기진맥진해지는 거친 등로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이 가파르고 이렇게 위험한 절벽이 아무런 기억의 실마리 조차 없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서 13년 전 그날의 기록을 들춰 보았다.

 

대야산 가는 길은 멋진 암릉미가 살아 있는  역동적인 산행 길이다.

가끔은 부분적으로 안개가 걷히며  베일에 가린 듯  운무가 흐르는 신비한  산세를

드러낸다.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심상치 않게 쏟아지는 비를 마냥 맞을 수만 없어 다시 우비를 입는다.

날씨가 이대로 개이고 운무를 걷어가 멋진 대야산 능선의 조망을 열어주면 좋으련만

비가 오는 가운데 로프에 대롱거리며 대야산 직벽을 오른다.

풍광도 없고

산세에 감탄할 여유도 없다.

그저 앞 사람만 바라보며 거친 암릉을 휘돌아 갈 뿐

언젠가 올랐던 대야산 산정에는 비가 오는 가운데 몇 명이 지친 모습으로 휴식하고 있다.

외로운 표석 옆에는 노란 배낭이 한 개 덩그러니 앉아 청승 맞게 비를 받아내고 있다.

 

그랬었구나

대야산은 네 번이나 올랐지만 이 길은 2003년 여름 백두대간 때 오르고 처음 가는 길아다.

시작부터 백두대간은 비와 안개에 쌓여 있었고 비는 몽혼적인 안개가 흐르는 미륵바위에서 잠시

멎었다가 대야산 북사면 직벽을 오를 때쯤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었다.

 

그 날 비와 자욱한 안개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에 뵈는 것이 없었으니 무식해질 수 밖에 ..

그리고 젊은 날의 체력이니 별로 힘들지도 않던 모양이고 그날 난 아무런 고도감도 느끼지 못한 채 고독한

하이에나처럼 묵묵히 앞만 보고 산을 올랐던 거다.

땀과 열은 내리는 비가 수냉식으로 식혀 주었을 테고

 

 

대야산

아무도 없이 표석만 하나 덩그러니 기다리고 있다.

바람도 없는 정상에는 따사로운 봄햇살만 가득 쏟아지고 있다.

우린 고요한 산정에 지친 몸을 기대며 고원의 평화에 젖어 들었다.

북으로 우리가 지나온 출중한 백두대간 능선이 파도치며 흘러가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오고 남으로는

걸출한 고산과 능선들이 명암으로 산릉의 원근감을 표현하며 장대하게 파노라마 치는 모습이 바라다

보인다. 

동쪽 아래로 벌바위 마을 용추골,피아골,다래골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남으로는 둔덕산 조항산을 바라

보는 전망이 일품이다.

 

보아라 아들아 !

백두대간을  굳건히 받혀주고 있는 네가 걸어 온 저 튼튼한 대간의 허리들을

다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음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린 무수한 대야산 직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 직벽에서 주눅이 들어 먼 길을 돌아가고 누군가는 그 스릴과 낭만을 즐길 것이다.

누군가는 그 정상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멋진 조망의 풍경에 가슴 부풀고 누군가는 그 험한 여정의

위험과 괴로움을 먼저 떠 올릴 것이다.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너도 모르는 사이에 강해지고 있다.

저 강하고 탄탄한 백두대간이 너를 단련시키고 응원하고 있다.

네 인생에서 많은 산과 예기치 않는 절벽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 산과 절벽을 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준비되지 않는 체력과 정신 때문이다.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말아라!

너를 믿고 절벽 사이의 길을 찾아라

그리고 정상 위의 아름다운 풍경을 꿈꾸고 오르는 길의 스릴과 조망을 즐겨라!

겨울을 참고 견디면 꿈 같은 봄날을 만나게 될 것이다. “

 

930.7m 대야산은 청천면 삼송리와 문경시 가은읍을 경계로  예로부터 조화로운 암릉과 수려한 계곡의

풍광으로 수 많은 시인과 묵객이 즐겨 찾았다는 곳으로  선유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용추계곡의 빼어난

계곡미와 풍부한 수량은 널리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화양구곡과 군자산 쌍곡계곡이 가까이 있으며 월영대와 용이 승천한 푸른 소를 가진 용추가 유명하다.

청천면 삼송리에 위치한 농바위 마을은 밀재를 동으로 바라보고 북으로는 속리산 서로는 화양 계곡

북쪽으로는 쌍곡계곡을 이웃하고 있어 눈부신 자연경관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 장수 마을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밀재 가는 길

짧은 거리인데다가 수려한 풍경들이 너무 아쉬워 우린 발길을 늦추며 유유자적하게 하산 길을 잡았다.

아들녀석도 다른 때 보다 일찍 편안한 하산길이 시작되는 것이 기분 좋은 모양이다.

오를 수 있는 바위들은 모두 올라 보았고 그 위에 서서 한숨을 내쉬며 내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았다.

속리산에서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

강건한 허리에 해당 하는 속리권 백두대간 능선의 낙차와 암릉미는 단연 압권 이었다.

우린 기묘묘한 바위와 풍경을 감상하면서 여유롭게 하산의 길을 잡았고 대문바위를 지나 밀재에 당도했다.

지난 2월 밤재에서 장대한 눈발이 흩날리는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청화산과 조항산을 거쳐 내려선 바로

그 고갯마루이다.

그날의 살풍경한 모습과 달리 한 달여 만에 다시 찾은 밀재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삼송리 가는 길

길은 부드러웠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계곡은 한적했고 봄은 계곡을 따라 조용히 대야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가는 길에 노란 생강나무가 손을 흔들고 매화는 흐드러지게 피어 났다.

맑은 계곡물은 제법 많은 수량으로 흘러 내리고 둑 길 따라 버들강아지가 대야산 자락에도 봄이 왔음을

알려 주었다.

내가 걸었던 백두대간 길은 저마다 다른 얼굴과 표정으로 나를 맞아 주었지만 그 어느 한 길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 어느 길에도 기쁨과 감동이 넘쳐 났고 그 길 위의 무수한 산들은 내게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

주고 아름다운 세상의 노래를 들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