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일 : 2016년 5월 6일 금요일
산 행 지 : 아들과 부르는 노래 37 - 백두대간 35구간
코 스 : 삽당령-석두봉-화란봉-닭목령
날 씨 : 흐리고 시원한바람(가끔 태양이 구름 밖으로 나오다)
거 리 : 13.3km (접속거리 없음)
소요시간 : 약 5시간 40분
동 행 : 아들과 두리
시간 | 경유지 | 비 고 |
12:00 | 삽당령출발 |
|
12:26 | 임도 입산통제기 | 산길 들머리 |
12:36 | 이정표 | 석두봉:4.2km, 닭목령:12.8km |
13:11 | 이정표 | 석두봉:2.7km 닭목령:11.2km, 삽당령:3.5km |
13;17 | 제3쉼터 |
|
13:39 | 제4쉼터 | 휴식용 곡선 나무 의자 |
14:08 | 석두봉 | 닭목령8.5km, 삽당령:6km |
14:44 | 제5쉼터 |
|
14:52 | 이정표 | 화란봉:4.2km, 닭목령:6.3km, 삽당령:7.7km |
14:59 | 제6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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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 | 제7쉼터 | 화란봉:3.1km, 닭목령:5.2km, 삽당령:0.8km |
15:44 | 제8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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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 | 이정표 | 닭목령:3.2km, 큰용수골:1.9km, 삽당령:10.8km |
16:24 | 화란봉 능선 이정표 | 닭목령:2.1km, 화란봉:0.13km, 전망대:0.37km, 삽당령:11.9km |
16:25 | 화란봉 | 약 10분 휴식 |
16:39 | 하늘전망대 | 약 20분 휴식 |
17:00 | 다시 화란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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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 | 닭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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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덜컹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5시 20분
노가다 새벽출근 버릇이 몸에 밴 동생은 벌써 일어나 운동기구가 갖추어진 방에서 낑낑거린다.
아침이면 거꾸로 매달리는 기계에서 20~30분 운동을 한다나 어쩐다나.
술도 더 많이 먹고 무게도 더 나가는 녀석이 운동을 시작한 후로 요즘은 배도 나보다 더들어 가고
체지방은 완전 정상 수치 이내라고 한다.
난 운동량이 그리 많아도 내 체지방 수치는 공개 불가 수준인데….
지난 어머니 생신 때 만났을 때 “형은 그렇게 산을 타는데 배가 왜 그리 안 들어가?” 하면서 뱃살
빼는 운동을 몇 개 가르켜 주었다.
하지만 이 뱃살이란 게 한 번 찌고 나면 먹는걸 같이 줄이지 않으면 쉽게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데
어쩌냐 말이냐?
“양반곰”을 보란 말이다. 마라톤하고 안나푸르나 몽블랑 다 댕겨도 임신 6개월인 그 배를!!
굶으면서 살빼는 건 자기도 용납하지 못한다는 녀석의 그 간단한 운동법은 그래도 효험이 있었다.
먹는 것도 엄청나지만 내 다리통과 허벅지도 어데가면 안 빠지는데 이 녀석은 통뼈에 완죤 강골
체질이다.
몇 년 전 아주 뜨거운 여름날 강원도에 간 김에 “죽기 전에 공룡 한번 타봐야지?” 지나가는 말로
했는데 “공룡이 뭐예요?” 하고 되물어 왔다.
아들이 소방서 아줌마 직원에게 백두대간 타러 간다고 했더니 “백두대간이 어디 있는 산인데?”하고
물어봤다던 그 아줌마에 버금가는 무식헌 놈!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3.5리터의 물을 지고 선선히 공룡 초행길을 따라나선 동생녀석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표정으로 공룡을 거뜬히 완주를 해버렸다.
그리곤 그 이후 그림과 골프에 반 미쳐 등산점 셔터는 완전 내려 버렸다
녀석의 취미는 틈틈히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고 직권을 이용해 돈 안 드는 골프를 즐기는 것인 데
이번 독일 전시회에서 작품상을 탔다고 상장을 보여주고 걍 난리다.
녀석의 열정과 집중력으로 보아 아마 산에 빠졌으면 봉규처럼 백두대간에 정맥에 지맥까지 다 섭렵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녀석도 제 장단과 신명으로 인생 즐겁게 사는 넘이다.
오늘도 현장에는 공사를 하니 집에 온 김에 회사 현장 좀 돌아보고 거기서 식사를 한다고 6시쯤먼저
나갔다.
식자재는 다양하게 있으니 입맛대로 요리해 먹으라고 하고…
밖은 흐리지만 비가 오지 않는다.
아들녀석은 기척이 없다.
일어날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삽당령에 12시 까지만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면 닭목령 까지 6시면 내려설 수 있다..
오늘 충분한 수면을 취했으니 5~6시간 산행을 하고 운전해서 대전 까지 내려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른 요리를 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라고 어제 술도 한잔 했으니 라면과 햇반이 가장 바람직한 아침
식사가 될 것이다.
동생의 서가에서 책을 하나 꺼내어 읽는데 8시 20분 쯤에 아들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늦게 잠들고 새벽부터 잠을 좀 잤다고 했다.
“알티엔! 비가 안 온다. 밥먹구 산에 가자!”
창 밖을 보더니 아들녀석 순순히 “예” 하고 대답한다.
우린 라면에 밥까지 말아먹고 후식으로 배 까지 깎아 먹은 다음 삽당령을 향해 출발했다.
삽당령은 어제와는 달리 다소 우수에 찬 눈 빛으로 우릴 맞아 주었다.
제법 세찬 바람이 부는 삽당령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고 이따금 차들이 한 두대 넘어 다녔다.
사진을 찍어줄 이 없어서 교대로 기념촬영을 하고 넘실거리는 초록의 파도 속으로 뛰어 들었다.
햇빛이 나지 않고 흐린 날이라 초록의 색상이 더 강렬하고 선명하게 다가왔다.
목장길 같이 목가적인 잣나무 숲길을 만날 때까지 등로는 완만하게 진행 되었고 싱그러운 초록의
대지 위에 무수한 연다래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햇빛은 구름 속에 가리웠어도 초록의 잎새들은 흡사 랜턴과도 같이 낭만적인 밝은 녹색의 빛으로
등로를 화사하게 밝히고 있다.
‘아들아 14km 밖에 되지 않는 오늘 산행은 그냥 거져 먹는 것이다. “
하고 말을 건넸더니 아들 녀석 왈 “날로 먹는 백두대간 길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 한다.
길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쉼 없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어 산행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고 지금까지 걸었던 백두대간 길 중에
가장 많은 쉼터가 잘 조성된 길이었다.
짧은 거리의 길인데다 등로도 완만하니 아주 호젓하고 여유로운 여정이었다.
제 4쉼터는 비치용 나무 곡선의자가 놓여 있어서 한참을 누워서 휴식했다.
석두봉 가는 길에 비가 몇 방울 떨어지기도 했지만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았고 오히려 가끔 태양이
구름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쉼터는 화란봉 아래 8쉼터 까지 촘촘히 조성되어 있어서 아무리 쉬엄쉬엄 가도되는 길이라 해도
너무 자주 쉬어야 하니 오히려 쉬는데 지칠 지경이다.
돈도 많이 들었을 텐데 이쪽 담당하시는 공무원님이 아주 산행과는 거리과 먼 한량이셨던 모양이다.
석두봉 오름길과 화란봉 오르는 길을 빼면 그리 어려운 구간도 별로 없는 평이하고 부드러운 산길
이었다.
석두봉 전위봉에서 갑자기 정적을 깨고 호루라기 소리가 났다.
처음엔 누가 진짜 호루라기를 부르는 줄 알았다.
혹시 이름이 호루라기 새인가?
홀딱 새도 울었다
“홀딱 벗고 알탕하자!”
전위봉을 넘어 긴 계단을 올라 만난 석두봉에서 비로소 해가 구름 밖으로 나오고 제법 후련한 조망이
터진다.
아무도 없는 산봉우리에 덩그러니 외로운 표석 하나!
인적 없는 외로운 이 길이 오늘 내게 평화와 기쁨을 선물한다.
살다 보면 새로운 세상과 풍경이 어느 날 말을 걸어올 것이다.
가슴을 흔드는 무언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말과 울림에 귀를 기울이는 건 감춰진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를 하나쯤 손에 넣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노래하게 하는 주술을 하나 하나쯤 갖게 되는 것이다.
내 동생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성박사가 낚시를 좋아하고 내가 등산을 좋아하는 것처럼…
비록 남들은 중독이라 말하지만 그건 계속적인 학습과 경험을 통해 삶의 내공으로 쌓인다.
행복의 주문 하나쯤 갖지 않고 사는 인생이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가슴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가까이 날고 있는 파랑새를 만날 수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길섶에 뒹구는
행복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새벽의 들창을 열고 떠날 때 만나는 차갑고도 상쾌한 공기
시원하게 목을 감는 고원의 바람
강원도 산간에서 칠흑 하늘을 빛내며 금새라도 쏟아질 것 같은 별
아름다운 봄 길의 활짝 핀 연다래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화의 수줍은 미소
오래 길을 걸으면 이런 것들이 모두 소박한 행복의 또 다른 얼굴임을 알게 된다.
도를 통한다는 것이 별건가?
오래 산길을 걸으면 깨달음이 온다.
산이 하는 말 바람이, 전하는 사랑을 알아 들을 수 있고
겁을 이어 온 대자연의 진리와 우주의 진동을 느낄 수 있다.
물소리,바람소리, 새소리 만으로 불국의 고요와 평화를 누릴 수 있고
길 섶 들꽃의 미소로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머릿속에는 늘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는 보물지도가 그려진다.
단조로운 산길에서도 늘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때론 그 곳에 들지 않고도 그 고요와 기쁨에 젖을
수도 있다.
이는 길 위에서 혹은 산속에서 스스럼없이 자연이 되고 신선이 되는 것이니 어찌 그 도가 우리 삶의
멀리에만 있다 하리오?
석두봉에서 등로는 물푸레 나무가 많은 고산 평원 지대를 완만히 내려 간다.
삽당령 이후에 조릿대 군락이 눈에 많이 들어 왔지만 제 5쉼터 가까이에서부터는 완전한 조릿대의
점령지였다.
조릿대들은 막강한 전력과 서슬푸른 기세로 화란봉을 향해 파죽지세로 진군하며 제국의 영토를
넓히고 있는 중이다.
마치 럭비선수들이 스크럼을 짜고 돌진하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제주도에서 해마다 늘어나는 조릿대들이 토종 식물들을 전부 고사시켜 버린 다더니 이곳에서는
키 큰 나무 아래 철쭉나무들은 온통 조릿대에 포위된 채 가까스로 생명을 유지하며 애처롭게 작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관목들은 조릿대 잎사귀 아래서는 후손들을 생육할 수 없다.
공존을 허용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조릿대 군단의 강력하고 집요한 포위공격에 작은 나무
들은 번식은 고사하고 생존도 보장받을 수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에 내몰리고 있었다..
무식한 넘들….
이쯤 되면 유언비어 전단지라도 뿌려 불쌍한 진달래와 철쭉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
“조릿대! 고개숙인 남자를 벌떡 세운다 !”
가다가 귀연산군의 반가운 표지기를 만나고 나무에서 재롱을 부리며 도망가지 않는 다람쥐도 만났다.
조릿대는 화란봉 오름 길이 지속되던 8쉼터 까지는 따라오지 못 했다.
우린 병꽃이 반갑게 손을 흔드는 고원의 평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름 길 능선을 따라
화란봉에 올랐다.
능선 마루에 개념도와 이정표가 있고 우측방향으로 잠시 진행해야 표석을 나오는데 그로부터 400여
미터 진행해야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서는 거침없는 바람이 불어 왔다.
날씨는 조금 더 흐려 졌지만 우리가 전망대에서 풍경을 감상하고 기념촬영을 하는 동안 태양이 몇 번
이나 구름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주었다.
우린 화란봉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멋진 구름쇼를 감상한 다음 여전히 초록과 철쭉이 아름다운길을
따라 여유롭게 닭목재로 내려 섰다
14년전 가을에는 대관령에서 삽당령까지 그 머나 먼 길을 걸었다.
닭목령 까지 비무장으로 우중 산행 하는 중에 대차게 알바를 해서 체력소모가 많았다.
그날 간식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일행들과 떨어져서 닭목령에서 삽당령까지 오는 동안 배가 고파서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다.
패잔병처럼 불쌍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걸었던 그 길을 오는 아들과 여유롭게 다시 걸었다.
지나간 시절의 아쉬운 추억들은 어느 산길에서도 손을 흔든다.
늙지 않는 가슴은 아직 그 날의 뜨거운 감동을 잊지 않았고 식지 않은 열정은 아직 그 날의 함성을 기억한다.
언젠가 산을 내려 올 날이 오겠지만 그 때 까지는 더 많은 사랑을 느끼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
갈 수 없는 나라의 꿈조차 계속 꾸고 싶다.
닭목아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닭목아지 안 비틀어도 새벽은 반드시 오니 자꾸 닭목아지 비틀지 마라.
저물어 가는 닭목령에는 스산한 바람이 불어 갔다.
민가에 들러 교통편을 물으니 7시가 넘어야 막차 버스가 온다고 한다.
우측으로 넘어가면 강릉 길
좌측으로 넘어가면 임계 길
삽당령 까지 택시비는 4만원
어디로 넘어가서 택시를 불러도 반은 절약이 되니 다시 히치하이킹 준비를 하는데 택시가 한대 오더니
산님 한 분을 내려 두고 휑하니 떠나고 그분은 닭목령 한켠에 주차된 차로 걸어간다.
잘됐다 싶어 냅다 뛰어가서 가시는 길 아래 까지만 태워 달라 했더니 그분 흔쾌히 타라고 하신다.
근데 강릉에 사신다더니 반대 방향으로 내려 가시길래 왜 이쪽으로 가시냐 했더니 삽당령 까지 태워
주신단다.
“아이고 이게 시방 무신일 이래요?”
강릉이 집이시면 돌아도 한참 돌아가는 길이다.
북동쪽에서 귀인을 만났다.
너무 미안해서 극구 사양을 했는데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산사람 마음을 아는 게 아니냐 하시면서
아들과 내게 대단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작년에 퇴직하시고 친구들과 강원도 일대 산을 소일 삼아 다니고 계신다고 했다. 우린 즐겁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아주 편안하게 아직 저물지 않은 삽당령에 도착했다.
나는 고마운 분께 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대전에 오실 기회 있으시면 꼭 전화 주십사 말씀 으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했다.
오늘도 멋진 여행길이었다.
백두 산신령님께서는 어제의 피로를 감안하셔서 햇님이 구름밖에 나오지 않도록 주선하시고 시원한
바람을 풀어 여행길을 가볍게 만들어 주셨다.
정부는 출정을 지원하기 위해 오늘을 휴일로 지정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도 면제해 주었고 강원도 지자체
에서는 혹여 누적된 피로가 과로를 부를까 걱정스러워 몇 걸음 간격으로 별별 쉼터를 다 만들어 쾌적하고
여유로운 산행을 도와 주었다.
어디 그 뿐이랴 가슴이 따뜻한 강원 도민께서는 바쁘신 중에도 우리의 성공적인 종주를 축원해 주시고
닭목령 삽당령 먼 길에 기꺼이 우리의 발이 되어 주셨다.
또 다시 변함없는 진리를 확인한 날이었다.
봄에는 떠나야 한다.
이디라도 어디로라도 !
일단 떠나고 나면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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