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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백두대간

아들과 부르는 노래 36 - 백두대간34 (백봉령-생계령-석병산-두리봉-삽당령)




산 행 일 :  201655일 목요일

산 행 지 :  아들과 부르는 노래 36 - 백두대간 34구간

    :  백봉령-생계령-석병산-두리봉-삽당령

    :  맑고 시원한 바람, 청명한 공기

    :  18.1km (접속거리 없음)

소요시간 :  8시간

    :  아들과 두리

         

시간

경유지

비 고

08:35

백봉령 출발

 

08:53

44번 철탑

 

09:03

45번 철탑

 

10:02

생계령

헬기장:5.5km, 백봉령: 5.5km / 15분 휴식

10:33

강릉 서대굴 안내판

 

11:18

능선 아래 안부

옆봉우리 조망 쥑인다.

12:16

백두대간 안내판봉우리

아들 다시 찾다.

12:19

고병이재

 

12:34

백두대간과 석병산 안내판

 

12:45

헬기장

일월봉(석병산)1시간 15분소요 고병이재:10

13:45

이정표

석병산:0.6km 백두대간수목원:5.9km

13:56

쉼터이정표

일월봉(석병산):15분 상황지미골:2시간30

14:01

헬기장

 

14:05

두리봉 갈림길 이정표

일월봉:5분 헬기장:1시간10

14:06

석병산

 

14:20

석병산 출발

 

14:39

이정표

석병산:0.7km 백두대간수목원:7km

15:17

두리봉

 

15:55

이정표

삽당령:2.2km 두리봉:2.4km 석병산:4km

16:32

삽당령

산행종료

















































































































































그 동안 순탄하게 잘 흘러왔는데 4월에 대형사고 연거푸 발생하다!

아들녀석 MT가는데 빠지면 학점 안 준다고 교수가 협박했다나 워쨌다나 하더니 2차출정도 시험공부

때문에 못 간다고….

나야 이 멋진 봄날 어디 갈데가 없겠냐만  멀고먼 강원도 백두대간은 그럼 또 언제 걷냐구?

 

세상이치가 다 그렇다.

시작이 반이라고 시작을 해 놓으면 일단 반은 먹고 가는 거다.

과연 할 수 있을 것인가 의구심 속에 시작했던 대간 길은 이젠 진부령이 성큼 다가와 손을 흔들고 벌써

그 무한한 영감과 감동의 여정이 아쉬운 마무리를 떠 올린다.

애고 애잔하고 빈약한 내 국토의 등줄기여…!”

 

아들한테 5 4일은 술마시지 말고 55일은 무조건 약속을 잡지 말라고 일러 두었다.

가장 멋진 봄날에 그 길을 꼭 걸어보고 싶은데 5월의 주말은 벌써 약속과 일정이 모두 차 있어서 그날

밖에 갈 수 있는 날이 없다.

 

일행들과 같이 떠나지 못하면 너무 제약이 많다.

시간도 돈도 그렇지만 장시간 운전의 체력소모와 가중된 피로는 위험부담을 키울 수 있다.

사실 4시간 차를 몰고 가서 8시간쯤 대간 길을 걷고 다시 4시간 차를 몰고 돌아 와야 하는 지난한 여정

보다 더 큰 걱정은 그 멋진 길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

우린 해내는 산행이 아니라 즐기는 산행을 하고 있는 것인데

가장 최적의 컨디션으로 심산의 내밀한 아름다움을 돌아보고 그 기쁨과 축복을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근데 정부에서 갑자기 전갈이 왔다.

6일도 쉬게 할테니 편하게 땜빵하라고….

고마운 그네 누님!”

또 산신령님 전갈도 왔다.

“6일에는 비를 확 뿌려 버릴껴….!”

 

 

불상사가 겹쳤다.

아들녀석은 아침 잠이 많아 새벽출정이면 여지 없이 잠을 설치고 차 안에서 잠도 잘 못 자지만 난 등판이

3분의 1만 붙으면 어디서나 코를 골 수 있는 절세 무공을 자랑하는데 밤 11시 좀 넘어 잠자리에 들고도

새벽 3시 까지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빨리 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불침번을 서게 만든 꼴이다.

살다 보니 세상에 별 일도 다 있다. “


새벽 4시!

우린 계획대로 신새벽의 들창을 활짝 열어 젖히고 씩씩하게 강원도 백봉령을 향해 출발했다.

뒷자석에 아들녀석 누워 잘 수 있도록 이불과 쿠션을 깔아 주고서….

임계에 7 40분에 도착하여 준비해 간 김밥과 뜨거운 물로 차 안에서 아침을 먹고 8 5분에 동해로

넘어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830분 백봉령에 도착했다.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주는 눈부신 5월의 봄날이다.

언제나처럼 그냥 길을 나서면 되는 거였다.

온통 초록의 생명이 번져나가는 그 멋진 산길을 걸으면 약동하는 대지의 기운이 우리의 발을 타고

온몸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이었다.

역시 치유의 백두대간 이었다.

처음에 다소 힘들었지만 우린 걸을수록 비 맞은 풀처럼 싱싱해졌다.

마음에 걸린 것이라고는 계속 울며 따라오던 안타까운 자병산

그 쓰라린 상처를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수려한 백두대간의 조망을 카메라에 잡으려면 어김없이 거기

서서 슬픈 눈으로 우릴 바라 보았다.

 

길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미세먼지도 황사도 없는 청명한 날이었다.

산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오월

길 위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수줍은 연다래는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맑고 시원한 바람이 만든 깨끗한 하늘과 푸르름이 파도 치는 능선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백두대간의

봄날을 열어 주었다.

우린 푸른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초록의 파도 속을 유영했다.

 

임제선사의 말처럼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길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하늘은 드맑고 바람은 부드러운 날 .

잠을 안 자고도  우린 이렇게 짱짱하다.

몸도 마음도 아픈데 하나 없이 이 멋진 봄 길을 걸을 수 있으면 됐지 더 바랄게 무에야?

그것도 아들을 대동하고 14년전 어둠 속에 묻어 놓은 추억의 그 길을 더듬어 가는 행복한 여정이다..

 

너무 쉽게 누리던 그 멋진 길의 평화에 심통이 났던지 신령님이 딴지를 걸었다.

생계령에서 충분히 휴식하고 강릉서대굴을 지나 오르막을 치고 올라 가는데 잘 따라붙던 아들녀석이

뒤따라 오지 않는다.

아마 이것저것 먹고 오는 것이겠지 하면서 기다리지 않고 능선 안부 아래까지 치고 올랐다.

안부에서 바라 보니 옆으로 돌출된 봉우리의 조망이 범상치 않을 듯 하여 길옆 잘 보이는 곳에 등산

배낭과 스틱을 놓고 봉우리로 건너갔다.

예사롭지 않은 풍경에 탄성을 올리며 절벽난간에 기대어 한참 동안 멋진 조망사진을 찍었다.

온통 연초록이 피어 오른 산릉이며 깊은 골짜기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사진 찍느라 한참을 허비한 것 같은데 다시 배낭을 놓은 자리로 돌아 오니 아들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고 뭔 일이래?”

이 자리는 비탈을 가파르게 치고 올라와서 쉴 만한 타이밍에 나타나는 곳이고 게다가  바로 길 옆에 

배낭을 벗어 놓아서 못볼리가 없는데....

샛길로 빠질 데도 별로 없었지만 지난 가을 동엽령에서 월성치 땜빵산행 때 전과가 있었던 놈이라 걱정이

앞섰다.

그 때 토옥동 하산길에서 비교적 길의 흔적이 뚜렸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길을 잘못들어 계곡 속을

헤메는 걸 한참 만에서야 찾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고 스마트폰도 잘 터지질 않는다.

일단 위 봉우리로 올라가 산세를 살피다가 안될  것 같아 다시 밑으로 뛰어 내려 갔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올라오던 두 분 산님을 만나  올라오는 길에 만난 사람을 물으니 아무도 보지 못했

단다.

이게 무신 조화여?”

아무래도  지나쳐 간 것 같긴 한데 답답하기 짝이 없다.  

내가 걱정을 하자 산님들도 빠질 길이 없으니 먼저 갔을 거라고 안심을 시켜 준다.

다시 올라오면서 아들한테 전화를 했는데 이번엔 신호가 가긴 하는데 영 받지를 않는다.

 

되돌아 와서 아무리 다시 봐도 길 옆에 놓인 배낭은 한눈에 들어 오는데 정말 저걸 못보고 지나칠 수

있었을까 싶어 또 착잡해진다. 

산님 왈 비탈길이 힘들어 땅만 보고 걷다 보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한참 있다가 아들녀석 전화가 왔다.

아빠 도대체 지금 어디 계세요 ?”

자기는 위도 경도가 적혀 있고 백두대간 안내 표지판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했는데 아무리 가도  아빠가

보이지 않는다고

흐미 다행이다 위도 경도가 적혀있는 표지목이 있다면 백두대간 길이 틀림 없으렸다.

너 거기 꼼짝 말고 있거라!”

서둘러 가는 길에 반대편에서 오는 산님 한 분을 만났다.

혼자 가는 아이를 물으니 한 명 봤는데 벌써 한참 갔을 거라 한다.

2km는 족히 될 것 같다구….

 

우린 보구 싶지 않은 자병산이 다시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산 봉우리에서 감동(?)의 재회를 했다.

녀석은 내 배낭을 보지 못했고 스마트폰은 진동모드 였구 내가 보이지 않아 힘겨운 중에도  따라잡는다고

한껏 피치를 올려 전력질주 했다.

난 그 새에 다시 가파르게 올라 왔던 그 길을 리바이벌하고….

애고 자식은 역시 애물단지여 !”

심심하시던 백두대간 산신령님이 훗날의 즐거운 추억을 맹글라고 장난 한번 치신 거였다.  

화사한 오월 ,부드러운 등로에서 느슨하게 이완되던 정신과 근육에 한 번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신거지만

우린 한판의 전쟁을 치루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5월의 평화에 젖어 들었다.

 

석병산은 일대에 우뚝한 산이다.

어둠 속에 묻어둔 그 산은 내 머릿 속의 기억속에 아무런 잔상을 남기지 않았다.

나의 기록에는 단지 4 45분에 올랐다는 기록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난 단지 이 길을 걸었을 뿐 이 멋진 아름다움을 바라 볼 수도 교감할 수도 없었구나!”

숱한 풍경을 어둠 속에 남겨두고 지났던 백두대간을 온건히 걸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내 사는 나라가 금수강산임을 진정코 백두대간을 걷지 않고 어찌 알 수 있을까?

흘린 땀과 뜨거운 호흡이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감동을 불러내고 거친 그 길이 비단길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길을 걸어보지 않고 어찌 알 수 있을까?

그 옛날 백두대간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삶의 축복이었고 다시 그 걸을 수 있음은 내게 주어진

행운이고 행복이었다.

 

석병산에서 내려다본 백두대간의 초록능선들은 후련하고 아름다웠다.

우린 오월의 봄날에 석병산 정상에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석병산 이후에 바람은 가라 앉았지만 길은 부드러워 그리 힘들지 않았다.

두리봉 까지는 1.6km로 완만한 오름 길이 계속되었지만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낱의 나른한 휴식이 드리운 두리봉

평상에 테이블까지 질 설치해 놓은 두리봉에서 우린 간식을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음 가벼운 발

걸음으로 삽당령을 향해 출발했다.

우린 여전히 연다래가 함박 웃음을 웃는 그 길을 따라 북으로 떠나는 봄을 배웅했고, 조릿대 군락이

점점 많아지면서 우린 그렇게 그날 어둠 속의 삽당령에 가까이 다가갔다.

어둠 속에 남겨진 암갈색의 추억에 밝은 햇빛을 드리웠던 아름다운 여행길 이었다.

 

4 32분 내려서서 간이 포장주점에서 임계로가는 차편을 묻고 길을 내려 서는데 버스 한대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손을 들 겨를도 없이

아뿔싸 어느 선답산님이 4시 중반에 지나가는 시외버스가 있다더니 바로 그 버스인 모양이다.

애고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아까운 버스를 놓쳤다.

삽당령 한켠에는 일단의 자전거 여행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울에서 정선까지 버스로 와서 여기까지 자전거로 왔단다.

기념촬영을 부탁하고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기들이 자전거에 태워주겠다

는데 안장도 없는 그 자전거를 어떻게 타냐구?

삽당령 까지 잘 와서 엉덩이 찢어질 일 있냐구?

한술 더 떠서 막걸리 한잔 치던 아줌마는 걸어가면 얼마 안 된다고 걸어가라 한다.

10km가 넘는 길인데 걸어서 얼마 안 걸린다고?

이 아줌마 사람 잡을 아줌마네

 

할 수없이 젊을 날의 주특기를 살리기로 했다.

히치 하이킹!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밝은 표정으로 지나가는 차를 향해 다소곳이 손을 드는 것

여자가 손을 들면 얼마 걸리지 않는데 땀구멍이 숭숭커지고 피부가 살짝 쭈글거리는 지금은 어떨까?

그래도 비쩍 말라 불쌍해 보이는 아들녀석이 옆에 있느니 어쩌면 쉽게 성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삽당령에서 차가 지날 때마다 손을 치켜 들었는데 영 반응이 신통치 않다.

15분여 40여대는 족히 보냈을 거다.

승용차고 트럭이고 잠시 멈칫거리다가 이내 쏜살 같이 넘어가기 일쑤다.

옆에서 따라 손을 들던 아들녀석이 거의 자포자기 수준이 되고도 난  오기가 더 치밀어 올랐다.

감자 바우들 인심 고약하네!”

허기사 강원도 토박이들이 이 고갤 넘어갈 일 있나?

대부분 연휴에 동해안으로 놀러 온 사람들이지

오붓한 여행의 기쁨을 불청객 때문에 깨어버리기 싫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그래도 백두대간 산꾼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한 사람 쯤은 지나갈 수도 있지 않컷어?

결국 아무도 세워주지 않았다. 다만 그 방향으로 가는 시내 버스가 혜성 같이 나타났는데 임계를 3km

남짓 남겨둔 마을이 종점인 버스였다.

우린 그 버스를 타고 버스종점까지 편안히 내려왔고  그곳에서 임계까지 가는 트럭을 얻어 탔다.

어느 어주머니 한 분과 그 딸과 함께 트럭 뒤에 타고 강원도의 시원한 공기로 도시에 매연에 찌든 폐부를

씻어내며 당당히 임계에 입성했던 것이다.

군가가 절로 나왔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많은 비가 오면 내일 보충 산행은 다음으로 미룰까 생각했다가 오늘 순조로운 산행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내일 비가와도 강행한다.!”

다만 아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비가오면 가지 않겠다고 했다.

원주의 동생에게 혹시 갈지도 모른다고 통발을 해놓긴 했었는데 못 갈 것 같아 전화를 걸었다.

엄청 피곤해서 임계나 동해에서 하룻밤 자겠다고

대우건설 원주 푸르지오아파트 건설현장 소장인 동생녀석은 사택에서 기거하면서 주말에 서울 집으로

올라간다.

5일은 골프약속이 있어서 저녁일정이 유동적이라 내게 사택비번을 알려준 터였다.

전화를 하니 골프를 마치고 다시 원주로 돌아 왔단다.

형하구 식사하려구 다시 돌아왔으니 좀 멀더라도 오셔유

   기특한 녀석

2시간여 차를 운전하는 피로를 감수하면 멋진 뒤풀이와 쾌적한 잠자리가 있다.

모텔이나 민박에서 숙박을 해도 내 코고는 소리면 아들녀석 또 잠을 설칠 터인데 동생사택에서 방하나

내주면 편하게 잠 잘 수 있을 것이다.

우린 원주로 이동해서 갑오징어 숙회와 전골로 술 한잔 제대로 치고 내일을 위한 편안한 잠지리에 들었다.

 

우린 일단 길을 나서고 그냥 그 길을 걷기만 하면 된다.

우주와 세상이 우리를 도와준다.

산신령님이 멋진 봄날과 맑은 바람을 준비해 주셨고 정부는 우리 출정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강원

여객은 백봉령 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식사가 끝날 시간에 맞추어 대기시켜 주었고 산행이 끝나자 길이

막혀 조금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삽당령에서 임계 가까운 곳 까지 안전하게 배송해 주었다.

관급지원이 한계에 부딪혀 임계길이 막히자 강원도민들도 발벗고 나서서 임계 까지  트럭을 추발하여

대장정을 지원했다.

마눌은 음식과 물을 보급하고 후원금을 보조하고 동생은 뒤풀이와 뒤풀이와 잠자리를 불편함이 없게 만들어

주었다.

귀연산우들의 선답일지와 뜨거운 응원도 큰 도움이 되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대간 종주 열 번이라도 하겠다.

하지만 살아보니 인생이란 게 터무니없이 짧은 거라서 !” 하면 10년이 후딱 지나 간다.

오랜만에 인사드렸던 대 선배님왈 !

“60에서 70 가는 게 젤 빠르더라!

젊을 때 맛난 거 많이 먹고 부지런하게 댕겨라!

돈은 쓴 만큼이 지돈이고 땅은 걷는 만큼이 내 땅이다.”

 

한결 같은 선배들의 소리는 산이 전하는 말이다.

좋은 음식도 입맛 살아 있을 때 먹어야 하고 아름다운 곳도 다리가 후들거리기 전에 가야 한다.

노래는 부르고 싶을 때 부르고 춤은 추고 싶을 때 추어야 한다.

 

내 살아 보니 가장 좋은 심신의 휴식과 치유는 혼자서 조용히 하늘과 자연과 신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 가는 것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이 가득한 이 길을 걸으면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 감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가슴에서 쓸데 없는 것들이 비워지고 또 잃

어버린 소중한 것들이 채워진다.

그냥 걷는 것 만으로 수 억년 백두대간의 역사와 기가 가슴에 들어오고 산이 하는 말 바람이 전

하는 말이 복음처럼 가슴을 울린다.

그리고 명상과 사색의 서성이는 그 길을 따라 마음의 평화가 구름처럼 밀려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