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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트레킹

백화산 종주 (안나푸르나 5차 전지훈련)

 

 

 

 

 

 

 

 

 

 

 

 

 

 

 

 

 

 

 

 

 

 

 

 

 

 

 

 

 

 

 

 

 

 

 

 

 

 

 

 

 

 

 

 

 

 

 

 

 

 

 

 

 

 

 

 

 

 

 

 

 

 

 

 

 

 

 

 

 

 

 

 

 

 

 

 

 

 

 

 

 

 

 

 

 

 

 

 

 

 

 

 

 

 

 

 

 

 

 

 

 

 

 

 

 

 

 

 

 

 

 

 

 

 

 

 

 

 

 

 

 

 

 

 

 

 

 

 

 

 

 

 

 

 

 

 

 

 

 

 

 

 

 

 

 

 

 

 

 

 

 

 

 

 

 

 

 

 

 

 

 

 

 

 

 

 

 

 

 

 

 

 

 

 

 

 

우린 가끔 잊는다.

지나간 인생의 여름날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우리가 어떻게 그 젊음을 누리고 세월 속에 익어갔는지….

산은 늘 거기 있고

우린 저마다의 이유로 산에 오른다.

그리고 산은 우리에게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짧아서 더 아름다워야 할 시간과 더 이상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알려준다.

 

스토리가 너무 많고 인연이 각별한 백화산이다….

2004년 혼자 여행길에서 처음 만난 백화산은 내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선 머슴아 같이 다듬어 지지 않은 거친 투박함

영동과 상주 일원을   굽어 보는 그 당당한 여장부의 위세와

세속에 점염되지 않은 순수와 그 맑은 영혼의 고요함 까지

 

내 사는 곳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호젓하고 깊은 산세라

젊은 날 홀로도 몇 번 오르고 회사 산악회와 그리고 귀연과도 함께 올랐는데

삶이 바쁘고 가야 할 곳은 또 많아서

백화는 오랜 기간 나의 숨겨지고 잊혀진 여인으로 남았다.

 

하지만 인연이란 또 오묘해서

30년의 세월을 돌아 만난 옛전우가 백화산 아래 둥지를 틀고 있었던 탓에

이기자 전우들과 함께 다시 몇 번의 반가운 해후를 이루고 이제 안나푸르나 원정팀과 함께 그 험준한

칼 능선에 마지막으로 발과 마음을 함께 맞추어 보기에 이르렀다.

.

주행봉을 거쳐 그 기골이 장대한 암릉 길을 따라 백화산 정상에 올랐다가 반야사로 원점회귀 하거나

보현사로 내려서면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우린 7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좌측의 가장 긴 등로를 따라 주행봉에 올랐는데 절벽지대 까지 있어 한 시간 가량 더 시간이 소요되었고

굳이 속도를 올릴 이유도 없어서 우린 바람과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그 길을 걸었다.

마지막 백화산(한성봉)오르는 갈림길에서 능선 길을 택하는 바람에 길은 멧돼지 길보다 더 거칠고 위험

해져서 체력소모도 더 많았고 시간은 더 늘어졌다..

오후 2시쯤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거의 4시가 다 되어 하산했다.

명실공히 주행봉과 백화산(한성봉)을 아우르는 가장 완전한 종주길을 완성한 셈이었다.

 

세월 따라 세상과 사람들은 많이 변했갔지만 백화는 세월을 비껴가는 듯 늘 한결같은 모습이다.

산길도 다듬어 지지 않은 채 옛모습 그대로이고 숲 길은 나무들이 더 울창하고 무성하다..

주변의 산세는 언제나 웅장하고 시원한 바람도, 후련한 조망도 믹힘이 없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계곡에서 알탕을 하고 차박사 농장으로 회귀하는 7시간 30분 동안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무수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들이 삶의 기쁨과 위안을 준다.

그 변함없는 길이 소환하는 지난 시간의 추억과 상념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차박사 농장에서 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는데 오늘은 홀로 계곡에 머물며 뜨거운 하루의 진폐를 씻어 낸다..

그 물길도 변함이 없다.

차가운 물에 뛰어들면 가슴이 후련하고 따뜻해지는 역설과  마음까지 씻어내는 계곡수의 카타르시스도  변함이

없다.

 

시간은 항상 우리의 생각을 앞지른다.

백화는 변함이 없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서 우리는 좋은 친구와 세상의 따뜻한 사랑을 함께 만날 수

있지만  뜨거운 가슴과 튼튼한 다리는 내 곁에 마냥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떠날 수 있을 때 떠나고 가슴이 울릴 때 떠나야 할 명백한 이유가 된다.

 

안나푸르나에서도 기쁨과 고통이 등을 맞대고 있을 것이다.

삶이 궁극의 목적지에 이르는  여행이고 여행길은 즐거워야 하듯이  

안나를 향한 그간의 힘든 여정에서도  또한  무수한  삶의 기쁨을 불러냈다.   

오늘 우린 함께 그 멀고도 거친 길 까지 즐겁게 걸었으니 먼 안나푸르나에서도 함께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씩씩한 백화와 하나 더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으니 안나푸르나에서도 많은 기쁨과 행복을 배낭에 담아 올 수

있을 것이다.

 

농장에서 만남이 늘 그랬었지만 팀웍과 모두의 즐거운 여정을 위해 차박사 부인이 준비한 야외만찬은 너무

맛있고 정성이 가득한 성찬이었다.

덕분에 충만한 낭만적인 여운과 즐거운 추억이 더 오래 남을 것 같다.

함께한 산친구들에게 감사하고 멋진 뒤풀이를 준비해준 차박사와 부인께 고맙다는 말 전한다.

 

                                                                                                            2018년 10월 28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