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들은 다 화가 나 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도 덩달아 화가 난 상태로 살아가는 모양이다.
작은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장들의 정신은 늘 공황이고 패닉이다.
그들은 초조함과 불안 속에서 무언가에 끊임 없이 분노한다.
말도 안 되는 정책으로 자신들이 밥줄을 옥죄는 정부에 비분강개하고
사장만 없으면 담배피고 노닥거리고 일이 밀려도 근무 시간이 종료되면 어김 없이 퇴근하고
노동법을 들먹이며 야근수당을 요구하는 직원들에게 분노한다.
원청 업체에 가면 현장 반장에게도 머리를 조아리고 아양을 떨어야 하고 전화가 오면 총알 같이
튀어나가 밥값을 계산한다.
그는 직원들이 다 떠난 차가운 공장 사무실에서 컵라면 하나로 저녁을 때우며 하얗게 밤을 밝힌
다.
월급날은 없는집 제사처럼 어김없이 돌아온다.
사는 게 참 팩팩하다.
밖에 나서면 사장 포스를 잃지 않으려 힘들게 번 돈 팍팍 써대며 근거없는 무용담을 침튀기며
야기하지만 잡고 근거 없는 무용담을 사는 명색이 사장인데 속으로는 이렇게 구차하고 늘
울화통이 터지면서 살아 간다.
직원들도 늘 화가 나 있다.
맞벌이하는 마눌은 밥 해줄 겨를도 없이 일어나 나가기 바쁘고
늦게 집을 나서면 차가 막히니 빈속으로 집을 나선다.
썰렁한 회사에 도착하여 회의실 한 켠에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고
옆에 박스에서 컵라면을 꺼내어 아침을 먹는다.
아 그들은 물기 없는 마른 세상을 그저 살아가기 위해 먹고 있는 거다.
개념을 늘 승용차에 두고 내리는 사장은 오늘도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만 한다.
항상 잔소리에다 보너스는 고사하고 떡 값도 안주면서 밤낮 없이 야근 안 한다고 성질를 부리는
사장
오늘도 그냥 어제와 같은 날이고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오장육부는 늘 안방 옷걸이에 걸어 놓고 나오지만 사장 얼굴 보고 점심 먹고 나면 또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늘 삶의 허기에 허덕이면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자신에게 막 화가 난다.
난 무릉객이다.
세상의 무릉도원의 출입허가증을 가진 남자
영원한 사는 것은 바위 뿐
사람의 삶이란 너무 짧아서 그저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까워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움과 감동을 찾아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 속을 바람처럼 떠 도는 자유인.
어느 날 누군가 나에게 무능객이라고 했다.
헐~~
비하할 마음은 없고 혀가 짧아 단지 설전음 발음이 안 되어 나온 말인 줄은 알지만
일단 또 떠나는 것을 유보한 채 스스로 자유를 구속하려는 자신에게 슬며시 자괴감이 든다.
뿌리는 이상에 두고 현실의 바람에 펄럭이기가 어디 쉬우랴
어디 이슬만 먹고 시처럼 살 수 있는 세상 이던가?
그리고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어느 날 누군가 나를 무는개 라고 했다.
헐~헐~~
차근차근 설명하는 내 말은 개무시하고 슬 한잔 마시고 운영진 모두를 다 싸잡아 짤라야 한다고
격앙되어 성토하는 아줌마한테 이젠 그만 나오시라 했다고….
송년회 자리에서 술 먹고 말도 안 되는 언어폭력으로 여자들을 희롱하는 산우 멱살을 잡고 끌어 냈다고….
무릉객이 무능해지고 사나워 지고 있다.
자연과 산을 닮아가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이 나이에 또 다시 시끄럽고 날선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니
이젠 내가 그렇게 변해가는 모양이다.
종이로 생선을 싸면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싸면 향내가 난다.
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는 아직 한 장의 종이인가?
늦은 나이에 뚜벅 뚜벅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 세상 속에서 내 삶의 향기와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더욱 쉽지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작은 것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잃어 버려야 할지 모른다.
세월은 언제나 똑 같은 속도로 흘러 갑니다.
그 속도를 제어하는 건 마음이지요
오랜 세월 마음은 높은 산을 오른 만큼 더 깊어지고 먼 길을 걸은 만큼 더 넓어졌습니다.
삶의 내공은 더 고강해졌습니다.
오랜 세월 산에서 도를 닦으면 등을 맞댄 기쁨과 슬픔이 보이고 손을 맞잡은 번뇌와 고요가 보입니다.
일체 유심조
모든 건 마음이 만들어 내는 조화이고 흔들리는 건 내 마음일 뿐입니다.
나는 나무이고 숲이고 바위이고 산입니다.
나는 무수한 가지를 내려 놓는 가을 나무이고 누군가의 숲이고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흔들림 없이
거기 서 있어야 할 산 입니다.
가지가 부러져도 살아서 잎과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날려야지요.
바람 부는 날에는 난 바위고 산이어야 합니다.
힘든 시간도 지나고 나면 모두가 아름다운 시간일 뿐입니다.
지난 지리산의 깨달음은 자만이고 스스로를 위한 교언영색이었는지 모른다..
하늘 드맑고 바람 좋은 날의 취기 어린 허세
세상에는 많은 세월을 보내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기 전에는 알지 못하는 것들도 꽤 많이 있다.
나는 아직 숲이 아니고 나무였다.
오래 살았으되 그리 뿌리가 깊지 않은 한 그루 나무
그래서 난 여전히 무릉객이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아직 부족한 무능객이고 사나운 무는개 이다.
깨달음의 길은 멀리 있다.
그건 혼탁한 세상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혼탁한 세상에서도 맑고 고요한 것이다.
그 속에서 나의 중심을 세우고 나의 향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
한갖 한줄기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아니라 바람을 잠재우는 숲이 되는 것이다..
언제 그 경지에 도달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길은 잃지 않고 가고 있는 거다.
이제라도
아직 살며 사랑하며 배울 것이 너무 많은 세상임을 깨우치고
더 깊어지고 넓어져야 하는 나의 무지를 인식하였으니…
스스로를 붉게 태워 비린내를 없애는 숯불처럼
세월의 거친 뽕을 비단으로 소화하는 한 마리의 누에처럼 .
폭풍우와 비바람, 어떤 악천후에도 꿋꿋이 흔들리지 않고 그 역설적인 삶의 후련한 카타를 시스를
즐길 수 있어야 난 비로소 진정한 무릉객이고 무릉도인이 죌 수 있을 것이다.
나무 유시화
나무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가지와 뿌리는 은밀히 만나고
눈을 감지 않아도
그 머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나무는 서로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누가 와서 흔들지 않아도
그 그리움은 저의 잎을 흔들고
몸이 아프지 않아도
그 생각은 서로에게 향해 있다.
나무는
저 혼자서 서 있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 걸까?
세상의 모든 새들이 날아와 나무에
앉을 때 그 빛과 어둠으로
저 혼자 깊어지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날씨가 많이 추워진 날이었다.
아무 동행도 없이 혼자 겨울 속으로 떠나고 싶어진 날
지난 번 대청호 500리길 11구간
피실 까지 호반길을 걷고 산길을 따라 마티고개 인근 까지 길을 걷기로 했다.
옥천 삼거리 편의점에서 크림빵하나와 추억의 보름달 하나를 샀다.
집에서 가져온 건 계란 세개 뜨거운 물 한 통, 인스턴트 커피 2봉 ,귤 5개 , 비스켓 1개 , 물 한통 이니
한 끼 점심으로는 충분한 량이다.
익숙한 안티마을에서 교회가 있는 생명강 전원마을 까지 진행했다.
여기 까지는 지난 번 길과 같은 길이고 그 곳에서 이정표의 피실 방향 쪽으로 길을 잡았다.
호젓하고 낭만적인 수변 길이었다.
피실 끝에는 ㈜피실 팜랜드 체험 농장이 위치해 있었다.
아마도 개인이 농산물을 팔고 캠핑과 숙박을 운영하는 곳인 모양이다.
오르는 길을 물어 보려는데 세마리 개가 목청껏 짖어 대도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써 붙인 전화로 통화를 해도 불통지역인듯 아얘 신호가 가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혼자 길을 찾겠다고 둘레길이라 써붙인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아도 누에 능선으로
오르는 길을 잡을 수가 없다.
못찾겠다 꾀꼬리
공달님 댓글로 올린 지도에는 더 나가서 오르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난 피실 끝자락 팜랜드
가가까이에서 오름길을 찾으려다 결국 허탕을 치고 돌아 나왔다.
임도를 나오면서 매의 눈으로 산길을 찾다가 실패하고 위에 묘지가 보이는 작은 골짜리를 따라
길도 없는 능선으로 올라섰다.
능선 위에는 선답자의 길이 있으려니…..
가다가 길이 아니면 돌아 내려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길의 흔적은 없고 산세는 가팔라서 힘은 들지만 잡목들이 막아서지 않아 진행이 어려운
길은 아니었다.
길을 잃을 까봐 할 수 없이 오룩스를 켰다.
선답자의 트랙을 받아오지 않아서 길찾기는 어렵지만 내가 진행하는 방향과 임도가 지도에 나타나니
전혀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봉우리 몇 개를 치고 올라가서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칼 능선에 섰다.
여기가 누에 능선인 모양이다 .
낙차가 크고 길은 험하지만 굽어보는 금강의 풍경이 수려하다.
건너편 둔주봉도 바라다 보인다.
길이라 하기엔 흔적이 희미하긴 해도 가끔 선답자의 표지기가 펄럭인다.
누군가 이 길을 지나 갔고 나는 거친 바위 산 길에서 아래로 쏟아지지 않고 잘도 뛰어 다니는 한
마리 야생의 산양이었다.
능선에서 칼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목두건 마스크를 하고 중무장을 한 채 길을 걸었고 느린 속도로 인해 체온이
오르지 않아 여느 때 처럼 자켓을 벗을 수도 없었다.
기온이 둑 떨어진 날 제대로 된 겨울 산행인 셈이다.
바람을 막아주는 바위 뒤에서 금강을 내려다 보며 혼자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황홀한 고독이다.
겨울 속의 봄
부는 바람이 막히니 햇살이 오히려 따뜻하다.
훌훌 혼자 떠나니 이리 자유롭고 좋은 걸…
길은 이제 칼 능선을 따라 계속 내리막이다.
결국 누에능선 끝자락은 생명의강 전원마을 100여미터 지점 서거리 골짜기에서 진입하는 등로와
만나는 모양이다
골짜기 아래 쪽으로 많은 표지기가 펄럭인다.
그 곳에서 등로는 고개를 곧추 세우고 주릉을 거쳐 탑산 쪽으로 흘러 간다.
길은 뚜렷하고 호반의 풍경은 점점 더 웅장해졌다.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산비탈에서 한 동안 또 길이 사라졌다.
거의 70도를 넘나드는 경사에 낙엽이 쌓여 있으니 오름 길이 쉽지 않다.
“이 된비알은 내려가는 길도 장난이 아니다.”
그냥 뒤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능선을 어렵게 올라 봉우리를 거쳐 산소가 있는 능선과 임도
로 연결되는 갈림길을 만난다.
그 곳에서 우측 산허리를 따라 임도로 내려서니 그 곳이 반대편에 통신시설이 있는 곳으로 낯 익
은 길이었다.
지난 번 함께 모여 식사했던 바로 그 길 아래 위치한 지점
그 곳에서 좀 더 진행하면 동이면 이도 표지판으로 내려섰다가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잠시 내리막 길을
내려가면 마티고개가 서는 것이다.
그 곳 아자마마을 갈림길 마티고개에서 우측 임도를 따라 자양리 까지는 3.3km
포장된 넓은 임도는 아래로 한참 내려와서 우측 지양리 방향으로 분기한다..
6년 전 마눌과 걸었던 나름 목가적인 포장 소로 길이다.
가는 길에 전원 주택과 축사가 있고 갈래길에서 계속 우측 길을 따르다 보면 지양리에 도착한다.
나는 여전히 황활한 고독을 즐기며 이젠 저물어 가는 그 길을 따라 안티마을로 돌아 왔다.
6시간 43분 만 이였다..
다음 해 봄에는 그 길을 따라 역을 피실 까지 내려가 보아야 겠다.
피어나는 봄에는 수변 풍경이 훨씬 아름다울 것이고 피실 팜랜드 근처로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부지런히 걸어 넉넉잡아 5시간 30분이면 때묻지 ㅇ낳은 야생의 풍경을 만나고 안터 마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빨래 끝~~~
'대청호 500리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청호500리길 12구간 -푸른들 비단길 (0) | 2019.02.18 |
---|---|
대청호500리길 9구간 (진걸마을- 육영수 생가) (0) | 2019.02.16 |
대청호 500리길 11구간 (안터마을-피실갈림길-탑산갈림길-말티고개-아자학교-청마교) (0) | 2018.12.16 |
대청호500리길 6구간 (대추나무길) (0) | 2018.06.18 |
대청호 500리길 4구간 (호반 낭만길) (0) | 2018.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