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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 500리길

대청호500리길 9구간 (진걸마을- 육영수 생가)




















































































































세상은 매일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고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웃고 떠든다.

그리고 더 많은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외로워졌다.

 

사는 게 시들해 지는 날이 있다.

도시가 답답해지고 일상이 무미 해지는 날.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살고 있는 있는 게 아니라

무대 위에서 결말이 슬픈 코미디를 연기하고 있다..

아니면 내 삶의 어제가 연극이었거나….

 

홀로 빈 잔에 한 잔의 술과 고독을 따라 마셨다.

내 안에서 누군가 자꾸 물어 본다.

너 누구야?

너 지금 뭐하고 있니?

 

대답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대사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술과 취했거나, 대본을 잃어버렸거나…..

 

그 땐 침묵이 가장 현명한 대답이다.

아무말이나 툭툭 내뱉지 말고 궁색한 변명에 전전긍긍하지 말라

침묵은 너를 모독하는 세상과 시간에 대한 최고의 명답이다.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마음에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난 것 일 뿐

삶은 마음에서 시작되어 생각으로 형태 지워지는 것이었기에..

 

 

조용한 곳으로 떠나라

지금이야 말로 진정한 고독이 필요한 때이다.

외로웠던 건 단지 다른 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었기 때문이다.

혼자 있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고 진정 혼자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자 잘 가는 까페가 있는가?

바람소리와 조용히 철썩이는 물소리 외에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 곳

양지바른 투명한 창 사이로 황량하지만 따뜻한 겨울과 내다보이고 너를 지치게 한 세상이 격리되어 있는 곳

다시 따뜻한 생각들로 자신의 삶을 내다볼 수 있는 곳

그래서 혼란한 마음을 다독이고 조용히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차에다 자전거를 실었다.

홀로 아침을 챙겨 먹고 그렇게 조용한 아침 속으로 떠났다.

날은 여전히 흐리고 호반 위로 부드러운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목을 휘감는 차가운 공기가 오히려 상쾌하다.

 

지난 번 친구들과 등주봉을 돌아 보는 길에 진호의 안내로 청풍정에  들렀다가 옛 기억이 스멀스멀

올피어 올랐다.

햇수로 7년 전 늦가을

아직 단풍이 남아 있던 날에 석호리 갈림길에서 청풍정 가는 호반 길은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인적인 없던 고요하고 맑은 길

청풍정에서 진걸마을로 넘어 가는 길은 유난히 은행나무가 많았는데 아쉽게도 은행나무 잎은 바람에

모두 날려 길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마눌과 아름다운 그 길을 걸으면서 은행 잎이 물들 때면 다시 찾겠노라 해놓고 오랜 세월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 옛날 가보지 못했던 석호리 너머 이평리 까지 돌아 보고 다시 석호리로 되돌아 와서 마을 끝에서

연결되는 산길을 따라 호수가 맞닿은 곳 까지 내려 갔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혼자 소요하며 맑고 고요한 호수의 풍경을 감상하다가 석호리 마을을 되돌아

나와서 자전거로 그 옛날 추억을 거슬러 올라 갔다.

청풍정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홀로 정자에 올라 잠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정자 위에 있는

별장 길을 따라 걸어서 진걸마을로 넘어 갔다.

다도해 바다처럼 후련히 펼쳐지는 호수의 풍경이 인상적인 곳

몇몇 집이 비워진 채 남아 있고 마을 어귀에 팬션이 들어와 있는 것 말고 별로 변한 것이라고는 없는

마을의 모습에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 올랐다.

시간이 멈춰진 듯 그 곳에서는 6년의 세월은 그렇게 무심했다.

세월아 너는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마을 끝 유씨 묘소 양지바를 곳에 앉아 호수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가져간 빵과 계란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청풍정으로 돌아 오는 길에 우측 산길을 따라 호숫가까지 내려 갔다.

덤불이 우거지고 다듬어지지 않은 곳이라 물가의 풍경은 다소 칙칙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다시 올라와서는 산 길이 끝나는 곳까지 내려가니 수려한 호수의 풍경이 막아서고 정원처럼 잘

조성된 무덤이 나타나 잠시 주변의 풍경을 즐기면서 휴식했다.

더러 빼먹고 다음을 기억하면 좋으련만 난 그 놈의 야지리 근성그것이 문제다.

지체한 시간이 많았으니 청풍정에서 자전거를 회수하고 내쳐 돌아왔으면 시간이 여유로웠을 텐데

호반 정자를 지나치지 못하고 아래까지 내려가서 호수의 풍경을 사진에 담고 올라왔다..

사실 거기 까지도 괜찮았다.

그 곳에서 멀리 돌출 반도와 같은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 둘이 보였는데 그 쪽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을 것 같아 자전거로 부근까지 이동한 다음에 산길을 타고 그 곳까지

내려 갔다.

~

대청호 전체가 낚시 금지 구역이라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 놀라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던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 까지 찍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다..

자전거와 도보로  석호리와 진걸마을의 한정된 지역을  돌아보는 데만 5시간이 넘게 걸렸다.

 

해 떨어지기 전에 산길트레킹을 마쳐야 될 것 같아서 차에 들려 등산 스틱을 가져간다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내쳐 육영수여사 생가가 있는 옥천 교동리로 서둘러 이동했다.

몇 번을 다녀간 곳이지만 잠시 생가 내부를 돌아보고 산행 들머리에 올라서니 시간은 벌써 4시를

넘어 서고 있다.

어두워지기 전에 산길을 타고 마성산을 넘어 국원리 까지 내려 서려면 두 시간 남짓 밖에 시간 여유가 없다.

무릉객!  아서라  너무 늦었어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마성산 등로는 제법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있는 산이다..

아무리 동네 산이라지만 해는 저물어 가는데 난 아무런 준비 없이 날 건달처럼 산길을 오르는 만용을

부리고 있다.

시간도 없고 물도 없고, 랜턴도 없고, 핸드폰 밧데리도 달랑 거리고 게다가 스틱도 없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건 사과 한 개와 콜라비 몇 쪽

장사 한 두 번 하나 ?”

그리 멀지 않은 길이니 630분 까지는 떨어지것지. “

 

속도를 내다 보니 쌀쌀한 날씨임에도 몸에 땀이 나서 자켓을 벗어 던졌다.

해는 넘어가지 않았는데 태양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날씨는 어둑하고 점점 을씨년 스러워 졌다.

목이 말라서 콜라비 몇 조각을 먹고 가다가 사과를 꺼내 먹으면서 이동하다가 아뿔사 반도 먹지 못하고

떨어뜨려 버렸다.

~  사과 하나가 이렇게 애석할 수가 ~~~”

 

어쩌면 삶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넘치는 풍요가 오히려 입맛과 건강을 해치고

부족함이 입맛을 되살리고 건강을 보살펴 준다.

무릇 많은 병이 나쁜 생각과 절제하지 않는 음식에서 오는 법이라

자연에 소요하는 하루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고

잠자는 허기를 불러내어 그 거칠고 소박한 음식을 황제의 성찬으로 바꾸어 준다.

 

마성산에 올라 옥천 드넓은 군내와 벌판을 내려다 보았다.

하산길이 가팔라서 가다가 꺾어진 나무 등걸로 두 개의 지팡이를 만들었다.

궁하면 통하는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고 산 길에서 삶의 내공을 쌓은 무릉객이다.

 

난 마성산에서 능선을  며느리재 까지 진행한 다음 저물어 가는 골짜기 산 길을 따라  9구간 산행의

날머리 국원리로 내려섰다.

6 20 

가까스로 불빛 없는 야간 산행의 위험을 벗어나 무사히 나의 애마가 기다리는 본토박이 식당 앞으로

귀환했다.

 

마음의 평화와 진정한 고독을 마주하기 위해 여유로운 마음으로 떠났던 여행길은 8시간여  꽉 찬

루의 여정으로 마무리 되었다.

늘 그렇듯이 혼자 여행길은 나와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나는 지금 무얼하고 있는 거지 ?

그리고 난 다시 먼 길을 떠나고 싶어 졌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펑펑 흰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