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의 마지막날 오후에 고부기 전화가 왔다.
고부기 : 오디로 가냐?
나 : 남덕유 간다.
고부기 : 누구랑 가냐?
나 : 혼자 차 몰고 가는디 …. 우짠 일이냐?
지리산으로 발써 떠났을 넘이…
고부기 : 어떤 코스로 갈 낀데?
나 영각사-남덕유-서봉-대간능선-덕유교육원 -영각사 원점회귀
6시간 예상이다.
고부기 : 나도 낑가 주라
나 : 그람 밥사라
고부기 : 알따
나 : 해님아파트에서 새벽 2시 50분에 픽업한다. 늦지 마라.
그래서 2019년 새해 첫날 일출 산행에는 동행이 생겼다.
마눌과 영화 한편 때리고 와서 알람을 새벽 2시 10분에 맞추고 10시 30분에 취침
약 3시간 자고 일어나서 뜨거운 물과 삶은 계란, 가래떡 몇 개 넣고 출발 .
컴퓨터처럼 정확한 시간에 고부기를 픽업했다.
새벽 일출 산행에 나를 따라올 수 있는 산 친구는 고부기 말고는 거의 없다.
일단 잠을 설치고 떠나 야심한 새벽에 등불을 걸고 오르는 고단한 산행은 체력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한테 산을 전수받고 이젠 나를 뛰어넘어 자기가 40대인양 천방지축 설치고 다닌다.
“계획한 일정이 틀어진 게지 !”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어둠 속을 지나 가다가 덕유산 휴게소에 들러 밥 한그릇씩 비웠다.
나는 꺼먹돼지 김치찌개 고부기는 미역국
헐~~ 오늘 같은 날 고부기는 미끌어져도 별로 개의치 않을 모양이다.
새해 벽두 일출 산행은 이제 연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마눌도 으레 그려려니 한다.
젊은 때부터 혼자 줄기차게 다녔고 언제부턴가 회사에서 일출산행이 정례화되어 직원들과 함께 다니
다가 이젠 넘치는 자유를 누리면서 혼자 다닌다.
작년 1월 1일에는 홀로 덕유 향적봉 일출산행을 했다.(고부기는 그날 지리산 왕복종주를 했다. 무식헌놈)
영각사 버스정류장 앞에는 5시에 도착했다.
일출 시간은 7시 40분이니 일출 까지는 2시간 40분 남았다.
벌써 몇 대의 차들이 주차해 있고 누군가 머리에 불 빛을 달고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험한 길이긴 하지만 3..8km니 고부기와 내 실력이면 2시간 이면 오르지 않겠어?
추위에 덜덜 떨고 해를 기다리는 것 보다는 낫것지.
좀 피곤 하니 30분 눈을 붙이기로 했다.
Zzz~~
5시 30분 알람을 맞추어 놓고 잠을 자다가 울리는 알람 소리에 총알 같이 튀어 나갔다.
예상했던 대로 바람이 거칠게 불고 날씨가 겁나게 차다.
난 준비가 다 되었는데 고부기는 행장을 수습 하는데 10분은 족히 걸렸다.
달래 거부기라 하긋냐?
얼마 전에 호남지역에 눈이 제법 내린 걸로 알고 있는데 등로에 눈은 하나도 없고 오르는 사람도
한 명 없다.
고부기 한테는 눈이 많을 거라고 애기 했는데….
헐~~~ 한국의 명산 남덕유산의 체면이 말이 아니고 무릉객 체면도 말이 아니네…
昨年 첫 날엔 구천동에서 향적봉에 오르는 사람들은 그런 대로 많은 편이었는데….
곤도라가 생기고부터 매년 새해 아침 향적봉은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
1600고지의 설경을 쉽게 누리려는 사람들이지만 곤도라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것도, 칼바람 부는
산정에서 기다리는 것도 호락호락 하지는 않다.
남덕유 가는 산길은 적막과 고요 그리고 어둠에 싸여 있다.
인적 없는 계곡 길에는 마른 찬바람만 휘몰아 쳤다.
동행이 있으니 적적하지는 않다.
대신 혼자 누릴 수 있는 황홀한 고독은 바람에 흩날려 갔다.
산은 맛난 고기와도 같다, 데쳐 먹어도 좋고 뽂아 먹어도 좋고,구어 먹어도 좋은…
혼자 가도 좋고 둘이 가도 좋고 여럿이 가도 좋은….
누군가 굳이 그 깜깜한 험한 길을 가냐고 물었다.
어두운 길을 걷지 않고는 정상에서 떠오르는 해를 만날 수 없지 않은가?
그냥 사는 재미다.
큰 산에서 승냥이 울음을 우는 바람과 후련한 설경을 만나는 시간이 좋다.
새해가 시작되는 날 떠 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큰 산의 기를 받으면 왠지 또 한 해를 씩씩하게
잘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새해의 첫 날에 산으로 난 이 길도 이젠 나의 길이 되어 버렸다.
얼마나 더 그 길을 걸을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 누렸던 기쁨과 감동을 아직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해가 뜨건 떠 오르지 않건 새롭게 열리는 길 위에서 바라보는 새해 첫 하늘은 나의 길과 맞닿아
있고 나는 그렇게 높은 곳에서 신과 소통한다.
난 그곳에서 내게 그리고 신께 나의 꿈과 소망과 말한다.
그것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월에 표하는 나의 경의이고 또 한 해를 열심히 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 이기도 하다.
일본 시인이 이렇게 노래했다.
“헛간이 불에 타 무너지니 이제야 달이 보이는 구나.”
세상이 부추키는 미망과 욕심에서 놓여나야 세월에 잃어버린 소중한 그 무언가가 눈에 들어 온다.
그것들은 버리고 비워야 비로소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기 좋은 날이 오늘이고
그러기 좋은 곳이 야생이 펄펄 살아 있는 대자연의 깊은 가슴이고
그러기 좋은 시간이 새벽이 고요 속에서 맑게 깨어나는 지금이다.
나의 가슴을 들여다 보고 내 머릿속 깊은 생각을 앍는 데는 무엇이 필요할까?
단지 날것의 자연
오욕칠정을 비워 낸 빈 마음
여유를 부리면서 가다가 잡채만한 바위가 바람을 막아주는 빙결된 계곡의 한 켠에서 뜨거운 물을
마셨다.
계곡을 오르면서 잠시 기세가 꺾인 바람이 사방이 트이는 능선에 오르자 다시 사납게 으르렁거렸
다.
나를 훨씬 앞질러 튀어 올라가리라 생각했던 고부기는 예상과는 달리 뒤에서 천천히 올라 왔다.
몇 일 과로한데다 어제 잠을 못 자서 컨디션이 별로인 모양이다.
새벽은 어느새 능선까지 달려와 있었다.
희끄무레한 여명 속에 동편 하늘은 붉게 믈들어 가고 칼바람이 난무하는 능선은 온통 눈밭 이었다.
솟구쳐 오르는 눈보라 속에서 상고대가 날 선 바람의 후원을 받아 거칠게 손을 흔들었다.
어느덧 조금씩 눈발이 휘날린다.
바람과 냉기는 너무 차가와서 눈 빼 놓고 미이라처럼 다 감싸야 했다.
동트는 새벽 하늘아래 드러나는 풍경은 가학적이고 고혹적이었다..
거칠게 솟구친 산길은 내린 눈 탓에 미끄러워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데 몇 걸음 채 걷지 못하고
깨어지는 어픔을 참아내며 사진을 찍느라 속도는 더 느려졌다.
결국 남덕유의 바로 코 앞 전위봉에서 새해의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 했다.
몇 명의 젊은 친구들이 날바람을 맞으며 그 곳에서 오래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적의 일출 포인트
오히려 남덕유산 보다 더 멋진 풍경과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전망대였다..
고산설릉 위 새해의 하늘이 온통 붉은 빛으로 열리는 참으로 장엄하고 성스러운 태양이었다.
어머님 건강하시고 가족들 모두 평안하게 해주소서
언제나 필요한 사람으로 남게 하소서
나의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게 하시고 다시 꿈꿀 수 있게 하소서
늘 여유로운 마음으로 내 인생 길의 풍경을 누리고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이 길은 순례의 길이다.
이 거칠고 험한 길이 내게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 준다.
그 길을 걸어가면 비워진 가슴에 기쁨과 감동이 차 올랐다.
우린 다른 팀들과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고부기하고는 6년 전 살닐에 향적봉 일출을 보고 남덕유 까지 13시간 종주를 했다.
그 해 추석에는 속리산 문장대에 올라 일출을 보고 관음봉과 묘봉의 비등을 주유했다.
우리는 살아 가면서 무수한 날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지만 앞으로 남은 함께할 날들의 모험이 더
기대되는 그런 친구다.
훗날 에베레스트에 간다면 고부기나 봉규는 좋은 동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덕유에서 태양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서봉과 덕유 주릉은 완전히 구름에 잠긴 채 발 아래는 구름 바다가 펼쳐 졌다.
거칠게 부는 바람에 온 몸이 떠밀릴 지경이었다.
사진 찍다가 얼어 죽게 생겼다.
육십령에서 올라와 구름 가린 서봉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채 남덕유에 선 홀로 산님은 구름 속에
들어가 버린 해를 내내 아쉬워했다.
육십령과 할미봉의 어둠을 지나서 4시간 만에 서봉에 서고 다시 쉬지 않고 남덕유로 넘어 왔는데
그럴 만도 하다.
“내 년에 또 오면 되지요” 했더니
“내년에는 다른 산엘 가야지요” 라는 말이 돌아 왔다.
오늘 내쳐 향적봉 까지 간다고 한다.
그는 젊은 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명의 친구들이 다시 올라와서 우리는 서로의 단체 사진을 찍어 주었다.
서봉 가는 길
고부기가 사라졌다.
헐~~~
남덕유 내려 서면 온통 산 안개와 구름 천지 인데다가 바람이 들어 올린 눈보라가 휘몰아 쳐서
앞을 잘 분간할 수 없었다.
또 해찰하는 고부기한테 빨리 따라오라고 하고 잰 걸음으로 서봉을 향해가는데 눈 위의 발자국을 따라
가다 보니 능선 바로 아래서 몇 명의 사람들이 비닐을 덮어 쓰고 취사를 하고 있었고 길은 막혀 있었다.
다시 돌아 왔는데 고부기가 보이지 않는다.
소리쳐 불러도 대답이 없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고부기는 홀연히 사라졌다.
남덕유가 얼마 되지 않으니 그 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다시 아래 쪽 방향으로 계속 소리를
질러도 대답이 없다.
먼저 간 모양이다.
고부기 녀석 예비 밧데리도 있고 트랭글을 켜고 다니니 서봉 방향이야 익히 알고 움직였겠지…
내리막길이 미끄러워 강풍과 눈보라 속에서 어렵게 아이젠을 했다.
갈림 길에서 서봉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가는데 눈 위에 진행한 흔적이 뚜렷하지는 않다.
다소 불안한 마음으로 능선 중간 까지 진행하는 중에 서봉에서 올라 오는 몇 명의 무리를 만났다.
혹시 혼자 움직이는 거부기 같은 친구 못 봤냐고 물었더니 서봉에서 내려오는 내내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단다.
으악 ! 이거이 뭔 일이래?
고부기는 신나게 향적봉으로 향해 가는 중이다.
전화를 때렸는데도 도대체 신호가 가지 않는다.
통화 불능지역이거나 고부기가 사진 찍느라 밧데리가 다 되었거나…
더 이상의 진행은 의미가 없다 .
고부기가 가다가 잘 못된 걸 알고 되돌아 오겠지만 이런 날은 기다렸다 만나서 함께 움직여야 한다.
갈림길로 되돌아 가다가 다시 전화를 했는데 역시 신호가 가지 않는다.
난리가 버썩 난 거이다.
앞이 안 보이는 이런 날은 조난 당하기 쉽상이고 서로 연락이 안되면 보통 낭패가 아니다.
생각에 잠긴 채 역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자욱한 운무와 바람에 솟구친 눈보라는 잦아들 기미가 없다.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녀
뾰족한 묘수가 없어서 가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 신호가 가고 고부기가 나왔다.
먼저 간 나 따라 간다고 하얀 눈썹 휘날리며 진군 하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트랭글을 켜려던 참이었단다.
헐~~~ 정말 개념 없는 넘
고부기 너 정말 1대간 9정맥 한 넘 맞냐?
서봉이 무룡산 앞에 붙어 있다냐?
일단 소재 파악이 되었으니 안심이다.
고부기 한테는 서봉 바로 아래에서 기다릴 테니 빨리 오라고 하고 다시 방향을 되돌려 서봉 쪽으로 진행했다.
서봉 아래 고도가 높아지는 곳까지 왔지만 이런 추운 날씨에 그 곳에서 기다리는 것은 더 고통스럽다.
이런 날은 차라리 알바 하는 넘이 더 행복한 거이다.
할 수 없이 다시 고부기를 마중 나갔다.
온 통 하얀 눈이 뒤덮혀 있고 휘몰아 치는 눈바람에 처연한 낭만이 펄펄 날리는 길을 되 두 번이나
되짚어서 ….
갈림 길 얼마 안 되는 곳에서 헐레벌떡 달려 오는 고부기를 만났다.
사람이 아니 무니다.
모자와 옷에는 바람의 방향이 뚜렷한 날 선 하얀 눈이 덮히고 막힌 입에서는 용가리 처럼 흰 연기가
풀풀 새어 나오는 이무기 고부기
칼 바람을 안고 가는 날 능선에서 돌아 온 고부기는 그 추위에 혼비백산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덕유 바람 맛 제대로 봤네 그랴!”
그래서 덕유 종주는 바람을 등지고 향적봉에서 남덕유 방향으로 하는 거다.
하여간 고부가 너 조심 하그라.
천방지축 겨울 지리산에서 혼자 날뛰지 말고…
우리 나이에 너무 나대다가 혹여 거친 산길에서 조난 당하거나 객사한 뉴스가 인터넷에 뜨면
상상을 초월한 비방글들이 꼬리말로 달리는 거 너 아냐?.
염병할 늙은이 60이나 먹어서 집구석에 쳐박혀 있지 그런데 가서 119 대원이나 많은 사람들 고생 시킨다고 ….
“ 넌 인자 할배 고부기여 이눔아…”
역전의 용사들이니 뭔 일이야 있것냐만은 그랴도 만났으니 된거이지.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평화롭게 길을 걸었다.
그리고 칼바람이 비켜가는 골 깊은 산길에서 잠시 배낭을 내리고 계란과 컵라면을 먹었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투명한 창 밖에는 가슴 시린 풍경 위로 조용한 눈 발이 날리고 바람의 악사는 흘러간 겨울 연가로
심금을 울리는데…..
친구와 둘이 뜨거운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우라는 그렇게 새날의 기쁨과 희망을 나누어 마셨다.
해가 가끔 구름 밖으로 나와 혹시나 했지만 서봉은 자욱한 운무에 휩싸여 있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만난 5명의 일행들과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육십령 방향 대간 길로 길을 잡았다.
백두대간을 따라 할미봉을 거쳐 육십령으로 가는 길
사계절 숱한 날 나의 땀방울을 흩뿌리며 걸었던 추억의 길이다.
세월은 바람처럼 흘러갔다.
산은 늘 거기 그대로고 나는 조금씩 세월에 늙어갔다.
언젠가 다시 이 길을 걷지 못할지 모른다.
그래서 뭐?
보문산이나 도솔산은 산도 아니냐?
대청호 둘레길은 식전 댓바람에 다녀와서 아침을 먹을 수도 있다.
마음이 먼저 늙지 않는 한 우린 어디에도 갈 수 있다.
살아 있는 만물은 움직이는 법이고 움직이는 한 결코 죽지 않는다.
나는 아직 내 삶의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어쩌면 난 정상에 오르지 못한 채 죽을지도 모른다.
어느 때는 한 없이 내려 오기만 하고
내 인생의 산 너머로 끊임없이 산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리고 힘든 오르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뭐??
나는 가벼워 지고 있다.
이렇게 조그씩 내려 놓으면 여전히 행복하게 그 길을 걷고 길 위의 풍경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산 길에서 삶의 도를 깨우치면 거칠고 험한 길에서도 춤추고 노래할 수 있다.
난 수 많은 산의 정상에 올랐다.
그 산 정상에서는 늘 누린 것보다 버린 것이 훨씬 많았다.
나를 조롱하던 나쁜 생각들과 자유를 억압하는 욕심과 집착들
그리고 하릴없는 후회와 쓸데없는 고민, 근원 없는 두려움 까지….
난 그 곳에서 단지 버리기만 했을까?
비워낸 빈 가슴에는 맑은 하늘과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감동 그런 걸 담았다..
황혼이 지고 산을 내려가는 어느 날엔가 비로서 내가 오른 가장 높은 산이 어떤 산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지금도 그 때도 변함없이 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파랑새는 높은 산 위에서 만 날지 않는다.
내가 무수한 산 위에서 만난 기쁨을 모아서 쌓아 놓은 내 안의 큰 산이 내인생의 가장 멋지고 높은
산이었노라고…..
고부기와 나는 덕유 교육원 갈림길을 놓치고 새로운 길을 찾았다.
능선 3.6km 구간에서 통제구역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이었지만 길은 경운기가 다닐 만큼 뚜렷하고
편안했다.
오룩스 맵에서 끊어진 것으로 표시된 그 길은 아래서 임도와 만나 덕유월성로와 연결된다.
7시간의 긴 여정 이었지만 사진 찍고 알바하고 라면 먹던 시간들 빼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은 셈이고
환상의 설경 속을 거닐다 보니 지루할 겨를이 없었던 즐거운 산행이었다.
내려와 영각사 경내를 둘러 보았다.
7월의 어느 날 남 덕유 일출을 보겠노라고 야심한 밤에 영각사에 스며들어 첫 건물의 처마에서 침낭을
펴고 잠시 눈을 붙이다 남덕유에 올랐었다.
그날 결국 자욱한 비 안개로 인해 일출을 보지 못했다.
그 이후로 남덕유는 여러 번 왔지만 영각사는 그 때 이후 처음 들렀다.
10년의 세월은 바람 같이 흘러 갔고 나는 이렇게 계절의 길목에서 바람을 따라 가며 지난 시절의
감회에 젖는다.
그래도 안도한다.
세월이 흘러도 기쁨과 감동을 불러 내는 내 삶의 방식은 아직 변하지 않았음에…
여전히 나는 거친 능선을 종횡하며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노래하고
고원에서 승냥이 울음으로 표효하는 칼바람 맛을 보아야 속이 후련해 지고 살맛을 느낄 수 있음에 ...
우린 돌아 오는 길에 추부 둥그나무 추어탕 집에서 막걸리 한 잔 치고 대전으로 돌아 왔다.
고부가 즐거운 여행길 이었다.
잘 올라 가고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또 멋진 추억 한 번 만들어 보자 …..
2019년 1월 1일 기해년 무릉객 쓰다
산 행 일 : 2019년 1월 1일
산 행 지 : 남덕유산
코 스 : 영각사 – 남덕유산 – 서봉- 백두대간 능선 -영각교
날 씨 : 맑다가 눈 오고, 흐리고
동 행 : 고부기
소요시간 : 7시간
고부기 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