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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1월의 선자령

































































2년 반 쯤 전  백두대간 종주 때도 갔고

사계절 안 가 본 때가 없는데 굳이 가보고 싶어서 갔겄어?

송년회 이후 산친구들과도 너무 적조하고

눈도 없는 미지근한 겨울날에

미세먼지만 풀풀 날리는 도시가 답답해서 훌훌 털고 떠난 길이지

 

모처럼 산 친구들도 만나구

발목까지 빠지는 눈도 보구

가슴이 후련해지는 칼바람 소리도 들을려고….

전날의 과음으로 삐그덕 거리는 노구를 끌고 어렵게 어렵게 떠난 길이지

 

휴게소 뜨거운 밥에 매생이 해장국은 너무 좋았어

작취미상(昨醉未床)으로 비몽사몽의 지경(地境)을 오락가락 하다가 허기가 동하던 차에    

 

으악! 근데 이게 무슨 일이래

새벽 같이 불원천리 (不遠千里) 달려 왔는데

선자령 눈밭에는 눈 씻고 찾아봐도 눈이 하나도 없어

화장실은 한참 기다려 볼일을 봐야 하 정도로  사람들은 북새통인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는가?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곳 없다 하드만

인걸은 의구하되 눈밭은 간 곳 없다.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보네

세상에는 비밀이 없고

         공짜가 없고

         정답이 없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새상에 1월의 선자령에 눈이 없다니

 

마른하늘엔 가슴 한가운데를 쾡하게 만드는 마른 바람만 불어 가더군

세찬 바람이긴 한데

뻐속까지 추위가 스미는 그런 찬바람도 아니고

을씨년스러운 날씨만큼 사람의 가슴을 썰렁하게 만드는 그런 바람

파란 하늘엔 하얀 눈 대신 누런 먼지만 그렇게 펄펄 날렸어

 

밥은 못챙겨 와도 아이젠에 스패치까지 챙겨서 왔건만

출발 전 볼 일 보고 나와 보니 산 친구들은 죄 사라져 버렸고

누런 길 위엔 바람에 솟구친 눈보라 대신 붉은 먼지만 펄펄 날리네

~~

귀연이 출발 인증샷도 안하고 뿔뿔히 떠난 적이 없었는데….

회장은 없다 해도 오늘 산행대장도 뒤에 남아 있는데  ...

 

어렵게 잰 걸음으로 앞서가는 몇 명의 산 친구들을 따라 잡아

선자령 아래 점심을 먹으려 자리를 잡았어

1140분 여전히 쎈 바람이 불어가는 길옆 평평한 곳에

너무 늦게 점심을 먹으면 이른 뒤풀이 음식이 맛이 없을 거래서

 

폭풍우 몰아치는 날 홀랑 뒤집어지는 우산처럼 자꾸 비닐은 뒤집어 졌지만 

바람 서늘한 전원 레스또랑에 울려 퍼지는 음악은 그렇게 심금을 울렸지

바람은 승냥이 울음을 울고

선자령 센바람에 펄럭이는 비닐은 시속 120km 오토바이 소리를 내고

라면을 끓이는 버너는 기차 지나가는 소리를 내고

 

비닐 쉘터를 뎦어 쓰는데 네 명이 배낭 놓고 한 귀퉁이씩을 깔고 앉아도

바람 구멍이 숭숭 나버려 취사 중 통풍은 잘 되더군

같이 오던 산 세상님과 활력소 님은 어디간 겨?

취사 중에도 비닐 창문으로 밖을 보면서 산 친구들을 기다렸는데

스므 명도 넘는 산친구들은 왜 한 명도 지나가지 않는 겨?

 

비록 밥 먹다가 천장이 훌러덩 벗겨지는 난리통이었어도

라면 끓는 냄새는 구수하고

그래도 속이 확 풀린 날

아침엔 귀연 총무님덜 덕분에 뜨거운 해장국으로 속 풀고

점심엔 양반곰 덕분에 따뜻한 비닐쉘터에서 뜨거운 라면국물과 라면을 배불리 먹었어

집에도 못 들린 탓에 밥도 못 싸오고 빵 몇 개하고 맨 입만 가지고 음풍유설(吟風弄雪) 나선 날….

밥 싸온 날 보다 더 배불리 점심 챙겨먹고 그렇게 선자령에 올랐지

 

선자령!

그래도 반갑네그 표석

5월의 신록 속을 거닐었던 백두대간의 그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8개월이 흘렀나?

내 젊은 날의 추억과 전설이 떠돌고 있는 바람 길 언덕

 

~~

왜들 그러는 겨?

눈도 없는 선자령에서….

바람은 거친 울음을 울고 표석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은 줄어들 기미가 없어서

멀찌감치 앞에서 또 훗날의 추억을 위한 인증샷을 남겼지

달랑 네 명의 산친구들과

 

계곡 길을 따라 바람처럼 내달아 내려와

황태찌게로 후련한 뒷풀이 까지는 좋았는데

일주일은 술은 쳐다보지 않겠노라 해놓고

오랜만에 만난 정에 겨워 다시 마신 3잔의 쏘맥도 좋았는데….

돌아오는 길이 산길보다 훨씬 험하네

3시간 30분 산 타고 8시간 넘게 차 타고

 

눈도 없는 강원도에 왔다가는 사람들은 왜 그리 많은지

한참을 자다 일어나도 차는 아직 문막에도 도착하지 못했어

 

눈도 없는 미지근한 겨울애도 야단법석인 강원도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여

여자들 화장실은 그렇다 쳐도 남자들 화장실까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휴게소에서 쉬엄쉬엄 쉬어 가면서

우린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고향으로 돌아 왔다네.

눈대신 먼지만 펄펄 날리던 어느 겨울날에... .




                                                                     2019127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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