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우리는 문득 그리워 지는 것들이 있다.
내 젊은 날 걸었던 사색의 숲 길
젊을 날에 만났던 친구들
어느 날 무심코 케케묵은 내 삶의 페이지가 들춰지면 켜켜이 쌓인 세월의 먼지 속에서
그 시절의 기억과 향기가 다시 내게 말을 걸어 온다.
“아뇽? 잘 지내고 있지”
미세먼지 매캐한 어느 날 다시 메마른 도시의 한 가운데로 관우와 장비가 다시 돌아 왔다.
콧김 팍팍 내뿜으면서
그리고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와 갖은 욕설에 능숙한 사투리까지 구사 하면서
내 먼지 내린 책장의 누렇게 빛바랜 책 갈피에서 도저히 살아 돌아 올 수 없었던 그들은 세상을 들여
놓은 내 손바닥 안에서 기적적으로 환생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 야들도 반쯤 미쳐서 돌아 온 거지”
내 친구가 매일 내 등을 떠밀었다.
개과천선해서 돌아 온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들을 한 번 좀 만나 보라고
한 때 그들은 나의 우상이었다.
세상을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로 이분하던 시절
고강한 무공과 신비한 술책으로 통쾌하게 나쁜넘들을 혼내주며 내 어린 동심을 흔들어 놓던 그 날에
그리고 내 방황하고 고뇌하던 우리 슬픈 젊은 시절
초조함과 두려움을 떨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와 지혜를 설파하던 그 날에
그들은 조용히 내 삶에서 잊혀진 영웅들이었다.
오래 전 내 삶의 어둠에서 깨어나기 전에 난 두 번씩이나 그들을 부정했다..
세상을 삼킬 듯 기염을 토하던 그들이 삼국통일도 못한 채 어이 없이 나 둥글어 내 순수한 동심에
상처를 입힌 그 날에
그리고 용기와 신념은 도전의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고 세상을 살아 가는 지혜는 한갓 책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고 단정짓던 그 날에
나의 영웅들이 미리 일깨워 준 세상이 구구절절 옳았다..
철들고 바라 본 세상이 늘 칼바람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의 삼국지였다.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은 돈과 권력이었고 세상은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터였다.
수 많은 대의명분과 정의의 기치를 걸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도도히 굴러 갔지만 그 속에는 배신과
음모 그리고 모략과 권모술수가 난무 했고 언제나 그 궤적은 권력과 돈의 길을 따라 갔다..
그 곳에서는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여지 없이 무너뜨리기도 하고 끝까지 남은 악당이 결국 선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살아 남은 자가 강한 자이고 강한 자는 또한 선한 자였으며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탐욕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장대한 오딧세이 였다..
난 나의 영웅들의 충고와 교훈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실패를 통해서 배워야 했고 이 세상에서 삶에
대해 너무 많이 배우고 있었으므로 더 이상 나의 영웅들의 고리타분한 가르침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질린다 질려 “
그리고 나는 정말이지 너무 지겨웠다.
삶은 놀이터가 아니고 전쟁터란 그 말이 !
두꺼운 책 속의 무거운 활자로는 두 번 다시 만나기 싫었을 것이다.
친구가 매일 같은 시간에 보내 주면서 만남을 종용하지 않았더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 진다.
많은 사람들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 가느라 대부분 반쯤 넋이 나가 있고 두꺼운 고전을 다시 펼칠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 않다.
고전의 감동은 시대를 뛰어 넘을 수 있지만 그 감동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이 시대의 가치는 재미고 소통이다.
서가에 꽂힌 채 먼지에 쌓여가는 지식이 아니라 손바닥 만한 세계에서라도 살아 남아야 누군가의
지친 가슴을 흔들 수 있다.
다시 그 젊은 날로 돌아가 그 때의 친구들과 지나간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던가?
가벼운 행장과 발걸음으로 고전의 숲을 거닐게 하고 우리의 지나 간 영웅들을 더 인간적이고 친
근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데려다 준 작가의 재능과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덕분에 익살과 웃음의 해학 뒤에 숨겨 놓은 날 선 비판과 촌철살인의 지혜를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지나간 나의 영웅들은 내 손바닥 위에서 위엄과 카리스마를 내리고 짝다리를 흔들며 쌍소리를
해댔다. 때론 장난기 어린 가벼움으로 때론 통렬한 세태풍자로 세상을 비웃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쨌든 나는 다시 나의 영웅들을 만났다는 것이고 좀 더 가볍게 그들과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시절의 향기에 젖었다는 것이다.
나의 영웅들은 다소 우스꽝스러웠지만 재미나게 옛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난 세월에 둥글어진
성숙함으로 고금을 관통하는 삶의 철학과 지혜를 다시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글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 한 권의 책을 썼다면 그것은 수 천 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어 낸 결과일 것이다.
하물며 시대를 초월하여 회자되는 고전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있으랴?
말을 타고 칼부림을 하던 그 날로부터 세월은 1500년도 더 흘러갔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고 자동차가 저 혼자 집을 찾아가는 그런 세상이 도래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세상 어느 구석에서도 늘 삼국지의 그림자를 만난다.
우리의 지나간 영웅들은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어느 경제전문가의 경영전략서에서도
부활하고 자신의 변설의 정당화하는 부패한 정치가의 세치 혀에서도 다시 환생한다..
삼국지는 시대와 세대 그리고 자기가 처한 저마다의 위치에 따라 보여주는 세상의 빛깔과 느낌을
달리했다.
흘러내린 많은 물 중 마지막 한 방울이 어느 날 콩나물을 쑥쑥 자라게 하듯이 무수히 지나가는 그
글 속에 마음을 흔드는 금과옥조가 하나라도 있다.
난 매일 전파를 타고 내 손바닥으로 날라 온 그들의 이야기들을 버스 안에서 혹은 친구를 기다리는
까페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내렸다.
그러다 미처 읽지 못한 것들은 한꺼번에 몰아서 읽기도 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한갓 재미와 잠시의 무료함을 잠재우는 가벼운 기분전환으로 콩나물 시루의
물처럼 흘러 내렸지만 어느 날은 내 목에 걸리고 어느 날은 내 가슴에 걸렸다.
분명 지나간 나의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는 세월에 더 깊어져야 비로소 이해하고 깨우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초로에 읽은 가벼운 유머 삼국지는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세상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말라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
세상에는 인력으로 되지 않는 일도 많은 법이다..
유비는 덕을 갖추고 관우와 장비 같은 명장을 얻고 제갈 공명과 같은 책사를 얻었지만 정작 삼국통일
에는 실패했다.
정작 끝까지 살아 남아 천수를 누리고 그의 자손들을 번성시켜 결국 천하통일을 위업을 달성힌 건 끊임
없는 패배를 견디며 인고의 세월을 참아냈던 사마의 중달이었다..
그는 삼국지의 영웅이 아니었지만 최후의 승리자였다.
세상을 떠나는 공명은 ‘묘책은 인간이 내지만 성사는 하늘이 결정한다” 라는 탄식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삼국지는 어떠한 삶이 성공적인 삶인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 인생의 많은 날이 이미 지나가 버렸다 .
하지만 걸어왔던 그 길이 나의 길이고 오늘의 내가 살아온 내 역사의 거울이다.
단지 오늘의 내 얼굴이 나의 선택과 나의 역량과 나의 그릇을 이야기 할 뿐이다.
지나간 날은 되돌릴 수도 없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더 중요한 건 지난 날을 거울삼아 더 잘살아 가야 할 내일 이다.
조자룡은 70의 나이에도 천하통일의 대전을 벌이는 공명의 선봉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인생의 길목 마다에서 세월은 내게 선택을 물었듯이 다시 많은 선택을 물을 것이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내 인생을 즐기고 겸허히 결과를 받아 들이는 것이다.
내 삶과 내 길을 사랑하는 것이다.
짧은 인생 길에서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일까?
그리고 그것은 누가 규정하는가?
삼국지가 내게 말했다.
삶에 정답은 없다.
미리 겁 먹거나 움츠러들지 말고 도전하고 진군하라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삶의 파도를 즐겨라..
결국 삶에 대한 최종평가는 죽는 날에 자신이 하는 것이다.
좋은 친구를 사귀라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 갔고 나는 지금도 몽매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내게 수천 번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무관심으로 떠나 보낸 좋은 친구들의 숫자를 난 셀 수도 없다.
누군가는 매일 나에게 정성을 다하는데 늙어서도 제 버릇 개 못 주는 나는 여전히 그걸 마치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인다.
그러면서 나는 누군가의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유비가 비록 천하쟁패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천하를 삼분한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삼고초려의 정성을 다해 제갈공명 같은 지략가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자기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오늘도 누군가 당신에게 짧은 글을 보낸다...
그가 글과 함께 보내는 건 관심과 배려다
우린 그걸 이렇게 읽어야 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전의 지혜는 구하는 자의 몫이다.
그것은 한 편의 감상문에서 구체화 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내 나이에 지나 간 나의 영웅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더 배울 수 있으랴?
이젠 싸우는 기술보다 홀로 당당할 수 있고 더불어 잘 살아 가는 방법을 깨우쳐야 할 때이다.
더 채우기 보다 더 비워서 기벼워져야 할 때이다.
나관중 보다 더 많은 세월을 보낸 내가 이젠 그가 풀어낸 세상사는 지혜를 가지고 내 인생의 부족함을
채우려 하기 보다는 내 인생길에 아직도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욕심의 찌꺼기를 벗겨내야 할 일이다.
젊은 날에 우린 끊임 없이 길을 물어 왔다.
삶에게 또는 현자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하지만 오랜 인생을 살아 온 우린 이제 이렇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길을 걸어갈 것인가?
누구와 함께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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