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사는 즐거움이다.
계룡산이 있고
조금 더 벗어난 곳에 속리산이며, 대둔산이며, 민주지산이며
중원의 명산이 즐비하다.
덕유산이며 지리산이며 한양의 명산인들 가까이 하기 어려우랴?
삼에서 마음만 멀어지지 않는다면 설악이고, 오대고 다 지척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 이건만 오를 마음이 없고 오를 힘이 없으면 무슨 소용 있으랴?
세월의 풍상과 역사의 질곡을 다 겪고 이젠 둥글고 가벼워진 채 그 오르기 힘든 아픈 마음조차
어루만지며 거기 물길 따라 구비구비 휘돌아 가는 길도 있다.
대청호 500리길
산과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에 속세의 번잡을 벗어난 고요함 까지 간직하고 있는 그 길이야
말로 대전의 자부심이고 프리미엄이야 하지 않을까?
어찌 대청호 길을 걸어보지 않고 한밭의 풍수와 풍경을 논하고
그 멋진 풍경 앞에서 한 잔의 술도 쳐보지 않고 어찌 대전 사는 재미와 자연을 벗하는 풍류의 기쁨을
논할 수 있으랴?
어제는 모처럼 휴양림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노변한담을 나누는 패밀리 야유회를 야심차게 추진
했는데 갑자기 표변하는 날씨와 계곡을 휘몰아치는 격한 바람에 잘못하면 얼어 죽을 뻔 했다.
어머니와 손자까지 대동한 대가족 야유회는 나름 즐거웠지만 단지 봄날의 심술 하나로 80% 부족한
아쉬운 회동이 되고 말았다.
산 행 일 : 2019년 5월 19일 일요일
산 행 지 : 대청호 500리길 14구간 – 장고개 구불길
14-1구간 - 막지리길
구 간 : 새터(한울체험마을)-답산이-임도- 502번국도-답양리임도-화골삼거리-장고개
장고개-막지리골 왕복
거 리 : 약 16.3km
소 요 : 천천히 약 5시간
날 씨 : 흐리고 비
동 행 : 귀연 20명
어제 흐린 날이 오늘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청호 길의 호흡과 환상 궁합은 오늘도 유효하다.
오월의 발랄함과 쾌청함을 아니더라도 뜨겁지 않은 하늘과 맑고 깨끗한 숲 길은 때이른 더위에 속도
위반 스티커를 발부하고 자칫 잃어버리고 지날 뻔 했던 봄의 낭만과 우수를 일깨워 주었다.
제14구간인 장고개구불길은 옥천군 안내면 현리 신촌교 습지 공원을 출발하여
새터 (한울체험마을 )를 거쳐 탑산이를 휘돌간다.
이후 산 길 4.5km를 따라 진행하다가 솔목이 고개를 거쳐 화골로 내려서고 그 곳에서 답양리 임도를
따라 장고개에 오르고 답양 3교를 지나 회남면 은운리 까지 진행하는데 그 거리가 약 8.5km에 이른다.
그리고 14-1구간은 장고개에서 막지리까지 왕복 5km의 구간이다.
우리는 정규 코스에 약간의 변형을 가하여 진행했다.
일단 신촌교에서 좀더 안쪽으로 들어온 신촌한올 체험마을에서 시작하여 탑산이에서 산 길을 버리고
임도길을 따라 약 4.5km (1시간 정도 소요) 진행하여 옥천군 안내면과 보은군 회남면을 영결하는
502번 도로로 내려서고 이후 502번 도로를 따라 약 900미터 진행한 다음 용촌 삼거리 300미터 지난
지점에서 다시 산길로 연결되는 임도로 들어서서 정규 대청호 500리 길과 합류했다.
이후 답양리 임도를 따라 다음 나실인 수도원이 있는 화골갈림길을 거쳐 장고개 까지 진행함으로써
구간을 마무리 했다.
출발점을 약 1km 단축하고 운은리 까지 진행을 유보 장고개에서 마무리 했음에도 임도를 따라 가는
길이 산길 보다 길어서 약 11km 정도를 걸었다.
그리고 이동 베이스캠프가 설치된 장고개에서 잠시 숨을 돌린 다음 14-1구간 의 왕복 5km인 막지리
코스까지 다녀 왔으니 약 16km를 걸은 셈이다.
오늘 길의 하이라이트는 조용하고 한적한 임도 길
봄비에 청량하고 그윽해진 숲의 향기와 코를 찌르는 오월의 아카시아 향기
그리고 장고개에서 바라 본 진걸 마을 방향의 아름다운 대청호 풍경
신촌마을 들머리에서 조금씩 비가 뿌리더니 젖지 않는 봄비는 가는 길 내내 잊혀질 만하면 한 번 씩
다가와 두런 두런 말을 걸어 왔다.
오늘은 아얘 친구하자는 심산이다.
그래서 오늘 친구는 둘이 더 늘었다.
작은 물방울 무늬 우산 하나.
가끔 조용한 수다로 내게 짙은 계절의 향기와 우수를 전하는 봄비
덕분에 길은 조용하고
숲은 시원하고
나는 조금씩 멜랑꼬리 해졌다.
아직 계절의 여왕 오월인데…
어느 새 숲이 이렇게 무성하고 짙어 졌는지 ?
물기를 머금은 푸른 숲 사이
인적이 없는
조용한 흙 길
싱그러운 숲의 향기 따라 발길도 가벼워
걷기에 딱 좋은 날씨다.
봄비는 잊혀질 만하면 다가와 옆구리 팔장을 끼고
아카시아는 산길에도 한적한 도로에도 그 강렬한 추억의 향기로 내 코를 찔러 댄다.
“못 먹는 감 찔러 보겠다는 거여 뭐여?”
아카씨아는 이젠 아가씨가 아니여 아줌마여…
나는 ?
나는 청년이여? 아저씨여? 할애비여?
아카시아는 그 왕성한 생명력과 번식력을 앞세워 산속에 그들의 왕국 향 아카디아를 건설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네 인생과 닮은 꼴이다.
무엇을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지나 온 길은 흔적조차 희미하고 덧없는 세월만 무심히 흘러 갔다.
자연의 섭리와 영고성쇠를 누군들 피해 갈 수 있을까?
무수한 세월이 흘렀어
나에게나 아카시아에게나
내 어릴적 무수한 아카시아 나무들은 나처럼 늙어 갔고
살아가는 환경과 생태계는 수 많은 변화를 겪었지
하지만 아직 살아 있짆아 …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움직이는 거야
살아 있는 동안에는 꿈틀거려야 하고 노래를 해야 하는 거지
향기로 또는 자기만이 목청으로
지금을 누리지 못하면 내일은 누워서 버둥거려야 할 뿐….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 부귀 영화가 무슨 소용인가?
우리가 살아야 할 건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현재였음을…
아카시아는 변함없는 향기로 전하고
무릉객은 산 길을 걸으며 산이 하는 말을 듣고 바람이 전하는 사랑을 느낀다.…
향기는 약해져도 꽃을 피워내고 보폭이 작아져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발길을 멈추지 않는 것이
다 같이 도와 삶의 진리에 다가가는 길이었음을…
대청호 길이 언제 지루할 겨를이 있었냐 만은
풋풋한 봄비 아가씨의 교태에
산전수전 다 겪고 세월에 곰삭은 아카시아 아줌마의 강하고 진한 유혹이 난무하니
오호라 세월아, 네월아 넌 너대로 가거라 .
난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어울렁, 더울렁 놀멍,쉬멍 따라 가리라
아직 나의 젊음이 남아 있는 시간에 난 어느 하늘 아래를 떠돌아야 할 것인가?
더 늦기 전에 가 보아야 할 곳은 어디인가?
실타래처럼 얽혀 드는 시간과 건강과 돈과 열정의 함수를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내야 할 것인가?
지난 번부터 카 교수 쟌뮤어에 마음이 동했다.
세릴스트레이드의 와일드를 읽고 가슴이 뜨거웠는데
그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 길은 나의 몫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가야 할 수 많은 이유가 생겨나고 떠나지 못할 단 하나의 이유도 같이 생겨났다.
PCT 여정 중에 가장 아름 다운 길 중의 하나이고
거기 요세미티 공원이 있고
세릴 스트레이드가 인생의 차고 어두운 바닥에서 차고 올랐고
만 아직 목 마르다.
안나푸르나처럼 먼저 떠나고 돌아와 생각할 것인가?
떠나기 위해 먼저 일을 할 것인가?
그런 바보 같은 고민은 이제 안 하기로 했다.
우주가 가슴의 진동으로 알려 줄 것이다.
세월아 어쨌든 너는 네 갈 길을 가겠지만 난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꿈을 꾸고 있으면 그것은 순리되고 정리되고 귀결될 것이다.
신이 허락하고 우주가 그렇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길에서 벗어 났다.
용촌 삼거리를 지나 임도 갈림을 지나 내쳐 걸어 내려 가는 데 뒤따라 온 공감연구소장님이 길을
바로 잡아 준다.
우린 도로에서 다시 답양리 임도길로 접어들어 얼마간 진행하다가 깊 섶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산우들을 만났다.
오늘 뒤풀이는 수육이라는데 돼지두루치기를 요리하는 마실회장 옆에 앉아 돼지고기 볶음안주로
술 한잔을 쳤다.
정암님 동동주에다가 내가 가져간 매실주와 소주까지 마시고 싸가지고 간 점심도 다 먹고 헬레산이
끓인 라면까지 한 젓가락 더 하고 나니 내 배는 벌써 입추의 여지가 없다.
얼마 안 있다가 뒤풀이 수육 먹어야 하는 데 워떡혀?
점심식사 후 답양리 임도를 따라 용호리 막지리 삼거리 갈림길인 장고개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봄비는 계속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게 만들었고 난 봄비가 만들어 준 더 맑고 푸른 대청호의 풍경을
감상하며 장고개 베이스캠프로 내려 섰다.
비로소 대청호의 후련하고 아름다운 조망이 눈 앞에 펼쳐지는 ….
배가 꺼지지 않아 멀리 섬 같은 진걸마을 선착장가 푸른 대청호 물길을 바라 보면서 14-1 구간인
막지리 마을까지 내려 갔다가 올라 왔다.
난 사실 막지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막지리 언덕 까지만 갔다.
그 곳에서 마을풍경이 한 눈에 모두 내려다 보였음으로…..
돌아와 통큰 마실회장 덕분에 막걸리에 수육을 질리도록 먹었다.
5시간 노동의 대가로는 너무 과한….
위는 혹사 당했지만 답답한 가슴이 트이고 정신이 맑아지는 한가롭고 편안한 여정이었다.
가까운 곳이니 내 늙어가도 언제라도 다시 걸을 수 있는 길이니
다음 번에는 시간이 날 때 혼자 일대의 산길 까지 답사한 다음 502번 국도를 배제한 산길과 임도
만으로 500리길 14구간 실크로드를 한 번 구상해 보아야 하겠다.
길 안내에 늘 애쓰시는 청산님 뒤풀이 준비하느라 고생한 마실회장 그리고 좋은 길동무가 되어준
함께한 산우들께 감사의 말 전한다.
동행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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