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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눈 덮힌 응봉산 - 11월의 마지막날 첫눈을 밟다....































































































































































































청백과 함께 보성의 오봉산을 가려 했는데 일요일은 비가 온다고 했다.

마땅히 가고 싶은 데가 없어 홀로 대청호 비경길이나 떠나자 했는데 고부기 한테 전화가 왔다.

“”도쌰 토요일에 모허냐?”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허다허다 더할게 없으니 백두대간과 백대명산 리바이벌에

다시 나선 발바리 달고부기

아버님 돌아가시고 향냄새도 가시기 전에 부랴부랴 배낭을 둘러 메고 같이 산에 가자고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다..

그랴!  마음을 추스리고 답답한 무언가를 내려 놓기에 산 만한 게 읍제....


응봉산 !

좀 멀기는 하지만 시방 모시가 문제여?

지난 주에는 일이 겹쳐 산에도 가지 못해 몸이 찌뿌둥한 터라 내 엉덩이도 이리 들썩이는데

난 행선지를 아즉 정하지 않았고 술이나 푸자는 것도 아니고 산에 가자는데…..

 

산이란 맛난 고기와 같아서

날로 먹어도 좋고 구어서 먹어도 좋고 데쳐 먹어도 좋고

혼자 먹어도 좋고 둘이 먹어도 좋고 여럿이 먹어도 맛나 부러

고기는 씹는 맛이라 입맛이 동하고 이빨이 성할 때 먹어야 하듯이

산도 마음이 동하고 다리심 좋을 때 싸게 싸게  올라 댕기는 거지

 

그랴! 세월 가면 다 허당인 게 비단 산 뿐이랴만

춤추고 노래할 사간이 어디 그리 많이 남았다더냐?

우물쭈물 하다가 또 세월가면 저승사자가  오기두 전에 새되는 거여.. 

기력이 있는 한 가고 싶은 데 가서 하고 하고 싶은 일하는 것이 살아 있는 생명의 기쁨인 게지

 

모닝커피와 함께 들어온 고부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휴게소에서 내려 된장국을 먹는다.

언제부턴가 산행 문화가 완전 바뀌었다.

일어나서 눈곱만 떼고 반찬 한 통 베낭에 넣고 나오면 적당한 시간에 맛난 된장국에 아침밥도 주

고 점심도 찰밥 싸주고 ...

그것 뿐이여?

목적지 왕복 운행은 기본에다, 산행 안내 까지 다 해주고, 산행을 마치고 저녁에 내려오면 뒤풀이에

막걸리 까지 제공되는  일일 풀코스 패키지비스가  단돈 28,000원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먹고, 마시고, 산타고 피곤할 때 잠 자는 것 뿐.

놀이 문화도 효율성과 편리성의 기치를 걸고 인스턴트화되는 세상의 변화를 잰 걸음으로 따라가

고 있다.

 

근데 배식하시는 분을 가만히 보니 풍암님이다.

10년전 중국 무이산 여행길에서 한국 관광객들에 의해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다는 새벽 일출 산행

해외 오지에서 선답자도, 가이드도 없이 원하는 사람들 끼리만 구성한 무이산 일출 특공조의 한 분 이었다.

70을 넘긴 나이에 소월에서 산행대장을 한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지만 만난 건 처음인데 여전히

거무튀튀한 얼굴에는 세월을 비켜가는 건강미가 넘친다.

오가는 말투가 고부기하고는 제법 친한 사이인 듯 하다.

 

된장국 맛이 좋아서 밥을 두 그릇 먹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휴게소 음식 보다는 훨씬 낫다.

 

배부른데다 따뜻한 차 안에 들어오니 졸음이 쏟아진다.

사실 옆에 고부기가 있으니 이야기를 나누느라 잠 잘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이동의 시간이 길어도 지루하진 않는 건 혼자나 둘이나 다 마찬 가지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조금 달라 지는 것일 뿐

행동의 자유가 억제되는 차 안의 좁은 공간에는 아이러니 하게도 평화와 휴식이 가득한 곳이다..

음악을 들어도 좋고, 책을 읽거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 보며 구경해도 좋다.

명상에 잠기거나, 그냥 물끄러미 밖을 바라보거나 그라다 졸음이 오면 그냥 자버려도 괜찮다..

지루할 것 같은 그 시간이야 말로 세상에 빼앗기지 않는 온건한 나의 시간인 셈이다..

 

시간은 전혀 의식되지 않은 채 훌쩍 지나 갔지만 멀기는 한 길이다.

산행들머리에 서서 시계를 보니 4시간 반이 바람처럼 지났다.

 

응봉산 너머 용소골 덕풍계곡은 아직 미답이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결국 돌아보지 못한 곳인데 정말 더 늦기 전에 올 여름에는 덕구계곡에서 넘어가든

능선으로 올라 회귀하던 꼭 한 번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돌아 볼 생각이다.

큰 비가 한 번 휩쓸고 간 다음에 산 친구들과 용소골 1박 일정으로 응봉산 찍고 원시계곡 덕풍 계곡으로

흘러내리면 명불허전인 한국 대표 오지계곡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아직 먹지 않고 아껴둔 싱싱한 날고기...  

 

정상 가는 길

잔 바람이 일면서 다소 쌀쌀한 날씨는 등산하기에 좋다. .

새벽에 눈이 내렸다는데 멀리 보이는 응봉산 능선에는 흰 눈이 덮여 있다.

바람막이만 배낭에 넣고 자켓은 버스에 두고 오르는 길이라 등산 셔츠 위로 감기는 바람결이 다소

서늘하게 느껴진다.

완만한 경사의 육산이라 흡사 임도길처럼 넓고 평평한 산 길엔, 갈색의 소나무 잎들이 양탄자처럼

드리워 발이 편하고 일렁이는 차가운 공기 속에 휘날리는 솔향이 상쾌하게 코를 자극한다...

정상을 오르기 전에는 찍을 만한 사진이 없겠다 싶었는데 갈색의 능선아래로 도열한 아름드리

청솔들의 푸르른 자태에 이끌려 자꾸 카메라를 꺼내 들어 발길이 늦어 진다.

 

예상대로 가벼운 몸에 대간의 속도감이 몸에 밴 고부기는 앞서서 날라가고 난 나의 페이스대로

응봉의 산길과 경치를 즐기며 앞선 산우들을 일정거리에 두고 따라 간다.

 

중간쯤 올랐을까 발에 느껴지는 등산화의 소리와 감촉이 이상해서 내려다 보니 훨~~~~

마치 흰개미가 파먹기라도 한 듯 양쪽 등산화 밑창의 고무가 다 삭아서 밑창이 들 떠 있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낯선 발의 촉감과 이상한 소리는 발을 떼었다가 다시 밟을 때마다 그 사이에서

소용돌이치는 공기 때문이었다.

옛날 캠프라인 등산화를 잘 못 가져왔다.

처음에 자주 신다가 발이 좀 불편해서 오랜 세월 신지 않고 놓아 둔 등산화인데 그 이후로도 너 댓 개의

등산화를 갈아 치우면서도 별로 신지를  않았다.

그라다  남은 등산화도 다 낡아져서 얼마 전에 트랙스타 등산화를 샀는데 그 디자인이 캠프라인과

흡사하여 착각하고 가져 온 것이다.

그랴도 그렇지꽤  많은 세월이 흐르고  

아무리 오래 신지 않았다 해도  그 튼튼한 밑창의 강한 고무가 다 삭을 수 있다니….

 

근데 여간 낭패가 아니다.

이제 산행길 초입인데 이 너덜거리는 등산화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해줄지 걱정이다.

정상부에 눈이 쌓여 잇으니 좀더 올라가면 눈이 들어와 양말이 다 젖을 테고 그나마 오르는 길에 간신히

붙어 있는 밑창이 달아나기라도 하면 밑창 빠진 등산화로는 미끄러워 눈길을 내려오기도 힘들 것이라.

 

우짜것어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응봉산신령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제

 

가끔 햇님은 구름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1시가 다되어 가니 허기가 동한다.

헬기장에는 바람도 없고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어 식사하기 안성맞춤 인데 훌쩍 지나쳐 간

고부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 배고파!   고부가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하지만 또 우짜것어 고부기도 없는데 그냥 가야쥐….

정상은 얼마나 더 남았는지 가늠이 잘 안되고

점점 가파라 지는 산길에서 이 보다 더 좋은 식당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자꾸 아쉬움이 남는다 ….

 

고도가 오를수록 아름드리 청솔 사이사이로 보이는 설산의 웅장한 자태는 장쾌한 겨울산행의

추억을 일깨워 주었고  도시에서 메말라가는 가슴이 촉촉히 젖어들게 해 주었다. .

조망이 트인 곳에서 눈 덮힌 산을 뒤로한 채 햇빛을 받아 빛나는 푸른 능선은 때 이른  첫눈의

감동에 더해져 마치 이국의 봄 풍경인 듯  신비감 마저 자아내게 했다..

 

잠시 후에 본격적인 눈밭이 나타났다.

등산화 안으로 눈이 들어와 등산양말이 젖었지만 그 차가움보다 가슴에 솟구치는 열기가 더

뜨거웠다.

 

오늘도 멋진 날이다.

이렇게 맑고 이렇게 푸르고 이렇게 때 이른 흰 눈 까지 내린 11월의 마지막 날

 

웅대한 대자연이 파노라마치는 정상에 그렇게 쉽게 올랐다.

예상과 다르게 정상에는 바람이 잠잠한 가운데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역시 맞는 말이여

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볼 수 있고

마음이란 높이 오를수록 깊어지고 멀리 걸을수록 넓어진다는 말

 

고부기와 한 켠에서 식사를 하는 중에 우연히 뫼꿈이님을 만났다.

옛날도 흘러간 아주 먼 옛날

무수한 능선과 봉우리를 누비며 동번서쩍 ,좌충우돌 나대던 시절에 낙남길에서 만났던 사람

처음엔 알아보지 못하고 같이 밥 먹는 중에 이러저런 이야기하다가 조망도 얘기를 듣고 알아차렸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나 보다 빨리 산 길을 올라 응봉산 정상에서 홀로 점심을 먹고 있다.

조금 빛이 바래긴 했지만 그 옛날 그 모습 그대로 ...

오랜 세월 속에서도 고독한 하이에나의 거친 야생의 본능과 귀연의 습성을 잃어버리지 않았음이다

무수한 세월이 말없이 흘렀고

수 많은 날고 기던 선배님들이 탈속의 아득한 추억을 간직한 채 조용히 세월 속에 칩거하고 있음을

감안하믄 선배 모습은 자태와 빛깔이 아직 청청한 응봉의 한 그루 노송과도 같다.

풍암님이나 뫼꿈이 님이나 워낙 출중한 체력과 열정 탓이겠지만 그래도 늘 산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호산자로서 세월을 거스르는 그들의 짱짱함이 일말의 위안과 희망을 가져다 준다.

여기는

산의 마법과 권능이 복음처럼 바람에 흩날리고 대자연의 교훈이 맑은 햇살에 창연히 빛나는 응봉산

정상이다.


고부기와 뜨거운 물을 나누어 마시고 뫼꿈이님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뫼꿈이 님과 일행들이 모두 하산 하고도 우리 둘은  마지막 까지 남아서 표석에서 사진을 찍고

같은 버스를 타고 왔지만 홀로 백대명산을 종주중인 여인과  서로 정상의 인증샷을 주고 받은 다음

하산의 길을 잡았다.

 

오후에 흐려진다더니 해는 이제 완전히 구름 밖으로 나와 황금색 햇살이 푸른 청솔 위로 눈부시게

부서진다.

산의 높고 계곡이 깊으니 그 곳에서 오랜 세월 눈과 바람을 견뎌낸 나무들의 포스와 카리스마는

모두가 예사롭지가 않다.

비록 제일 꼴찌로 하산하는 길이지만 푸른 하늘을 이고 선 아름드리 노송들의 담대한 모습을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하면서 여유롭게 흘러 내렸다.

말굽형으로 돌아 내리는 길이니 깊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양 쪽 산릉을 따라 뚜렷한 길이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무수한 세월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며 대자연의 감동을 실어내던 그 길

 

기분 좋게 하산 하는 길이라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데 제법 가파른 하산길이 계속되다가 갑자기 고도가

한 차례 더 깊이 지더니 홀연히 목재 다리가 나타나고 계곡 상류가 모습을 드러낸다.

 

원탕을 얼마 앞두지 않고 한쪽 밑창이 끊어져 나간 등산화가 너덜거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얼마나 갸륵한 충정인가?

캠프라인은 그 안스럽고 측은한 몰골로 눈덮힌 응봉산 눈 밭과 거친 하산길을 당당히 헤쳐 주고 나서야

비로소  탈진해서 소 혓바닥처럼 늘어져 버렸다.


물길이 나타나고 계곡의 풍경은 완연히 바뀌었다.

푸른 청솔은 사라지고 계곡의 물길을 따라 만추의 서정이 펄펄 날리는 수북한 낙엽 길이 계속 이어진다..

 

원탕에 도착했다.

다시 돌아 오겠지만 한국의 온천 원탕에 발을 담글 기회가 쉽게 올 수 있으랴?

족욕을 하고 뜨거운 물도 마시고

계란을 삶아 내는 일본의 온천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땅 속에서 솟아나는

원수를 직접 볼 수 있다니 우야튼 신기한 노릇 아닌가?

아주 오랜 전에 뱃부 노천 탕에서 일출을 마주하던 날의 기억이 떠 올랐다.

세월이 흘러도 빛 바랜 채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들….

 

또 많은 세월이 물처럼 흘러 가고 나면

내 가슴에는 또 어떤 새로운 추억들이 담겨질 것인가?

선홍 빛 핏물이 처연하게 떨어질 내 삶의 소중한 한 귀퉁이를 나는 어떻게 세월에게 떼어 주고

무엇으로 돌려 받아야 할 것인가?

 

멀지 않은 곳에서 여행 온 두 아줌씨들에게 사진을 부탁하니 아주 정성껏 찍어 주었다.

원탕에서 휴식 시간이 너무 많아서 하산 길은 속도를 빨리 했다.

계곡의 수량은 우리의 속도 보다 더 빨리 불어 났다.

계곡 위로 설치된 수 많은 다리를 건너며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긴 계곡 길을 따라 우리는 그렇게 11월의

마지막 날을 흐르는 개울물에 띠워 보냈다.

이제 또 한 달이 지나면 또 어제와 똑 같은 날들이 단지 우리의 새로운 마킹과 구획만으로 완전 새로운

신상으로 포장되어 배송될 것이다.

반품불가!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기대와 희망으로 그 상품을 받아 들게 되겠지

남은 12월과 돌아 오는 한 해는 어제와 오늘 같은 날이 아니라 꿈꾸던 내일 같이 멋진 날들이길 기대해

본다.

족욕장에서 일행 한 명을 남겨두고 내려 왔으니 간신히 꼴찌를 면했거니 생각했는데 막걸리 두 잔에

컵라면 까지 먹고 난 후에도 여전히  내려오지 않은 사람이 셋이나 더 있었다.

 

이만하믄 준수한 산행이었다.

너덜거리는 등산화로 사진도 찍을 건 다 찍고….

족욕도 하고

풍경하나, 나무 하나라도 허트로 보지 않고 가고자 한 길을 모두 걸었으니

 

오늘도 행복한 날이다.

28천 원으로 친구와 함께 세끼의 식사와 술을 나누고

세월에 빛 바래도 여전히 그 고색창연한 빛깔로 더욱 아름다워 지는 지난 날의 시린 추억들을 만나고

눈 덮힌 능선에서 손을 흔드는 푸른 나무들 그리고 가슴 후련한 조망과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만났으니

믹걸리 두 잔으로도 들뜨고 취하기에 충분 했던 날이었으니….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간 그림자 같으니이다.

시편에 실린 다윗의 말이던가?

 

돌아 오는 길에 생각해 본다.

빈 손으로 떠나는 인생 길에 마지막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내 가슴에 담긴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과 추억이 아닐까?

마지막 까지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는 단 하나의 것은 사랑일 것이다.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그 것들이 내 삶의 캔버스를 아름답게 채색해가고 마지막 죽음이 비로소 나의 그림을 완성할 것이다.

 

산 행 일 : 20111130

산 행 지 : 응봉산

산행코스 : 덕구온천 모랫재-– 응봉산 원탕- 용소폭포- 덕구온천

산행소요 : 5시간 (족욕 포함)

   : 고부기와 소월

   : 약간 흐린 후 맑아짐 (정상에서 밝은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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