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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정월 초이틀 계룡산 산행












































































































































































3일을 남겨두고 지리산 천왕봉 해맞이 계획을 취소했다.

설날 다음날 장터목 산장 예약을 취소하고

백무동 가는 첫 버스 예매도 취소했다.

 

설날 다음날은 남부 지방부터 흐리고 그 다음날은 전국 비라 일출을 볼 수 없다는 바람에…..

어쩌면 천왕봉에서 흰 눈을 맞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새해의 일출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지리산 해돋이 순례는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다.

 

올해는 벌써부터 많은 게 어긋나고 있다.

새해 해맞이를 하는 1 1일에는 중국 용승 온천에 있었고

돌아오는 21일은 해파랑길 완주 기념식과 청산님 출판 기념일이 잡혔는데 대학 친구들 정기모임과

산행계획을 미리부터 잡아 놓은 터라 참석할 수가 없다.

 

28일 운장산 귀연 시산제 까지 거르게 생겼다.

온 가족들이 모이는 어머님 생신행사를 그날 서울 영태네 집에서 하기로 해서 팔도 산신령님들께

인사도 못 드릴 판이다.

술 한 잔 붓고 엎드려 또 한 해의 무탈한 여행을 빌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길일이 아니라 지리산 신령님이 다음에 오라고 전갈을 내시니 그렇게 해야지

친구들과는 못 가더라도 날잡아 계룡산에서라도 나만의 시산제를 올리면 되는 거구

어쩐지 장터목산장 예약이 너무 순탄하다 했어 …”

 

새해 일출 순례를 해야 한다는 건 남들 눈에는 강박처럼 보일 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그건 오랜 습관이고 내 삶의 기념일이고 살아가는 날의 유희일 뿐이다.

 

일정을 다시 조정하기로 했는데 비어 있는 215일 지리산 대피소 예약은 벌써 꽉 차있다...

215일 소백산을 예약하고 16일 비로봉에서 해돋이를 보던지

아니면 215일 당일로 지리산 천왕봉 해돋이를 보고 돌아 오던지

 

하여간 지리산 해맞이 산행 취소 때문에 설날 다음날인 오늘은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다.

오늘 계획대로 지리산 출정을 했으면 어제 밤 완전 쇠똥 빠질 뻔 했다.

대가족들이 모여 차례 지내고 어울려 놀던 잔해를 늦은 밤까지 모두 수습하고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같이 출정해야 했으니….. 

 

심야 영화까지 한 편 때리고 늦게 잠들었다가 여유롭게 일어나서 설 때 사용했던 집기와

기물들을 정리하고 집안 대청소까지 모두 마무리 했다.

늦은 아침을 챙겨 먹고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나서야  배낭을 둘러메고 홀로 길을 나섰다.

그래서 계룡이 좋은 거지.

할 거 다하고도 제댜로된 산행을 할 수 있고

고요하고 청명한 새벽에 산행을 시작해면 제법 뻐근한 산행을 하고도 남은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    


오늘이야 말로 계룡산에 가기 좋은 날이다.

가깝고 산기가 펄펄 살아 있는 내 사는 가까운 곳의 명산

댜한민국의 도읍지가 될 수도 있었던 풍수의 길지.....

 

11시가 훌쩍 넘었으니 오늘은 간단히 천장골로 해서 남매탑에 오르고 삼불봉과 관음봉을

거쳐 동학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기로 했다.

자연성릉을 여유롭게 주유하는 맛도 제법 후련할 것이고  그동안 너무 적조했으니

새해 벽두에  계룡 산신령님께 문안 인사도 드려야지...


천천히 움직여도 4시간 이면 족하리라.

명절을 보내느라  배에 기름기가 많이 끼었으니 간식은 간단하게 챙겼다.

뜨거운 물과 빵, 고구마 한쪽, 커피 ,

 

흐리고 오후에는 비가 온다더니 한낮의 날은 맑기만 하다.

동학사 주차장에는 차도 많고 명절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계룡의 앞마당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장골 입구에 도착하니 시간이 벌써 1250분이다.

그래도 내려와 저녁 먹고 사우나 할 시간은 충분하다.

 

바쁠 일도 없고 동행도 없으니 내 페이스 대로 가볍게 몸을 풀고 내려가면 될 일이다.

바람도 없는 골짜기고 오름길이니 아얘 자켓을 벗고 가을용 스웨터 위에 여름 바람막이를

걸치고 가볍게 출발했다.

일정한 페이스로 올라 가는데 중국 여행 이후에 체중이 2kg 붙은 걸 감안하면 발걸음이

꽤 가뿐한 편이다.

고단백 과메기 덕분인가?”

 

눈이 없는 겨울 산

생명의 작은 기미도 없고 속살까지 훤히 드려다 보이는 황량한 겨울산도 아름답다는 건 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비로소 느낄 수 있다..

등불도 사라지고 신도들도 떠나간 고즈녘한 겨울 산사처럼

무수한 세월을 가지치기한 허허로운 내 모습처럼

그저 늦가을 풍경처럼 헐벗은 나목 아래 낙엽이 밟히고 햇빛마저 따사로우니 영락없는 늦가을

산행이다.

 

마음은 편안하되 풍경의 변화가 없으니 발걸음이 빨라 지는데 계속되는 오름 길인데도 별로

힘들지 않다.

 

평지와 똑 같은 일정한 속도를 잃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을 추월하고 한 번도 쉬지 않고 남매 탑에 올랐다.

 

남매탑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오랜 세월 거기에서 계룡을 오르는 누구에게나 편안한 휴식과 평화를 보시하는 천년 쉼터 

삼삼오오, 혹은 둘인데 나처럼 혼자 식사하는 외로운 산 객도 한 명 있다.

 

계룡은 젊은 날에 참으로 뻔질나게 다니던 산이다.

산에 푹 빠지기 전 젊은 날에는 어두운 새벽길을 열어  떠오르는 태양과 청명한 계룡의

산기를 받아냈다. 

관음봉에 올라 해돋이를 보고 자연성릉을 따라 삼불봉을 거쳐 동학사로 내려왔다

통행세도 내지 않고 고요한 계룡세상을 혼자 누리는 재미가 쏠쏠했고.

유성에서 온천 사우나 까지 하고 돌아와도 그냥 온건한 하루 해가 남아 있었으니.

일주일에 달랑 일요일만 쉬던 그 때  얼마나 알뜰하게 보낸 휴일 이던가? 


새벽산이 좋아진 건 그 때쯤 이었다.


새벽의 고요는 황홀하고 .혼자 만나는 산세상은 감미로웠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계룡산은 나의 훈련장이었고 놀이터였고 심심하고 무료할 때 불러내던

친구였다.

 

백두대간 순례시절은 내 체력의 절정기였고 발정난 종마처럼 가지 않은 거친 세상에 안달했다.

토요일 밤에 출발하여 통상 10시간이 넘는 산행을 선두에서 펄펄 날았고 백두대간 출정이 없는

주에는 말굽형으로 휘도는 계룡 능선을  7시간 30분에 걸쳐 종주했다.

(아마 지금 걸음으로는 9시간 30분 정도 걸릴 게다.)

새벽에 올라 오후 2시 경이면 산행을 마무리 했는데 그 기분 좋은 뻐근함과 뿌듯함 그리고 하루의

여유로움은 내가 누리는 최대의 즐거움이자 호사였다.

 

멀리 떠나지 못하는 날이나, 악천후임에도 몸이 근질거리는 날이면 홀로 배낭을 둘러메고 훌쩍

새벽 하늘을 열어 제치며 찾아 나서던 오랜 친구 계룡.

 


남매탑에서 빵을 먹고, 고구마를 먹고, 곶감을 먹고 내친 김에 커피까지 한 잔 타서 마시고 출발이다.

삼불봉에 올라 사위를 조망한다.

눈 덮힌 봉우리가 장관이라는데 점점 더 더워지는 지구와 미세 먼지 자욱한 금수강산에서 예전의

녹담만설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계룡산행의 백미는 단연 삼불봉- 자연성릉 관음봉 구간이다.

사계절 변화무쌍한 풍경과 내 삶의 애증이 드리운 그 길.

계룡에서는 무수한 옥바람을 맞았다.

멀리 떠날 수 없는 날이면 그 장쾌한 산릉을 걸으며 바람을 맞았다.

나는 그 바람과 함께 늙어갔고 계룡은 기골이 장대하던 그 잔등 위로 무수한 쇠파이프가 박혔다.

나는 어제의 바람을 아쉬워 하며 자연 성릉에 서서 지나간 바람의 길을 묻는다.

우린 모두 아픈 세월의 모퉁이를 돌아 왔다.

바람과 비는 그 시대의 아픔마저 맑게 씻어주고 그 상처에 새살을 내렸다.

나는 지나간 세월과 바람을 그리워 하며 다시 그 길을 걸어간다. 

 

세월의 먼 길을 돌아 내리니 새삼 인간만사 새옹지마란 말이 가슴을 저민다..

2005년 여름 나는 자연성릉의 바위에서 굴러 떨어져 어깨 인대가 파손 되었다

오른 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걸으면 울리는 통증으로 인해 낙남길에서 강판되었다..

2007년 겨울 자연성릉의 수직 철계단에서 추락하면서 등갈비 두 대가 부러지고 호남 정맥 길

중간에서 분루를 삼키야 했다...

무릉객 해즈폴른!

나는 날개 꺾였고 갈 수 없는 나라의 꿈은 오래도록 그늘진 도서관을 안타깝게 맴돌았다.

 

멀고 거친 산은 바라보지 못했다

가까운 근교산을 떠돌다 마눌과 100대 명산을 주유하면서도 회복될 기미가 없는 허리의 통증에  

조금씩 적응하면서 내 등을 떠나지 않는 아픔을 숙명으로, 친구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치유의 희망이 희박해져 가는만큼 자신감도 덩달아 점점 약해져 가던 어느날

그렇게 우울하게 내 삶을  지배하던 허리의 통증은 홀연히 사라졌다.

철계단에서 수직 추락하고 나서 꼭 3년 만이었다.

그 것 뿐이 아니었다.

시간은 내 어깨의 아픔까지 조용히 걷어 갔다. 

어깨의 통증이 사라지고 원상태를 회복하는 데는 꼬박 5년이 걸린 것이다.

효과 없는 물리치료도 일찌 감치 포기했고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이후로 한 번도 허리 통증이 재발된 적도 없고 어깨가 저린 적도 없다.   

5번의 팔굽혀 펴기도 못했던 내가 지금은 두 번에 나누어 100개는 거뜬히 할 수 있으니 내 팔과 어깨는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된 것이다.


 

난 이제  시간의 철학과 기다림의 힘을 믿는다.

나는 찰라의 인생을 살고 있고 그 찰라의 인생 중에서  세월이 내게 가한 고통은 눈깜짝할 새

보다도 짧다.

아니 시간은 그냥 흘러 갔을 뿐이고 나 혼자 괜히 아파하고 안달했다.

무릇 모든 일이 순리대로 귀결되는 것이거늘  나는 쓸데 없는 걱정을 하느라 똑 같이 소중하고

멋졌을 그 시간을 낭비하고 버렸을 뿐이다.

나는 나의 상실만을 슬퍼했고 더 이상 멀리 떠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과도하게 고통스러웠다.

멀리내다 보지 못하고 조급했던 탓에  시간에 휘둘렸고 그것이 나의 삶에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도록 방치했다.



휘회하고 분노했다.

내게 그리고 신에게….

그 길을 걸었던 그날에   

내가 안방같이 나들던 그 곳에서 당했던 말도 안되는 테러에


 

이제 철계단이 철거되고 안전한 계단이 설치된 그 곳을 바라본다.

옛날에 이런 데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 삶에 숨은 깊은 뜻과 복선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냥 지나간 시간에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든다.

그리고 이렇게 건강하게 계룡나라를 주유하며 산신령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난 지금도 이렇게 혼자만의 황홀한 고독에 심취하고 때로는 더불어 나누는 삶의 기쁨을 즐기며

그 어느 젊은 시절 못지 않게 거칠고 아름다운 세상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세월은 내게 준 가르침은 단지 기다림 이었다.

그 안에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사랑과 믿음과 소망과 행복까지…....

그 사고는 나를 돌아보게 했고 중독 같은 질주를 멈추게 했다.

나는 마눌과 100대 명산을 주유했고 그 때 질주를 멈추고 휴식한 내 도가니는 아직 싱싱하다.

 

행운은 신이 주관하고 행복은 내가 만든다.

내가 웃어야 세상이 따라 웃고 내가 노래하고 춤춰야 세상도 노래하고 춤춘다.

나를 위해 세상과 삶의 칙칙한 색깔을 밝고 아름답게 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 밖에 없다.

 

 

쫄지 말고 기다려라 !

 

세월이 가르쳐 주었다.

고통이 와도, 설사 오래 걸린다 해도 언젠가 그것이 지나 가는 것이란 걸

나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지만 쓸데 없이 후회란 고문으로 자신을 벌할 필요도 없다는 걸

지금의 불행이 다섯 마리의 말에 행복을 가득 싣고 되돌아 올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행복도 언젠가는 머리를 풀고 하늘로 훨훨 날아갈 것이라 걸

  

산이 늘 내게 말했다..

새털처럼 가볍게 세상을 나르되 경거망동 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삶의 물결을 거스르며 하지 말고 그 흐름에 몸을 맡겨라

그리고 뱃전에 누워 강둑의 풍경을 즐겨라 !”

  

자연성릉에 서면 지나간 시절의 향기가 전해 온다.

더불어 따라오는 상념과 솟아 오르는 추억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눈감고도 알 수 있는 포토 존들이 있다.

무수한 표정의 계룡의 얼굴을 짝어 왔는데 그것은 계절과 날씨와 그 날의 분위기에 따라 다르고

심지어 나의 기분에 따라 다르기도 했다.

언제가 그 사진들을 모아 포토 에세이 집을 하나 내면 좋겠다.

하도 변화무쌍하고 지루할 새가 없는 친구.

하지만 심지 굳은 그 친구와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며 늙어 갔으니 나 또한 조금은 깊어지지 않았을까?

오늘은 곁에 있어 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더욱 하고 싶어진다.

 

관음봉 데크에서 잠시 휴식하며 계룡 세상을 내려다보다가 하산의 길을 잡는다.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

유명하다는 연천봉의 낙조도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해 넘어가는 그 시간 까지 산 위에 있지는

못해도 연천봉에 들렸다 내려가고 싶어졌다.

비록 준비 없이 온 오늘이라 아쉽긴 하지만 그 옛날 산악회와 회사의 시산제 추억이 모두 남아

있는 추억의 봉우리 …..  

나의 주선으로 그 곳에서 회사의 시산제를 올리던 그 날엔 펑펑 흰 눈이 쏟아졌었다.

 

1km를 갔다가  연천봉에 오르고 등운암까지 들렸다가 되돌아와 산을 내려가니 조금 씩 날이 어둑해 진다.

처음으로 동학사 대웅전에 들러 삼배를 드렸다.

무수한 산들의 사찰에서는 빼 먹지 않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면서도 숱한 날 그 길을 그냥 스쳐 지나가더니

오늘 비로서 동학사 부처님 앞에 엎드리고 머리를 조아렸다.

 

참으로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진 산행길 이었다.

 

경성복집에서  복해장국으로  저녁을 먹고 사우나에 들러  산행이 피로를 풀고 집에 도착하니 9시가

다 되었다.

 

산 행 일 : 2020126일 일요일 (설날 다음날)

산 행 지 : 계룡산

산행코스 : 천장골- 남매탑-삼불봉-자연성릉 -관음봉 연천봉 동학사

소요시간 : 4시간 30

   : 맑고 따뜻하다.

   : 나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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